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 걸어서 한 바퀴 일기(긺) [31] |
작성 2024-04-14 16: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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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2호선 걸어서 돌았다.
걷기 전날 같이 사는 친누나에게 계획을 말해주었더니
"그딴 쓸데없는 짓을 왜 하냐~~", "지금 벚꽃 이쁜데 그거나 보고 오지 뭐하는 거냐~~"
나는 누나 방을 나가며 말했다.
"누나는 모르겠지... 이것이... 남자의 도전이다...!"
등 뒤로 도전은 개뿔 어쩌구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결전의 토요일이 되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역에 사는 친구（이하 승짱）가 낙성대역으로 왔다.
우선 총선 사전 투표하고, 자장면 먹고,
13시에 낙성대역에서 사당역 방향으로 남자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사당 - 방배 - 서초로 이어지는 구간이 통곡의 언덕이라는 후기를 보고 먼저 해치우기로 하였다.
극초반이라 쉽게 언덕을 통과했다. 그러나... 그때 그만뒀어야 했다는 후회가 곧 밀려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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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 - 강남 - 역삼 - 선릉을 순조롭게 돌파했다. 선릉 도착 시각 14:54
페이스가 생각보다 빠르다고 느꼈다.
새벽 2시쯤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힘들지는 않았지만 선릉의 스타벅스에서 30분 가량 쉬었다.
음료를 마시며 승짱이랑 '지금까진 아주 쉽네'하는 오만방자한 말들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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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 종합운동장 - 잠실새내 - 잠실 - 잠실나루를 지났다. 잠실나루 도착 시각 16:57
종합운동장 근처엔 LG팬이 굉장히 많았으며 유광점퍼가 더워보였다.
벚꽃이 많아 길이 예뻤고 롯데타워는 그냥 멋있었다.
이땐 이렇게 사진 찍을 여유도 있었다...
가볍던 다리에 조금씩 부하가 걸리는 게 느껴지는 구간이었다.
한강을 건너는 두 번의 과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고, 실제로 그러했다.
잠실철교는 거리가 긴 문제도 있었지만, 바로 옆에 지나다니는 지하철이 내는 소음이 상당히 문제였다.
친구랑 대화하기 어려웠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는 시민들이 많아 힘들었다.
서울처럼 큰 도시에 한강처럼 큰 강이 흐르는 건 풍경으로나 걷기로나 사기라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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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 구의를 지났다. 구의 도착 시각 17:40
구의역 옆에 있는 명륜진사갈비를 20분 정도의 웨이팅을 거쳐 들어갔다.
셀프코너 자주 왔다갔다하느랴 다리가 온전히 쉬진 못했다.
2시간 가까이 고기 퍼먹고 다시 출발.
밥을 먹고 나오니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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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입구 - 성수 - 뚝섬 - 한양대를 지났다. 한양대 도착 시각 21:07
한양대에 기가막힌 야경 스팟이 있다기에 조금 더 걷는 부담을 감수하고 올라갔다.
힘든 여정을 잠시 잊게 해준 굉장히 예쁜 야경이었다.
그 예쁜 야경 스팟에서 20분 정도 쉬고 안 예쁜 현실로 돌아오니 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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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 상왕십리 - 신당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을지로4가 - 을지로 3가 - 을지로입구 - 시청을 지났다. 시청 도착 시각 23:07
을지로4가부터 시청까지 역 간의 거리는 짧아서 좋았다.
그런데 빡치는 게 역들이 다 환승역이다보니 역 하나하나의 크기가 컸다.
이게 왜 빡치냐면, 힘들게 을지로 4가 입구 도착해서 인증샷 찍고 또 열심히 걸어가는데 저 멀리 역이 보임.
오 벌써 다음 역이네? 하고 기쁜 맘으로 다가가면 을지로 4가의 또다른 입구 ㅋㅋ
이런 빡치는 구간이 시청까지 계속 이어진다.
페이스가 확연하게 느려졌다. 왼다리 무릎과 오른다리 햄스트링이 너무 아팠다. 승짱은 양허벅지가 너무 아프다 했다.
조금만 뛰면 충분히 건널 수 있는 신호등 초록불임에도 뛸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미 절반을 한참 지났다.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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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 - 아현 - 이대 - 신촌 - 홍대입구를 지났다. 홍대입구 도착 시각 일요일 01:00
멈추고 싶었다...
충정로역 가는 길에 있던 편의점에서 20분 정도 초코바를 먹으면서 쉬었다.
요즘 편의점은 야간에 무인으로 운영하는 게 야간 편의점 알바를 오래했던 사람으로서 꽤 혁신적이라고 느꼈다.
쉬었지만 다리는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이 구간이 한계였다. 아현 - 이대 가는 길이 약간 오르막길인데 너무너무너무x100 힘들었다.
평소에 스쿼트를 간간히 하긴 하는데 도움이 안 됐나?!
핸드폰 충전（을 빙자한 다리 회복）이 필요해 홍대의 피시방에서 1시간 쉬기로 했다.
（승짱이랑 팀 먹고 카트라이더 했는데 몸 힘든 거랑 별개로 거의 다 이겨서 재밌었음）
피시방에서 분비되던 도파민이 밖으로 나오자 순식간에 사라져 다리의 부하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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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 - 당산 - 영등포구청 - 문래 - 신도림을 지났다. 신도림 도착 시각 04:23
（자이언티 - 양화대교 재생은 국룰이다.）
합정역과 당산역 사이의 양화대교는 옆에 차들이 쌩쌩 달리고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무서웠다...
그렇지만 새벽 3시에 양화대교 걸어가는 놈들을 보며 운전자들도 무서웠으리라...
신도림까지는 중간에 벤치에서 잠깐 쉬었지만 무아지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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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 구로디지털단지 - 신대방 - 신림을 지났다. 신림 도착 시각 06:42
신도림에서 방향을 잃어서 약간 헤매다 출발했다.
대림 근처의 무인 편의점에서 잠시 컵라면 먹으며 30분 쉬었다.
쉬고 나오니 무릎과 햄스트링이 더 아팠다. 날이 밝았다. 가야할 길이 환하게 보이니 더 힘들었다.
이제 잠시도 쉬지 말고 골인하자 합의했다.
구로디지털단지는 승짱네 집이다. 승짱은 이 구간에서 그냥 집에 가고 싶다고 쉼 없이 말했고, 나는 쉼 없이 설득했다.
구디를 지난 뒤 승짱은 말이 거의 없었다. 졸면서 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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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 - 서울대입구 - 낙성대에 골인했다. 낙성대 도착 시각 07:37
낙성대에서 사당 방면으로 걷기를 시작하며 나눴던 대화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봉천 쯤 오면 다 왔다는 마음에 뭔가 가볍게 걸어갈 수 있을 듯 ㅋㅋ"
"낙성대 다시 도착하면 기뻐서 눈물 막 흘릴 듯 ㅋㅋ"
개소리였다.
어휴 너무 힘들어서 그저 빨리 골인하고 싶었다. 물론 걸음은 너무 힘들어서 빠르진 못했다.
낙성대역에 도착해서 억지 따봉과 함께 인증샷을 찍었다.
눈물도 나지않았다. 그냥 너무 힘들었다. 승짱은 지하철을 타고 구디로 돌아갔다.
솔직히 뿌듯함보다는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렇게 남자의 도전은 누나의 말대로 쓸데없는 짓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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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마저 삼성헬스가 자동으로 측정을 멈췄기 때문에 시간과 걸음수가 과소측정 되었을 것이라 생각됨）
토요일 13시 출발, 일요일 07시 37분 도착, 총 18시간 37분 소요. 총 55.62km.
출발 전 몇몇 후기를 보고 "우리도 쉬는 시간 합쳐서 넉넉 잡아 14시간이면 충분히 하겠지? 새벽 2시 쯤 끝날 듯 ㄹㅇㅋㅋ~" 했는데 그런 가소로운...
며칠 동안 다리의 후유증이 너무 심하고, 특히 월요일에 왼발이 갑자기 너무 아파서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
다리가 완전히 회복된 지금도 아직 뿌듯함이나 성취감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에 이 글을 쓰며 힘들었지만 상쾌했던 그때의 감각이 느껴진다.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은 다리의 감각과 서울의 풍경, 기타 등등...
후기를 들려주어도 누나는 여전히 "아이고 쓸데없다~", "중간에 힘들면 따릉이나 타지."
이런 낭만 없는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어쨌든 걸었다. （물론 누나가 "다음은 3호선이냐~" 했을 땐 미친 소리 하지 말라 했다）
이것이 바로... 남자의 도전이 아니라, 남자의 '추억'이다...!
서울 2호선 걷기. 추천한다.
평소에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
무료한 일상에 작은 도전이 필요한 사람.
날이 좋을 때 서울의 거리 풍경이 땡기는 사람.
서울이 생경해서 익숙해질 필요가 있은 사람.
서울이 이미 익숙해서 곳곳에 추억이 많은 사람.
물론 추천하고 되돌아오는 쌍욕은 내 탓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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