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 [0]

팬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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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0 17: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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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탐


내가 일하던 카페는 대학병원 안에 입점해 있는 특수매장 이었는데 당시 있었던 매뉴얼들이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당시 매장은 병원
일층에 위치해 있었고, 병원에 입원해있는 환자들과 더불어 외부에서도 많이들 찾아오는 매장이었다. 본사에서 주는 대로 만드는 똑같은 케이크인데 다른 매장이랑은 또 맛이 다르다나... 손님들은 그런 말을 자주 했었다. 그래서 이 매장에 오는 이유라고 말이다. 난 모르겠다. 다른 매장에 가서도 많이 먹어봤지만 내가 일하던 매장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이 맛이 그 맛이었다. 딱 그 정도... 서론이 길었으므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앞서 말한 매뉴얼에 대한 내용들은 대부분이 단톡방에서 복사+붙여넣기 식으로 진행됐고,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다시 복사+붙여넣기 반복이었다. 그 중 몇 가지를 한번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1. 지하 3층은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궁금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업무와 무관한 장소입니다.
-여느 카페와 마찬가지로 우린 항상 유니폼을 입고 근무를 했었는데 환복을 하려면 병원 지하 이층으로 내려가야 했다. 창고 겸, 탈의실로 사용하던 아주 협소한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공간 바로 옆에 철문을 열면 비상계단이 나온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들. 애초에 우리가 이용하는 공간은 병원 일층과 지하 이층이 전부이기에 딱히 지하 삼층을 가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뭐 관심조차도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을 뿐... 하지만 나와 다르게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그곳에 왜 가지 말라고 하는 건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 그때 매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모두 본사소속 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알바였다. 물론 나도 알바였다. 사람들과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쯤, 한명이 내게 말해준 일화가 하나 있었다.

“예전에 오전파트 알바 한명이 지하 삼층에 내려갔었다가 바로 짐 싸서 나갔대.”

“왜?”

“모르지 뭐...”

“괜히 핑계대고 나간 거 아니야?”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표정이 되게 이상했대. 뭔가 기분 나쁜 듯 하면서 무서워하는 거 같은.”




뭘 봤길래.









2. 병동 배달시 1202호는 들여다보지 마세요.
-앞서 말했듯 우리 매장은 병원에 입점해 있는 특수매장이라서 간혹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점심시간에 우르르 몰려와 음료를 시켜놓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돌아와 바로 먹을 수 있게 배달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 알바 한명과 직원 한명이 짝을 지어서 배달을 가곤 했는데 지하 삼층 이야기 보다 유독 1202호를 들여다보면 안 된다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와 배달을 같이 나가는 직원 형에게 물었다.


“1202호에는 정신질환 환자들이 계신가 봐요.”


“왜 그렇게 생각해?”


“들여다보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그거 아닌가요?”


그는 눈을 위로 뜨더니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모르는 눈치였다. 연기라고 하기엔 정말 모르는 듯 한 바보 같은 표정.


“아 근데 비슷한 말을 하긴 했었어. 들여다보면 심경에 변화가 올 수 있다고... 크흡 웃기지 않냐..”


“변화? 어떤...??”


그는 귀찮은듯 보였다.


“몰라~ 그냥 들여다보지 말래.”


하지만 배달을 할 때 알았지만 1202호는 병동 가장 끝에 있었고, 복도 한가운데에 있는 데스크에 배달을 하느라 그곳을 들여다보러 가기에는 그럴 명목이 없었다. 뭘까, 왜 보지 말라는 걸까.








3. 별관에는 경비가 없습니다. 혹여 마주치더라도 무시하시거나 병원 보안요원에게 말씀해주세요
-별 시덥잖은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매장에서 쓰레기가 나오면 별관 지하 1층에 모아서 버리는데 이 건물은 정말 말 그대로 별관이다. 일층엔 로비가 있고, 이, 삼층은 무슨 연구센터? 였던가 그랬었다. 문제는 내가 일하던 저녁파트 시간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 항상 일층은 불이 꺼져있었다. 의사를 소개하는 전광판과 덩그러니 놓인 자판기 불빛만 있을 뿐. 내가 이곳에서 처음 별관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놀랐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데 대뜸 계단 쪽에서 ‘우다다다’ 소리를 내며 아저씨 한분이 내려오시더니 출입증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네?? 무슨 출입증이요?”

“여기는 연구동이라서 출입증 없이는 절대 못들어갑니다.”

“아 저 여기 카페 알바인데.. 쓰레기 버리러 왔어요.”

“안됩니다. 돌아가세요.”
황당하거니와, 불 다 꺼진 건물 안에서 대뜸 아저씨 한명이 뛰쳐나와 출입증을 내놓으라 하니 한편으로 무섭기도 했다. 난 별 수 없이 매장으로 돌아가 상황설명을 했다. 그러자 점장이 헛웃음을 치며 직원 한명을 붙여 나를 다시 별관으로 보냈다. 들어보니 그는 경비가 아니라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젊었을 적에 경비 일을 하시던 분이라는데 가끔 저렇게 튀어 나오신다고...












4. 오층 데스크에서 배달 전화가 오면 무시하고 끊으세요. 장난전화입니다.
-일하면서 한 번도 받아 본적이 없지만 들은바 에 의하면 기가 막히게도 정말 바쁠 때 꼭 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오층 데스크 이고, 케이크와 블랙커피를 가져다 달라는 전화를 받고 오층에 올라가봤지만 아무도 시킨 적이 없고 걸려온 내선번호도 달랐다고 했다.

몇 차례 똑같은 장난전화가 이어지자 점장은 병원 교환실에 찾아가 해당 내선번호가 어딘지를 알아봤으나 병원 초창기에 사용하던 번호 이고, 지금은 없어진 번호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일하면서 들은 매뉴얼 중 가장 의아한 한 가지 사항이다.








5. 칼을 빌려달라는 손님이 오면 보안요원에게 말씀해주세요.
-이 동네 토박이인 매니저가 들려준 이야기다. 벌써 십년도 더된 이야기지만 남자 한명이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는데 옆자리에 동승 중이던 아내가 심하게 다쳤었다고 했다. 아내 분은 현재 이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오셨는데 상처도 깊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수술도 해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결국 남자는 병원 측에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하게 되고 이후 꾸준히 병원에 찾아와 난동을 피웠다고 했다. 의사를 죽이겠다느니, 병원을 싹다 태워버리겠다느니... 결국 신고를 하였고, 이후로는 한동안 모습을 안 비추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다시 병원에 찾아온다고 했다. 멀끔한 모습으로 매장에 들러서 여러 핑계를 대 가며 칼 을 좀 빌려달라는 부탁을 한다고.



* 컨텐츠 출처 : 창작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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