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드리는 맘으로 한 편 더 써비스!_（__）_

이거 올려드리고 저는 일 좀 하러...（믿거나 말거나=_=）

다행히 이번 편은 무지 길군요 ㅎㅎㅎ

즐독하시구 즐건 저녁 보내시길 _（__）_

=====================================================================================

출처 : 어둠의 문（cafe.daum.net/blacknovel）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mypre



17




"퇴원했다고 들었어요."
"네, 오늘 낮에 집에 들어왔어요."
"몸은 괜찮아요?"
"그냥...단순히 기절했을 뿐인데요...뭐...승현씨는 괜찮나요? 많이 다쳤다고 들었는데..."
"뭐...심각하지 않아요. 그나저나... 수연이랑 재준이는 어때요..?"
승현은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수연이는 자는 것 같고..재준이는 아직 안들어왔어요."
"집에 별 일 없죠?"
"별일 없는 것 같아요...아직은요...."
'아직은..이라...'
승현은 주희의 말끝에서 그녀 역시 불안에 떨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립탐정의 사무실을 떠나 그는 잠시 사무실에 들러 이런저런 잡스런 일들을 간단히 마무리한 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주희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 전화해본 뒤 그녀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승현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별일없는지 묻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그것말고도 승현은 주희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사립탐정이 살짝 흘린 실마리와도 같은 이야기에서 혼자 추측해낸 것이었지만..
"주희씨...?"
"네?"
'이걸 물어봐도 될려나...'
말을 꺼내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이런거...물어봐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기..말인데요..."
"아기라뇨?"
"그...아이 있잖아요. 첫아이..."
"아...세현이...말인가요?"
주희의 말투가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승현은 계속 주희에게 물었다.
"그 아이가...어떤..사고로 죽었죠?"
"그런건 왜 물어보세요?"
"유산 분할 문제에 관련된 겁니다. 아이가 가족과 관련한 사고로 죽었다면 분할 과정에 약간 문제가 있어서..말이죠."
승현은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주희가 감정없는 말투로 승현의 말에 대답했다.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교통사고라니...'
예상과 너무 다른 대답에 승현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면서도 승현의 입은 준비한 질문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혹시 유재훈이란 사람 알아요?"
"...."
그녀는 유재훈이라는 이름을 듣는순간 한참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주희씨?"
"..."
..전화가 끊어졌나...
"유재훈이요?"
갑자기 주희의 목소리가 크게 핸드폰에 울려왔다.
"네? 네..."
"죄송해요. 방금 재준이가 들어와서 문열어주느라 대답을 못했어요."
"아...그래요..."
"처음듣는 이름이에요. 모르겠는데요..."
"처음듣는...이름이라구요?"
승현은 잠시 뭔가 엇갈리는 것을 느꼈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정말 처음듣는 이름이에요?"
"네...제 주변에 유씨성 가진 사람은 거의 없는데요..."
"그렇군요..."
..말을 해줘야 할까...
승현은 사립탐정에게서 들은 유재훈의 유괴범죄와 주희에게서 들은
'아기를 돌려줘요.'
라는 말의 어떤 연관성을 느끼고 있었다.
10년이 넘게 잠적하고 있던 유재훈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2년전이었다. 그리고 그는 유괴범죄를 저지른 뒤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가 잠적하게 된 것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김수산이란 자신의 이복형의 사기에 의한 사회적, 경제적 몰락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범죄란 보통 우발적인 게 아니라면 자신과 누군가에 대한 어떤 사건, 혹은 관계에 의한 동기를 가지고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잠적중이었던 그가 범죄를 저지르게 된 동기나 대상을 찾게 된다면 김수산, 혹은 그 주변 사람에 대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2년 전이라면 김수산의 동생들이나 자식들은 유괴 같은 것이 가능할만큼 어리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라면 수연이와 재준이었겠지만 그들 역시 그때 고등학교 2학년과 중학교 2학년이었기에 쉽게 유괴를 당한다거나 할 가능성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수산의 주변에서 유괴범죄의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은 딱 한명밖에 없었다.
승현은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성준과 주희는 결혼하자마자 첫 아이를 가졌다고 했다.
첫 아이, 2년 전이라면 아마 두 살이었을 것이고 사고로 죽었다고 들었다. 언제 일어난 어떤 사고인지는 지난해 김수산과 그의 가족들을 만나게 된 승현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김수산에게 큰 원한을 가지고 있던 유재훈은 그 아이를 유괴하려 했다. 어쩌면 그 아이를 이용해서 뭔가를 꾸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재훈은 실패했고, 경찰에게 죽어갔다. 어쩌면 죽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나타나서 성준을 죽이고...남은 가족들도 언제 어떻게 죽어갈 지 모르는 것이다 라고 승현은 추측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첫아이가 죽어간 상황이 유재훈과 아무 상관이 없고... 주희가 유재훈을 모르고 있다면...2년 전 유재훈이 저질렀다는 유괴범죄는 이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인가? 승현의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져 왔다. 그럼 유재훈은 단지 19년전 있었던 일만의 복수를 이제서야 하고 있는 것일까?
19년전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고 몰락한 한 사업가는 그후 오랫동안 잠적해 있다 나타난 뒤 어디서 쓸데없는 아이를 유괴하다가 죽은 다음...자신을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 만든 그 누군가의 가족들을 찾아와서 커다란 양손 가위로 찢어 죽인다...
'말이 안되잖아...'
속으로 승현은 중얼거렸다. 무슨 삼류 미스테리 소설도 아니고...
아니면 주희는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걸까?
"여보세요? 승현씨?"
"아..여보세요..."
승현이 잠시 말없이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주희가 전화기로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음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말을 걸었다. 승현은 약간 놀라면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왜 한참동안 말이 없어요."
"잠깐 음주측정 좀 하느라구요.."
나쁜 일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승현은 주희에게 그냥 얼버무렸다. 어쨌든 주희가 유재훈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면 임산부인 그녀에게 유재훈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재훈은 주희 앞에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커다란 사마귀를 내민...그리고 끔찍한 양손가위를 치켜든 채 메마른 그 모습으로...
"술마셨어요? 음주운전하면 안돼요."
"하하...알았어요."
"몸도 안좋을 텐데...빨리 들어가서 쉬세요. 그럼 이만 끊을께요..."
"그래요...주희씨도 쉬어요..."
딸깍..
전화를 끊은 승현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주희에게 다시한번 고마움과 그것을 넘어선 묘한 감정을 느꼈다. 복잡한 머릿속에서도 어딘가 모를 편안함이 몰려왔다.
어두운 밤길을 지나 어느새 집앞에 도착한 승현은 오피스텔 로비로 오르면서 관리실을 살펴보았다. 늦은 밤 관리인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관리인을 보며 승현은 차에서 뭔가를 꺼냈다.
"아저씨?"
"엇! 예..."
화들짝 놀라며 깨어나는 관리인에게 승현은 씩 웃어보였다.
"피곤하신가 본데... 이거 하나 드세요."
그의 손에는 박카스 한 병이 들려 있었다.




18




시체는 치워졌지만 사건 현장은 아직 지나칠 정도로 처참했다.
8월 3일 아침 청소부에 의해 걸레처럼 찢겨진 한 남자의 시체가 종로의 구석진 길거리에서 발견되었다.
관할 경찰서의 조사 결과 시체는 비행 사고로 사망한 김수산의 둘째아들이자 살해된 김성준의 형인 김철준의 것으로 밝혀졌다. 김철준의 사체를 확인한 후 최검사는 김철준의 사고 현장을 찾았다.
"문제의 숫자가...이겁니까?"
"김성준의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숫자와 비슷한 필체로 쓰여진 겁니다."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고도 짙게 널려 있는 현장에는 어떤 사람의 처절한 몸부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희미한 사람의 모양으로 핏더미는 살짝 퍼져 있다. 부검의의 말로는 살인범이 피해자의 몸을 찢어가면서 시체의 동맥이란 동맥을 거의 끊어 놓은 덕에 피해자의 몸에는 혈액이 절반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죽은 사람이 죽기 직전까지 미친듯이 발악하는 바람에 살해 당시 주변은 완전한 피바다로 변했을 거라는 것이었다.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그곳은 검게 말라붙은 핏자국이 페인트칠한 것처럼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김성준의 살해사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뭉쳐진 핏더미 윗쪽에는 사람의 머리 모양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쓰여 있는 선명한 붉은 글자가 보였다. 뭔가 굵은 것으로 바쁘게 갈겨쓴 듯한, 절대 잘 쓴 글씨라고는 볼 수 없는 글자는 예전에 어느 집의 거울에서 본, 역시 피로 갈겨쓴 어떤 숫자와 같은 크기, 같은 필체였다.
그것은 4라는 숫자였다.
"어쨌든 저한테 연락이 온 건...그래서이겠지만, 이 사건과 김성준의 사건의 관계라면..."
숫자를 향해 쭈그려앉은 채 최검사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최검사의 눈은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보는 양 찌그러져 있다.
박형사는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최검사에게 비디오를 가져다준 뒤 며칠사이 그는 심할 정도로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이 인간 지금까지 간큰척 하더니, 비디오랑 사진 한방에 얼었나? 세상에 이상한 사건이 어디 한둘이라고..'
"김철준이 김성준의 형이라는 것과...이 숫자이군요."
"이 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할 수 있겠습니까?"
박형사가 최검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기에 그럴 수는 없습니다만..."
최검사가 말끝을 흐렸다.
"어떤 관계는... 보이는군요..김성준의 살해 사건과 비슷한 숫자가 쓰여 있을 뿐 아니라...그것이 5에서 4로 하나 줄어들어 있습니다."
박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성준이 죽은 다음...그의 형인 김철준이 죽었습니다. 그것이 5에서 4로 연결된다면...범인은 김성준을 죽일 때 앞으로 다섯명을 더 죽이게 될 거라는 예고를 했던 셈이죠."
"그걸 왜 처음부터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박형사가 자책하듯 말했다.
"사실...생각하기 쉬운 일은 아니죠. 어쨌든...두번째 희생자의 머리위에 같은 필체로 5에서 4로 연결되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면...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집니다."
"사건이 동일범의 같은 동기에 의한 소행이라면..."
박형사의 말을 최검사가 이었다.
"더 늦기 전에 남은 김수산의 유족들을 보호해야 하겠죠."
"그런데 말이죠."
박형사가 의문을 제기했다.
"김수산의 남은 가족들이...살인범의 범행대상이라면...남은 가족들은 세명인데...왜 숫자가 4를 쓰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김철준이 술을 마신 곳에 있던 술집 주인은 왜 심장마비로..."
"그건....조사해봐야 할 문제죠..."
박형사의 말을 막으며 최검사는 뭔가를 지시했다.
"서에 연락해서...일단 죽은 김수산의 집에..경찰병력 배치하고..남은 가족들이 절대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게..조치하세요."
"흠...알겠습니다."
박형사는 대답하며 최검사를 잠시 살펴보았다. 철준의 살해 현장에 쓰여 있는 숫자를 보면서부터 그의 목소리가 지나칠 정도로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형사는 예전에 지금과 비슷한 끔찍한 살인 사건의 범인을 검거한 적이 있었다. 항소 끝에 범인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최검사님 안좋은 데 있으십니까? 혹시..제가 보여드린 비디오때문에..."
"아...아닙니다. 어서 가서 사건조사나 해주세요."
불안정한 눈동자와 떨리는 목소리...
지금 최검사의 모습은, 박형사가 법정에서 보았던, 막 사형선고를 받고 난 다음의 그 사형수의 모습과 지나칠 정도로 비슷했다.
'혹시...'
등을 돌려 걸어가는 최검사의 모습을 보는 박형사의 머릿속을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너무도 가혹한 추측이었다. 특히 눈앞의 최검사에게는...



아침에 철준이 처참하게 죽었다는 연락을 받은 주희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꽉 쥔 두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바깥엔 밝은 햇살이 비치고 있었지만 주희의 방안은 어두웠다. 그녀가 모든 창에 두껍게 커튼을 쳐두었기 때문이다.
쾅쾅!
닫힌 방문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주희는 떨리는 눈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그녀의 방문을 미친듯이 두들기고 있었다.
"제발..제발...흑..."
두 손을 들어 귀를 감싼 그녀는 정신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문열어요! 문열어! 열란 말이야!"
쾅쾅!
"형수님! 문열어봐요! 빨리!"
문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은 수연과 재준이었다.
"문열어요! 에이씨..열쇠 대체 어디간거야? 오빠 빨리가서 열쇠나 좀 찾아와봐!"
"나도 몰라! 씨발...아 왜 문안열어! 빨리 좀 열어봐요! 말좀 해보자구요!"
수연과 재준은 동공이 거의 풀리고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문을 두들기면서도 뭔가 쫓아오지 않는지 신경질적으로 계속 뒤를 돌아보는 그들의 모습이 웬지모를 처량함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전형적인 패닉상태였다. 언뜻 보아도 거의 미치기 일보직전으로 보였다.
"제발...제발 좀 열어보란 말이에요!"
"언니! 문열어요! 언니는 뭔가 알잖아요!"
그들의 말투는 고함에서 사정으로, 그리고 절규로 바뀌어 갔다. 정신없이 문을 두들기던 수연은 결국 탈진해 쓰러지고 말았다. 옆에서 눈을 뒤집으며 쓰러지는 수연의 모습도 아랑곳없이 재준은 정신없이 문을 두들기다 어딘가로 달려갔다.
문을 부술 생각이다. 재준은 거실 구석에 전시된 일제 미즈노 아이언을 빼들었다.
"으아악!"
쿠당탕!
순간 무거운 골프채를 거실바닥으로 떨어뜨린 재준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뭔가 헛것이라도 보는듯 뒤로 물러서는 재준의 눈이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공포로 물들어 갔다. 벌떡 일어난 재준은 수연에게 달려갔다.
"또왔어...또 나타났단 말이야!"
"또..또..?"
"저기...저기봐!"
"으아악!"
골프채용 장식장 앞에서 뭔가를 본 수연과 재준은 온집이 날아갈 듯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정신없이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렇지만 건장한 남자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집안을 벗어나시면 안됩니다!"
"이거 놔요!"
"에이 씨발! 놓으란 말이야!"
"놓으라니까요!"
"놓으라고! 난 죽어도 저집에 다시 안들어갈거야!"
무표정하고 강한 힘을 가진 경찰들에게 붙잡혀 수연과 재준은 다시 집안으로 밀려들어갔다.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을 돈많은 집 아이들의 날카로운 고함은 김수산의 남은 유족들을 집밖으로 절대 내보내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하달받은 경찰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기력한 그들의 모습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돼지들을 연상케 했다.
몸부림치며 집안으로 끌려들어오는 그들의 모습을 화장실 구석에 몸을 숨긴 유재훈의 악령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잔인한 웃음이 감돌았다.
양손가위를 가볍게 치켜든 유재훈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졌다. 집안에는 아이들의 비명소리만이 한참동안 떠돌고 있었다.




19




사립탐정 김일수는 사실 자신이 알아낸 유재훈에 관한 정보들에 대해서 승현에게 절반 정도의 결과만 내어주었을 뿐이었다.
그는 조사를 의뢰받은 2일간 여러 경로를 통해 놀라운 정보들을 알아냈다. 김일수 자신마저도 자신이 의뢰받은 사람이 이렇게 괴상한 과거를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보통 조사를 의뢰받은 사람의 더러운 과거를 파헤치는 것이 그의 주된 일들 중의 하나이긴 했지만 유재훈이란 사람의 뒷사정은 그것만이 아니라 상당히 괴로운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그에게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불황이었다. 그리고 최근의 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그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립탐정이었지만 요즘같은 불황기에 사람 찾기나 뒷조사, 도청 같은 것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의 가장 큰 고객층이었던 중 상위계층의 부자들이 거의 몰락하거나 혼란스러운 사회분위기로 인해 잡스런 일들에 신경쓸 일이 많지 않아진 터라 요즘은 손님찾기가 힘들었다. 두세달에 한두명의 의뢰인이나 올까말까 한 김일수의 사무실은 2001년이 밝은 후 6월까지는 아내의 눈을 피해 비서와 바람피우는 곳 외의 장소로는 거의 이용되지 않았다.
그런 김일수에게 7달만에 어떤 의뢰인이 찾아왔다.
그는 상당히 다급한 표정이었고 （김일수의 직감으로는 그는 결코 돈 문제 같은 것으로 자신에게 한 의뢰를 취소하거나 사립탐정에게 태클을 걸지 않을 것이었다.） 뒷조사 의뢰는 처음 해보는 것이었던 데다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직업 중 하나인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김승현이란 사람은 한마디로 '봉' 이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김일수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뜯어내기 위해 조사 기간을 좀더 늘리려는 잡수를 사용했던 것이었다. 그는 예전에 이런 식으로 손님을 다급하게 만들어서 최초의 조사 의뢰 기간이 3일이었던 사건에 1200만원까지 받아낸 적이 있었다. 김일수는 아마 젊은 변호사에게서 1000만원 정도를 뜯어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사기간을 연장한 것은 실수였다. 아니, 애초에 김승현의 의뢰를 받아들인 것부터가 김일수에게 치명적인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8월 4일 저녁 11시 49분...그는 지금 괴상한 사건에 말려든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큭큭..."
"제..제발...살려줘..뭘..뭘 원해..."
김일수의 양 콧구멍 안쪽에서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내렸다.
눈앞에 서있는 끔찍한 형상의 미라를 피해 도망치던 그는 결국 자신의 사무실 건물 앞에 놓인 음료수 병에 미끄러져 달리던 자세 그대로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면서 다리를 삐었는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김일수는 앉은 채로 뒤로 물러설 뿐이었다. 등에 사무실 문이 닿았다. 절망적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집트 피라밋에서 출토되었다는 미이라를 연상케 하는 뭔가가 자신을 향해 커다란 양손 가위를 치켜든 채 다가오고 있었다. 김일수의 입에서 처참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것의 이마에 붙어 있는 커다란 사마귀는 자신이 뒷조사를 맡은 어떤 잘생긴 남자의 그것과 같은 모양의 도장이라도 파서 찍은 것처럼 너무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마의 정중앙에 커다란 사마귀를 갖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았다.
"살려줘...살려줘...뒷조사한게..불만이라면...다..다...없애버릴께...돈 안줘도 돼...제발..살려만줘.."
"큭큭큭..."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횡설수설대는 김일수의 모습을 보며 유재훈은 특유의 잔인한 웃음을 지었다. 김일수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그의 얼굴을 가득 채운 주름들이 찌그러지며 깊숙이 패였다. 유재훈은 김일수를 향해 커다란 양손가위를 집어던졌다.
카캉!
"으아악!"
김일수가 기대고 있는 사무실 벽에 부딪친 양손가위가 스파크를 튀기며 그의 앞으로 튕겨져나갔다. 양손가위가 부딪친 곳은 그의 얼굴 바로 1cm 옆이었다.
김일수는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는 눈을 꽉 감고 말았다. 지금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마저도 들지 않았다. 단지 무서운 공포만이 그를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커다란 양손가위가 바로 머리 옆으로 와서 부딪치는 순간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커다란 양손가위의 위력은 너무도 강력했다.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왼쪽 가슴이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했다.
"으으..으윽..."
미미하게 시작된 고통은 점점 참을 수 없는 괴로움으로 확대되어 갔다. 김일수는 가슴의 고통에 비례하는 크기의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점 비명으로 바뀌어 갔다. 김일수는 고통에 못이겨 눈을 뜨고 말았다.
그런 김일수의 눈과 자신의 코앞에 다가와 있는 미라의 치켜뜬 눈이 정확히 마주쳤다.
"으...으아..아아..헉..."
그것이 자신의 눈앞까지 다가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는 순간 김일수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놈의 손이 그의 왼쪽가슴으로 파고들어 있었다. 아까부터 시작된 가슴의 고통은 거기에서 비롯된 듯 했다.
"끄으으으...으으으윽...아...안돼..."
"큭큭큭..."
미라는 자신의 심장을 쥐어짜고 있었다. 심장이 무언가에 잡힌 뒤 뜯겨나가는 듯한 극도의 고통과 공포 속에서 김일수는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