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클랜시님의 이야기..

이번엔 클랜시님으로서는 약간 독특한 스탈임다.

강렬한 단순충격을 벗어나서 조금 다른 스탈을 시도하신 글..

길어서 상.하로 나눕니다.

나머지는 잠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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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어둠의 문（cafe.daum.net/blacknovel） & cafe.daum.net/roclancy

작가 : clancy



목 소 리

clancy

병실문을 조용히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 벽으로 붙어있는 침대에 가지런히 누운채 반대편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을 쪼이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편안히 잠이든듯한 표정으로 나보다 5살이 많은 누나는 그렇게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눈을 닫아버린지도 벌써 1개월이 다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볼때마다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가슴은 스스로 호흡을 함에 따라 조용히 그렇지만 분명하게 아래위로 움직이고 있었고 손가락 끝에 부착된 장치를 통해 모니터되고 있는 바이털싸인들을 보면 심장도 분명히 정상적으로 뛰고 있었다. 심지어 몇일전에 테스트한 뇌파검사에서도 마치 수면을 취하고 있는 듯한 파형을 이루며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사의 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나의 잠은 1개월을 넘긴 지금까지도 끝이 날줄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병원측에서도 그녀의 증세에 적잖이 신기해하면서 무어라 정확한 답변을 회피하고 있었지만 은연중에 실질적인 코마상태라는 소문들이 이미 들려오고 있었다.

침대맡으로 작은 손님용 의자를 끌어와 그 옆에 앉은 나는 오랜동안 제대로 먹지를 못한탓에 앙상해진 누나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보았다. 역시나 아무런 반응은 없었지만 여전히 따뜻한 손의 온기만이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둘러멘 가방을 내려놓고 그 안에 넣어온 책을 꺼내들어 책갈피가 끼워진 페이지를 펼쳤다. 그녀의 정신이 깨어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별 소용없는 짓인줄 알면서도 나는 얼마전부터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누나의 생존에 대한 내 희망의 표시이기도 했지만 하릴없이 그녀의 병실을 지키고 앉아있는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한가지 방편이기도 했다. 이미 한권의 책을 모두 읽어주고 두번째로 선택한 책은 '작은 아씨들'이였다. 이전에 읽어주었던 어느 명상가의 수필집은 내용은 좋았지만 역시나 누워있는 사람에게 읽어주기엔 어휘들이 어렵고 지루했기 때문에 여지껏 내가 읽지 않았고 여간해선 읽을 기회가 없을 책으로 골랐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읽을 기회를 놓친 다음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책들이 있다. 특히나 고전과 동화 사이의 어중간한 위치에 서있는 작은 아씨들이나 빨간머리 앤 같은 책들은 어릴적 읽지 못하고 넘어간 남자 대학생이 접하기엔 좀처럼 어려운 책들이니 말이다.

누나를 마주보고 앉은채 한동안 책을 읽어내리던 나는 10페이지 정도 나갔을때 책을 덮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느순간 누나가 조용히 나를 부른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평온한 표정으로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책을 읽어주는 것을 그만두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지난번에 말했던 성우 기억나? 그날 누나의 사고를 신고했던 사람 말이야... 어제 그사람한테 약속을 받아냈어, 이번 주말에 만나기로 말이야... 일이 바빠서 시간내기가 힘들다나, 이해할수 없는 사람이야 직접 신고까지 했으면서 이제와서 발뺌이라니.. 왜 그런 행동을 하는건지 이번에 만나면 따져봐야지..."

나의 혼잣말을 그녀의 무의식이 얼마나 반응할지는 몰랐지만 순간 누나의 표정이 묘하게 찌푸러지는 듯한 느낌을 나는 받았다. 순간 놀라며 말을 멈춘채 한동안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나는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자 눈의 착각이려니 생각하며 허탈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곰곰히 그녀를 이런 모습으로 만든 사건이 일어난 그날의 기억들을 더듬어보았다.

한학기 일찍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한 누나는 어느새 직장생활 3년차에 접어드는 사회인이였다. 이미 1년전 자신의 회사 근처 자취방으로 이사하여 혼자생활을 해오던 누나는 주말에나 집에 들를뿐 좀처럼 얼굴보기가 힘들어지던 터였다. 나 역시도 학교와 아르바이트로 나름대로 바쁜 나날로 인해 좀처럼 얼굴을 보지 못하고 주말이 되어 모일때가 아닌 다음에야 전화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사건이 있었던 날 저녁 모처럼 일찍 집에 돌아온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내방에 틀어박혀 비디오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원래 잡혀있던 약속이 깨지면서 비어버린 시간을 공허히 소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좀처럼 손을 떼기 힘든 게임의 성격때문에 그날 누나의 번호로 우리집에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한것은 지금와서 생각하면 차라리 잘된일일지도 몰랐다. 그 덕분에 거실에 놓여진 자동응답기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 의문의 전화 내용이 녹음될수 있었으니 말이다.

방 한쪽을 차지하고 놓인 TV화면에 펼쳐지는 화면에 열중한채 열심히 게임패드를 조정하던 나는 문넘어 거실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전화벨 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어짜피 내전화 같았으면 핸드폰으로 왔을테고 다른 전화들은 원래 약속때문에 밖에 있었을 내가 굳이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게다가 그대로 조금만 놓아두면 자동응답기가 받을 터였으니 별로 걱정할 일은 아니였다. 역시나 얼마후 자동응답기로 넘어가는 신호음이 들려왔고 곧바로 자동응답기의 스피커를 통해 전화를 걸어온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여긴.... 김영은씨 집인데요..."

여전히 게임화면을 바라보면서 귀만으로 들려오던 소리를 듣고 있던 나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김영은이라면 누나의 이름인데 누군가가 그녀의 집에서 그런식으로 전화를 걸었다는 점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때문이기도 했지만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상대방 여성의 목소리가 굉장히 귀에 익으면서도 강렬한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집에 아무도 없어요.. 지금 영은씨가 위험헤 처했어요!! 어서 이쪽으로 구급차를 보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거기까지 들은 나는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가 놓인 거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눈깜짝할새에 3M정도의 거리를 달려간 나는 허겁지겁 수화기를 집어들고선 곧바로 소리쳤다.

"누구세요!! 누나가 위험하다니 무슨소리냐구!!!"

상대방은 갑작스런 나의 고함에 당황했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영훈이니...?"

갑작스레 내 이름을 부르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랐다. 귀에 익기는 했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나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상대는 외마치 고함소리 만으로도 단번에 나임을 알아챘다는 사실이 기이했다.

"영훈아! 여기 누나네 집인데.. 어서 이리로 와줘!! 시간이 급해.. 난 그만 가봐야 하거든..."

"뭐.. 뭐라고? 무슨 소리를... 당신 도대체 누구야? 위급하다면서 자기는 가봐야 한다니.. 그리고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거구?!!!"

"시간이 없어, 일단 구급차부터 불러줘.. 믿을수 있는건 너밖에 없으니.. 그럼..."

전화는 거기서 끊겨 버렸고 나는 한동안 멍하니 대기음만 들려오는 수화기를 바라보고만 있을수 밖에 없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당신의 가족이 위험해 쳐했고 당장 도와주라며 그자리에 같이 있을것임에 분명한 자신은 급한일때문에 가봐야 한다고 했으니 어느누가 이런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장난전화로 치부하기엔 그 내용이나 성격이 기이하면서도 중대한 것이였다. 한동안 그렇게 전화기만 바라보던 나는 황급히 누나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통화중 신호만이 들려왔고 다시 걸어본 누나의 핸드폰에서도 신호음만 계속 갈뿐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하는수 없이 나는 그대로 집앞에 세워놓았던 아버지의 차를 몰고 누나의 집으로 향했다.

계속해서 속도위반을 하며 날듯이 도착한 누나의 집근처에 아무렇게나 차를 세워놓자마자 나는 집으로 달려갔다. 단독주택의 2층 반쪽을 나누어 쓰고 있는 누나의 자취방은 집 뒤로 난 개별 입구로 주인집을 통하지 않고도 올라갈수 있는 구조였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앞 철문은 거의 열려져 있는 편이였고 그날 역시도 반쯤 열려진 상태였다. 나는 급히 계단을 올라가 자취방 현관앞에 다달았고 그제서야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2층의 자취방으로 바로 통해있는 현관은 빼끔히 열려진 상태였고 그 문틈으로 보이는 집안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이 문틈으로 새어나와 비추는 현관앞에는 점점히 얼룩처럼 무엇인가가 떨어져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그것이 피라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급해진 나는 문을 열어재끼고는 신발을 신은채로 집안으로 들어섰다. 누이의 자취방은 현관앞의 신발장을 지나면 바로 좁은 거실과 연결되어 있고 건너쪽으로 주방과 방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는데 내가 들어섰을때 거실은 반쯤 난장판이 되어버린 상태였고 그곳에서 군데군데 피로 보이는 자국들이 찍혀져 있었다. 게다가 거실과 연결된 베란다 창이 반쯤 열려져 있었고 그곳에서 부터 커다란 신발자국이 듬성듬성 바닥에 찍혀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나는 두근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누나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이상하게도 방한켠 찬장위에 놓여진 전화기였다. 나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전화를 쓰다 그대로 나가버린듯 수화기는 아무렇게나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덕분에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통화중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옆으로 침대위에 가로누워 있는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밖에서 방금 들어온듯 누이는 외출복 차림이였다. 회색계통의 정장은 하지만 이리저리 찢겨져 그 정확한 형체를 파악하기엔 힘든 상태였다. 치마는 허리까지 말려올라가 있었고 스타킹과 속옷은 역시나 찢겨진채 몸에 간신히 걸려있는 상태였다. 단추가 모두 튿어진채 활짝 벌려진 흰색의 브라우스는 위쪽 절반이 이미 붉게 물들고 있었고 나는 곧 그녀의 목에난 자상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원인이란 것을 알수 있었다. 황급히 찬장에 놓여져 있던 타월을 집어들어 아직도 피가 흐르는 목의 상처를 단단히 눌러 막은 나는 한쪽손을 뻗어 바닥에 놓여진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가장먼저 누른 번호는 수분여전 의문의 목소리가 알려준대로 구급차를 부르기 위한 119였다.

사건 처리를 위해 병원가 경찰서를 왕복하면서 정신없던 경황을 진정하고 누나의 사고에 대해 알려준 의문의 전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수 있게 된것은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는 응급실 의사의 말을 들었을때였다. 의사는 이제 생명엔 별 지장이 없을 것이지만 워낙 출혈이 심했고 상처가 목이였던 만큼 뇌에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어쩌면 의식불명이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돌려가며 우리에게 알렸다. 쉽게 말해 식물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인 것이다. 그제셔야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삭히며 진작에 구급차를 보내지 못한 나자신을 원망하던 나는 그 괴전화까지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도대체 누구인지 정체를 알수 없는 전화의 주인공은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점점더 미궁속을 빠져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분명 통화기록에 따르면 내가 연락을 받은 시간 누나집의 전화로 집전화에 연락을 취한 기록이 남아있었지만, 현장을 감식한 결과는 누나와 의문의 침입자 외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화기에도 누나와 가족의 지문뿐이였고 현장에 남은 신반자국과 정액등의 흔적으로 미루어 보아 누나의 집에 침입한 것은 성인남성 한명뿐이라고 했다. 하긴 혼자사는 여자집에 침입하여 강간살인을 저지른 자가 스스로 전화를 했을리도 없으니 제3자가 그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합당한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다른 누가 있었다는 증거는 전혀 찾아볼수 없었고 목을 다친 누나가 직접 전화를 했을리는 더욱 불가능한 일이였다. 경찰은 그날의 자동응답기에 남겨진 전화내용을 복사해 가져가 조사를 하기로 했지만 그것 만으로 누가 전화를 했는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얘기였다. 적어도 전화를 걸었음직한 용의자라도 있어야 성문대조를 통해 확인을 할수 있다고 했다.

자동응답기 테이프에 남겨진 내용을 웨이브 파일로 바꾸어 컴퓨터에 저장시킨채 나는 시간이 날때마다 재생시켜보기 시작했다. 누군지 알수는 없었지만 그 전화 목소리는 굉장히 귀에 익은것이였고 계속해서 듣다보면 누군의 것인지 기억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그날도 나는 수업을 다 듣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병원에 누워있는 누나의 간호에 필요한 정보들을 찾기 위해 웹서핑을 하고 있었다. 여느때에도 그랬듯이 방의 다른 쪽벽에 붙여져 게임기와 연결되어있는 TV는 보지도 않으면서 틀어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한동안 이런저런 정보들을 검색하고 필요한 내용은 복사하여 편집하고 있던중 나는 이상한 느낌에 마우스를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어느 순간인가 나는 무언가 중요한 정보가 은연중에 머리속에 들어왔다 사라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의아해하면서 컴퓨터 화면에 뜬 윈도우 창들을 살펴보았지만 이렇다할만큼 중요한 내용들은 아니였다. 그렇다는 것은 분명 다른 어딘가에서부터 들어온 내용이 나의 신경을 자극했다는 결론이였고 바로 그때 다시금 어떤 소리가 나의 귀를 울리기 시작했다.

'너희같은 악당들을 우리 꽃천사 소녀대가 그냥 둘줄 알았느냐!!...'

보지도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틀어놓고 있었던 TV의 화면속에서는 늘씬한 8등신의 미소녀가 실제라면 상상할수 없을만큼 낯뜨거운 레오타드 차림으로 포즈를 취한채 윙크를 해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현재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꽃천사 데이지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였다. 언제나처럼 화이팅 포즈를 취하며 소리치고 있는 그 목소리, 그것은 내가 사건이 있던 날밤 받았던 전화속의 목소리를 익숙하게 느꼈던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날밤 정체불명의 전화 목소리와 꽃천사 데이지의 목소리 둘의 목소리는 분명 한사람의 것이였다.

다음날 내가 가장먼저 한것은 인터넷을 통해 알아낸 성우의 이름과 방송 스케쥴을 가지고 방송국으로 찾아가는 것이였다. 그녀의 이름은 황수영, 29세로 성우경력 5년차이고 일전에 어느 유명외화의 주연급 조연캐릭터의 목소리 연기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후, 최근 어린이들뿐 아니라 20대 남성들에게까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꽃천사 기사단'의 주인공 캐릭터중 하나인 '데이지'의 목소리 연기를 하면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인기성우였다. 때문에 아무런 직업도, 명분도 없이 나같은 일개 대학생이 그런 그녀를 개인적으로 면담한다는 것은 그쪽에서 일하는 사람과 연이라도 닿아있지 않은 다음에야 현실적으로 힘든일이였고 뿐만아니라 어느날 걸려온 괴전화의 주인공이 아무래도 당신같다는 이유로 만나자고 한다면 의심할 여지도 없이 바로 스토커로 몰릴터였다.

한동안 내가 할수 있는 한에서 모든 방법들을 동원해보고 별 신통치 못한 결과를 얻은 나는 결국 TV에서 녹음한 그녀의 목소리를 가지고 경찰서를 찾아갔다. 나는 그날밤 나에게 신고를 해왔던 괴전화의 목소리 주인공으로 의심이 가는 사람이라며 녹음 테입을 건네주었고 이렇다할 단서를 잡지 못하고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던 형사들은 기꺼이 성문대조의뢰를 보내며 나에게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확신할수 없는 문제이니만큼 대조 결과가 나올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대답만을 남겼고, 그런 나에게 그들은 나의 누나가 당하기 얼마전에도 사고 현장 인근지역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3명의 여성이 강간후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끝까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미루며 （형사란 직업적 특성때문인지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던 사람들 누구도 TV애니메이션 주인공의 목소리와 전화 목소리를 연관시키지는 못했다. 게다가 내가 녹음해간 부분은 평범한 대사 부분이라서 얼핏 들으면 그저 일상생활에서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것 같았다） 경찰서를 나선 나는 수차례나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인간의 머릿속은 어떻게 되어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대체 정신세계가 어떻게 생겨먹으면 그런 짓을 반복해서 저지르며 멀쩡히 살아갈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나중에 범인을 잡게 된다면 나는 어떤 느낌이 들지도 생각해 보았다. 다행히 전에 일어났던 사건들과는 달리 나의 누나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목에 커다란 흉터가 남게 되었고 지금은 의식불명으로 누워있는 상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언제라도 깨어나 회복할 희망은 있는 상황이였다. 그렇지만 다른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어떨까.. 그날밤 내가 보았던것과 같은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자신의 딸이나 형제를 바라보아야만 했을 그들의 심정은 어떤 것이였을까. 어느순간 나 자신도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하고 실질적인 살의가 소름이라도 돋듯이 온몸을 덮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정말이지 내자신이 누군가를 죽일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현실감에 나는 새삼스럽게 공포에 떨며 근처의 벤취로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