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에는 유채꽃이 피어
바람을 타고 나부들이 부대끼니
푸른 초목에 살짝 썩은 나뭇잎을
지 애들이 갉아먹음에 신나 춤춥니다
고고한 학같이 선비가 된듯
이팝나무 아래서 담배 물던 울 하나씨
계곡물에 몸 담구며 송사리들 잡던 내 머리에
두터워 다 굳은 손가락 머리에 얹고는
옷감 다 젖으면 어매 고생한다 짖궂게 웃어보이시고
이름 모를 옛 노래 읊으며 바람에 옷가지 날라다니는데
그림자에 잔뜩 잠겨 웃던 그 날의 얼굴이 보이곤 합니다
제 고개 너무 들어
갈대가 바람에 목 꺾이듯 가버린 시간들아
사람들아
당신이 가신 뒤에 검은 천 가득 둘러
다시 돌아올 날이 없음을 알고도 그리워했습니다
어두운 밤에 떠나버린 것을
해를 보지 않으면 하나씨 제 걸음 달려 오실까
그을음에 몸을 기댔습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루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왜놈들이 쳐들어와 아버지를 잃은 후로
그대에게만 기대 산 삶에
당신의 잿빛 얼굴 한번 만지지 못해
내 손에는 아직도 당신의 혈색이 돕니다
우린 고귀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왜적들에게 묻혀 죽은 아버지가 있어도
울 하나씨는 제 고개 든 것 말고는 노래 조차도 한양을 향해 부르던 이었습니다.
학과 노닌다 하여 진인이라 불린 적도 없고
죽도와 노닌다 하여 일어난 적도 없었습니다
선산에는 유채꽃이 핍니다
증조부가 묻힌 곳은 산골의 중턱입니다
아버지는 성을 지키다 지역의 생령이 되었으니
하나씨를 찾아 떠났을지 모를 무렵입니다.
살짝 썩은 나뭇잎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직 부모의 손을 잡고 있어 떨어질 수 없었습니다
이 산에 남아 앉아있으면
아직 젖은 검은 천이 바닥을 적십니다
그 위에 나부들이 나부낍니다
제 애들을 여전히 저 위에서 바라봅니다
나가지 못한 채 이 선산에 묶여
제 새장을 만듭니다.
*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한 구절, 당신의 장례식을 치루지 못하여 내 삶은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라는 한 문장을
기축옥사 시절 억울하게 혹사된 한 집안과 엮어 글을 작게 지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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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반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