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개티즌들 때문에 영 안 되겠군...'

광수는 네티즌들의 불 같은 아우성을 차례차례 훑으며 쓴맛을 다셨다.
이미 망할 대로 망해버린 티아라의 존속.
그렇다면 새로운 돈벌이를 만들어야 하는데...
부득이하게도 자신에게까지 이미지 타격이 심히 온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상황을 탈피할 방책은 광수의 머릿속에 실금조차 내비춰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광수는 이대로 넋을 놓고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져가는 자신의 처지를 지켜봐야 하는가?
그건 광수에겐 절대 허락되지 않는 미래였다.
그동안 믿어왔고 다져왔던 인맥들은 그의 가슴 한편에 암세포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광수의 입장에선 그 높게도 쌓아올린 바벨탑 인맥을 겨우 왕따 문제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그는 일단 문제의 여인 화영을 불러내기로 결심했다.
처사는 후에 치를 마음을 먹으면서.


-화영과 의지 특전대-


모 소속사 사무실
홧빛보다 차가운 냉기 전선이 사무실 내부를 가득 에워쌌다.

"류화영. 네가 트위터인가 뭔가로 깔짝깔짝 언플해댔다며."

광수의 분노는 혀뿌리까지 뒤덮여 있었다.

"잘못 아신 거예요..."

화영은 그의 성격과 인망의 정도를 잘 알기에 최대한 조심조심하며 말을 어눌하게 던졌다.
이렇게 함으로써 광수의 화를 눈꼽만큼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화영의 활로는 그만큼씩 터지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광수의 뒤편,
나무문으로 막아선 널찍한 대접실에 어느 누가 들어있는지 화영은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나와라."

광수의 부름에 대접실에서 쪼르르 달려나오는 5인.
화영의 마음은 착잡해져갔다.

"은정!"

"보람!"

"지연!"

"효민!"

"소연!"

"다섯이 합쳐 의지 특전대!"

광수의 전속 부대인 의지 특전대 5인이
화영을 직접 마주하기 위해 나타나고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복수하고 싶지. 얘들아?"

"그럼요! 화영이 왕따시킨 것도 아니고 그냥 조금 장난 좀 친 건데 욕지거리를 퍼먹었잖아요.

효민이 잘록하게 깎인 턱으로 호두까기 인형처럼 떠들어댔다.
광수는 효민의 말에 스리슬쩍 웃음을 짓더니 맞장구를 처주며 말했다.

"그럼 해치워버려."

"네!"

다짜고짜 내려진 광수의 명령에
5인조는 화영의 주위를 오망성 모양으로 둘러싸고 공격 태세를 갖췄다.

'녀석들은 나를 죽일 것이 뻔하다...'

화영의 생각은 정체되어 있었다.
상대는 닥터 성형이 만들어낸 인조인간들.
화영의 약점과 모든 공격 패턴을 읽고 있는 녀석들이었으며
몸을 어디까지 개조했을지 파악할 수 없는 괴물들이었으니
마땅히 도망칠 구색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은 화영의 입장에선 당연했다.
'바람 앞에 등불'은 지금의 화영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허나 등불은 꺼져도 초는 남는 법.
화영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모두가 안 다치고 끝날 수 있지... 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아주 잠깐이라면, 잠깐 동안 시간을 끌 수 있다면
도박이겠지만 승부수를 띄어볼 법도 한 비책이 화영의 머리에 한순간 스쳤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시간을 끄는 일뿐.
헌데 광수를 포함한 6인의 분노와 전투력은 화영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였다.
때문에 그들의 시간을 끌 방법은 화영에게 마땅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기적은 없는 것일까?
신은 그녀를 외면하는 것일까?
그렇다 화영에게 기적은 없었다.
2년을 버틴 것도 여태까지 참고 있는 것도
전부 기적이 아닌 화영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기적이란 인간의 노력을 무마시키는 헛된 신념일 뿐이며
화영은 기적이 아닌 희망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제 죄를 알 것 같습니다."

화영은 낯빛을 가라앉히고 공손히 얘기했다.

"...그건 무슨 헛소리지? 네년은 잔말 말고 죽으면 되는 거야."

몰린 눈을 더 모아 부라리며 역정을 내는 지연.
허나 화영에겐 예상된 수였다.

"네. 죽겠습니다. 허나 제가 단숨에 죽는다고 여러분들의 화가 풀릴 것 같진 않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그녀들의 티아라로서의 인생은 종결지어진 상태.
그렇기에 5인에게 화영은 죽어 마땅한 존재였지만 고통없이 단숨에 죽인다면
넷상에서 자신들이 받았던 모욕감은 풀릴 것 같지 않았기에
의지 특전대는 화영의 말에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무슨 수작이냐..."

예사롭지 않은 화영의 분위기에 광수의 눈빛이 달라졌다.

"수작은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의 화를 풀어드리기 위해 각각 5인의 필살기를 한 번씩 돌아가며 맞아 처참하게 죽겠다는 의지를 전해드리는 것입니다."

광수는 풋웃음을 치더니 화영에게 박수를 보냈다.

"넌 참 끝까지 착한 년이구나... 좋아. 너의 의지 받아들이지."

"이야 신난다! 내가. 내가 먼저 할래."

보람이 순식간에 화영의 뒤를 밟았다.

'빠...빠르다."

화영의 눈엔 전혀 보이지 않을 스피드.
그것이 바로 인조인간의 위력이었다.

"그래. 보람이부터 하렴."

광수는 책상에 걸터앉더니 시가를 하나 들고 끝을 잘라 불을 지폈다.
시가는 계속 타들어갔다. 하지만 광수는 그 시가를 입에 물지 않았다.

"잠깐."

광수는 아직도 부아가 치미는 듯 한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입엔 실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필살기 한 방씩으로는 부족해."

광수는 마침내 시가를 쭉 빨아 연기를 내뱉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의 돌발 발언에 필살기를 맞을 마음을 다잡고 있던 화영의 심장은 다시금 쿵쾅였다.

"전력을 다해 의지 특전대와 싸워라 화영."

화영은 의아해했다.

"...뭐라구요?"

이것은 광수의 마지막 선처인가? 어째서 광수는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인가?

"뭐예요? 대장. 우리를 토닥여주지 못할 망정 갑자기 저딴 계집애 편을 드는 말을 꺼내세요?"

은정이 투덜거리며 광수에게 따졌다.
그러나 은정이 걱정할 거리는 없었다.
광수 생각은 그녀의 곱절보다 악독했으니 말이다.

"화영 너 혼자서 이 5인을 상대로 연속으로 싸우라는 얘기이다."

광수의 그 한마디에 의지 특전대 전부의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화영은 한 명조차 이기기 어려운 적들이므로
전투로 하여금 화영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의지 특전대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광수가 유희삼아 만든
5대1 데스매치인 셈이었다.
이것이 바로 광수의 비정한 속내였다.

"언니 그럼 저 먼저 할래요!"

소연이 앞으로 나서서 외쳤다.

"뭐야. 내가 먼저 찜했다구."

화영의 뒤통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보람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연에게 얘기했다.

"언니가 나서면 시시해지잖아요. 제가 먼저 파죽을 만들어 놓은 다음 기권하고 언니께 드릴게요."

"음... 뭐 좋아. 어처피 시체도 성치 않게 만들 거니까."

"다른 언니 동생들도 괜찮죠?"

"그래."

"그렇게 해요."

결국 화영의 첫 번째 상대는 소연으로 결정되었다.
자신의 재량에 따라서 시간을 끌 수도 끌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지게 된 화영.
진퇴양난의 날 위에 선 화영에게 남은 길은 수라의 피가 자욱해질 이 사무실뿐이었다.
이윽고 소연이 몸을 몇 번 풀더니 두꺼운 렌즈를 끼고 이내 화영에게 소리쳤다.

"자, 간다 화영아~ 너무 시시하게 죽진 마. 인터넷에서 본 내 과거 사진 생각만 하면 네 목을 분질러놓고 싶은데도 난 한참 참고 있다구. 괴로움 속에 죽는 네 모습을 보려구 ^^ ! "

소연은 말을 접고 화영에게 돌진했다.
소연의 스피드는 화영보다 낮지만 그녀의 타고난 두개골 골격은 남자 못지 않았다.
따라서 그대로 박치기를 당하면 화영은 죽도 밥도 못 될 것이 당연했다.
일단 돌직구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화영은 옆으로 몸을 빼어 소연의 공격을 피해냈다.
소연의 머리칼과 몸이 닿을 정도로 힘겹게 공격을 회피한 화영.
소연의 공격은 그대로 벽에 들이박아졌고 벽엔 금이 갔다.

"잘 피하네. 그래. 그렇게 요리조리 피해다니다가 파리채에 찧눌려 죽는 것이 바로 파리란 벌레지. 네 처지가 파리꼴하고 다를 바가 없구나!"

다시 한 번 소연의 박치기가 화영에게 매섭게 돌진해왔다.
같은 수는 두 번 통할 만큼 화영은 둔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공격할 수까지 미리 준비해 둔 상태였다.
허나 그 조건은 소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화영이 몸을 옆으로 빼어 다시금 공격을 피하자
소연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화영 쪽으로 휙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그리곤 필살기를 사용했다.

"메두사의 렌즈!!!"

소연의 공포의 기술 '메두사의 렌즈'.
이 기술은 소연이 낀 렌즈로 빛을 반사시켜
상대방에게 빛으로 왜곡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착시를 이용한 공격이다.
왜곡된 그 모습은 너무도 끔찍한 소연의 과거 모습인 박인정의 얼굴이기에
본 사람은 정신적 충격을 입고 돌처럼 굳어버린다는 메두사 칭호가 붙여진 것이었다.
화영은 꼼짝없이 메두사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히히히! 이제 죽겠구나. 이 파리년아!"

소연은 다시 한 번 화영에게 달려들었다.
화영의 시간 끌기는 이것으로 실패하는 것인가?
영락없이 화영은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인가?

'퍽!'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진 여성.
헌데 그것은 다름 아닌 소연이었다.
또 다시 소연의 공격을 피하고 간신히 수도로 목을 쳐 소연을 쓰러뜨린 화영이었다.

"으...어... 어째서... 통하지 않은 거야... 나의 과거가... 나의 과거를 봤을 텐데..."

"난 초코빵 같은 얼굴을 좋아하는 거 있었어? 언니의 과거. 내겐 아름답단 말야."

"....아름답다고?"

"그래. 아름다워. 그렇게 얽매일 만한 과거가 아닐 만큼 아름다워. 언니 스스로가 언니를 깎아내리고 있는 거였다구. "

소연의 렌즈에 습기가 차올랐다.
그에 따라 소연의 칠흑같던 눈동자는 하얗게 변색되어져갔다.

"...후...후...아름답다... 내 과거가... 넌 진짜 무른 애구나... 그리고 착해..."

그 한마디를 끝내고 렌즈를 뺀 소연.
소연의 눈엔 눈물이 고여있었고
화영도 마찬가지였다.
그 둘을 탐탁찮게 바라보던 광수는 은정에게 수상한 눈빛을 줬다.
은정은 고개를 슬쩍 끄덕이더니 곧 소연의 곁으로 다가갔다.

"언니 괜찮아? 일어 좀 나봐."

자신을 부축하는 은정에게 소연은 자신의 생각을 조금 털어놓았다.

"미안하다. 은정아. 근데 나 왠지 마음이 이상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

"그래 언니 잘못이야."

"...어?"

평소 때에 소연을 잘 따르며 그녀와 친하게 지내던 은정.
소연을 위로할 줄 알았던 은정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꺼내졌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아~ 해봐."

은정의 소매에서 무언가가 쏙하고 빠져나와 은정의 손에 잡혔다.
찹쌀떡이었다.

"은정...!! 함은정 이년!!!!"

떡과 소연의 입이 마주닿고, 소연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다.
그들의 동료애가 어떠한지 몸으로 흠씬 느꼈던 화영은
소연의 마지막 뉘우침이 깨지는 순간을 멀리서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은정이 다가섰다.

"소연 언니는 우리 다섯 중에 제일 약한 거 너도 알지? 이젠 내 차례야. 화영아. 난 소연 언니처럼 술렁술렁하지 않을 거란다."

"소연 언니는 마지막에 진심으로 뉘우쳤어. 근데 은정 언니... 아니 넌 언니도 아니야. 은정이 네가 소연 언니를 죽였어. 나도 언니를 위해서 쉽게 당하진 않을 거야."

"어머머. 무서워라. 우리 결혼한 자기한테 이를까보다! 그나저나 화영아. 그때 먹던 떡맛 기억하니? 참 맛있게 먹더라. 내가 또 먹여줄게. 이번엔 제사떡으로 말이야!!!"

은정의 양 팔에 떡이 주렁주렁 달려 추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떡 하나에 사람의 목숨이 걸린 양 찹쌀떡들은 하나같이 묵직해보였다.
과연 화영의 운명은 저 떡 퍼레이드 앞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
화영의 시간끌기 작전은 대체 어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