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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려고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그의 발에 무언가 걸렸다. 평소처럼 마트 전단지일 거라고 생각한 그는 보지도 않은 채 발로 차버리고, 회사로 향하는 급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따라 유난히 하려는 일들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상사에게 혼나고, 모든 걸 포기한 기분으로 그는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배는 고팠지만, 식욕은 뚝 끊긴 지 오래였다. 점심도 대충 때우고, 커피만 세 잔째였다.

고민하던 와중, 아침에 확인하지 않고 발로 차버린 전단지가 떠올랐다. 주로 전단을 돌리는 동네 마트를 떠올리며, 그는 퇴근길에 들를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루 노동의 마무리를 내일이 아닌 오늘 안에 끝내고자 하는 듯했다. 적어도 뭔가를 마무리하는 느낌이라도 있어야, 이 무의미한 하루가 조금은 덜 허망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마트에는 아무 행사도 없었다. 늘 그렇듯 조촐하고,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진열대의 물건들도, 계산대 옆을 지키는 직원도, 모든 것이 그냥 어제와 같았다. 그 평범함이 오히려 실망스러웠다. 마치 자신이 과도하게 기대했던 것 같아 더 공허했다. 그는 마트를 둘러보다가 간단하게 저녁으로 먹을 스파게티 면과 토마토 소스, 감자, 그리고 마침 떨어진 담배 한 갑을 사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길지 않았다. 담배 두 대 정도를 연달아 피우며 걸었고, 지나가는 이들의 담배연기에 찡그린 표정 두 개쯤 마주치고 나면 집 앞 쓰레기 버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두 개의 꽁초를 버린 후, 하루 종일 마음속을 긁고 있던 그 종이의 정체를 확인하려 했다. 발에 닿았던 감각, 순간의 껄끄러움이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쑤셔 넣을 대로 쑤셔 넣은 우편물이 넘쳐나는 우편함을 흘긋 보며, 그는 '내일 퇴근길에 확인해야지' 하고 미뤘다. 오늘 하루의 마무리를 내일의 자신에게 넘긴 채, 그는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오래된 계단은 삐걱거렸고, 벽에 붙은 형광등은 깜빡였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왠지 모르게 더 지쳐가는 느낌이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볼품없는 안식처, 현관 앞에 도착했다. 문 앞,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종이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행복을 팝니다. 010-XXXX-XXXX”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하루 종일 자신의 신경을 긁었던 종이의 정체가 이토록 얼토당토않은 문구라니.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문을 열며 핸드폰을 꺼냈다. 결국 그는 그 번호로 짧은 문자를 보냈다.

쓸데없는 장난 치지 마세요.

그렇게 문을 닫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물줄기 아래에서 그는, ‘행복을 팝니다’라는 문구의 의미에 대해 곱씹기 시작했다. 어처구니없는 장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시기의 기억이 떠올랐다. 쏟아지는 물소리 아래, 감정은 조용히 번져갔다.

뜨거웠던 그녀와의 1년 10개월 연애. 우연히 바에서 만났고,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던 시간. 세상에 둘만 있으면 죽지 않을 것 같았던 나날. 하지만 시작은 뜨거웠던 사랑도, 끝은 차가웠다. 별거 아닌 것으로 다투기 시작했고, 결국은 세상에 둘만 있으면 서로 죽을 것처럼 냉담해졌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뱉은 한마디. 그 말은 여전히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 독처럼 남아, 몸을 무겁고 딱딱하게 굳게 만든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 말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같은 톤으로 되살아났다.

그의 깊은 내면 속 상처가 천천히 떠오르려던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그린데이의 'Basket Case'. 회사 전화인 줄 알고 허겁지겁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 앳된 목소리가 말했다.

"행복을 팔려고 하는데요."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분노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런 장난은 이제 그만하세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말이 들려왔다.

"그럼 샘플을 보여드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정신을 잃었다.

그러자 그는 그녀와 처음 만났던 바의 화장실에서 눈을 떴다. 그는 혼란스러웠고, 약간의 빈혈처럼 어지러운 통증이 머리를 짓눌렀다. 낯익고도 낯선 공간,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되지 않는 그곳에서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본인이 꿈속에 있는지 아니면 실제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그는 일단 세수부터 하며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뒤에 보이는 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눈물이 날 정도로 보고 싶었지만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믿었던 그녀가 자리에 앉아, 조용히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보고 싶었어! 그리웠어!"

그의 외침에 주변의 사람들이 놀라 그를 쳐다봤다. 시선을 의식한 그녀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목소리를 낮춰줄래?"

그는 민망함에 주위를 둘러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그녀 맞은편 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그리고 숨을 고른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층 차갑게 느껴지는 방에서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가 말했다.

"샘플은 끝났습니다. 구매하실 건가요?"

그는 지금 당장 구매하겠다고 소리쳤다.

그 순간, 그의 집 초인종이 울렸다.

그는 거칠게 문을 열며 소리쳤다.

"뭐에요, 이 시간에!"

그러나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바닥을 보니 밧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는 당황했지만 티 내지 않으며 밧줄을 들고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휴대폰에서는 앳된 목소리로 "저희 서비스를 즐겨주세요"라는 말이 들린 후, 전화가 끊겼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조심스레 웃음을 지으며,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천장에 밧줄을 묶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주변에 있는 의자를 끌고 와 그 위에 올라선 뒤, 밧줄을 목에 걸었다.

그의 발밑에는 익숙한 나무 바닥의 촉감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이 낯설게만 다가왔다. 방 안은 고요했다. 세상의 소음도, 휴대폰의 진동도, 그 어떤 신호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그의 숨소리만이 조용히 공기 속을 맴돌았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는 문득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은 정말로 '행복'을 구매한 것일까. 그저 또 다른 환상에 기댄 건 아닐까. 하지만 생각은 길지 않았다. 그의 눈은 반쯤 감겼고, 온몸은 그 어떤 무게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그 줄 아래에서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후회였을까, 체념이었을까. 아니면 어쩌면, 진짜로 행복이었을지도 몰랐다. 그의 머릿속에는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웃던 얼굴, 젖은 눈동자, 다투던 목소리, 함께 걷던 골목, 그리고 이 모든 걸 잊고 싶어 했던 자신.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고, 마치 누군가 조용히 등을 밀어준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는 잠시 숨을 멈추고, 모든 감각을 천천히 놓아주었다. 세상은 다시 조용해졌고, 방 안에는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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