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상실에 대하여 [0] |
2024-03-06 17: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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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뒤에기둥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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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커뮤 사진갤에 릴레이가 있어서
쓴김에 그대로 가져와도 될까 싶었지만
나쁘지 않겠다 싶어 올립니다.
주인을 상실한 물건
풍금 건반에 계이름을 써놓았던 어린 학생은
이 풍금을 기억할까
내가 소중히 여기고 싶은 추억은
누군가에겐 상실된 추억일까
오래되고 가장 순수했던 꿈.
어느 순간 그 꿈에 나를
나 '따위'나 '감히' 나 같은 게 같은 단어로 제약을 걸었던 듯했다.
다시 도전을 해봤지만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해
두 번 꿈을 접었던 날들을 돌이켜봤더니
꿈이 상실된 게 아니라
그 꿈을 이루고픈 나의 마음이 상실된 거였다.
나는 40살이 오길 기다린다.
늙음으로써 오는 자유가 기대된다.
나는 늙음을
젊은 진짜 나의 모습에서 나약해지는 게 아니라
젊음이라는 필터를 하나씩 벗겨내어
내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거라고
그러니까 하루하루 지날수록
파충류의 허물을 조금씩 벗겨내는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늙음을
허물의 상실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상실된 시든 순간
나는 저무는 게 싫다.
꽃이 피는 그 짧은 순간은 예뻐해 주다가
시드는 순간 바로 눈길조차 주지 않아서
또 그 짧은 개화를 위해
잠든 그 긴 시간은
누가 예뻐해 줄까
그럼 나는 시든 꽃 옆에서 응원해 준다.
지금 너는 무척이나 예쁘다고
오래도록 잠들어있어도 된다고
흔함의 상실
죽은 것을 찍는 건
사람들이 신기해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짧은 시간 만개한 메리골드를 찍어두었듯이
나는 가장 오랜 시간 시든 메리골드를 찍어두는 것이다.
그럼 어느 날은 시든 메리골드 사진을 검색해도
시든 메리골드 사진이 잔뜩 떠있게
폭력을 방임한 부모와
심기가 불편한 이복형제의 불규칙한 어느 날들의 주먹질
그것보다 아팠던 말.
죄 없던 나에게
니 탓이오 하며 살라고 했던 이복형제
괴롭다며 발버둥 치며 내던져지고 나서야
사무치게 고독한 자유가 있었다.
당신들은 알까
당신들이 나의 온 세계였다는 걸.
그렇게나 괴로웠던 상실된 세계에서도
우습게
그 어느 날의 여름바다의 어두운 파란 냄새와
녹아들듯 어깨보다 컸던 튜브의 뜨거움이
그립더라
삶이 상실된 사람들을 본 적 있다.
애석하게도 내가 사랑했던 가족이었다.
그들이 남긴 나는 또 수많은 상실을 겪으며 지낸다.
날 아프게 한 그날들에 엄청난 이유가 있을까 하며
골머리를 싸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너무나 허무한 결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사냥당한 가젤.
사냥한 치타.
다큐멘터리에 나온 그 모습엔
그냥 삶이 있었고, 이유 따윈 없었다.
그들이 날 아프게 했던 사랑도,
날아가는 철새를 보며
나도 데려가달라고 빌어야 했던 어린 날의 나를
무참히 때린 주먹에도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철새처럼 그 세계를 떠나
새로운 상실들을 겪으며 지낸다.
가끔은 상실되지 않은 옛 추억을 뷰 파인더로 보다가
상실되길 바라던 기억까지 보이게 되지만
그건 두 눈을 뜨고 카메라를 내리면 된다.
어제는 상실됐고,
내일은 상실될 예정인 삶이다.
내 어제는 상실됐지만
열심히 삶을 살았던 어제의 상실이 있어서
어제보다 성숙한 오늘의 내가 있듯이
오늘의 성숙한 내가 상실되어야
아이를 구해줄 어른이 될 내일이 있을 테니까.
나에게 상실은 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