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기억하겠습니다 [3]

팬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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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3 18: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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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탐




작년 겨울이었다. 내가 활동하는 커뮤니티 카페에서 처음 보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 해당 글 안에는 별 내용이 없었다. ‘같이 행복한 술 드실 분 찾습니다... 제 자취방에서 모여서 같이 한잔해요...’ 라고 만 기재돼 있을 뿐 더 이상의 내용은 없었다. 나는 행복한 술이 뭔가 싶어 호기심 반, 궁금증 반. 먼저 채팅을 걸어봤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글 봤는데 혹시 지역이 어디신가요?”


“경기도 입니다...”


무뚝뚝했다.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혹시.. 술자리 몇 명이나 모으실 생각이신가요? 괜찮으면 제 친구도 여기 카페 회원인데 같이 마실까 싶어서요.”


그리고 그 사람이 올린 글은 어느새 조회 수가 500대 까지 올라가더니 같이 술 마시자는 요청이 꽤나 많이 들어왔다. 확실히 생소한 모임이니 만큼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던 것이다. 평소 활동도 잘 없는 카페 인데다가 운영자가 주최하는 정모도 아니고 회원이 나서서 본인 자취방으로 놀러오라는 경우는 카페 활동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보질 못했으니까.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우리가 머물던 채팅방엔 어느새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내일 오후 7시. 송추역 1번 출구...’


친구와 나는 뭐하는 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친해져서 가끔 만나 게임도 하면 재밌겠다 싶어 무조건 참석하기로 했다. 주말인 다음날, 별 일정이 없었던 친구와 나는 만나기로 한 시간에 맞춰 역 앞에서 기다렸다. 약속 시간은 7시 였지만 조금 일찍 도착한 우리는 한적한 역 앞에 서서 담배를 하나씩 피우면서 기다렸고, 5분가량 지난 후 주최자가 나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혹시...”


“아네! 루키님 되시죠!”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냉장고 바지. 나라 잃은 표정... 뭔가 채팅창에서 대화를 나눌 때 느껴지던 그 감정 없는 사람의 이미지가 번뜩 매치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이리로 가면 된다며 길을 나섰고, 초면에 흐르는 무언과 적막함이 싫어 일부러 말을 꺼냈다.


“몇 명이나 모인대요?”


“글쎄요... 다섯 명 정도 될 거 같네요...”


친구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낯을 가리는 건지,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는 내내 축 쳐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살짝 낡아 보이는 빌라에 들어서서 본인의 집이라며 102호 문을 열어 슬쩍 뒤로 빠져있었다. 손님이랍시고 배려하는 듯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신발을 벗고 방안에 들어가자 의외로 방이 깨끗했다. 남자 혼자 사는 방 치고는 냄새도 안 나고 상당히 깔끔했다. 아니... 방이 울릴 정도로 정말 가구가 없었다고 해야 맞겠다. 우린 방 중앙에 놓인 식탁에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또다시 시작된 적막... 억지로 말을 또 꺼내보았다.


“근데 이사 온지 얼마 안 되신 거예요? 가구가 별로 없네요.”


그러자 친구가 나를 툭 치며 눈치를 줬다. 그런 말을 왜 하냐는 듯 한 눈빛으로.


“왜~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그러자 그가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이 마지막이거든요.”



이번엔 친구가 질문을 했다.


“아 이사 가세요?”



“...네 다 정리하고 가려고요. 마지막이기도 하고 이제 이 동네 뜨니까 좀 적적하기도 해서 술이나 마실까 했는데 혼자 마시기도 뭐하더라고요...”



“그렇구나... 아이 뭐 이왕 이렇게 된거 친하게 지내요 형!”




악수를 청하는 친구의 손이 부끄러울 정도로 그는 대놓고 친구의 손을 무시했다. 아마도 낯을 가리는 성격인가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럴 거면 사람을 왜 부른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들어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뭐하자는 거냐... 사람이 악수하자는데 대놓고 무시를 하네.”



“초면이라 좀 서먹서먹할 수도 있지 뭘 그래..”



매사 긍정적인 친구는 그 상황마저도 그저 그런 가보다 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때 마침, 다른 분들이 도착 하셨고 우린 그분의 자취방에 옹기종기 모여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인생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술자리를 주최한 그 사람은 내내 감정이 없어보였다. 마치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불러내 이 자리에 앉혀놓은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이럴 거면 도대체 술 먹자고 왜 사람을 모았는지.. 말이다.


그런데 그때,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말이 좀 없어서 기분이 언짢으신 분도 계시겠죠...”


그 말에 뜨끔 한 내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아뇨!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괜찮아요! 원래 낯을 가리시는 분이구나 했어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분이 말을 덧 붙였다.



“뭐 안 좋은 일 있으세요...?”


하지만 묵묵부답... 그저 서로 잔에 든 술만 들이킬 뿐이었다.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응...? 하는 얼굴로 그저 그 사람들을 따라 술만 마시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 한, 두 명씩 슬슬 자리를 일어나는 모습을 보였고, 친구는 내게 오다보니 근처에 모텔이 하나 있던데 거기 가서 자고 가자며 나를 보챘다.



우린 테이블 위에 술잔들과 쓰레기들을 정리했고, 이 자리를 주최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그 순간 까지도 우울한 얼굴로 우리를 배웅했다. 처음엔 짜증이었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측은해져갔고, 마지막 그 집을 나올 때는 안쓰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뭐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니 그냥 내 갈 길이나 가야겠다 싶어 별 생각 없이 숙소를 잡아 들어갔고, 과자만 먹어서 그런지 조금 출출했던 우린 그곳에서 배달을 시켜다가 술을 한잔 더 했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우린 새벽 내내 떠들고 술을 마시다가 잠이 들었는데 방안에 요란하게 울리는 벨소리에 번쩍 눈을 뜨고 말았다.



“예..”



“학생들 이제 퇴실 준비해줘요”



“아네.. 금방 준비해서 나갈게요...”



1층 카운터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난 옆에서 쥐죽은 듯 자고 있는 친구를 깨워 얼른 씻으라고 했다.


“야 우리 나가야된대.. 일어나”



둘 다 샤워를 마치고 모텔 방을 나가려는데 문득 친구가 주머니를 뒤지며 내게 물었다.



“야.. 내 폰 어디 있지”



나는 뒷목을 잡으며 우스갯소리로 친구에게 말했다.



“하.. 죽일까 진짜...? 너 어제 그 형 집에 두고 온거 아니야?”



그리고선 내 휴대폰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를 않았다. 그러면서 문득 어제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맞다, 오늘 그 형 이사한다고 그랬잖아... 일단 가보자.”


얼른 짐을 챙겨 우린 더듬더듬 어제 온 길을 찾아서 그의 집에 도착했고 나는 바깥에서, 친구는 갔다 오겠다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1분도 채 되지 않아 손에 휴대폰을 쥐고 나오기에 난 그가 휴대폰만 전해주고 다시 들어간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형 벌써 이사 가셨나봐”


친구가 말을 하며 내게 휴대폰과 그 위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보여줬다.


“폰 두고 가셔서 여기 놓고 갑니다...”


“그놈에 쩜쩜쩜은...”


난 포스트잇을 보며 투덜댔는데, 친구가 문득 그 집 창문을 한번 쓱 보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 거렸다.


“왜 그래? 가자 이제 폰 찾았으니까 됐잖아.”


“이 형 이사 안 간거 같은데? 저기 베란다에 어제도 널려있던 빨래랑 박스들 다 그대로야.”


“아 뭐 안 갔나보지... 뭔 상관이야 가자”


하지만 친구는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며 무작정 건물로 다시 들어가 102호 문을 두드렸다.


“형 안에 계세요?”


두 번, 세 번. 두드리다가 응답이 없자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을 했다.


“야.. 근데 폰 찾았잖아. 그 형은 왜 보려고 그래?”


그러자 친구가 뒤를 돌아 한심하다는 듯 날 보며 말했다.


“병신아.. 형 아파보이니까 그렇지... 어휴...”



난 입술을 삐죽 내놓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거리며 친구의 말에 토를 달았다.


“뵨신아 횬이 아파보이니까 그루치~~ 아주 그냥 지극정성이여”


우린 곧 집으로 돌아왔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일상을 즐기며 그럭저럭 잘 지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활동하던 카페에 다시 들어가 보니 또 새로운 글이 올라와 있어 눌러보았고,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중... 난 곧장 그 카페를 탈퇴해버렸다...






작성자 : 루키 – 김승호님, 장원호님, 백지예님, 이상원님, 공수진님... 모두 기억하겠습니다.



라는 말로 시작을 해서 끝에는 동영상을 걸어놨는데 본인의 손목을 긋고 죽어가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광대처럼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눈을 희번뜩 거리고 있었다. 그날 본인의 자취방에서 같이 술 마셨던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외워가며

“나한테 가구가 왜 없냐고 비웃었지?! 무슨 안 좋은 일 있냐고 걱정하는 척 했지!!! 기억할거야! 기억할거야!! 를 외치고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악몽을 꾸고 있다.









*루키 님 께서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써주신 내용에 살만 덧붙여서 써봤습니다.”


* 컨텐츠 출처 : 창작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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