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나가지마시오 34화 [1]

삶이무의미함

아바타/쪽지/글검색

2019-11-26 20: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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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무의미함

 메시아시여!”

 

가장 듣기 싫었던 우두머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독하구만..' 이라고 중얼거린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녀석은 죽지 않았다. 그 많은 괴물들을 해치고 여기까지 왔다는 건가. 저 녀석을 저렇게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은혜라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정도로 은혜의 존재라는게..

 

크아아아!”

 

아까와는 다른 포효소리. 대지를 흔드는 듯한 거대한 소리에 온 몸이 떨렸다.

 

"……

 

모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창밖을 주시했다.

 

총은 쓰지 않는 건가요?”

 

준우 아저씨는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김 대위에게 물었다.

 

총 소리에 잠들어 있는 다른 녀석들을 깨운다면 곤란합니다.”

 

김 대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우두머리 녀석이 소리친 건…….

아까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괴물들은 더 이상 우두머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거나 이거나 어차피 놈들을 깨우는데는 매한가지라고요."

 

김 대위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지 선듯 답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승산이 있다는 것은 녀석들이 더 이상 우두머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린 여러명이고 그동안 많은 고비를 넘겨 왔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메시아시여!”

 

우두머리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입술을 꽉 깨물고 소파에 앉아 있는 은혜를 바라보았다. 은혜는 인형처럼 앉아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메시아시여!”

 

녀석의 외침에 은혜가 반응했다. 은혜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아저씨는 내게 손짓을 했다. 얼른 은혜에게 뛰어가 작고 여린 어깨를 잡아 멈춰 세웠다.

 

은혜야, 조금만 참아. 가만히 앉아 있으면 우리가 다 알아서 해 줄 테니까.”

 

무릎을 꿇고 은혜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 …… …….

 

작은 입술 사이로 나오는 말은 메시아가 전부였다. 얼마나 많은 세뇌를 받은 걸까. 다시 소파에 은혜를 데리고 가 강제적으로 앉힌 뒤 창가로 다가갔다. 더 이상 우두머리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꿀꺽마른침을 삼키며 고요한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해가 지는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빨랐다. 곧 밤이 다가온다.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는 우리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시간이었다.

 

콰아앙!

 

낯선 굉음과 함께 먼지가 가득 피어올랐다.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천장 쪽이었다. 당황한 김 대위는 먼지 속을 향해 석궁의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던 소리가 아니었다. 녀석은 저기에 없다. 그렇다면……?

 

오싹. 소름이 돋았다. 잊을 수 없는 저 소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저씨의 뒤에는 아무도 없고 김 대위도…… , 준우 아저씨!

 

?”

 

준우 아저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벌 입술이 떨렸다. ‘사신과 같은 형세를 한 우두머리가 준우 아저씨의 목을 꿰뚫을 기세였다. 녀석의 거친 숨소리를 느꼈는지 준우 아저씨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 시아…….

 

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두머리는 소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쿨럭.”

 

먼저 침묵을 깬 건 우두머리였다. 녀석의 입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살아남긴 했지만 상태가 꽤 심각한 모양이었다.

 

메시아시여…….

 

우두머리는 애타게 은혜를 불렀다. 녀석은 많이 지쳐있었다. 몸 여기저기에 성한데가 없었다. 너덜거리는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우두머리의 집념에 혀를 내두르게 됐다. 

 

…….

 

은혜는 우두머리를 빤히 보며 걸음을 옮겼다. 대치 상황에서 은혜의 돌발적인 행동은 우리를 당혹케 했다. 당구대 위에 있는 이 소위와 동생에게 고개를 돌렸지만, 기절했는지 조용히 숨만 쉬고 있었다. 순식간에 이 소위와 동생의 의식을 빼앗은 건가.

 

…….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인지 초조한 표정으로 은혜와 녀석을 번갈아 보았다. 섣불리 움직이다간 준우 아저씨까지 위험했다.

 

자박. 자박.

 

은혜는 건물 파편이 깔린 바닥을 맨발로 걸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미량의 녹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은혜야 멈춰! 네가 위험해!”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은혜에게 소리를 질렀다그러나 은혜의 목표는 나도 아저씨도 김 대위도 아닌 우두머리 녀석이었다. 당장이라도 화살을 날리고 싶었지만 준우 아저씨를 방패삼아 그럴 수도 없었다.

 

이윽고 은혜는 우두머리 앞에 도착했다. 우두머리는 준우 아저씨를 밀치고 은혜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피가 은혜가 입고 있는 후드에 서서히 스며들어갔다. 은혜는 한 손을 들어 우두머리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메시아시여…….

 

우두머리는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마치 세례를 받을 때의 그것과 같은 동작이었다. 이윽고 우두머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은혜가 남기면서 온 피의 길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메시아시여.”

 

우두머리는 바닥에 이어진 녹색 피를 핥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묘하게 경건하게 보여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채 은혜와 우두머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흔적들을 모조리 핥아 먹은 우두머리는 다시 은혜에게 돌아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

 

은혜는 다시 우두머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것이 꽤 편안하게 느껴졌는지 우두머리의 몸이 서서히 앞으로 기울어졌다.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딱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사르르르우두머리의 검은 털들이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그것은 당구장 안을 가득 매우기 시작했다. 나풀거리며 점점 흩어지는 털을 손으로 잡아 보았다.

 

털들은 잡히지 않고 내 손을 빠져나갔다. 저렇게 부드러웠었나? 우두머리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검은 털들이 걷히자 갈색 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키에 꽤 탄탄한 근육을 가진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표정으로 은혜의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그런 거였군.

 

아저씨는 사라지는 털들을 보며 말했다.

 

“.……그런 거라뇨?”

저 남자는 자신을 구원해줄 유일한 존재가 은혜라고 생각한 거야. 그 때 말했던 게 생각나는군. 자신의 형제들의 이성을 되찾아 줬다고…… 그 말은 즉 은혜의 피로 형제들을 낫게 해줬다는 말이 되겠지. 그 놀라운 힘에 후드 녀석들은 은혜가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자라고 착각하게 되었고, 집착하게 된 거지.”

 

마지막으로 남은 털들이 시야에서 점차 멀어졌다.

 

절망적인 상황이 인간을 저렇게 만든 거군요. 왜 본인은 치료를 받지 않은 걸까요.”

 

김 대위는 허망한 얼굴로 말했다.

 

글쎄요…… 상대적으로 이성을 잘 통제하고 녀석들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다고 자각한 순간, 은혜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거겠죠. 치료를 하면 그 모든 힘들이 사라지니까 은혜는 물론 형제들까지 지키지 못할 것이고…… 그래서 계속 저 상태로 남은 것 같군요.”

 

새삼 우두머리 녀석의 고충을 알 것 같았다. 자신들의 형제가 괴물로 변해 날뛰는 모습을 보고도 과연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혼자 남았다는 외로움에 자신도 괴물로 변한 것은 아닐까. 온통 괴물들이 득실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두머리. 아니, 저 남자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진 않았을까.

 

다 같은 인간이야.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리는 것 자체를 잴 수 없어. 그저 모두 같은 인간이야.”

 

아저씨는 푸념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쩌면 인간들의 욕심이 이런 일들을 만들어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김 대위도 창틀에 기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벌이 내린다고…… 들은 적 있어요.”

……그 말이 맞아. 인간들은 벌을 받고 있는 거야.”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완전히 저버린 태양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이 서서히 도시를 삼켰다. 내가 해온 일들이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던 걸가. 옳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은혜가 있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양은 아니었다. 그러면 괴물로 변해가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 마땅한 것일까. 그들을 괴물이라고 부르며 거침없이 죽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삶의 여부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죽이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 시아…….

 

은혜의 작은 목소리가 당구장 안에 울려 퍼졌다. 마음이 울적해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감성에 젖을 시간 없어. 일단 움직이자고.”

 

아저씨는 정신을 잃은 남자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김 대위도 아저씨를 거들어주려는지 그 뒤를 따랐다. 당구장에 널린 잔재들을 치우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아저씨와 김 대위는 축 늘어진 남자를 들고 당구대 위에 올려 준 뒤 모포를 덮어 주었다.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준우 아저씨도 당구대 위에 눕혀 주었다. 은혜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

 

은혜는 이내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언뜻 보이는 발바닥의 상처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대충 정리를 마친 나는 은혜에게 다가가 발목을 살짝 들었다.

 

은혜야, 잠깐만.”

 

발바닥은 어느새 부드러운 살로 채워져 있었다. 은혜의 재생능력은 보통 사람과 비교도 안 되는 건가?

  

어쨌든 다행이네…….

 

다시 은혜의 발목을 놓고 동생과 이 소위에게 다가가 모포를 덮어 주었다.

 

위 좀 보고 오겠네.”

 

아저씨와 김 대위는 출입구를 열고 위층으로 향했다. 뚫린 천장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18시에 이르렀다. 정신을 잃은 사람들이 언제 깰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박스 안에서 파운드 케이크를 골라내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지이이잉.

 

시간을 입력하자 작은 소음을 내며 서서히 돌아갔다. 그것을 무심히 바라보다 문득 밖을 보며 서 있는 은혜를 바라보았다. 멍한 얼굴로 가만히 밖을 보기만 하는 은혜.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과연 알고 있을까. 왜 저런 아이가 정신지체아가 된 걸까. 왜 저런 아이가 유일한 백신인걸까.

 

띵동.

 

전자레인지의 기계음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케이크를 빼내 다른 하나를 다시 안에 넣었다.

 

일단 위는 막아놨으니 오늘 밤만 잘 넘기면 되겠어.”

 

아저씨와 김 대위는 다시 당구장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그래요?”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은혜의 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될 것 같이 느껴졌다. 더럽고 가식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때 묻지 않은 은혜가 살아갈 수 있을까. 행여 더러운 것에 물들여지지는 않을까. 왠지 은혜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도 나와 비슷한 감정일까.

 

출입구를 다시 단단히 막은 아저씨와 김 대위는 숨을 고르며 소파에 앉았다. 데워진 케이크를 각자 나눠주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컵에 따라주었다. 아저씨는 케이크를 크게 물고는 은혜를 가리켰다.

 

자네가 좀 챙겨주게나.”

.”

 

내 몫과 은혜의 몫을 들고 창가로 걸어갔다. 케이크를 손으로 떼어 내어 은혜의 입가로 밀어 넣었다. 은혜는 서서히 입을 벌리며 케이크를 받아먹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다시 케이크를 떼어 은혜의 입에 넣어주었다. 주는 족족 잘 받아먹는 은혜의 모습이 유독 예뻐 보였다.

 

우유도 먹어볼래?”

 

우유가 든 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은혜는 꿀꺽거리며 쉬지 않고 마셔댔다. 순식간에 잔을 비운 은혜는 더 이상 케이크를 먹지 않았다.

 

하암.”

 

 

 

은혜는 작게 하품을 하며 눈을 비비적거렸다. 은혜를 조심스레 이끌어 적당한 당구대 위에 눕혀주고 모포로 몸을 덮어주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은혜는 곧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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