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기는 지금부터 9년 전, 20살 21살 때 친구가 같이하자고 꼬셔서 시작했다.
친구가 들고 온 정보들을 보는데 속기의 앞날이 굉장히 밝아 보이더라고.
활동적인 걸 별로 안 좋아했어서 더 끌렸던 거 같기도 하고 ㅋㅋ
처음엔 서울 올라가서 학원 다니고 알바하면서 좀 공부하다가
중간에 고향 내려가서 학교에 복학하고 학교 다니면서 공부했지.
（계속 한 건 아니고 중간중간 텀이 많았음）
그 후 한 3년 전? 본격적으로 공부해서 2급까지 땄는데,
2급 절대 못 붙을거라 생각했던지라 붙어서 굉장히 기뻤음. ㅋㅋ
그때 마침 맥주사가 kbs 따오면서 채용을 확 하던 때였더라고.
맥주사 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고, 서울로 원룸을 구하면서 올라갔다.
그렇게 방송속기를 배우면서 계약서를 쓰는데,
내가 생각했던 급여랑 달라서 너무 놀랐음.
그때 당시 최저시급보다 월 10만 원 더 받았었나?
뭐.. 수습기간이니까 이러겠지 수습 끝나면 더 받겠지.. 생각하며 애써 넘겼는데
아니더라 ㅋㅋ 그게 초봉이었다. 월 190 언저리.
조금이라도 많아 보이려던 것이었는지 연봉에 퇴직금 포함으로 적혀 있던데
보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다.
그래도 앞날은 좋을 거야, 신입이니까 이러겠지라고 위안했고
또 속기도 재밌고 나름의 자부심이라는 것도 있었다.
내가 치는 게 전국에서 볼 수 있는 거야?! 하면서 ㅋㅋ
그러다가 사무직 인원을 뽑는다고 하길래 냉큼 지원했다.
나름 학생 때 행정지원 경험이 있어서 넣었던 것도 있었고,
사무직을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다.（정규직이 되면 뭔가 다를까 봐）
그렇게 사무직으로 전환되어 정말 열심히 일했음.
내부 문화적으로 뭔가 속기랑 사무직이 나뉘어져 있고
또 알게 모르게 침체되어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중간에서 어떻게
그 간극을 좁히고 싶었다. 근데 뭐.. 잘 안 되더라고.
그래도 직원분들 사이에서는 사무직 중에서도
노력하는 애로 비춰져서 평이 나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래도 방송속기는 연장을 하면 돈을 더 주니까
거의 매일 연장을 해서 방송속기 지원을 했다.
그렇게 하면 달에 찍히는 돈이 세후 230은 됐었다.
（대신 거의 8시 30분 퇴근）
신입이고 이 정도면, 뭐..
중소기업 신입 평균이 3000 안 된다는데,
그리고 다른 중소기업도 야근 다 하면서 포괄임금제라 연장수당도 못 받는다던데
그렇다면 비슷하겠지~ 생각하며 애써 위안을 했다.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도, 냉정하게 보아도
이때는 타 중소기업 평균과 비교해도 최하 위치는 아니었던 게 맞다.
실제로 포괄로 인해서 야근을 해도 돈 못 받는 회사가 많더라고.
그리고 별 능력이 없이 들어가는 회사의 사무직이면 돈 많이 못 받는 것도 맞았고.
그렇게 나름 열심히 일하면서 내부적으로 인정받았지만
점점 생각이 많아졌다.
회사가 방송 계약이 없으면 자생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s사와의 차이는 점점 벌어지는 게 보였거든.
다 알겠지만, s사 홍보 장난 아니잖아.
그런데 그 차이를 줄여야 하는데 회사의 방향은 내 생각과 많이 달랐고,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지.
이렇게 가면 결국 미래에는 위태할 게 보였음.
그리고 1년 후 인상 통보를 받는데 인상률이..
나름 기대했거든. 신입은 짜도 연차가 오르면 그만큼 오르겠지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ㅋㅋ.
최저임금 오른 만큼 올랐다ㅋㅋ.
아찔하더라고. 이렇게 하면 5~6년 정도가 지나야 3000..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면 괜찮겠지만, 사회 통념적으로 봤을 때
5~6년 차에 3000은 결코 많은 게 아니라고 판단했음.
지금 당장은 다른 중소기업 사무직과 비교해서 그렇게 엄청
밀리는 건 아닐지언정, 연차가 쌓이며 지난 미래에는
점점 간격이 벌어져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회사의 방향성과 불확실성, 연봉인상률과
회사의 침체된 문화 등을 고려했을 때 난 미래가 잘 안 보였어.
그래서 이직을 생각했는데 속기직으로 이직하는 건
결론적으로 미래가 보장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을 했음.
속기직을 해서 공공기관에 안착하면 좋지만 그게 아니라면?
계속 공공기관의 문을 두드린다면 언젠간 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언제인지 확신할 수 없었고 결정적으로 서울을 벗어나기가 싫었다.
그리고 방송 속기를 계속하는 것은 더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사무직 경력을 좀 정리해서 사람인에 이력서를 올렸고
모 반도체 스타트업에서 연락이 와서 경영지원팀으로 면접을 봤고 들어갔다.
이때 초봉이 3000.
속기 회사에 있을 때 최소 5~6년을 보냈어야 달성했을 연봉을 찍었다.
그리고 여기는 점심, 저녁을 사주고 간식 무제한에
회식비와 회식 때 어디 놀러 가는 돈도 회사 부담에 건물도 되게 깔끔해서 좋았다.
근데 뭐 회사생활이 좋기만 하겠어,
여기는 국책과제를 주로 하는 곳이라서 야근이 정말 많았지.
이전의 경영지원팀들이 오래 못 버텼다고 들었는데 업무량이 정말 많았다.
사람이 계속 바뀌면서 업무분장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일이 계속 밀려왔었더라고.
국책과제에 인사총무팀 업무까지 혼자 소화해야 했으니
업무량이 정말 많았다.
근데 내 장점이 근성인지, 전 회사에서도 열심히 했듯
여기서도 정말 열심히 했다. 그래서 나름 인정을 받아서
수습 종료 후 3300으로 연봉이 뛰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밥을 사주는 것 대신 식대 제공으로 전환되면서 3600을 찍었다.
그러던 중,
회사의 임원분과 세미나 출장으로 판교에 동행했었는데
판교의 잘나가는 기업들을 소개해 주면서
이런 작은 곳（지금 회사）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일을 배우며
성장하여 이런 판교, 강남에 있는 멋진 기업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라는 조언을 해 주셨다.
내가 없으면 당장은 자신 입장에서도 아쉽겠지만 그만큼 이끼니까 이런 말을 한다면서.
근데 이런 말들이 와닿아서 다시금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대표가 너무 기분파라 맞추기 버겁다는 점,
회사의 비전에 공감하기 힘들었던 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경영지원팀이지만 일반 경리 느낌이 강해서
경력산정에서 물경력이 되겠다 등등 많은 생각을 했다.
이때의 난 속기직은 마음에서 떠나보냈고 경영지원, 인사총무 쪽으로 직무를 정했기에
인력 시장에서 내 분야의 알찬 경험이 있어야 자생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내가 스펙이 좋은 것도 절대 아니었고.
그렇게 임원분의 조언으로 시작한 나의 고민은 결론을 내렸고,
맡은 업무들을 내 역량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한편으론 사람인의 여러 기업을 둘러보며
이력서를 넣었다.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었는데 그중 지금 회사의 면접을 준비해서 pt면접을 보고（pt면접은 드라마로만 봤었던지라 생소했다.） 합격했다.
연봉은 3,300. 지금 3,600을 받는 입장에서 깎이는 것이지만
이직을 하면 내 직무에서 체계적인 성장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게 보여서 곳이라서
성장하는 값이라고 생각하여 이직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 회사에 퇴사의 뜻을 전했는데 4,000 맞춰준다고 하더라.
4,000이면 절대 낮은 임금이 아니었다. 사무직 1년 차에 4,000이면 중견급 이상이었다.
그래서 죄송하다고, 현 회사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 못 갈 거 같다고 현 회사 인사담당자님께 전했다.
그러자 다시 연락이 와서 감사하게도 여러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셨는데 그 조언이
나에게 이직을 권하셨던 임원진의 말과 비슷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선이면 맞출 수 있겠냐고 물어보길래
현재와 같은 연봉을 전달했고 결국 그게 OK 되어 이직을 확정 지었다.
그리고 지금, 이직한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지금 회사도 스타트업이지만 규모도 작은 편이 아니고 내년에는 상장한다.
그 과정에 나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애사심도 있어서 더 열심히 배우고 도움이 되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느껴져서,
남들이 한 걸음을 걷는 보폭을 난 두 걸음을 걸어야 따라잡을 수 있기에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있다. 아직은 매일 실수 연발이라...
4,000이라는 연봉을 한번 앞에 두었다 보니 3,600이라는 연봉이 작게 느껴진다.
하지만 만약 내가 속기계에 계속 있었다면... 3,600의 연봉은 15년이 걸려야 찍었겠지.
속기계를 벗어나면서 15년의 길을 앞서 도착했다.
현시점에서 위를 바라보면 나보다 더 빠른 길을 가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는데
애초에 내가 뭐 특별한 자격증도 없고 미래 인생을 위해 준비한 것도 없기에 난 지금 내 자리에 만족한다.
어제 오랜만에 구글에 속기 회사를 좀 쳐봤는데
내가 있을 때에서 인원이 반토막이 났더라.
S사는 그래도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 게 보이는데
맥주사는 그런 게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만약 속기를 준비하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속기는 지는 태양과도 같기에 각별히 심사숙고했으면 좋겠다.
（속기 중에서도 방송속기. 사무소나 현장은 잘 모르겠지만 꿈 같지 않을 거라는 건 장담한다.）
C사는 특히 권유하고 싶지 않고
S사로 준비한다고 해도 한계가 명확할 테니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C사는 홍보도 없으니 넘어가고, S사의 홍보는
진짜 부풀려진 게 많으니 허울에 속지 말 것 !
속기를 준비하던 나도
나는 다를거야, 나는 국회 속기사가 될 수 있어, 난 게다가 행정학 전공이야라며 될 거라 생각했었다 ^^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고, 지나고 나서 후회하면 이미 시간은 많이 지나있을 것이며
그때 다른 일을 준비하기엔 늦을 수도 있으니까 꼭꼭 이런 걱정들을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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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