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

나에게 '가족' 이라는 단어는 흔히들 생각하는 '따스함, 정겨움' 과는 거리가 멀다

아마도 내가 유년 시절 겪은 나름 '불행하다고 할 수 있는' 일들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긴 한데

그래서 나는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또한 앞으로도 '화목한 가정' 을 계속 부러워하고 동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렇기에 나에게 이 영화는 세상 그 어느 영화보다 우울하고 슬픈 영화다

시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노리코는 경직된 분위기의 집이 너무나 싫다

도쿄로 진학을 하고 싶어도 그녀의 아버지는 '도쿄에서 남자를 만나 임신을 할 지 모른다' 라는 이유로 진학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은 '폐허 닷컴' 이라는 인터넷 사이트. 그녀는 그곳에서 '미츠코' 라는 닉네임을 사용할 때 비로소 현실을 잊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전이 된 틈을 타 그녀는 가출을 하고 도쿄로 올라가 폐허 닷컴의 운영자인 구미코를 만난다

그녀는 렌탈 가족 사업이라는 이상한 사업을 하고 있었고, 노리코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미츠코 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사업에 참여한다

한편, 언니의 가출에 폐허 닷컴이 연관되어있는 걸 알게 된 유카는 언니를 따라 가출, 역시 가족 렌탈 사업에 뛰어들며 유코 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고

딸들의 가출이 자신의 탓이라며 비관한 어머니는 자살, 아버지인 테츠조는 딸을 찾기 위해 도쿄로 움직이게 된다

....쓰고 보니 이게 대체 뭔 막장 내용인가, 싶을 수 있긴 하겠지만 영화는 소노 시온 감독 특유의 무거운 텍스트로 가득 차 있었다

가족 렌탈 사업을 통해 보여주는 '가족이라는 집단의 존재 의의' - 단순히 가족을 사랑하느냐, 를 넘어서 

원치 않음에도 그저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위치（아들, 딸, 장남, 장녀, 차남, 차녀, 막내 등등） 를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상당히 날카롭다

가족이라는 허울이 사실은 개인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라는 것은 노리코와 테츠조의 관계성에서 이미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으니까

（노리코는 도쿄 진학을 통해 개인의 자아 성찰을 이루고 싶었지만 테츠조는 아버지라는 입장을 이용해 그것을 방해한다）

영화가 그의 전작 <자살 클럽>과 연관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가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그걸 이 영화에서 보란 듯이 풀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정말 강하게 들었다

잔인하거나 무서운 장면은 없지만, 오히려 그보다 훨씬 무섭고도 소름끼치는 영화였다

각각의 인물의 시점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결국 그 시작점과 방향성은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지며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가족이라는 집단의 존재' 에 대한 의문으로 끝난다

잔잔하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묵직한 울림을 가진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