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출근은 다음 달이긴 하지만 계약서도 쓰고 회사도 갔어

신기하다 수능 치는 날에 취업을 하다니

거의 5년넘게 친구 한 명 없이 히키코모리로 30살까지 살다가 전공 다시 공부하고

프로젝트 만들어서 포트폴리오 채우고 지원서 자소서 다시 쓰고 자격증도 따고 온갖 것을 다해봤는데 날 뽑아주는 사람도 없길래

눈 낮추고 계속 눈 낮추고 하다보니 중소에 들어가게 됐네

면접 때 크게 물어보는 것도 없었고 그냥 개인적인 것만 물어봤어

다행인건 이 때까지 경력 안쌓고 뭐했냐라는 식의 질문은 안했어.

그것만으로도 나는 좋은 회사라고 생각해

나이도 있고 경력도 없으니 내가 갈 곳은 정해져 있겠지

그래도 취업하니깐 좋기도 하고 뭔가 허전하기도 해

사실 취준아닌 취준하면서 진짜 우울했거든 빚도 많아서 살던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엄마는 아프고 난 엄마가 아픈 와중에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고

그냥 현실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거 같아

그래서 집에서 자다가 게임만하고 커뮤질만 하고 돈도 없으니 하루 한끼 라면만 먹으며 살았거든

영양 상태도 안좋았고 위궤양도 오고 오른쪽 귀도 잘안들리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할머니 장례식에 안가고 그랬어...

아빠가 미웠거든 아빠가 엄마 명의로 돈 빌린상태로 빚져서 이혼했으니깐

나는 커뮤니티에 맨날 떠도는 방구석 여포 히키코모리 찐따들이랑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돌아보니 나도 결국엔 그런 사람이었어

내 또래 애들은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승진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모습보니깐 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같았어

남들과 비교하지말라고 하는데 그게 쉽게 돼?

항상 매체나 뉴스에서는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여주고 취업시장도 안좋고 경기도 안좋고 지구온난화 같은 안좋은 뉴스들만 보여주는데...

주변 사람 생각은 안하고 이런 세상에 돈벌어서 살면 뭐하냐라는 생각까지 했지

그래서 1년 전에는 진짜 죽을려고 했었는데

엄마가 출근한 시간에 내가 입었던 옷들 다 버리고 내 방에서 방문 걸어 잠그고

식칼로 내 심장도 찌르려고 해봤고 비닐봉지로 내 얼굴 전체를 묶어봤는데 사람 쉽게 안죽더라

죽을려고 시도는 하지만 죽을 용기는 없었나봐

사실 죽으려고 하다가 엄마가 전화가 오길래 전화 받았는데 냉장고에 반찬 해놨으니 엄마 없다고 라면만 먹지말라고 했어.

매번 오는 전화에 매번 똑같은 이야기이긴 했는데 그거 들으니깐 다시 살고 싶어지고 엄마한테 엄청 미안했어

그래서 자소서도 다시 쓰고 이력서도 다시 넣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전에 하다가 말았던 프로젝트도 다시 하고 강의도 다시 듣고

게임도 다시 하고...

그 날 부터 엄마한테 매일 내가 먼저 전화해. 돈은 없는데 엄마한테 효도 할 수 있는게 그거인거 같아서

고3 웃대인들도 수능 공부하느라 고생했고 수능 점수 잘나왔으면 좋겠어.

긴 글 읽어줘서 고맙고

수능이 인생의 전부도 아니고 수능 잘봤다고 잘사는것도 아닌거 같아.

내가 원래 친구가 없으니 카톡을 안해서 다른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지만

카톡 업뎃하고 다른 사람들 사는거 강제로 보니깐 고딩 때 같은 반이었던 공부 하나도 안하던 애가

결혼도 하고 취직도 하고 차도 있는거 보니 나보다 잘사는것 같더라

수능 점수 잘못나왔다고 나처럼 아무것도 안하는 삶을 살지 말았으면 해...

고3이면 나보다 더 나은 삶들을 살 수 있어. 그 나이에 할 수 있는게 많거든

긴글 읽어줘서 고맙고 너무 자기연민 글인거 같아서 안적으려고 했는데 취업하고 나니깐 기분이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