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나가지마시오 38화 [1]

삶이무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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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1 09: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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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무의미함

됐어…….

?”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전우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익숙해. 하지만…….

…….

김 대위님은 나와 각별한 사이여서 그래.”

 

이 소위의 눈빛이 아련하게 젖어 들어갔다.

 

나는 고아원에서 자랐어. 마땅히 취직할 곳 없어 노가다로 하루하루를 먹고 사는 게 전부였지. 사회라는 게 그렇잖아. 부모 없으면 이상하게 보고 학벌 낮으면 이상하게 보고, 거기다 고아원 출신이라고 하면 말 다한 거지. 빌어먹을 새끼들은 내 능력보단 주위 배경만을 보더라고. 학교 다닐 때에도 그랬지. 부모 없는 자식이라고 반에서 놀림 받는 게 일상이었어.”

…….

그게 너무 개 같은 거야. 그래서 닥치는 대로 호신술을 연마하기 시작했지. 학원비는 새벽에 일어나서 우유 돌리고 신문 돌려서 냈어. 그리고 나를 놀리던 새끼들을 다 조지고 다녔지. 근데 그런 말이 있더군. ‘돈이 없으면 싸움 하지 말라는 말.’ 그게 맞았어. 묵사발이 된 새끼들이 지네 잘못은 생각 안 하고 나를 경찰에 신고한 거야.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어디 있겠어. 소년원에 살다 나오고 그렇게 20살이 됐을 무렵엔 아무것도 할 게 없더라.”

 

이 소위는 소총의 총구를 부셔져라 거머쥐었다. 미약하게 떨리는 그 주먹에서 당시 상황이 얼마나 비참하고 힘들었는지 짐작이 갔다.

 

그래도 살긴 살아야했어. 이때까지 제대로 해본 일들이 없었거든. 주제에 꿈이란 게 내게도 있었어. 큭큭…… 웃기지 않아? 그래서 무작정 노가다를 시작했어. 학창시절에 여러 가지 호신술로 체력단련을 해둔 덕에 큰 무리는 없었어. 하지만 일이 끝나고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게 참 개 같았지. 노가다 일을 통해 깨달았어. 체력적으로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더 크다는 것을. 아무튼 그날도 어김없이 공사장 아저씨들이랑 밤까지 술을 마시고 적당히 여관 하나 잡아서 자려고 했어. 아저씨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들이었거든. 노숙자들이나 사업에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노가다 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전부였지.”

…….

여관으로 가는 도중이었어. 근데 어두운 골목에서 사람 같지도 않은 게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아저씨들을 무참히 살해하며 뜯어 먹는 거야. 처음엔 꿈인 줄 알았어. 아무것도 볼 것 없는 내 인생에 그런 엿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거든. 하지만 비명 소리가 정신 차리게 해주더군. 주위에 널브러진 쇠파이프를 들고 녀석들의 머리통을 깨부쉈어. 난리도 아니었지. 그런 거 있잖아. 위기적인 순간에 닥치면 인간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고. 그 자리에서 2~3놈을 모조리 때려눕힌 나는 허탈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공사장으로 들어갔어.”

 

밴의 이동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모두 이 소위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들이 죽었다는 슬픔보다 나에게 죄를 물을까 그게 더 두려웠어. 그런 빌어먹을 상황에서도 나만 챙길 생각만 나더라고. 사회라는 게 날 그렇게 만들었어. 그동안 내게 한 짓을 생각해보면 분명 불이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바로 공사장을 나와 뒤쪽으로 뚫려 있는 문으로 빠르게 도망갔어.”

…….

근데 웬 군인들이 사방에 깔린 거야.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니라 특수부대 차림에 중무장을 한 군인들이었어. 모두 나를 이상하게 봤지. 온 몸에 피와 살덩이들이 붙어 있으니 정상으로 보면 그게 이상했겠지. 슬금슬금 피해가려고 하는 도중에 누군가 내 어깨를 잡는 거야. 속으로 온갖 욕을 해대며 나를 잡은 사람을 봤어. 그게 김 대위님이었어. 당시 중위였었지만…… 아무튼 김 대위님은 나를 보고 저 괴물들을 죽였냐고 했지. 발뺌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그냥 그렇다고 했어. 그러자 김 대위님이 나를 끌고 어디로 데려가더군.”

 

서서히 어두운 밤이 지나고 있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하기 위한 새벽녘이었다. 천천히 진행되는 일출을 보며 이 소위가 계속 말을 이었다.

 

콩밥 먹을 심정으로 따라갔어. 근데 그게 아니더군. 이상한 군부대 시설로 나를 데려가더니 여러 가지 실험을 했어. 특별한 징후가 없자 나에게 그러는 거야. 이 부대에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달리 갈 곳도 없는 나는 좋다고 했지. 근데 한 가지가 걸렸어. 내 주변 환경을 걸고넘어지지 않을까 하고 사전에 말했지. 근데 김 대위님은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더군. 나와 같이 훈련을 받는 동기들이나 선임들, 후임들도 마찬가지였어. 어느 하나 내 배경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았지. 거기에서는 오직 실력만이 우선이 되었어. 기뻤지. 더러운 괴물 자식들을 퇴치하러 다닐 때에도 두려움 보다는 더 많이 죽일 궁리를 했어. 그래야 나를 인정해주니까. 덕분에 초고속 승진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에 소위가 된 거야.”

 

이 소위의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애초에 우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소위가 왼팔을 못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리고 김 대위도…….

 

소위님 말을 들어보니 우리는 정말 귀족처럼 자랐네요. 멀쩡하게 부모님 살아계시지, 남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살았어요. 그래도 우리들은 뭐가 부족하다고 계속 투정만 부리고…….

 

동생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 소위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많이 지쳐 보였지만 눈만은 살아 있었다.

 

뭐가?”

팔 그렇게 된 거…… 솔직히 우리랑 만나지 않았더라면…….

됐어. 이미 각오한 일이야. 목숨도 버릴 각오도 한 마당에 이깟 팔이 대수겠어?”

그럼 통성명이나 하죠. 나는 박준우 라고 합니다.”

 

가만히 있던 준우 아저씨가 말했다.

 

이진성입니다.”

이진우입니다.”

이름보다는 아저씨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러워서…… 아저씨라고 부르시오.”

이우민입니다.”

 

이 소위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우리를 보며 말했다.

 

좋아.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몇 살이야?”

“27살입니다.”

그래? 요 쌍둥이 형제들보다는 형이네. 나랑 저 형님보다는 어리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

하지만 저는…….

다른 군인들과 합류해야 한다고?”

아뇨…… 가지 않을래요.”

 

우민 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

그냥요. 저 혼자 간다고 해서 무사히 다른 소대와 만날 것 같지도 않고…… 김 대위님까지 없는 마당에 제가 뭘 하겠습니까.”

 

준우 아저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배를 물었다. 마치 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담배가 유독 맛깔스러워 보였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서서히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살아있음을 축하해주기라도 하듯 미약한 빛이 밴과 우리 모두를 비춰주었다.

 

우민아.”

…….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은 주체할 수 없겠지…… 그건 나도 이해해. 하지만 지금 같은 현실에서는 자네의 그런 약한 감정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자네도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을 테지.”

 

묵묵히 운전만 하던 아저씨의 말에 우민 형은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웠다. 서서히 밴이 멈추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고속도로만 이어진 거리였다. 좌우로는 빛이 바랜 풀들이 낮게 깔려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자동차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 죽어버렸거나 떠나버린 것이었다.

 

여기서 쉬기로 하지. 낮이니까 문단속만 잘해두면 될 거야. 천장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밴 자체가 높으니까 인간인 상태로 쉽게 오르지 못하겠지.”

 

모든 유리창이 두텁게 코팅이 되어 있어 밖에선 밴의 안을 볼 수 없었다. 그럼 일단 안전한 건가? 하긴, 지금은 이것저것 따지기보다 우선 쉬어야지.

 

아저씨는 사이드브레이크를 강하게 당기고 의자를 약간 뒤로 젖혔다. 우리는 창문을 완전히 위로 올리고 의자를 조금씩 뒤로 젖혔다. 넓게 뚫린 밴의 지붕 사이로 미약한 햇빛이 들어와 몸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엇다.

 

의자에 몸을 맡기자 금세 눈이 감기려 했다. 밴 안이 상당히 넓어 다리를 뻗어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크게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했다.

 

흐아아암.”

 

점차 의식이 흐려지자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소총을 적당히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흐음.”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서서히 눈을 떴다. 한숨 자고 나자 몸에 활력이 돌았다.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 밖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창문을 내리자 기분 좋은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흐읍.”

 

크게 심호흡을 하며 신선한 공기를 가득 빨아들였다. 왠지 몸이 상쾌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밴 아래쪽에 있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치직. 서서히 타들어가는 담배를 입에 물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담배는 서서히…… 느리지만 확실하게 타들어갔다. 이윽고 식어버린 꽁초를 던져버리고 다시 하나를 꺼내 물었다.

 

후우.”

 

담배 맛이 유독 맛이 좋았다. 이내 한 개비를 완전히 태우고 창문을 닫았다. 어제의 여정이 피곤했는지 모두 곤히 잠들어 있었다.

 

…….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제대로 씻지 못해 얼굴 여기저기 검붉은 피가 붙어 있었고 옷도 지저분했다. 밖으로 나가 동태를 살피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잠들어 있는 동생을 넘어가야 했다. 괜히 동생을 깨우고 싶지 않아 다시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은혜…….

 

살짝 몸을 일으켜 조수석을 확인했다.

 

역시…….

 

없다. 병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은혜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자도? 살짝 몸을 돌려 트렁크를 확인했다. 역시…… 남자도 없었다. 은혜를 따라 나간 건가? 이렇게 되면 동생의 몸을 넘어서라도 은혜가 어디 있는지 찾아야 했다.

  

……..”

 

조심스럽게 일어나 옆문을 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뜨거운 태양이 내 눈을 따갑게 비추었다. 동생도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 일어났다.

 

미안. 깼냐.”

……나가게?”

은혜가 없어서.”

남자도?”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도 소총을 정비하고 나를 따라나섰다. 뒤에 앉아 있는 준우 아저씨와 우민 형은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쭉 이어진 고속도로 위에는 안성이라고 적힌 표지판과 흩어져 있는 빈 자동차들이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동생은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설마 저런 곳으로 가지는 않았겠지?”

모르지…… 은혜 마음을 알 수가 있나. 그래도 그 사이코 자식이 있으니까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동생도 남자의 능력을 익히 본 탓에 특별히 걱정하는 투는 아니었다. 남자의 능력…… 이따 아저씨가 일어나면 물어봐야겠다. 아저씨도 모르는 눈치였지만 연구를 했던 사람이기에 뭔가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앞에 있는 차들이나 뒤져보자. 쓸 만한 게 있으면 좀 챙기고.”

 

우리는 꽤 빠른 걸음으로 차로 다가갔다.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서 차 내부가 자세히 보였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먹다 남은 과자 봉지와 아직 반 정도 남아 있는 생수병이 전부였다. 그리고 시트에 묻은 소량의 피가 당시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없네.”

 

우린 바로 다음 차로 다가갔다. 꽤 커다란 중형차였다. 검게 코팅이 되어 있어서 안이 보이지 않았다.

 

에이 썩을. 돈을 얼마나 투자한 거야?”

 

동생은 신경질 적으로 말했다.

 

열어보자.”

 

앞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려고 하자 동생이 소총을 들며 손짓했다. 동생은 믿고 앞문을 서서히 열었다.

 

끼이익.

 

어두운 공간이 서서히 밝아졌다. 동생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궁금해진 나는 문을 완전히 열었다.

 

으음…….

 

거기에는 죽은 지 꽤 되어 보이는 중년 남성의 시체가 있었다. 머리의 피는 이미 굳을 대로 굳어져 있었고 입안에는 구더기가 가득했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동생은 빨리 문을 닫으라며 나를 재촉했다.

 

에이.”

 

역한 냄새와 짜증나는 파리 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강하게 닫았다.

 

콰앙.

 

 

 

문이 닫히는 소리가 넓은 고속도로에 울려 퍼졌다.

* 컨텐츠 출처 : 창작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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