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조금 더 있고 싶었는데...' [5]

rkgnl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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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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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gnl99

[단편] '조금 더 있고 싶었는데...'




대학원생이 된다는 거



연구원으로서 산다는 거



그리고 졸업논문을 준비한다는 거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건 정말이지 지옥같은 일이다.







철야는 기본이고 집에 돌아오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대체 이 악몽같은 강행군이 언제쯤 끝이 나려나 목놓아 기다려보지만



시간이란 놈은 원체 수줍음이 많은 녀석이라



쳐다보고 주시하고 또 신경을 쓰면 쓸 수록 더 바튼 걸음으로 사람의 애간장을 녹인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동이 틀 무렵의 새벽, 모처럼 랩실을 나와 무려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오던 길이었다.



바리바리 빨래감을 한 무더기 싸짊어지고 어두운 현관문을 들어서니



낯익은 인영 하나가 방문을 열고나와 반겼다.



엄마였다.



평소보다 초췌해 보이는 얼굴이 왠지 거울 속의 나를 보는 것 같았지만



매일 같이 반복된 피곤한 일상은 오지랖 넓던 나를 어느덧 세상 가장 무심한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게다가 채 무얼 느끼기도 전에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말 만한 처녀가 며칠이나 외박하고! 대체 뭘 하다 이제 와!"



"졸업 논문 준비하면서 집에 꼬박고박 들어오는 대학원생이 어딨어! 엄마는 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다 몸 상해! 밥은 제때 챙겨 먹니?"



"아! 몰라 시끄러! 귀찮고 피곤하고 힘드니까 말 걸지마! 아 엄마는 잠이나 자지 왜 괜히 나와서 잔소리야 잔소리가! 심심하면 빨래나 해줘."



"어휴... 우리 딸... 허구헌 날 이렇게 힘들어서 어떻게 하니?"



"됐거든요. 도와줄 거 아니면 신경 끄세요."



"근데 딸! 그건 뭐야?"





엄마가 손에 든 측정 장비를 보고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평소라면 '엄마가 그런건 알아서 뭐하게' 무시하고 말았을테지만


그날은 기분이 묘했다.

한바탕 차갑게 쏘아붙인 것도 미안하고 해서 들고 있던 장비를 켠 뒤 우쭐대며 말했다.




"교수님이 테스트해보라고 맡긴 적외선 열 감지 카메란데, 생긴 건 일반 캠코더랑 비슷해 보여도 이렇게 켜면 온도를 색으로 표현해줘. 봐! 엄마 같은 사람은 이렇게 파랗게... 어?"





그 순간 나는 세상 가장 슬픈 표정을 보았다.



쓸쓸히 웃으며 점차 희미해져가는 엄마가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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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kgnl99
      2019-07-10 11:13:08 4 0
    `16년 9월에 쓴 글인데, 이유는 모르겠는데 안 올렸길래 올려봅니다. 다들 어머니께 살가운 전화 한 통씩 들 합시다. 오래 전 혼자서 심근경색으로 쓸쓸히 사망하신 친구의 어머니 이야기를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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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소한지민
      2019-07-10 15:57:18 1 0
    오 감동적임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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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kgnl99
      2019-07-10 16:53:53 2 0
    모든 엄마보다 위대한 성인은 없으니까. 엄마한테 잘해라. <-요거 어렸을 때 성당 신부님이 해주신 말씀. 어린 내가 그럼 엄마가 주님보다 나아요? 했더니 신부님 말씀 "주님의 10억번째 아들이 될 래? 아니면 너희 어머니의 단 하나뿐인 아들이 될래?" 뭔가 아리쏭했던 나. "그럼 신부님은 왜 신부님이 되셨어요?" 신부님 왈, "우리 엄마 돌아가셨어" <-요거 딱 하나만 뻥이고 실제론 "나는 뱀꼬리보단 용대가리를 선택한거지" 하고 웃으면서 사라짐. 그때는 뭔소린지 이해 못 했는데. 암튼 그런 일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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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kgnl99
      2019-07-10 16:56:25 1 0
    뭐 종교 폄하는 아니지만, 나중에 교회 다닐 때 목사님 앞에서 같은 얘기했는데, 목사님 왈, 그거는 ㅇㅇ이가 아직 성경을 잘 몰라서 그래요. 주님은 나불나불... ㅎㅎㅎ 울 엄마보다 주님이 더 위대하다고 강변하시면서 교회 열심히 나오라고 하심. 슬픈 건, 이 얘길 집에가서 나불나불 엄마한테 해드렸더니 엄마 왈 "에이 많이 배우신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니까 맞겠지." 별거 아닌데... 뭔가 찡... 엄마는 항상 당신의 아들 딸을 가장 높은 곳에 올리기 위해가장 낮은 곳에서 진흙 속에 발을 담그시는 분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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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kgnl99
      2019-07-10 16:57:10 2 0
    말이 길었네.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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