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이 출현한 이후 세계에 나타난 마족과 마석. 인간들은 마왕과 마족과의 오랜 싸움으로 그들에게서 얻은 마석을 정화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정화된 마석은 인간들에게 동화되며 특별한 능력을 발현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그 특별한 능력자들로 구성된 세계 연합 본부의 수사관들은 마왕과 마족에게 대항해 끝없는 전쟁을 이어갔지만, 마왕이라는 자를 쓰러뜨리기엔 그들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이 인간들에게 멸망당하기 직전 용의 왕이 내린 예언에 선택받은 남자가 나타났다. 세계를 구원할 남자. 세계는 그를 용사라고 불렀고 그에게 세계의 운명을 걸었다.

『 “용사라고 불릴 만큼의 활약 전무. 떠돌이 생활을 하며 돈만 주면 뭐든지 하는 해결사를 하고 있는 중. 연합 본부의 마족 구축 지원 요청 전부 무시. 현재는 3000만 골드의 빚을 진 채 도피생활 중이며 그 빚으로 노예까지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됨…….”

크로너는 마른 세수를 하며 한숨을 쉬었다. 의미가 없는 그 서류들을 훑어보다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쓰레기 같은 남자를 왜 영웅이라고 떠받드는 거야, 릴리?” 』


하지만, 용사라고 선택받은 남자는 붉은 눈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들에게 박해받으면서 살아온 남자. 그 남자는 한순간에 세계를 구원할 용사가 되었지만, 세계를 증오하고 있었다. 스스로 용사라는 사실을 숨긴 채, 마왕에게 지배당하는 세상을 외면하고 ‘해결사’라는 이름과 함께 결코 정의로운 용사라고 생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 “용사가 아니다. 해결사다.” 』

자신을 버린 세계를 증오하는 용사, 그 증오하는 세계를 구원해야 할 운명을 짊어진 그의 이야기. 과연 세계는 자신을 외면하는 용사에게서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얀 백발의 남자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단상에 서 있는 남자를 마주 봤다. 그의 손목시계의 초침은 긴장감이 가득한 침묵 속에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초침과 분침이 겹치는 순간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놈들은 그걸 원하는 것이겠지. 좋아, 세 번째 그릇을 찾아주지. 너희는 그때까지 마석을 제거할 방법을 찾기나 해. 세 번째 그릇을 찾기 전에 혹은, 마석을 제거하기 전에 그녀가 폭주한다면, 세계는 멸망한다.”

싸늘한 그의 목소리가 고요한 침묵 속에서 가라앉았다. 헝클어진 그의 앞머리가 눈썹 위로 흘러내리고 손목시계의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용사는 세계를 구하지 않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