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폭력, 노골적 묘사 주의)글로리 메이든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발견되지 않은 기록(3) [11]

왁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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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1 19: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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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두

우선 본문에 들어가기 전, 이 장편 소설은 제가 일전에 올린 글로리 메이든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aboard our glory maiden!)의 비하인드 스토리쯤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씀으로서 여러분이 재밌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 소설은 노골적이고 잔인한 묘사가 있기 때문에 싫어하시는 분들은 감상을 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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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7월 6일.

검은색과 흰색.

세상은 이 두 가지의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의와 선, 광명과 어둠, 삶과 죽음의 극명한 대비. 한쪽은 찬란한 희망의 상징이지만 한쪽은 비관과 절망으로써 여겨져 왔다. 이 단순하지만 매우 극명한 두 색의 관계에 나는 매력을 느꼈고 그렇게 예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검은 물감과 캔버스, 이 두 재료는 내가 세상을 보는 법이자 동시에 말하는 법이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새로운 캔버스 위에 손을 움직인다. 부드러운 유화 물감이 토끼털로 만든 고급 붓 너머로 흔적을 남긴다. 나의 손이 움직임에 따라 순백의 표면 위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모습이 마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은 아이를 떠올리게 했다. 설렘과 행복, 감정의 풍부함으로 가득 찬 모습을 떠올리자 나 역시 덩달아 붓을 놀리는 손길에 행복한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한참 후 내 작품은 완성되었고, 나는 그 작품에 만족스러움과 충만함을 느낀다. 나는 이젤로부터 멀어져 새로이 탄생한 작품을 감상한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감정에서 깨어나며 문으로 향한다.

문 뒤에는 벤자민이 서 있었다. 늘 짓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편지를 건넨다. 익숙한 검은 밀랍으로 밀봉이 된 흰 봉투의 편지였다.

"도대체, 손님이 저희 총책임자분과 무슨 관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친하신가 봅니다. 여기 이번 주만 벌써 아홉 번 째 편지 배달입니다."

그는 나에게 편지를 건네며 자연스럽게 들어와 의자에 앉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까지 아홉 통에 달하는 편지를 배달하면서 그와 나는 나름 친밀해진 사이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나도 사실 왜 이렇게 잘 해주시는지는 모르겠어. 방을 옳긴 것 부터 미술기재까지 보내주실 줄이야. 내 그림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벤자민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갓 완성된 그림에 시선이 멈춘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그림이 맘에 들지 않는 듯 눈을 찌푸린다. 나는 서둘러 변명하기 시작했다.

"아, 물론 네 입장에서는 조금 꺼림칙한 그림이겠지. 그치만 총책임자님이 부탁하신 그림이야. 나도 왜 이런 그림을 그려달라 했는지는 모르겠으니 나한테 묻지 말아줘라."

나의 말에 벤자민은 살짝 불편한 표정으로 손을 턱밑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총책임자님이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크루즈 여행선에서 배가 침몰하는 그림을 그려달라니, 살짝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실, 나도 애써 그 사실을 억누르고 있었다.

내가 그린 그림은 커다란 증기선이 성난 파도들 사이로 침몰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어지럽게 바다 위를 수놓은 얼음 조각들과 구명정 등 꽤 현실적으로 묘사한 유화로 벤자민 같이 미신을 믿는 뱃사람들에게는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 한편의 불편함에 침묵하고 있었다. 내가 받은 호의에 대한 답을 해주는 것뿐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요새 며칠 동안 총책임자가 베풀어준 호의 속에 살고 있었다. 그는 내게 방을 바꿔준 것으로도 모자라 내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지원해주기 시작했다. 토끼털로 만든 고급 붓, 양질의 캔버스, 값비싼 원료로 선명한 빛깔을 내는 물감들까지 그가 베풀어준 물품들은 모두 가난한 예술가들의 꿈과도 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미술 물품들이 관광용 크루즈에 있다는 사실이 의아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 덕에 호사를 누리고 있었기에 깊은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진실로 불편했던 점은, 배가 침몰하는 그림을 그릴 때 나 자신이 전에 없던 예술적 쾌락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삼일 밤낮으로 저 그림에 전념했지만 여전히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로지 희열, 내 작품을 그리고 있다는 만족스러움. 전례 없었던 이러한 예술적 욕구의 충만함에 나 스스로가 놀랄 지경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역시 이런 그림을 갈망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있던 도중 벤자민이 입을 열었다.

"음, 여전히 저 그림이 불편하기는 합니다만 솔직히 손님께서 그리는, 그것도 부탁받은 그림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겠지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편지도 배달했고, 밥값도 벌어야 하니까요."

벤자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고, 나는 그를 배웅한 뒤에야 편지를 뜯어보았다. 예상했듯이 총책임자가 보낸 편지였지만, 내용은 평소와 달랐다.

귀하에게,

내일 저녁 8시, 4층 연회장에서 가면무도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저의 손님으로 참석해주셔서 자리를 빛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저녁 식사를 배달하는 승무원을 통해 참석 여부를 전해주시면 내일 오후에 옷과 가면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글로리 메이든 호의 총 책임자로부터.

무도회, 한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온 나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진 적이 없었다. 평소라면 단칼에 거절했을 테지만, 나는 여전히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고민하게 했다. 조금의 고민 끝에 나는 참석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총책임자에게 감사의 인사도 표할 겸.

1921년, 7월 7일.

저녁 7시, 나는 무도회를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산발처럼 자라난 머리를 정리하고 수염 역시 깔끔하게 면도했다. 거울 속의 나는 빼어난 미모를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사람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면도를 마치고 화장실을 나서는 순간에 문쪽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 앞에 놓인 것은 오늘 무도회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깨끗한 셔츠, 파티용 수트와 구두, 그리고 하얀 가면이었다. 보내진 옷들은 마치 맞춤형 제작된 것처럼 몸에 딱 맞았다. 나는 꽤 만족하며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점검한 후, 4층 연회장으로 향했다.

연회장에는 벌써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부유한 젊은 남녀들은 오늘 밤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서로에 질린 부부들은 오늘 밤 다른 기회를 찾을 것이다. 형형색색의 가면들이 이미 색으로 가득 찬 연회장을 더욱더 어지럽게 만들었다. 나는 인파들 사이에서 살짝 답답함을 느꼈지만, 곧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다시 상기하고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는 초대장을 확인하는 승무원들이 있었다. 나는 내가 초대장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이 불현듯 떠올랐으나, 이미 내 뒤의 수많은 인파의 파도 속에서 뒤로 돌아가기란 불가능이었다.

"초대장을 제시해 주십시오."

승무원들 역시 가면을 착용한 모습이었다. 두명의 직원 중 남자로 보이는 직원이 흰 장갑을 착용한 손을 내밀었다. 내가 우물쭈물 하고있는 모습을 본 직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초대장이 없으시면 입장하실 수..."
"그는 내 손님일세."

오랜만에 들었지만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낮고, 작지만 사람의 주의를 끄는 기묘한 목소리. 승무원 뒤에서 선술집에서 본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 주위의 소란이 부자연스럽게 잦아들었다. 그가 나에게로 다가오는 길을 터 주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어딘가 기묘한 느낌이 있었다. 생동력 넘치는 연회장의 분위기가 그의 주위에서는 쥐죽은 듯 사라졌다. 그는 지팡이를 또각거리며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얼음처럼 시린 한기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귀한 손님이 오셨군요."

그는 웃으려 했다.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눈과 입꼬리. 하지만 어딘가 감정이 실려있지 않는 듯한 그의 웃음이 예전의 악몽의 웃음과 겹쳐 보여 내 등골을 오싹하게 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어디까지나 그의 손님이었고, 나는 보답해야 할 호의가 있었다. 그가 이끄는 데로 이동해 입구를 지나 접대실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불편한 긴장감 속에서도 연회장 내부 장식들은 나의 관심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곳곳에 조각상과 예술 작품들이 벽을 수놓았고 사방에서 번쩍거리는 황금과 보석, 조각상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는 계단을 따라 연회장의 2층으로 이동하면서도 사방에 놓여있는 이름 모를 거장들의 흔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특히 계단 아래쪽 양 옆에 놓인 범고래와 늑대 조각상이 보여준 생동감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었다.

아래쪽에서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무도회가 한창이었다. 여러 악기가 만들어내는 화음 속에서 춤을 추는 젊은 남녀들과 무희들, 음식과 술을 들고 인파 사이를 헤쳐나가면서도 한점의 흐트러짐조차 보여주지 않는 웨이터들. 음악과 소음, 강렬한 색의 어지러움 사이에서 연회장의 밤은 알 수 없는 조화로움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앉으시죠."

나는 그의 권유에 따라 접대실의 붉은 융단의 의자에 앉았다. 바로 옆에 벽난로 안에는 따뜻한 불꽃의 너울거리고 있었음에도 온기는 일절 전해지지 않았다. 그는 손수 차를 만들기 시작했고, 답답한 침묵의 등쌀에 나는 입을 열었다.

"그동안 베풀어준 호의에 감사를 표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대답 없이 차를 만드는 데 열중했다. 나는 조금씩 불편함을 못 이겨 여러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저지른 실례에 대한 사과, 이 거대한 배에 대한 찬사. 곧 나의 정처 없는 주절거림은 그가 내게 부탁한 그림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고 이 부분에서 그는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마침 그가 차를 우려내 내 앞에 내려놓은 순간이었다.

"그 그림을 그리실 때, 즐거우셨습니까?"

그가 조용히 건넨 말 한마디에 나는 입을 다물었고, 그는 더는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웃음소리였지만 곧 소리 내 퍼지는 웃음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마치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불쾌한 소리였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마치 웃음을 시작한 적이 없던 것처럼.

"그림... 그림뿐만이 아닌 모든 창작물에 대한 영감. 그 원천은 어디서 올까요?"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의 방향은 나를 향해 있었지만, 시선의 도달점은 내가 아니었다. 그 장소에 존재하는 나를 넘어 개인적인 욕망과 치부,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깊숙이 간파당하는 느낌이었다. 그가 시선을 거두고 나서야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숨을 못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은 그 다음이었다. 남자는 조용히 찻잔을 내 앞으로 밀었다. 너울거리는 차 위로 티백이 잠시 올라왔다.

"아시아 변방의 나라에서 특별히 공수해 온 찻잎으로 우렸습니다. 구매처에서는 특이한 효능이 있다고 하더군요. 뭐랄까.."

남자가 가볍게 흘리듯이 말하는 말들은 묘하게 내 머릿속 어딘가를 자극했다.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원초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호기심이었다.

"...우리가 평소에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해준다는군요."

나는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말들은 부드럽게 귓속으로 들어와 뇌리에 천둥처럼 몰아쳤다. 그의 정보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가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 아니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행위는 창작이라는 행위의 본질을 대가로 악마와의 놀음에 끼어들게 된 것이 아닐까?

어쩌면 당신이 찾는 해답을 보여줄지도ㅡ

그의 마지막 말은 마치 어떤 신호와도 같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손에는 찻잔이 들려있었고 입안에는 달콤하고 이국적인 차의 향이 혀끝을 간지럽히는 순간이었다. 신이시여, 내가 만일 금지된 선악의 과즙을 맛보는 중이라면 부디 이 죄인을ㅡ

용서하소서라는 말을 떠올리기도 전에, 내 정신은 수천개의 조각으로 나누어져 흩어졌다.

ㅡ다음에 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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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많이 늦었습니다.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컨텐츠 출처 : 창작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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