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 IHATESNAKES 마지막 이야기 [6]

패랭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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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5 17:58:01
추천 14 반대 0 답글 6 조회 231

패랭이꽃




에피소드 8 – 뱀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실제로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지금 느끼는 기분보다 더 끔찍할까?

사람을 삼키는 뱀도 엄청나게 큰 뱀인데 코끼리를 삼킬 정도라면 어느 정도일까?

배가 부른지 꿈쩍도 안하는 알비노 버미즈 파이톤에게서 파충류 숍 사장님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인다.

정말로 뱀을 사랑했던 분이었는데, 뱀에게 머리통이 삼켜질 때도 과연 뱀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삐걱삐걱 움직이는 뱀의 턱뼈가 그의 몸을 서서히 구겨 넣을 때, 그가 의식이 남아있어 발을 구르며 몸부림칠 때,

나는 내심 그가 뱀을 증오하기를 바랐다. 나처럼.





나는 뱀을 죽였다. 그리고 사람도 죽였다. 물론 뱀을 죽일 때마다 사람을 죽이는 상상을 줄곧 해왔지만,

뱀으로 보이는 사람을 직접 죽인 건 처음이었다. 실종된 파충류 숍 사장님을 찾기 위해 형사들이 찾아왔지만,

뱀 뱃속까지 뒤지기에는 형사들의 상상력이 부족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의문을 가졌다.

나는 왜 사람을 죽였을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원인을 뽑자면 굶주려 있던 알비노 버미즈 파이톤?

파충류 숍 사장님이 나를 찾아와서? sns에 내가 코브라를 죽인 영상을 올린 사람? 아니면 코브라를 죽이라고 나를 태국에 보낸 형?

까치 살모사로 보였던 쓰레기 군대 선임? 나를 괴롭혔던 동창들? 아니면 아주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나를 지켜주지 못한 어머니?

나는 끝까지 탓 할 것만 찾는다.





군에 입대하기 전, 어린 시절 나를 치료해준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었다.

내 조건에 군대 면제는 힘들었고, 적어도 군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람들의 신체부위가 뱀으로 보이는 증상을 어떻게든 고치기 위해서였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기억나요. 사물이 뱀으로 보였던 어린이었는데 벌써 군대를 간다니, 정말 많이 컸네요. 들어보니까 증상이 더 심해졌네요. 사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뱀으로 보인다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굉장히 흥미 있어 보이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근데 치료법을 알고 있다고 하셨는데”


“뱀으로 보이는 신체에 해를 가하면 증상이 괜찮아집니다. 실제로 겪어봐서 압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환각이 치료된다면 좀 위험하네요.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겠어요. 그나저나 어머니는 괜찮으신가요?”


“네?”


“원진 군이 어렸을 때, 어머니도 같이 상담치료를 받으셨거든요.”





나는 의사선생님께 뱀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날 빨간 양파주머니에 들어있던 뱀은 내 팔을 타고 올라와 내가 물고 있던 막대사탕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뱀의 대가리를 막대사탕과 같이 입에 반쯤 문 채 어머니께 다가갔고,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비명을 지르시며 힘껏 밀쳐냈다고 했다.

의사선생님 말로는 내 입속에서 뱀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셨다.

덧붙여 어머니도 뱀을 끔찍이 싫어하셨다고 했다. 나처럼.

그 후 어머니는 자기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동시에 환각에 시달리는 어린 아들에게 불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모성애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이유로 환각에 시달리던 나와 함께 치료를 받으셨다고 했다. 뱀 공포증과는 별개로 말이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충격이었다. 상담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지금 어머니는 내게 무슨 감정일지, 아직도 내게 모성애를 못 느끼는지, 나를 싫어하신 건지 뱀을 싫어하신 건지 묻고 싶었다.

그 시절, 나는 내 존재에 의문을 가졌다. 가족구성원으로써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란 녀석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으로 구성된 행복한 가정에 사족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사족보다도 쓸모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날 나는 집에서 어머니를 마주했지만 질문은커녕 제대로 마주하지도 못하고 당장 집을 뛰쳐나왔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방황을 하다가 즉시 되는대로 입대를 했고, 그 후부터 어머니와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날 집에서 마주한 어머니는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아나콘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뱀에게 모성애가 있을까? 약 3000종의 뱀 중에 10종의 뱀이 모성애가 있다고 한다. 0.3%가 모성애가 있는 셈이다.

나머지 99.7%는 자신의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 그 시절 나에겐 어머니는 뱀과 다를 바 없었다.

아나콘다는 난태생이다. 알과 새끼를 동시에 낳는다. 알을 몸속에서 부화시켜 낳기 때문에 포유류와는 엄연히 다르다.

많은 뱀들이 알은 낳은 자리를 떠난다. 그 알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다른 동물에게 먹히든 말든.

그리고 암컷 아나콘다는 출산 후 자기가 낳은 새끼나 알을 먹기도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배가 고파서.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차가운 눈으로 자기가 낳은 새끼를 꾸역꾸역 삼키는 아나콘다가 내 어머니였다.

자기 새끼에게 모성애는커녕 불쾌감을 느끼셨다니. 언젠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지만 어머니와 나 둘 모두 뱀을 싫어하니까 거절했다.

안 그래도 미움을 많이 받는 아들인데 말이다. 자기 자신한테조차.





영상을 올리고부터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급격히 늘어났다. 해외 채널에 올리던 나의 영상들이 국내로 퍼지면서 그 현상이 가속화 되었다.

#IHATESNAKES 동영상 채널을 보면 나를 증오하는 댓글들이 넘쳐난다.

영어댓글보다 한글 댓글이 많아졌고, 욕도 많아졌다. 대게 그런 이유였다. 불쌍한 뱀을 죽였다는 이유.

그래봤자 윤리적 잣대에 그친다. 나는 그런 댓글들을 보며 생각했다. 왜 싫어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들은 뱀을 마주치면 어떻게 행동할까?

만지고 싶은 길 고양이들처럼 어떻게든 쓰다듬으려고 할까? 아니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소리 지르며 도망칠까?





뱀을 잔뜩 사서 트럭에 실었다. 그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뱀을 뿌리고 다녔다.

사립 도서관 책꽂이, 대형 마트의 아이스크림 통, 공중화장실 세면대, 코인 노래방, 영화관 좌석 등 실내부터

학교 운동장, 놀이공원의 회전목마, 주차장에 주차된 차 선루프 등 실외까지. 가는 곳마다 뱀을 뿌렸다.

그 뱀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감정을 겪기를 바라면서, 뱀을 증오하고, 한 사람이라도 나와 똑같은 증상이 생기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나를 살인자로 만들어버린 그 빌어먹을 머릿속의 뱀이 나라는 허물을 벗고 떠날 것만 같았다.

그들이 똑같이 뱀을 증오해야만 내가 저지른 행동들이 합리화 될 것만 같았다.

그 이후, SNS에는 뱀 영상들이 많이 올라왔다. 뱀에게 물린 사건 신고도 늘어났다고 했다. 전국에는 내가 뿌린 뱀을 마주한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들은 놀라 도망가거나, 소리 지르거나 했다. 소름끼쳤을 것이다. 정상정인 반응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뱀이 환영받을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일상에서 튀어나오는 뱀들, 뱀으로 보이는 사람들, 평생을 그런 고통 속에 지냈으니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내 감정을 조금이라도 느껴줬다면 나로썬 감사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뱀을 죽이거나 사람을 해하는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뱀을 마주한 모든 사람이 뱀을 죽이지는 않는다. 뭐 돌에 맞아 죽은 뱀들도 있다고는 했지만.





수 많은 뱀을 죽이고나서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뱀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뱀에게는 잘못이 없다.

도끼에 대가리를 잘렸던 뱀도, 믹서에 갈리던 모습이 인터넷에 퍼진 그 뱀도, 삽으로 때려죽인 그 뱀도, 파충류 숍 사장님도,

그 사장님을 삼켜버린 뱀도.

혐오감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그 혐오감을 행동으로 옮긴 건 어쨌든 나였다.

나는 내가 살면서 느낀 다양한 혐오감을 가장 쉬운 방법으로 해소했다.

어쩌면 나는 뱀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거울 속에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뱀이 있었으니.

하긴 뱀은 동족을 잡아먹는 종으로도 악명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뱀이 싫다. '자기 혐오'를 떠올리니 스트레스에 못이겨 자신의 꼬리를 마구 먹는 뱀이 떠오른다.

삶을 마감하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는 뱀뿐이다. 밧줄에 목을 매고, 의자를 발로 차서 쓰러뜨린다.

마치 두꺼운 구렁이가 내 숨통을 조이는 느낌이 든다.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 궁금해졌다. 내 머릿속의 뱀을 보고 싶어졌다.

눈을 위로 치켜 올려 뒤집었다. 눈깔을 뒤집자 머릿속,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뱀은 도망치듯 유유히 내 입을 열고 빠져나와, 가슴팍까지 몸뚱이를 늘어뜨렸다.

나는 뱀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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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술쟁이2
      2019-08-26 18:17:37 0 0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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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랭이꽃
      2019-08-27 00:28:56 0 0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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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웅링아
      2019-08-29 08:57:42 0 0
    진짜 내가 아는 패랭이꽃님인가...? 공게 k12kb님과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그 전설적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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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랭이꽃
      2019-08-30 15:45:49 1 0
    엄청 옛날에 공게에 글을 올린적이 있습니다! 다른 창작소설 또 올릴테니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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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술쟁이2
      2019-08-31 23:10:51 0 0
    예전에 아이디 검색해서, 전에 썼던 글들을 날밤새며 읽었었는데,다시 오셔서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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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랭이꽃
      2019-09-04 13:50:13 0 0
    엄청 기분이 좋네요! 제 글을 재밌게 읽어주시다니 !! 이번에 새로 쓴 글이 있으니 그것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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