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은 우이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몇 차례 되짚어 생각해 보고는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별 다른일 없이 라나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밤이 되었다. 바닥에 마주 앉아 얼마나 얘기 했을까? 대운은 다시금 궁금해졌다.


"저, 라나님. 라나님꼐서 그.. 마왕의 딸이시라면 어째서 저를 살려주신거에요?"

"글쎄. 그냥 네놈이 죽게 내버려두기엔 너무 불쌍해서랄까?"

"아..불쌍.."


대운의 반응에 키득거리며 웃는 라나였다.


"그런데 라나님은 .. 악마가 아닌 것 같아요. 마치 장난끼 많은 천사 같달까.. 그러니까 음, 좋으신 분 같아요."


이 말을 들은 우이곤은 개 소파 위에서 으르렁 댔다. 라나는 말을 이었다.


"악마는, 너희 인간들이 생각하는 그런 종족이 아니다. 마계 또한 정해진 규칙과 질서, 도덕이 있으며 이를 준수하며 살고 있지."

"살고 있다는 말은, 죽을 수도 있다는 거에요?"

"그렇지."

"그렇구나.. 그럼 라나님은 왜 인간세계에 오셔서 살고 있는 거에요?"


대운의 질문에 라나는 잠시 머뭇거리며 생각했다.


"질문이 많다. 자거라."


그러곤 라나는 침대 위로 올라가 누워버렸다. 담요를 덮고 바닥에 누운 대운은 어쨌든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다음날 오후, 대운이 전화를 들고 황급히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대운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 미현아.. 이제 곧 나갈거야. 그런데 그때 그 여자는 안나올 것 같아.. 연락이 안되네.. 하하."

"[안나온다고? 그럼 난 집에 돌아갈래. 말했지? 그년 데리고 나오라고. 알아서 해.]"

".. 너를 위해서야 미현아.. 믿어줘. 그 여자는.. 아무튼, 만나고 싶어도 안 만나는게 좋아.."

"[몰라. 난 말했어. 시간 맞춰서 둘이 안나오면 집에 갈거야.]"

"미,미현아 아직 너 사랑.."


-뚜뚜


끊어진 통화음을 몇 초간 듣고난 뒤 집안으로 들어온 대운의 속은 착잡했다. 이를 본 라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내가 같이 나가주겠다. 걱정말거라. 가만히 있을테니."

"예?! 분명 밖에서 통화 했는데..?"

"너희 인간들과 같은 청력을 지녔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렇게 대운은 라나를 데리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졸졸 따라오는 우이곤.


"저기.. 우이곤님. 따라오시는건 좋은데 말씀하시면 안돼요.. 인간세계에는 말하는 개는 없거든요.."

"흥, 건방진 놈. 누굴 가르치는 게냐."


멀리서 미현이의 모습이 보였다. 야외 커피숍에 혼자 앉아 팔짱을 끼고 커피를 마시는 도도한 모습은 대운의 혼을 쏙 빼놓기 딱이었다. 대운에게 있어서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빈 자리에 앉기기까지 미현은 계속 라나를 응시했다. 라나 역시 미현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저,저기 미현아. 이분은 화해하고 싶으셔서 나오신 거니까.."

"이분? 싶으셔서? 나오셔? 웃기지도 않네. 너 이년한테 너무 존대하는 것 같지 않니?"

"미안해, 우리보다 나이가 많으셔서.. 그리고 말 조금만 조심해줘.. 하하."


그렇게 말하곤 대운은 라나와 우이곤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나 우이곤은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미현이 발견했다.


"뭉아! 뭉이도 데려왔네?"


미현이 우이곤을 쓰다듬기 시작하자 대운은 식은 땀이 흘렀다.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우이곤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아무래도 개의 특성도 갖게 되나보다. 그때, 라나가 입을 열었다.


"너는 그럴 자격이 없다. 당장 어제 일까지 사과하거라."


미현은 순간 놀라더니 다시금 팔짱을 끼고 차분하게 대운을 쳐다보았다.


"화해하고 싶어서 나와? 어이가 없네. 너 좋겠다? 벌써 애인 생겨서. 날 아직 좋아한다고 생각 했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네. 우리 연락하지말자. 잘 살아."

"아니, 저, 미현아!!"


그렇게 미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