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 그녀 이야기 -



40분 정도 시외버스를 타고 대구로 오는 길에 옆에 앉아 있는 오빠가 잠이 들었는지 아무 말도 없었다.

오빠의 오른쪽 어깨에 머리를 기댄 체 가만히 있으니 오빠에게서 은은한 냄새가 났다.

오빠의 냄새를 맡으니 마치 취한 듯 기분이 좋았고,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남자는 몸에서 좋은 냄새까지 나네~ -


오빠가 좋아지니 오빠의 작은 하나까지 다 이뻐 보였고, 장점으로 보였다.


잠든 오빠가 잠에서 깨지 않을 정도로 조심해서 손을 펴서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오빠의 왼뺨을 만졌다.


-이제 정말 내 남자가 된 것 일까..?-


오늘이 아니면 고백을 못 할 것 같아서 버스를 탈 때 고백은 하긴 했는데

오빠도 나를 좋아한다는 말이 계속 생각이 났다.


대구 동부정류장에 도착을 해서 오빠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오빠 다 왔어~ 대구~"

"벌써?"


졸린 눈을 비비는 오빠에게 애교스럽게 말했다.


"오빠가 나 때문에 일요일 날 쉬지도 못하고 애처러워 어떻해~"


오빠는 여전히 졸린 듯 보였지만, 나를 보자마자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고,

그 모습을 가만히 보는 중에 가슴이 설레였다.


"뭐 이제는 네가 나의 휴식이 될테니깐.. 벌써 피곤이 다 풀렸네~"


-치~ 거짓말...너무 곤히 피곤하게 자던데..-


설레는 중에 오빠의 빈말도 너무 듣기가 좋았다.


오빠는 한 번 크게 기지개를 펴며 내 눈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집까지 데려다 줄까??"


오빠가 데려준다는 말에 장난이 치고 싶어 토라진 척하며 말했다.


"줄까~ 가 아니고, 줄께~ 로 말해야지~"


오빠도 내 농담이 즐거운지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래 미안~ 집까지 데려다 줄께~~"


그런데 오늘 오빠에게 너무 많은 미안하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웃으면서 하는 미안이라는 말이 듣기가 좋지는 않았다.


- 오빠의 입에 붙은 미안 소리 너무 듣기 싫은데.. 너무 건성으로 들려서...-


오빠는 내 뺨을 한 번 쓰담고 일어서서 좌석 위쪽에 올려 놓은 가방을 내려 주었다.

빙긋 웃으며 오빠하는 행동을 지켜보며 말했다.


"오빠~ 나 2년만에 처음으로 부모님 보는데..오빠랑 같이 집에 가기가 부담스러워.."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내 말에 오빠가 아쉬워하며 손을 내밀기에 그 손을 잡으며 오빠와 같이 버스에서 내렸다.

오빠가 헤어지기 싫은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불렀다.


"은주야~"

"응 오빠.."


오빠가 날 떨리게 했던 그 자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집 근처까지 가방 들어줄께"


- 아..이런 것이 챙김 받는다는 느낌이구나..-

- 하지만 2년 만에 처음 만나는 부모님에게 남자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껄끄러워..-


오빠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지만 사양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오빠..괜찮어~ 우리집 이사해서 어딘지도 몰라.. 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 봐야해~"

"그래 그럼 .. 오늘 저녁에 다시 내려 갈 건데..가기 전에 볼 수 있을까?"

"글쎄...모르겠어..이따가 전화할께."


오빠는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이따가 꼭 전화해야해~"


멀어져 가는 오빠의 뒷모습을 보며 서 있다가 저 멀리 사라진 오빠를 확인하고,

대구 하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 내 과거를 모르는 이 곳에서 새로 출발하자!! -




-남자 이야기 -


쉬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여기저기로 움직였더니 은주와 시외버스를 타고

대구에 가던 중에 피곤해서 그런지 몰라도 나도 모르게 은글슬쩍 잠이 들었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은주가 자세가 불편한지 자세를 고칠 때 얕은 졸음에서 깼다.

나를 깨운 걸 알면 그녀가 미안할까봐 그냥 눈만 감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나를 지긋이 쳐다보는 느낌이 났고, 그 시선만으로 가슴은 콩닥 거렸다.


-한 여자가 한남자를 지긋이 쳐다보는게 이런 느낌이구나..-


그 때 그녀가 오른손 손가락으로 내 뺨을 만졌다.

어릴 적 엄마가 날 만져주던 그런 따스한 느낌이였다.


- 이 여자..정말 날 사랑하는 걸까..아니 사랑은 아니더라도 날 좋아하긴 하는 거겠지..?-


내 귀에까지 들릴 만한 심장 소리에 그녀가 듣고 신경 쓰일까봐 조마조마 했고,

계속 눈을 감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또 다시 잠이 들었다.


얕은 잠에 그녀의 꿈을 꿨고, 그러던 중에 누가 흔들어 깨워서 눈이 뜨였다.

꿈은 꿨는데 기억이 생생히 나지 않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 옆에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 그녀를 꿈에서 본 듯 했다.


하지만 그렇게 유쾌한 꿈은 아니였고, 그녀가 울고 있었는 것 같기도 한

마음이 편치 않는 꿈이였다.


잠에서 얼떨결에 눈을 뜨며 깨어나니 그녀가 보였다.

해맑은 표정의 그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오빠 다 왔어~ 대구~"


잠을 쫓아내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눈 커플을 만지며 말했다.


"벌써?"


내가 피곤해 하는 모습을 그녀가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봤지만, 이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가 나 때문에 일요일날 쉬지도 못하고 애처러워 어떻해~"


걱정말라는 뜻으로 농담 섞인 말투로 말했다.


"뭐 이제는 네가 나의 휴식이 될테니깐.. 벌써 피곤이 다 풀렸네~"


그리고 정신을 차릴려고 기지개를 한 번 크게 폈다.

장시간 앉아 있어서 조금 뻐근 했는데 기지개를 펴니 좀 나은 듯 했다.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은주에게 말했다.


"집까지 데려다 줄까??"

"줄까~가 아니고 줄께~로 말해야지~"


귀엽게 말하는 은주의 모습에 예전 처음 봤던 그 모습과 쉽게 조화가 되지 않았다.

은주가 날 위해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나도 웃으면서 대꾸했다.


"아! 그래 미안~ 집까지 데려다 줄께~~"


그리고 좌석 위 짐칸에 올려 놓은 가방을 내리다 보니 상당히 무게가 있었다.


"오빠~ 나 2년만에 처음으로 부모님 보는데..오빠랑 같이 집에 가기가 부담스러워.."


조금 전 가방을 내릴 때 상당한 무게에 은주가 이 가방을 기져간다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 은주 혼자 가방 들고 집에 가기에는 무리겠던데?-


가방도 무거웠고, 이대로 은주를 보내면 또 언제 볼까 싶어 가방을

집까지 들어준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은주를 불렀다.


"은주야~"

"응 오빠.."

"그럼 집 근처까지 가방 들어줄께"


-은주 부모님은 은주가 포항에서 그런일 했던 것을 알고 계실까?-


이런 또 안타까운 생각 중에 은주가 상냥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니 오빠..괜찮어~ 우리집 이사해서 어딘지도 몰라.. 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 봐야해~"


은주는 대구 집을 나에게 보여주기가 상당히 난처한 것 같았다.


괜히 고집을 부리며 집까지 데려다 주다 그녀 입장이 난처 할 수도 있다는 생각과

대구에서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말했다.


"그래 그럼 .. 오늘 저녁에 다시 내려 갈 건데..가기 전에 볼 수 있을까?"


그녀가 약간 고민 후에 말했다.


"글쎄...모르겠어..이따가 전화할께."


그녀가 망설이며 거절 같기도 하고 승낙 같기도 한 말에 꼭 한 번 더 보고 싶다라는 투로 말했다.


"그래 이따가 꼭 전화해야해~"


-진짜 오늘 대구에서 볼 수 있으려나~?-


그녀가 먼저 가라고 말하고 내가 가는 방향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걸어 가는 중에 택시 한 대가 내 앞에 섰고, 손을 흔드는 은주를 힐끔 다시 한 번 보며

택시를 타고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몇 번 신호가 울리지 않아 엄마가 받았다.


"엄마~ 전데요~"

"어? 승훈이 니가 웬일로 전화를 다 주고 무슨 일 있나?"

"뭐~ 아들이 무슨 일 있어야 전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대구예요..집에 들어 가는 길요~"

"그래? 점심은?"

"집에 가서 먹을려구요.."


엄마에게 전화해서 집에 간다고 말하고, 또 졸음이 몰려와 택시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잠시 후 기사 분이 목적지에 다 왔다는 말에 눈이 뜨였다.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중에 가만히 생각했다.


-명절 때 오고 4개월 만에 오는 것 같은데...-


집에 들어가니 부모님이 나를 반겨 주었고, 한 동안 못 본 부모님과 간단히 밀린 이야기를 했다.

물론 은주에 관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는 내가 은주에 대해 말했다가 그녀가 누군지, 어떤 곳에서 일을 했었는지,

부모님이 알게 될 것 같아 차라리 은주에 대해선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엄마가 점심 식사를 차렸고, 같이 식사 중에 아버지가 나에게 물었다.


"요즘 거기서 누구 만나는 사람있냐?"


아버지의 넌지시 던지는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네???"


놀라는 모습에 아버지가 더 놀라며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짜식 왜 이리 놀래??"

"아뇨 만나..는 사람 없어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너도 지금 적은 나이가 아니니 지수랑 다시 만나는 것에 대해 생각 좀 해봐라.."

"네??"

"요즘 너랑 만나지도 않는데 안부 전화도 하고 인사 드리러 오고 기특하지 않냐~"


아버지의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하나 고민 중에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씩으로 말하려 했다.


"그런데 아버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중간에 말을 끊었다.


"안 그래도 여보~ 아까 승훈이 온다는 말을 듣고 지수에게 전화 했더니 지금 온다던데요~"


나는 깜짝 놀라 엄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


엄마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왜~ 지수랑 간만에 만나서 영화도 보러 가고 저녁도 같이 먹고 내려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가만히 앉아 점심만 먹고 있었고,

그 때 대문 초인종 벨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식사 중에 수저를 내려놓고 현관문 앞으로 가서 작은 구멍으로 밖에 누군가 보고는

식탁에 앉아 있는 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지수가 왔네요~"


엄마의 지수가 왔다는 말에 아버지는 반바지에 런닝셔츠만 입고 있어서

안방으로 바삐 들어 가셨고, 나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앉아서 계속 밥을 먹었다.


현관문을 들어서는 지수의 마치 접대용처럼 들리는 코맹맹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인사를 받은 엄마도 흐믓한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아버님은 어디 계시죠~"

"지금 안방에 있으니 곧 나오실꺼야~"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버지는 안방에서 긴바지와 티셔츠 하나를 갈아 입고 나왔다.


"지수 왔구나~"

"네 아버님~~"


그리고 엄마를 보더니 애교를 부리 듯 말했다.


"어머니~ 저 배가 너무 고픈데 밥 한 그릇 주세요~"

"그래 그래 거기 훈이 옆에 앉아라~"


집에 들어서면서 내가 있는 것을 봤으면서 이제서야 날 발견한 듯 밥을 먹고있는 등을 손바닥으로

탁 치면서 말했다.


"오빠~ 오래간만이야~~ 언제 왔어~?"


지수가 내 등을 탁 칠 때 밥 알이 입에서 몇 알이 뚝 튀어 나왔다.

그리고 지수를 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왔냐?"

"오래간만에 보고 왔냐가 뭐야~ 이러니 아직 장가를 못가지~"


지수가 은근히 약올리는 말에 나도 몰래 반응을 했다.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벌써 장가를 가냐?"


약간 흥분한 나의 대꾸에 놀리는 재미가 있는지 계속 약을 올렸다.


"못 갔는거면 못 갔는거라고 말해~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지수의 활발한 기운이 넘치는 말에 엄마와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재미가 있는지 표정이 밝았다.


그 모습을 눈치를 살짝 보던 지수가 힘을 받았는 지 유쾌하게 또 다시 말했다.


"나중에라도 장가 못가면 내가 받아 줄테니 걱정은 하지 말고~ 내가 특별히 결혼 해줄께~"


엄마는 지수가 먹을 밥을 퍼서 지수 앞에다 놓았고,

지수도 부모님과 한 식탁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지수의 쾌활한 성격과 밝은 애교에 밥 먹는 내내 나만 빼고 엄마랑 아버지는 즐거운 듯 했다.


계속 혼자 앉아서 밥을 먹었기에 먼저 한 공기를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먹었습니다"

"오빠 다 먹었더라도 좀 더 앉아 있지~"


지수의 말을 못 들은 체하며 내 방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내 방에 있는 책상에 앉아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를 켤 때까지 식탁에서

지수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멍하니 컴퓨터를 켜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은주를 떠올렸다.


-은주는 집에 잘 찾아갔으려나..-


이 때 노크도 없이 지수가 방안에 들어왔고, 손에 들린 쟁반 위에는 커피 2잔이 올려져 있었다.


예전에 지수에게 우린 맞지 않다고 그만 만나자고 말하고 포항으로 도망치 듯

내려 갔는데도 지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 신경 쓰이게 해서 부담스러웠다.


커피를 들고 들어온 지수에게 조용히 역정을 내 듯 말했다.


"지수야~"

"왜 오빠~"

"우리 이제 만나지 않기로 했잖아.."


지수는 내 말을 듣고서는 미소를 띄며 가만히 생각하는 척 하며 얄밉게 말했다.


"그랬던가~?"


-진짜..지수는 여전히 변한게 없어..-


얄밉게 말하는 지수에게 또 다시 역정을 내려 했지만, 지수의 얼굴을 보니 헛 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노크 좀 하고 들어와~"

"야~ 이렇게 쟁반을 들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노크까지 하냐~?"


지수의 성격 중 가장 싫어했던 것 중에 하나가 나한테 함부로 말하는 것도 여전했다.

그 트집을 잡아 지수가 방금 했던 말을 따라하며 화내려 했다.


"야?!?"


그러나 나의 의도를 아는 지수는 은근슬쩍 넘어가려 얼굴에 웃음을 띄며 장난치려 했다.


"그래~ 야~ 라고 그랬다. 우짤래~ 2살 차이 밖에 안 나면서~"


웃으면서 지수가 장난스레 받아 넘겼다.


지수랑 또 다시 만나서 몇 마디 대화를 하다보니 은주랑 달라도 너무 달라 보였다.

그렇다고 지수가 싫은 건 아니지만 그냥 성격이 나와 전혀 맞지가 않았다.

성격이 맞지 않으니 지수는 너무나 껄끄러웠다.

그리고 더욱 더 껄끄럽게 하는 것은 지수의 친언니랑 예전에 사귀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지수와 커피를 마시는 중에 지수가 내 눈을 뚫어져라 보면서 먼저 말을 꺼냈다.


"그 동안 뭐 하고 지냈어?"

"그냥 포항에서 일하고 지냈지.."

"창식이는 잘 지내?"

"응.."

"맨날 창식이랑 퇴근하고 술 마시러 다니는 거 아냐?"

"술 마실 수도 있지..니가 내 마누라냐? 왜 그렇게 잔소리야~"


이런 간단한 대화를 하는 중에 아버지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문을 닫고 단 둘이 뭐하고 있었냐?"


아버지의 농담처럼 던지는 말에 지수가 바로 받았다.


"에이~ 아버님이 중요한 순간에 오셔서~"



-뭐지?.. 아버지와 지수가 장단이 맞추는게 장난이 아닌데..-


혼자 머쓱하게 있을 때 아버지가 지수에게 말했다.


"젋은 애들이 답답한데 집에만 있지 말고 둘이 같이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해~"


지수는 엄지 손가락을 내밀며 아버지에게 애교를 또 부렸다.


"아버님은 진짜 멋쟁이!"


지수의 애교가 기분이 좋은지 아버지는 소리 없이 빙긋 웃으며 내 방에서 나갔다.


아마도 말은 저렇게 했지만 지수가 우리집에 있으니 편한 복장이 아니여서

빨리 데리고 나가라는 뜻 같았다.


간단하게 씻고 지수와 같이 집을 나섰고,

지수는 집을 나서면서도 부모님에게 콧소리 애교로 인사를 했다.

가식적으로 보이는 그 모습이 너무 얄미웠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지수가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나에게 말했다.


"조금 전 나 굉장히 얄미워 하는 표정인데~"


지수가 밝은 목소리로 장난을 치려하자 나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얄밉다~ 에이그~ 뭐를 숨기지를 못하겠어~"

"그래~ 오빠~! 오빠는 웃는게 이쁘다니깐~"


지수가 애정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것이 느껴지자 웃음이 싹 가셨다.


-은주도 내가 웃는 모습 보는 거 좋아하던데...-


이 생각할 때 지수가 내 앞을 가로 막으며 큰 맘 먹은 듯 말했다.


"오빠! 우리 다시 시작하자.."

"안..돼.."


거절의 의사를 들은 지수 눈동자가 순간 무슨 생각하는 듯 했다.


"싫은면 싫은 거지 안되는 건 또 뭐야? 혹시 그 동안 누구 만났던 거야?"


지수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고, 거짓말을 잘 못하기에 나도 몰래 말이 더듬거렸다.


"아...니.그런..거 없어.."


지수는 잡아 먹을 듯 눈을 무섭게 뜨며 말했다.


"거짓말인 거 알어..어떤 년 만나는데?"

"아니라..니깐.."


지수에게 누가 봐도 표시가 나는 부정을 하며,

앞에 막고 서 있는 지수를 옆으로 밀어 제치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뒤에서 지수가 바삐 나에게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바로 나의 왼 손목을 낚아채면서 말했다.


"어떤 년 만나냐고!!"


그렇게 듣기 싫어서 헤어졌던 지수의 잔소리에 나도 화가 나서 큰소리로 말했다.


"아니라고 했잖어!!"


내가 큰소리를 치자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이며 지수도 잠잠해졌다.


"오빠 그럼 일단 알았고, 그냥 영화나 보러가자..."


한 걸음 물러서서 숙이고 들어오는 지수를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조금 전부터 왠지 모르게 은주 생각이 났다.


-지수랑 영화 보러 갔는데 은주에게 연락이 오면 골치가 아픈데..-


여러가지 핑계거리를 생각을 하다가 지수에게 말했다.


"지수야 오늘 오빠가 친구들 만나기로 했는데.. 간만에 대구 와서.."


이 말을 들은 지수는 조금 전 삭막했던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 듯 미소를 띄며 농담을 했다.


"오빠는 친구 별로 없잖아~ "

"아니거든 겁나게 많거든~"


지수가 내 흉내를 내며 말했다.


"아니거든 오빠 친구는 내가 다 알거든!"


지수를 바라보며 한 번만 내 말 좀 들어 달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발 지수야.. 이제 오빠가 매주마다 대구에 오니깐..이제 자주 볼 수 있을꺼야.."

"오늘 진짜 친구들 만나는거야?"

"어??..응.."

"친구 누구?"

"있어..너 모르는 친구..."


지수가 풀이 죽은 목소리에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알았어.. 오빠.. 괜히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참견하는 건 좀 그렇겠지?"


지수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알면 됐어~"


가만히 서 있는 나에게 손을 흔들며 지수가 먼저 가려는데

때 마침 주머니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들렸다.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보니 은주였고, 지수는 가려는 걸음을 멈추고,

내 손에 들린 휴대폰을 쳐다보며 지수가 내게 물었다.


"누구야??"

"아 그냥 친구.."


지수의 눈초리는 뭔가를 알고 있는 듯 했고, 의심을 하는 그런 눈빛이였다.

그러나 지수는 별 말은 하지는 않고, 다음 주에 보자는 말만 하고는 저 멀리 사라졌다.




-그녀 이야기 -



오빠와 대구 버스터미널에서 헤어지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야~"


내 목소리를 들은 엄마의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어디야~?"

"지금 대구 왔어~ 동부정류장~"

"미리 연락을 했으면 엄마가 마중 나갔지~ "

"미안 엄마.. 그런 경황이 없어서.."

"그럼 거기서 708번 버스 타고 칠곡에 와서 전화해"

"응~ 지금 바로 갈께 엄마~"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버스를 기다리다 그냥 택시를 타고 칠곡으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창밖을 보며 엄마와 아빠를 다시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3년 만에 아빠를 보는 거겠네..-


내가 돈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선뜻 아무것도 묻지 않고 보내주신 부모님이

집에 가면 분명히 그 동안 뭐 했냐며 물으실 것 같아 칠곡에 가까워 질수록 불안했다.

가슴이 답답해지니 조금 전 오빠의 편안한 얼굴이 떠올랐다.


불현 듯 떠오르는 오빠 생각에 택시 안에서 혼잣말로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점점 미쳐가나봐.. 이런 상황에 오빠 생각이나 하고.."


그 것도 잠시 또 오빠 생각이 났다.


-오빠는 집에 잘 들어갔으려나..-


어느덧 택시는 칠곡에 다다랐고, 엄마가 말했던 장소에 도착을 하니 엄마가 먼저 나와 있었다.

예전보다 살이 너무나 빠진 모습에 눈물이 나려했다.

내가 눈물을 보이면 엄마가 슬퍼할까봐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얼굴은 미소를 띄며 말하고 싶었지만 눈물은 흘러 내렸다.


"엄마~ 왜 이리 날씬해졌어?"

"그냥 그렇게 됐어 가방 줘~ 엄마가 들어줄께~"


나는 예전에 엄마에게 재롱을 떨 듯 엄마의 왼팔을 부여잡으면서 말했다.


"아~ 무거워~ 들어줘 엄마~"


엄마와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로 이사한 집에 들어가니 예전에 내가 쓰던 피아노도 보이지 않았고,

집 평수도 예전보다 많이 작아졌다.


낯설지만 편안히 느껴지는 집을 둘러보며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는?"

"아빠 일하러 가셨어~ 저녁에 올 거야~"

"일요일인데도 일하러 가신거야?"

"아버지 친구분 일하시는 거 도와드리고 계셔~"


-아빠는 저녁이 되어야 볼 수 있겠네..아빠도 많이 늙으셨겠지?-


엄마가 차려 준 점심을 먹고 짐을 풀려하자 엄마는 작은방을 가르키며 이제 내 방이라고 말했다.

방에는 새로 들린 듯 한 침대와 화장대가 있었다.


"엄마 내가 온다고 이거 다 샀는가봐~ 고마워요~엄마~"


뛸 듯이 기뻐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


찬찬히 엄마의 표정을 살펴보니 고맙다는 말을 하며 기뻐하는 내 모습보다

이제는 예전처럼 다시 한 집에 산다는 것으로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표정이였다.

그 모습을 보며 홀로 다짐을 했다.


-내가 앞으로 잘할께..엄마..-


점심을 먹고 짐을 풀다보니 오빠가 생각이 났고, 기분이 좋은 사람처럼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내가 그 오빠에게 홀리긴 홀렸나봐..대구 오자마자 생각이 나고.. -


오빠 생각이 많이 났기에 생각이 난 김에 전화를 했다.

신호음은 계속 가는데 오빠가 전화를 받질 않았다.



-어..이상하네..지금 쯤이면 집에 도착했지 싶은데..무슨 일이 있나..?-


연락이 안되니 걱정도 살며시 되었다.


-저녁에 잠시나마 볼려고 했는데...-


아쉬운 마음에 또 다시 전화를 하려 할 때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생각이 날 때 오빠에게서 전화가 오니 너무 반가웠다.


"앙!! 오빠~!!"

"잘 들어갔어?"


이쁘게 보이고 싶어 최대한 애교스런 목소리를 냈다.


"응~ 오빠는~"

"나도 잘 들어왔찌~"


갑자기 오빠가 내 흉내를 내는 것처럼 어색한 콧소리를 내는 것도 사랑스러웠다.


"저녁에 아빠가 오면 잠시 나갈 수 있을 것 같애~"


오빠도 잠시 볼 수 있다는 내 말이 반가운지 대뜸 말했다.


"그래~? 난 혹시나 오늘 못 보면 어떻하나 걱정했지~"


오빠의 듣기 좋은 말에 귀가 즐거워 애교스럽게 말했다.


"에이그~ 그렇게 나 보고 싶었어? 오빠 앞으로 어떡해~ 응~?"


말은 이렇게 돌려 했지만, 내 머리속 생각은 완전 정반대였다.


-앞으로 오빠 보고 싶을 때 나 어떡하지..-


앞으로 오빠가 많이 보고 싶어질 것 같은 예감을 나도 몰래 직감했다.


"오빠~ 그럼.. 저녁에 아빠 오시면 저녁을 같이 먹긴 먹어야 하는데~ 조금만 먹고 나갈테니깐~"


오빠는 눈치를 챘는지 중간에 끼어 들며 말했다.


"맛있는 거 사달라고?"

"앙!! 오빠 최고!!"


오빠는 내가 최고라는 말에 아주 크게 웃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오빠의 웃음 소리가 또 다시 나를 떨리게 했다.


오빠가 날 보러 칠곡에 온다기에 약속 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자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을 열며 궁금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야~ 너 요즘 남자 만나니~"

"응..엄마..정말 좋은 사람이야..아니 좋은 사람 같애.."

"그래..그럼 나중에라도 엄마 좀 보여 줄 수 있어?"


엄마가 오빠를 보고 싶어하니 자신있게 대답을 했다.


"그럼~"


엄마도 내가 대구에 없는 사이에 만나는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궁금한 듯 했다.





- 남자 이야기 -




지수를 보내고 은주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내가 고의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약간은 긴정되고,

약간은 설레는 기분에 은주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렸다.


전화기 너머에서 너무나 반가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앙!! 오빠~!!"


은주의 밝은 목소리에 한편으로는 다행이고,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아져 말했다.


"잘 들어갔어?"

"응~ 오빠는~"


- 아~ 귀엽네 은주~ 옆에 있다면 뺨을 꼬집어 주고 싶을 정도로..-


흐믓한 생각에 나도 몰래 미소가 지어졌고, 창피해서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은주의 답례로 나도 닭살은 돋지만 애교스럽게 말했다.


"나도 잘 들어왔찌~"

"저녁에 아빠가 오면 잠시 나갈 수 있을 것 같애~"


- 아싸~ 저녁에 볼 수 있구나~~ -


은주의 볼 수 있다는 말에 마음 속에 담아 놨던 말을 은주가 부담을 느낄까 싶어

농담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난 혹시나 오늘 못 보면 어떻하나 걱정했지~"


-은주야..오늘 봤었지만 또 보고 싶네~ 진짜로...지수를 보니깐 더 네가 생각이 나..-


"에이그~ 그렇게 나 보고 싶었어? 오빠 앞으로 어떡해~ 응~?"


여전히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나처럼 농담같은 진담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게..앞으로 너 보고 싶을 때..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은주가 보고 싶어 가슴앓이를 할 것 같아 걱정이 살짝 들 때 은주가 말했다.


"오빠~ 그럼.. 저녁에 아빠 오시면 저녁을 같이 먹긴 먹어야 하는데~ 조금만 먹고 나갈테니깐~"


은주의 저녁 사달라는 말에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모른 척 반문했다.


"맛있는 거 사달라고?"

"앙!! 오빠 최고!!"


생각지도 못한 은주의 말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오빠 최고??? 아..은주라는 아이 진짜 사람 설레게 하네..-



오빠 최고라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기에 어떻게 대답 혹은 대꾸를 해야 할 지 몰라

잠시 당황은 했지만 얼굴에 웃음만은 끊이지가 않았다.


약속 장소를 정할 때까지 오빠 최고라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은주와 통화는 끝냈지만 여전히 전화기를 귀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오빠..최고?"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저녁에 차표를 예매를 할 겸 버스정류장에 가서

표를 한 장 구입하고, 그녀가 있는 칠곡을 갔다.


그녀에게 주려고 쌀 음료 두 개를 샀고, 만나기로 한 작은 공원 벤취로 갔다.

약속 시간보다 1시간이나 남았다.


-만나면 어디가지?? 그 때 못 본 영화나 보러 갈까?? 차 시간이 되려나?-



이런 기분 좋은 상상에 그녀를 기다리다 보니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았지만

어느덧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약속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약속 시간 10분 정도 지났을 때 그녀에게 여러번 망설이다 전화 했었는데,

전화를 받질 않았다.

그리고 또 10분 기다렸다가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 때부터는 아예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그 때부터 1시간 30분을 더 기다려도 그녀는 전화 한 통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