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들어간 대로변의 카페에서 마주친 메뉴판에 적힌 생전 처음 보는 메뉴는 오후 1시 식곤증과 사투 중이던 그의 눈꺼풀을 순식간에 들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에스프레소와 쥬지스틱이라니. 함께 해선 안되는 두 단어가 섞이니 그의 속에선 호기심과 함께 묘한 배덕감이 피어올랐다.

분명 주문해서도 안되고 저기 카운터에 앉아 음흉하게 웃으며 그를 그윽하게 쳐다보는 점장에게도 메뉴에 대해 물어봐선 안된다고 뇌에서 명령을 내리기 전에 이미 입 밖으로 튀어나와버렸다.

티팬티에 뽕브라를 입은 채로 무언갈 덜렁거리며 걸어오는 점장의 모습에 나는 메뉴설명이 필요없다는 말을 할 용기를 잃고 말았다. 나에게 남은건 메뉴설명을 듣는 것과 시키는 것. 이 두 가지 밖에 남지 않았다.

그가 이 좆 같은 메뉴를 45000원을 주고 사먹어야 한다는 그 무력감과 분노,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해 묘한 배덕감을 무의식 중에 느끼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 시야와 귀를 먹먹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점장은 그의 앞에 당당히 서서 무언갈 열심히 설명하지만 뜨문뜨문 들려올 뿐, 그에겐 오직 저 쥬지스틱을 먹을 생각으로 가득 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윽고 그는 정신을 차려 앞에 당당히 선 채로 침을 튀겨가며 설명하는 점장의 말에 집중하려 노력하지만, 만들어진 에스프레소를 티스푼 대신 점장의 쥬지를 부여잡고 살살살 저어 마신다는 설명에 집중하기를 포기한 채로 멍하게 서 있기만 한다.

그는 힘겹게 이 메뉴로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무릎을 꿇고 공허한 눈물을 흘린다. 점장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콧노래를 휘휘 부르며 요염한 손짓으로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그는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조려 고개를 치켜든다. 오늘따라 유독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다. 직장으로 돌아가 처리해야할 나머지 업무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곧 본인이 잡게될 점장의 쥬지의 감촉과 굵기, 색감을 상상해본다.

쨍한 백옥빛 햇빛이 그의 눈물에 굴절되어 눈을 따갑게 한다. 그는 애써 남은 병가 횟수를 생각해내지만 이윽고 들어온 지 3달도 안된 놈이 무슨 병가냐며 욕설을 퍼붓는 사장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늘따라 햇빛이 쓰리게만 느껴진다. 수능을 앞 둔 어느 초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