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괴담] 팝니다 [13]

환상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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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6 17:44:53
추천 81 반대 0 답글 13 조회 6,890

환상괴담

축산물위생관리법 제1조(목적)
이 법은 축산물의 위생적인 관리와 그 품질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가축의 사육ㆍ도살ㆍ처리와 축산물의 가공ㆍ유통 및 검사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축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공중위생의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부우욱,
거친 소리와 함께 법령집의 '제1조'가 나와있던 페이지가 뜯겨나갔다.
그 외에도 몇 장이 더 뜯겨나가더니 그걸로도 모자란지 아예 뭉텅이로 뜯겨나가기 시작해 결국 법령집은 반쪽짜리가 되어버렸다.

종이는 누군가의 투박한 손짓 끝에서 이리저리 흩날려 작업대 위를 어설프게 덮었다.
상점 안에 있어야 할 작업대가 바깥에 덩그러니 나와있었다.
관청에 신고된 배치도와는 맞지 않는 구조였다.
단속에 적발되어도 상관 없다는 듯 너무나도 당당하게 나와있는 작업대.
종이로 덮지 못한 부분이 신문지 몇 장이 더해지자 비로소 가려졌다.

온갖 색깔과 굵기로 강조된 신문기사 제목들.
우려, 비상, 대피, 참사, 낙진, 피폭, 먼지, 겨울, 명령, 구호, 실패, 붕괴, 생존ㅡ...
그 뒤로 더 이상 신문은 발간되지 않은 걸까, 일간신문인데도 벌써 몇 개월도 더 지난 기사들로만 가득했다.

" 흡. "

한 남자의 기합 소리와 함께 큰 고깃덩이가 책상 위에 올려졌다.
남자의 손으로 열다섯뼘에서 스무뼘 정도 될까, 꽤나 푸짐해보인다.
[팝니다] 라고 휘갈겨 써놓은 팻말이 그 앞에 놓여진다.
원래는 돼지고기의 등급을 표시하던 팻말인 듯 하다.

" 손님 오면 불러. "
" ... "

여인은 만삭의 배가 힘겨워 보인다. 작업대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배를 부여잡고 있다.
두 눈이 먼 모양이다. 병이 원인은 아닌 모양으로, 대충 묶어놓은 붕대 사이로 피 섞인 진물이
질질 흐른 채 굳어있다. 어디선가 날아온 파리들은 추운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통통하기만 하다.

" 이거, 파는 겁니까? "
" ... 애기아빠, 손님ㅡ. "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자 흔한 인사도 없이, 상품에 대한 흥정도 없이
여인은 메마른 목소리로 남자를 한 번 부르고 말 뿐이었다.
손님도 그에 별 신경 쓰지는 않는 듯 상품을 이리 저리 쳐다볼 뿐이었다.

" 예. 오세요. "
" 덩어리로 팝니까? 부위나 무게로도 파나요? "
" ... 뭐 어떻게 사고 싶으신데요. "
" 뼈도 좋고... 살코기도 좋고... 저도 집에 기다리는 입이 많아서. "
" 써는거야 요구대로 해드리구요. 지불은 뭘로 하십니까? "
" 이거. "

괜찮은 상표의 장신구가 잔뜩 들었다. 머리띠나 팔찌, 귀걸이 따위가 빛나고 있다.
그러나 그 반짝거림이 무색할만큼 상인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 없었다.

" 다른 건 없어요? "
" ... "

손님은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품 속에서 담배 두 갑과 반쯤 남은 소주를 꺼냈다.
상인은 비로소 조금 초조해보인다. 앞이 보이지도 않는 아내의 눈치를 슬슬 살피더니,
작은 실톱으로 소리 죽여 몇몇 부위를 큼직하게 썰어냈다.
그리곤 작업대 위에 널브러져 있던 종이 몇 장에 고기를 대충 포장했다.

" 먹을 건 없습니까? 야채나... 말린과일 같은 거요. "
" 딱히 없어요. 우리도 미숫가루말고는 주식이라고 할 만한게 없네요. "
" 그럼 뼈를 남겨놓을테니까 미숫가루와 바꿉시다. "
" 생각해볼게요. 일단은 남겨놔주세요. "
" 네. 가세요. "

남자는 멀어지는 손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소주를 한 모금 털어넣었다.
속이 따끈해졌는지 입김이 멀리까지 뿜어져나왔다.
아내는 꾸벅 졸고 있다. 배가 부푼 모양새를 보면 쌍둥이라고 짐작되었다.

" ... "

흐트러진 팻말을 고쳐세운 뒤 상품의 턱을 벌렸다. 가지런한 치아 사이로 무언가 반짝인다.
집게로 뽑아낸다. 금니다. 그렇게 아빠가 '과자 먹고 이 안 닦으면 충치가 생긴다'고
겁줬는데도 결국 충치가 생겨 어린 나이에 시술했던 금니다. 치과가 무섭다고
울고 부는 녀석을 어르고 달래어 데려간 끝에, 새 게임기까지 사주겠다고 약속한 끝에야
겨우 시술할 수 있었던 금니다.

그 금니는 이제 어느 장터에서 형편없는 상태의 야채나 떡진 밀가루 따위와 바꿔지겠지.

상품의 명치 부분에 칼을 대어 사람 인(人) 모양으로 자른다. 막을 걷어내고 지방을 덜어낸다.
발골용 칼을 대어 갈빗대를 벌린 후 내장을 하나씩 꺼낸다.

달리기를 유난히도 좋아하던 아이의 심장이다.
찬 걸 좋아해 자주 배가 아프던 아이의 위다.
사소한 것 하나 하나가 또렷히 기억나는 아이.
'그'의 아이.

훈제로? 아니면 소금에 절여서?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의 식탁에 오르겠지.
남자는 '한 아이'의 생글생글한 미소를 떠올리려다 방금 '상품'의 배를 갈랐던 칼로
자신의 허벅지를 살짝 찔렀다. 선명한 아픔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이건 상품일 뿐이다. 먹거리다. 축산물이다.
팔아서 뭔가랑 바꾸는 화폐일뿐이다.

남자는 남은 소주를 상처에 조금 부은다음 남은 한 모금을 완전히 들이킨다.
아내를 툭툭 건드려 일으킨다.

" 들어가서 자. 이제 내가 앉아있을게. "
" 방안이 더 추운 거 같아서. "
" 그래도 찬공기 오래 마시면 안 좋아. "
" 기름 못 구하려나. "
" 전기도 들어왔다가 나갔다 하는 마당에? "
" 나 들어간다... "
" 응. "

남자는 의자에 앉았다.
첫 손님 이후로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새 한 마리 날아오는 법이 없었다.
혹독한 겨울, 짙은 회색빛 하늘.
눈꺼풀이 돌덩이처럼 무겁다.
남자는 다시는 꿈을 꾸고 싶지 않았지만,
어김없이 '그 꿈'은 그를 초대했다.

... 놀이터로군, 빨주노초파남보 색깔이 가득가득,
미끄럼틀, 시소, 정글짐, 하하호호- 뛰어노는 아이들,
지켜보는 어른들, 피어나는 웃음꽃, 행복한 오늘과 별일없이 찾아올 내일ㅡ.

아빠! 아빠 이거 봐봐! 네잎클로버 찾았어!
행복 속에서 행운을 찾아온 나의 아이야,

아빠! 등에 거미 붙었어, 떼줘~
온힘다해 지켜줄 나의 아이야,

아빠! 최고!
내 사랑, 내 분신ㅡ.

아빠!

아빠?

아빠...!

아빠...! 히끅...!

히끅, 히끅, 아.. 압바... 아빠, 켈록, 켈록,

" 아빠 여기 있어, 아빠 어디 안 가고 옆에 있어. 응? 아빠 말 들리지? 우리 아들 힘내자, 아빠 여깄으니까 힘내, 응? "

...

멈추지 않던 고열, 기침에 잔뜩 섞여나오던 피, 한참의 경련 끝에 식어버린 작은 꽃,
조문객 없던 장례식, 뉘일 관조차도 구할 수 없는 현실, 묻을 곳이 없어 시체가 산처럼 쌓아올려진 도시의 소각장,
만삭의 눈 먼 아내, 장사를 할 수 없게 된 정육점, 떨어져가는 식량과 식수ㅡ...

" ...?! "

누군가 부른 것 같은 소리에 눈을 뜨려니 언제 울었는지 눈곱이 가득해 눈이 달라붙어있었다.
남자는 재빨리 눈을 몇 번 훔친 뒤 일어섰다.

" 예에. 오세요. "

" 사장님... "

" 예? 어? 아. 홍 주무관님. "

" 하... "

손님은 정육점이 정상적으로 장사를 하던 시절 1년에 몇 번씩 까다로운 위생점검을 오곤 하던 관공서 공무원이었다.
경악스럽다는 얼굴로 쳐다보는 눈초리를 보아하니 상품을 사러 온 건 아닌 듯 하다.
그 역시 영양상태가 좋지는 않은 모양으로, 피골이 상접하고 눈 밑엔 기미가 잔뜩 꼈다.
목에 건 공무원증 사진 속 인물과 동일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 사장님. 신고가 들어왔어요. 누가 사람고기를 판다고... "

" ... 봐주세요. "

" 어차피 당장 고발하고 싶어도 사장님 진술서 받을 종이 한 장도 구하기 힘들어요. "

" 죄송합니다. "

" 사장님, 이건 아니잖아요... 이거 진짜 아니잖아요... 오면서 진짜 아닐거라고, 허위로 누가 찌른거겠지, 그렇게 빌면서 왔는데...
사장님 아들이잖아요, 대체 왜요? 왜! "

" 시장에 고기라곤 통조림말고는 찾기도 힘들고... 그나마도 먹을만한 건 군대랑 경찰이 가지고 있고, 주민들은 키우던 개 잡아먹고,
지나가던 길고양이 잡아먹고, 그마저도 다 먹어서 쥐 잡아먹고, 벌레 줏어먹고... "

" 누가 몰라요? 그래, 사람고기 먹는거야 솔직히 이젠 비밀도 아니죠, 근데 왜 사장님 아들을 사장님이 저렇게... 하... "

" 아내가 쌍둥이를 임신 중이에요. "

" ... "

" 만삭인데... 뭔가 먹이지 않으면 셋 다... "

" ... "

" 배급 나오는 걸로는 저 혼자 하루 한 끼 배부르게 먹기도 힘들어요. 그나마도 아내한텐 턱없이 모자란 영양이잖습니까. "

" 그래서... "

" 예... 죽은 아들을 팔았습니다. 썩기 전에... 먹을 수 있는 부위로... 고기라면 잘 아니까... "

홍주무관이라고 불린 사내는 뒤돌아서서 한참동안 땅을 바라봤다. 어깨가 작게 들썩였다.
조금 감정이 정리가 된 모양인지 사내는 품 속에서 이면지를 꺼내 확인서라고 쓴 다음 현장 확인 결과 이상이 없었다는 내용을
작성한 뒤 자신의 서명을 하곤 확인자란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 사장님. 제가 뭐라고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팔 고기도 없는데 고기 똑바로 파시라고 할 수도 없구요.
사장님 잡아가면 쌍둥이 엄마 하나 놔두고 어떻게 가겠습니까, 사장님... 아내 분 잘 챙겨먹이세요. "

남자가 서명하자, 홍주무관은 그대로 자리를 떠나려다 멈칫하더니 품 속을 뒤져 초콜렛 몇 개를 남자의 손에 쥐어주었다.

" 마음 단단히 먹고 사셔야 해요. 우리 다같이 살아야죠. "

홍주무관이 떠난 자리, 남자는 의자에 앉아 줄담배를 피웠다.
초콜렛은 남자의 한 쪽 손바닥 안에 여전히 쥐어져있었다.

회색빛 하늘이 점점 흑빛으로 어두워져 갈 무렵 두 손님이 다녀갔다.
라면 한 묶음, 김치 약간과 한쪽 팔을 바꾸고, 말린 시래기 세 다발과 뱃살 한 봉지를 바꿨다.

장사를 거두고 작업대와 상품을 가게 안으로 들인다.
전기가 자주 끊기기 때문에 냉장고는 더 이상 있어도 쓸 필요가 없었다.
길어지고 더 혹독해진 겨울이었기에 고장난 쇼케이스 안에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보관은 될 참이었다.

누군가 훔쳐갈새라 잠궈놓은 쇼케이스 안에 든 '상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는 갑작스레 머리를 감싸쥐며 절규했다.

1초에 한번씩, 그보다 더 자주,
자신의 이성을 부정하고 또 부정하던 끈이 일순간 끊어졌다.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한건지 아주 정확히 인지해버렸다.
악마? 아니야, 악마보다 더 해,
지 새끼 살코기 팔아서 장사하는 살인귀ㅡ!!

" 으아아아! "

그는 무너져내렸다.
빼놓은 금니, 라면, 김치, 담배, 시래기가 제각각
아들 한 덩이, 덩이, 덩이.

남자는 눈알이 터질 듯, 목청이 찢어질 듯, 내장이 꼬일 듯한 느낌에
바닥을 미친듯이 굴렀다. 피맛 가래가 끓었다. 입과 코로 쌉싸름한 냄새와
신음이 터져나왔다. 아들이 떠나가기 전의 단말마와 닮았다.
이게 천벌이라면 달게 받으리라, 남자는 차라리 이러다 죽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죽는다는 건 하늘이 배려해줬을 때나 가능한 일인걸까.

야속하게도 그는 눈을 떴다.
아주 차분한 상태에서 천천히.
언제 가게 바닥에서 잠든 것일까.
찬 바닥에서 잔 까닭에 몸이 한참이나 말을 듣지 않았다.

" 아앗. "

바보 같은 놈, 아내 끼니를 먼저 챙겼어야 하는데...
자신을 자책하며 그는 방으로 다가갔다.
기운이 없는 걸까, 대답조차 하지 않는 아내.
아니지, 잠을 자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오늘따라 유난히 졸려했으니까.
눈가의 상처는 아물고 있을까, 아까 홍주무관이 왔을 때 보건소에서 항생제라도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볼 걸.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와중에 남자는 아내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발견했다.

아내는 숨이 끊기지는 않았으나 반쯤 혼절해버린 상태로,
밑에선 피 섞인 무언가가 왈칵 쏟아지고 있었다.

" 어어어?! "

남자는 아내의 가녀린 심장박동을 확인하곤 곧장 연락할 수 있는 모든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물론 열 곳 중 아홉 곳은 먹통이 되버린 지 오래였다. 다행히 처음에 전화가 된 시청 당직실에선 긴급구호인력을 보내겠다고 했으나
그조차도 인력이 모자라 가까운 도시에서 사람을 빌려와야 할 판이었다.
남자는 집 밖으로 뛰쳐나와 그나마 얼굴이라도 아는 이웃들 집에 도움을 요청했다.

도둑과 사기꾼이 판치게 된 사회에서 갑작스레 문을 두들기는 그를 반겨줄 이웃은 드물었다.
노크하는 주먹에 피멍이 배길 즈음이 되서야 누군가 문을 열어주었다.
정육점이 잘 되던 시절, 고기 등급과 가격 문제로 한 번 말다툼을 크게 벌였던 사람이었다.
분명히 수의사라고 했다. 동네 어디서 동물병원을 한다던 남자. 그때 잘 해줄걸, 화해할걸,
남자는 짧은 반성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분만 중인 아내가 집에 있고, 지금 상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속사포 같이 쏟아내었다.

사람이 키우던 동물은 모조리 먹어치우고 없게 된 마당에 실업자가 되어있던 수의사는 남자의 말에
직업의식이 깨어나는 듯, 멍한 눈에 서서히 빛이 돌아오더니 몇 가지 응급처방을 내린 후 자신의 병원으로 급히 달려갔다.

남자가 집에 다시 왔을 때 아내는 더욱 신음하고 있었으나 아까와는 달리 의식이 조금 돌아온 상태로 힘겹게 사투하고 있었다.

" 여보, 힘내...! "

남자가 아내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며 수의사가 내린 지시 몇 가지를 따르는 동안
분만을 위한 도구를 가져온 수의사와 인근 도시에서 의약품을 들고 급히 달려온 의료진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그들은 서로 자기 직무에 대한 소개를 짧게 마친 뒤 곧장 서로의 역할을 정해 아내를 살피기 시작했다.

남자는 방 밖으로 나와 돗대 몇 개를 주워다 다시 불을 붙여 피웠다.
쇼케이스 쪽으론 아예 시선을 두지 않았다. 아직 자기 자신조차도 온전히 달래지 못 하는 그였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마음을 약하게 할 무언가를 마주해서는 안 될 터였으니까.
방황하는 마음은 뿜어져나오는 담배 연기와 같이 흩어지길 반복했다.

응애, 응애ㅡ.

" ... 아버님? "

방에서 나온 간호사 한 명이 마스크를 벗으며 남자를 불렀다.
남자는 급히 담배를 비벼끈 뒤 방으로 들어섰다.
우렁찬 울음소리, 두 목소리다. 역시 쌍둥이였구나.

" 응애! 응애! "

영웅들이었다.
위독한 상태의 아내를 돌봐서 쌍둥이마저 무사히 받아낸 의료진에게 줄 수만 있다면 진수성찬을 차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영웅들의 표정엔 당황한 구석이 역력했다.
수의사는 깨끗한 천에 받아낸 아기를 남자에게 안겨주었다.

" ... "

응애! 응애!
쌍둥이는 우렁차게 울고 있었다.
울고 있는 입은 두 개였으나, 몸은 하나였다.
샴쌍둥이였다. 그 정도가 심해 눈은 세 개였다.
코는 하나, 입은 두 개ㅡ.

낯선 세상에 태어나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우는 아기,
그런 아이를 두고 기진맥진한 어미, 만감이 교차하는 아비, 차마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지 못 하는 영웅들.

어둠이 차오른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먼지 가득 섞인 회색 눈.

남자는 아이를 품에 소중히 안았다.
울음 뚝, 우리 아기. 착하지. 아빠란다.

ㅡ... 바깥에선 경보방송이 울리고 있다.
또 공습인가. 의료진들은 밖에 대충 세워놓은 차를 걱정하고 있다.
남자는 아내에게 아기를 보여주었다. 당신을 닮아 아주 예쁘다며.
아내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 더듬더듬 아기를 끌어안았다.
세 가족이 서로를 안으니 체온이 서로에게 전해졌다.

커다란 굉음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어딘가의 유리창이 깨지고 건물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린다.
한참 동안 시끄럽더니, 폭음은 다행히 점차 멀어져간다.

의료진들이 엎드려있던 자세를 풀고 일어나 산모의 상태를 살피니,
남자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있고 아내는 어느새 숨이 끊겨있었다.
엄마는 간신히 태어난 아기의 체온과 울음에서 나오는 떨림을 느껴봤을 뿐이었다.

남자는 다시금 눈물을 터뜨리며 삯으로 라면과 초콜렛을 힘겹게 내밀었다.
영웅들 누구 하나 그것을 받지 못 하고 하염없이 천장만 쳐다볼 뿐이었다.

...

눈과 폭격이 지나간 날이었다.

어떤 사내는 미숫가루를 들고 일전에 찾았던 정육점 앞에 다시 도착했다.
그때 분명 주인장과 약속하길, 미숫가루를 뼈나 고기와 바꾸기로 했는데 [팝니다] 라고 쓰인 작업대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 계십니까? "

몇 번의 노크 이후 문을 살며시 열자 허무하게 열려버린다.
남자가 들어서자 차디찬 점포 안에는 자신의 발소리만이 울릴 뿐이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 발견한 쇼케이스 안에는 그때의 그 상품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상품으로 팔기엔 상태가 많이 변질되어 보였기에 사내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기왕 무단침입한 마당에 용기가 붙은 사내는 통로를 따라 방문도 살며시 열어보았다.
그리곤 다시 천천히 닫았다.

" ... 어휴. "

사내는 어떤 종교도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손으로 십자가 성호를 그으며 방문 앞에서 한 가족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다고 여겼는지, 합장한 채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하며 가게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방 안에는 '상품'이 될 만한 것들이 잔뜩 있었으나,
사내 역시도 앞서 어떤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그간 외면해온 인간성이 깨어나려는 느낌이 들자 방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만 느낌이었다.

" 명복을 빕니다... 모두. "

사내는 미숫가루가 가방 속에 잘 있는지 한 번 살핀다음,
다른 마을을 향해 곧장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마을에도 누군가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팝니다,
사세요,
사가세요,
살아가세요...


ㅡ 환상괴담, 팝니다. 끝.
괴담의 중심 The Epitaph & 네이버 카페 공포문학의 연구

* 컨텐츠 출처 : 창작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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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괴담
      2019-02-06 17:45:02 0 0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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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괴담
      2019-02-06 20:31:03 0 0
    초고 작성 완료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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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소용코카콜라
      2019-02-06 19:50:37 1 0
    점점 예전 작가님들이 돌아오시는거 같아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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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괴담
      2019-02-06 20:03:30 1 0
    안녕하세요, 아직 쓰는 중이라 초고가 완전히 쓰이고 나면 한 번 더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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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소용코카콜라
      2019-02-06 22:48:01 0 0
    다시 읽었습니다 역시 재밌네요ㅎㅎ 자주 들러서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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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M게임마스터
      2019-02-08 17:14:49 1 0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같은 느낌이네요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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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괴담
      2019-02-08 17:26:37 0 0
    저도 중학생 때 읽은 책입니다. 원래는 대기근으로 인해 사람의 시신마저 거래되었다는 외국의 혹독한 겨울을 보고 쓰기 시작한 단편인데 핵겨울로 쓰게되면서.. 여러 설정을 빌려오게 되었네요. 기형아가 태어나는 장면이 그렇고 신선야채가 없어 시래기 같이 그나마 오래가는 식품이 거래되는 등등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밝혀두고 싶은 부분입니다. 물론 최후의 아이들과 달리 처음부터 '분투하는 인간'은 온데간데 없이 비극으로 시작하고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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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괴담
      2019-02-08 17:28:14 0 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글 남겨주셔서 더 힘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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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M게임마스터
      2019-02-08 18:48:16 0 0
    오랜만에 공포게시판 들어왔는데 바로 앞에 환상괴담님 글이 있길래 정독하고 지난 게시글들 봐서 몇개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건데도 신기한점은 제목만 봤을땐 뭐지싶은데 글 들어가서 잠깐 읽어보면 아 이거 그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ㅋㅋ 내용이나 문체가 워낙 인상 깊어서 그런거같습니다.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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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핫추네미쿠death
      2019-02-08 17:40:13 0 0
    와 필력 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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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헌
      2019-02-11 10:41:56 0 0
    재밌게 봤습니다 필력 역시ㅎㅎ👍 간만에 공게 왔는데 너무 썰렁하네요ㅠ 그나마 사틱님이 옛공게를 떠올릴만큼 재밌는 글을 올려서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잠수타버리신..ㅋㅋ 간만에 환상괴담님 글 보니 여러 대작가님들이 생각나네요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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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근이
      2019-03-15 20:50:56 0 0
    환상괴담님, 너무나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나누어 읽고 싶어 여쭤봅니다. 혹시 해당 글을 다른 커뮤니티에 원글링크 및 출처를 분명히 명시하고 퍼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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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괴담
      2019-03-16 23:15:22 0 0
    네.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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