좀비 도시 - 16화 [5]

육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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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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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다

'연합이라..'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니 생존률도 더 올라갈 것이고, 정보를 얻기도 더 수월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다면.. 공우진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이 넓은 오림시에서 공우진이 우연히 저기에 있을거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네, 좋아요."

내 대답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여자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여기 108동까지만 마저 둘러보고 가자고."

이 곳, 108동의 5층, 우리 집 안에는 아직 좀비가 된 엄마가 있었다.
좀비가 된 엄마를 이 사람들이 본다면...

"아,안 돼요!"

갑작스런 내 반응에 두 사람이 깜짝 놀랐다.

"아.. 사실 친척이 여기 108동에 살았거든요. 혹시 돌아올 때 곤란할 것 같아서.. 다른 곳으로 가면 안될까요?"

"뭐.. 그러죠."

우리는 바로 옆동인 109동으로 향했다.
109동의 입구 쪽에 서성거리는 좀비 몇 놈이 보였다.

"그으으윽..."

터덜터덜 걸어다니던 좀비 놈들이 우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내 우리를 보고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나는 망치를 들어올리고 반격할 태세를 취했지만 의미없는 행동이었다.
양 옆에 있던 두 사람이 먼저 각자의 무기를 챙겨들고 쏜살같이 튀어나가 좀비들을 모두 정리했기 때문이다.

'뭐,뭐지 이 사람들?'

두 사람 모두 지훈이 형과 비교해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아니 지훈이 형보다도 더 강해보였다.
더 놀라운 점은 무기를 휘두르는데 어색함이나 망설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기다란 쇠파이프를 제 몸처럼 휘두르는 비니 쓴 남자나 캠핑 나이프로 좀비의 급소를 헤집어놓는 숏컷 머리 여자나,
두 사람 모두 마치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 같았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109동 안으로 들어서고, 숏컷 머리 여자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 웬 기괴한 장비를 꺼냈다.
그리고.. 잠겨있던 101호의 문이 열리는데에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눈이 휘둥그래져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던 내게 비니 쓴 남자가 속삭였다.

"저 사람, 왕년에 말이죠.."

그 순간, 숏컷 머리 여자는 살벌한 눈빛으로 비니 쓴 남자를 노려보았다.

"아,알았어. 말 안할게.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고."

'뭐지 도대체..?'

똥을 싸다가 도중에 끊겨버린.. 찝찝한 기분이었다.

치가운 냉기를 풀풀 풍겨대는 숏컷 머리 여자 때문에 더 이상 오고가는 대화는 없었다.
우리는 101호부터 꼭대기층까지 집을 샅샅이 뒤졌다.
솔직히 도둑질하는 것 같아 양심에 찔렸지만, 이 사람들은 그런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오후 6시 17분.
109동에 이어서 110동까지.. 두 개의 동을 모두 뒤지고나서야 오늘의 도둑질?은 끝이 났다.
남자가 초코파이 두어 개를 꺼내 내게 던지며 말했다.

"이제 돌아가자고, 아지트로."

같이 다니면서 우리는 이미 통성명을 끝냈다.
맨 처음 내가 고등학생이라고 했을 때, 두 사람은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뭐? 그렇게 안보이는데?"

천연덕스럽게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을 보고 꿀밤 한 대를 먹여주고 싶었지만, 아까 좀비와 싸우던 모습들이 생각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나이 어린게 죄지..'

그래도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꽤 볼록해진 가방을 보니, 나름 만족스러웠다.



아파트 단지를 나오고.
나는 뒤를 돌아보며 다짐했다.

'꼭 치료제 구해서 돌아올게 엄마.'

어찌 보면 지금의 그 끔찍한 상황에 대한 단순한 도피 행위일지도 모른다.
도시가 이렇게 된 마당에 공우진을 어디서 찾겠는가..
또, 그 사이에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이것저것 생각해보면 끝이 없었다.

문득 예전에 지훈이 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믿는 수 밖에.」

그 말대로 그저 앞으로 잘 풀리기를 '믿는 수 밖에'는 없었다.
엄마와 지훈이 형을 다시 떠올리니 눈물이 핑 돌았다.

"밍기적거리지 말고 빨리 가자고. 밤이 되면 곤란하니까 말이야."

아까 이 사람들이 말하기를, 밤이 되면 좀비들은 상당히 흉폭해진다고 했다.
또, 밤에도 좀비들은 인간들을 곧잘 구분해낸다고 한다.
밤이 되면 사물의 구분에 상당한 제약을 가지는 인간과는 다르게 말이다.

"네."

흘러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고서, 나는 삼용 아파트 단지를 등지고 돌아섰다.



우리는 곧바로 오생연의 베이스 캠프, 롯데마트몰로 향했다.
비니 쓴 남자는 이 근방의 지리에 대해 잘 아는건지, 좀비들이 적은 최단거리 루트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해가 거의 저물 때가 되서야 우리는 롯데마트몰에 도착했다.
롯데마트 입구는 바리케이트와 드럼통으로 둘러쌓여 있었고, 그 뒤를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지키고 서있었다.

'건물 안에 있던 좀비들은 전부 몰아낸건가?'

"거기 멈추십쇼."

입구를 지키고 있던 녹색띠를 맨 남자가 다가오는 우리를 제지했다.

"탐색 B조 유기태, 손정연. 그리고 내 옆에 있는 고딩은 뉴페이스입니다. 빨리 확인하고 들여보내 주시죠. 배고파 죽겠으니까."

비니 쓴 남자, 유기태의 말에 남자는 드럼통 위에 올려둔 명부를 확인했다.

"음.. 일단 신원은 확인됐습니다만, 절차대로 몸수색을 진행하겠습니다. 남자 두 분을 저를, 여자 분은 이 분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나와 유기태는 녹색띠를 맨 남자를, 숏컷 머리의 손정연은 녹색띠를 맨 여자를 따라 서로 갈라졌다.
흰색의 천막 안, 남자 둘이 지켜보는 앞에서 나와 유기태는 몸수색을 받았다.
그 와중에 녹색띠를 맨 남자는 손에 권총을 들고 있었다.

'총..! 경찰서에서 구한건가?'

부촌동에 경찰서가 있기는 했다.
우리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훑어보는 남자의 눈을 보니, 침이 자동으로 꿀꺽 삼켜졌다.

'내가 만약 물린 자국이 남아있었다면, 방아쇠가 당겨졌겠지.. 아니 내쫓겼을라나?'

어쨌거나 천만다행이었다.

"물리신 곳은 없군요. 그럼 안으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몸수색이 끝나고, 천막을 나온 우리는 드디어 롯데마트몰 안으로 들어갔다.
롯데마트몰 내부는 꽤나 넓직했고, 사람도 예상보다도 더 많이 보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굉장히 우중충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유기태가 바로 앞의 카운터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이, 쫀득이! 나왔어 ~"

"쫀득이가 아니라 원득이라니까요! 김.원.득!"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순박한 얼굴의 남자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왠지 나도 놀리고 싶어지는 외모와 반응이었다.

"쫀득이나 원득이나~, 어쨌든 여기 준우라고 새로 온 애니까 잘 알려줘. 참고로 너랑 동갑일거야."

그제서야 김쫀득.. 아니 김원득은 나를 돌아보았다.

"아, 오늘 처음 오신 분이군요? 여기 명부에 기입해야 돼서.. 앞쪽에 앉으시겠어요?"

"아, 네."

나는 김원득이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뭐 동갑끼리 존대냐. 그럼, 나는 리더 보러 올라가볼테니까 잘 알려주라고, 쫀득이!"

"쫀득이라고 부르지 말라니...."

유기태는 김원득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하며 멈춰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어휴...."

한숨을 내쉰 김원득은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여기 종이에 빨간 펜으로 체크해둔 부분을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김원득의 말대로 종이의 체크된 부분을 써내려갔다.
작성이 끝나고, 김원득이 종이를 확인하며 말했다.

"아, 오림고 다녔구나! 혹시 금준혁 알아?"

김원득이 손뼉을 치며 물었다.

"어, 같은 반 된 적은 없는데 얼굴은 알아."

"아 그래? 걔도 여기에 있거든."

"부럽네."

이런 상황에 친구와 함께라니..
부러웠다.

'성엽이는.. 살아있으려나?'

인터넷도 안되고, 전화도 안되니 확인할 길이 없었다.

'분명.. 진정동 쪽 GS수퍼마켓에 있다고 했었지..?'

건물 크기로 미루어봐서는 이곳보다 사람 수나 물자가 훨씬 적을 것이었다.
제대로 잘 버티고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나중에 기회되면.. 들러보자.'

"어쨋든 또래끼리 뭉쳐서 잘 지내보자!"

김원득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 힘내서 잘 지내보자."

김원득은 나와 악수를 나누고서 카운터 위의 종이들을 정리하며 말했다.

"배 고프지? 잠시만 기달려. 나 곧 근무 교대 시간이니까 같이 밥 먹자."

"저기서 기다릴게."

나는 맞은편 화장실 쪽의 기다란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알았어."


소변이 급했던 나는 화장실을 향해 급하게 뛰어갔다.
화장실로 들어서려던 순간, 안쪽에서 나온 누군가와 정면에서 마주쳤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한동욱....'

공우진을 매일 같이 괴롭히던, 같은 반의 성질 더러운 일진 놈이었다.

'살아있었나..'

공우진의 복수 대상 1호라고 봤는데, 그는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나는 한동욱이 제발 모른 척하고 지나가주기를 바랬다.
이 놈이 나를 괴롭힌 적은 없었지만, 솔직히 이런 곳에서 마주쳤을 때 반가운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음.. 혹시 오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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