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나가지마시오 11화 [4]

삶이무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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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3 16: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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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무의미함

 

진성아, 제발 무사히 있어다오. 진우는 네가 알아서 잘 지켜주고…… 다음에 만날 때에는 철문 사이가 아니었으면 좋겠구나.”

 

아빠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나타났던 골목길로 돌아갔다. 문을 열수가 없었다. 내 손에는 다른 사람들의 목숨도 달려있었다. 점점 멀어져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나?”

 

아저씨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예.”

일단 들어가서 상의하지. 밤공기가 차가워.”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시선은 골목길로 향했다. 오랜 고생 끝에 만난 아빠와의 재회는 5분 만에 끝나버렸다.

 

집으로 들어오자 멍하니 물을 마시는 동생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이 나려 했다. 이를 악물고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다.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돼.

 

물기를 대충 닦은 다음 거실로 나가자 다른 사람들이 모두 식탁에 앉아 있었다

 

일단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아저씨는 특정 인물을 지목하지 않은 채 말했다. 나름의 배려인 것 같았다.

 

하지만…… 거짓말 같지는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리가…….

 

준우 아저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두머리라…….

 

영문을 모르는 동생은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궁금해 하는 것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아저씨는 그런 동생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얘기를 들을 때마다 동생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물론 '아빠'의 얘기는 쏙 뺐다. 괜히 얘기해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왜 다른 사람들을 절대 믿지 말라고 한 걸까.

 

결정을 내려야만 해. 우두머리 녀석이 있다는 게 제일 마음에 걸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게 영 찝찝하고 말이야.”

당장은 떠날 수 없어요. 충분히 준비를 하고 난 뒤에 가야만 해요.”

낮이면 몰라도 밤이 문제야. 목숨을 건 실험을 해야 할지도 몰라.”

 

어려운 결정이었다. 분명 여기를 떠나야만 했다. 왠지 그래야만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빠의 말이 거짓이라고 해도 어제 보았던 그 덩치 큰 녀석의 판단력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곳은 이제 안전하지 않다.

 

그럼 여태까지 운이 좋아서 우두머리 녀석에게 안 띈 걸까요?”

 

동생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흐음…… 그것도 그렇군.”

형님. 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절묘해요. 우리가 알아내지 못한 뭔가가 있을지도 몰라요.”

녀석들은 보통 사람과 같은 지성을 갖고 있다고 했어. 그렇다면…….

 

아저씨는 한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답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리들을 이끌고 차례차례 생존자들을 잡으러 다닐 수도 있겠군요.”

그래. 뭐든지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이 좋은 거니까.”

그럼 대충 아귀가 맞아 떨어지네요. 일부러 문을 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을 집안에 고립시킨 뒤에 우두머리가 다른 녀석들을 이끌고 생존자의 집을 공격한다. 이거 정말 소름 돋는데요.”

 

괴물들의 행동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상상 이상이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시간문제였다. 마음속으로는 당장 떠나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당장 출발하도록 하지. 오늘부터 불침번을 서면서 녀석들의 행동을 살피자고. 다들 어느 정도 잠을 자뒀으니까 지금부터 짐을 꾸리면 좋을 것 같네. 꼭 필요한 것들만 챙기고…… 진성아, 먼저 망을 봐줘.”

.”

 

모두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은혜만이 멀뚱멀뚱 서 있었다. 나는 은혜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오빠랑 같이 올라갈래?”

…….

 

뻗은 손이 민망할 정도로 은혜는 반응이 없었다.

 

그럼 그렇지…….

 

머쓱해진 것을 감추기 위해 걸음을 옮기자 은혜가 내 손을 잡았다.

 

…….

 

작고 고운 손이었다. 은혜는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은혜에게 가볍게 웃어주고 옥상으로 향했다.

 

휘이잉선선한 밤공기가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동네를 비추는 환한 보름달이 유독 아름다워 보였다. K-2를 어깨에 단단히 메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우리 동네를 차근차근 눈에 담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을 와서 큰맘 먹고 지은 우리 집. 일주일에 한 번은 옥상에 모여 바비큐 파티를 하곤 했었는데…… 잔디에 누워 햇볕을 받으며 낮잠을 자던 그런 집이었는데…….

 

추워?”

 

은혜는 추운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은혜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옷도 갈아 입혀야겠네. 휘이잉- 쌀쌀한 바람이 스쳐지나가자 은혜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이거라도 입자. 은혜야.”

 

바람막이를 벗어 은혜에게 입혀주었다. 작고 여린 어깨였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밖에서 지내왔을까.

 

미안해. 처음엔 네가 괴물인줄 알았거든.”

은혜 착해.”

그래. 착하지.”

 

20분정도가 지났다. 아저씨가 최소 1시간은 서줘야 한다고 말했다. 은혜는 추운지 오들오들 떨었다. 나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은혜를 옥상에서 내려 보냈다.

 

휘우웅-

 

옥상에 혼자 남게 되니 두려움이 몰려왔다.

  

[절대 다른 사람을 믿어선 안 돼. 밖에 나가서도 안 된다.]

 

아빠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리고 아빠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아니, 아빠의 정체는 대체 뭐지? 아빠는…… 평범한 연구원이 아니었나? 설마 이상한 연구를 진행 하다가..?

 

아니다.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야 돼. 이런 어중간한 잣대로 아빠를 짐작할 수는 없어. 무엇보다 아빠가 정상이라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 해.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끝에 자연스럽게 철문 앞 가로등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서 있어서 그냥 고개를 돌렸다.

 

“!?”

 

비릿한 냄새에 이끌리듯이 다시 고개를 돌린다. 검은 털로 뒤덮인 괴물은 상당히 좋은 신장을 가지고 있었다. 괴물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나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크르르르르.

 

환하게 비추는 붉은 눈매가 내 몸을 뚫어버릴 것 같았다. 녀석의 입 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내가 겁먹은 것을 한눈에 알아버린 것이었다. 기 싸움에서 완전히 밀린 나는 이를 악물고 총구를 겨눴다. 여기서 총을 쏜다면 상당히 큰 소음이 울려 퍼진다. 그렇게 되면 다른 녀석들이 몰려올 가능성이 크다.

 

크르르.

 

그렇다고 녀석을 이대로 놔두기에는 너무 불안했다. 아빠가 말한 '우두머리'가 바로 저런 녀석이라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쩌지…… 어떡하면 좋지? 목이 바짝 마르는 것 같다.

 

지금 너희들을 죽이는 건 어린아이들을 죽이는 일만큼이나 쉽다. 나약한 생물아.”

 

마치 옆에서 말을 하는 듯 녀석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어떻게……? 녀석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거리도 상당히 멀었다

 

놀란 얼굴 하지마라. 보기에도 역겨우니까. 넌 그저 내 명령만 따르면 돼.”

…… 네가. 우두머리……?”

어떻게 부르건 상관없다. 내가 원하는 건 너희 집 안에 있는 계집이다.”

 

계집? 설마 은혜를 말하는 건가?

 

그 계집만 넘겨주면 너희들의 목숨은 살려주지. 잘 생각해라. 하등 생물아. 세 시간. 세 시간의 여유를 주겠다. 빨리 넘기는 게 좋을 거야. 너희들이 저항을 해도 어차피 저 계집은 내 손에 들어오게 되어 있어. 차라리 계집을 나에게 넘겨주고 아주 멀리 떠나버리는 것이 너희 하등 생물에게도 좋겠지.”

 

그렇게 말한 녀석은 어둠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선전포고. 아니, 이건 알아도 막을 수가 없는 공격이었다. 당장 옥상에서 내려와 아저씨들에게 다가갔다.

 

, 큰일 났어요.”

 

그 말에 일제히 작업을 멈춘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았다.

 

우두머리라는 게…… 정말 있긴 한가 봐요.”

 

나는 있는 그대로를 모두에게 전했다. 아저씨들과 동생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져갔다. 이건 선택이 아닌 강제였다.

 

절대 못하네. 은혜를 녀석에게 주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아저씨는 잔뜩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은혜는 하나의 일원이었다. 게다가 녀석들은 괴물일 뿐이었다. 정말 만에 하나 은혜를 넘겨 준다고 해도 우리들을 살려두지 않을게 분명했다.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요?”

 

동생은 초조한지 발을 떨며 물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총과 총알뿐. 녀석에게 대항할 수 있는 건 극히 한정적이었다.

 

그래도 꽤 신사적이네요. 선전포고라는 것도 하고.”

 

준우 아저씨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장난 섞인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에 어느 하나 답해주진 않았다. 

 

"...."

 

앞으로 세 시간. 세 시간 안에 뭔가를 생각해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모두 죽게 된다. 은혜를 넘기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은혜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양심이자, 지켜야만 하는 순결의 존재였다.

 

어렵겠는데…….

 

아저씨도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르렀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동생은 그저 묵묵히 총을 점검했고, 준우 아저씨는 쌓아 놓은 짐 위에 걸터앉아 우리를 바라보았다.

 

죽긴 죽더라도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는 게 어때요?”

?”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놈이라도 더 없애자고요. 까놓고 말해서 우리들이 이렇게 살아온 것도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에요. 뭔가가 우리를 보호해준 거라고요. 이제 그 약발이 다 떨어진 거고…… 그러니까 저 빌어먹을 놈들을 저승 가는 길동무로 최대한 많이 데려가자고요.”

 

 

 

맞는 말이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야 했다. 동생과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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