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스크롤의 압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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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오빠.. 왔네... 안녕하세요?"

혜연이는 나의 옆에 있는 성환이를 보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성환이는 인사를 받

고 할 그런 상태가 아닌듯 했다.

"어.. 내 친구가 좀 아파서... 이해해.."



나는 잠시지만, 혜연이의 얼굴에 뭔지 모를 미소가 띄는 것을 보았다. 아주 잠시지

만.



"그래.. 성환아, 내가 과사무실에 연락해서 조교님이 어디있는지 알아볼께. 아마

재시험은 조교님 앞에서 볼건 가봐... "

"어.. 오빠.. 그거 내가 알아봐 줄께.."

"어. 내가... 내가 원래 그런거 잘해.. 알았지.. 오빠?"

"어.. 내가 하는게 빠를텐데.."

"아니야.. 내가 할께... 오빠는 이 오빠랑 같이 있어..."



혜연이는 말을 마치지가 무섭게 전화기 있는 쪽으로 가버렸다. 나와 성환이는 하는

수 없이 근처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혜연이는 다시 우리쪽으로 왔다.



"응. 오빠. 11시 반까지 24건물7층 712호래..."

"24건물? 거기가 무슨 건물이지..."

"거기 의대건물이잖아..."

"뭐? 의대건물? 왜 거기서 보지..."

"나도 몰라.. 조교님이 거기 7층 교수님실에서 보자고 하던데.. 교수님 출장 중이

라고..."

"그래...."



성환이는 줄곳 아무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 빨리 가자. 가서 너 한글자라도 더 봐야지.. 참 일대일로 시험보니 어디

컨닝이나 하겠냐? 착한 조교 걸려야 할텐데.."

나는 성환이를 잡아 끌며 말했다. 성환이는 깜짝 놀랐는지 눈을 크게 한번 뜨고 나

를 따라 왔다.



"야.. 혜연아 너도 와...."

"어.. 오빠.. 난 잠깐만. 볼일이 있어서.. 내가 시험끝날때 쯤에 그곳으로 갈께..."

"어 그럴래..."

"그럼.. 오빠도 시험 잘 보세요.."

혜연이는 성환이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성환이는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가 이내

풀어졌다. 혜연이는 우리가 가려는 의대건물과 반대편으로 가버렸다. 나는 성환이

와 의대건물 쪽으로 향했다.



"왜 하필 거기서 봐.. 난 거기 싫은데..."

난 아무 의심도 없이 의대건물쪽으로 향했다.

'음. 나 심심할까봐.. 같이 있어준다고 해놓구는.. 아무튼 알 수 없는 아이라니깐..

정말로...'

나는 성환이와 함께 의대건물로 향했다. 의대건물은 전에 있던 오래된 건물을 신축

해서 지은 것으로 무척이나 깨끗한 건물이었다. 공대건물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

다.



[찡~~~~~~~~~~~]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성환이는 엘레베이터를 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난 억지로 끌어 넣었다.



"지혁아.. 이상한 소리 안들리냐?"

"무슨 소리....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나는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물방울 소리.. 들리잖아.. 물방울소리..."

나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이거 엘레베이터 와이어 감기는 소리야...끽끽...."

"아니야.. 그게 아니란 말야.. 물방울 소리 들리잖아. 톡! 톡!"

나는 다시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성환이 신경이 너무 예민

해져서 그러려니 했다.



[찡~~~~~~]



나는 성환이를 데리고 엘레베이터에서 내렸다.



"712호라..."

성환이는 억지로 억지로 나의 뒤를 쫓아왔다.

"자슥.. 뭐 죽으러 가냐? 그냥 시험 보러 가는건데..."

"그게 아니구. 계속 들리잖아. 물방울 소리. 점점 커져..."

"장난하지 말구 빨리와.. 재시험 보게 해준것도 어딘데... 그런데 여긴 왜 사람이

한명도 없냐? 이상하네.."



나는 성환이를 다그쳐 712호실로 향했다. 712호실은 복도를 돌아 끝방이었다. 문앞

에 까지 왔다. 나는 노크를 했다.

[똑~~~~~똑~~~~~~]

안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지혁아.. 나 시험 안 볼래.. 들어가면 안돼..."

"야.. 너 왜그래... 빨리 들어가..."

"싫어.. 싫단 말야..."

성환이의 반응은 무척이나 신경질적이었다. 나는 그런 성환이를 잡아끌고 문을 열

고 안으로 들어갔다. 교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누군가가 옆에 서있었다. 돌아보려고 했지만, 순간 머리에 엄청난 충격이왔다. 머

리가 부셔지는 것 같았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그자리에 쓰려져 정신을 잃었다.



"으...."

머리가 두동강이 난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뭔지 모를 둔기로 맞은부분을 손으

로 감싸쥐었다. 피가 손에 가득 머금었다. 머리를 들자 피가 목주위를 타고 바닥으

로 주르르 흘러 내렸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얼마나 정신을 잃은거지.. 맞다 성환이는...'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교수님방이 맞았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엉망이었다.

격렬한 격투의 흔적이었다. 심하게 내던져져 찌그러진 의자와 깨진채로 연기를 뿜

고 있는 모니터. 그리고 잘 정리되어 있어야할 책으로 사방이 난장판이었다.



'으 어찌된 거지.. 분명히 성환이와 교수님 방에 들어왔는데.. 누군가가.."



나는 머리를 움켜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빙 돌았지만, 참을만했다. 금방

까지 나와 함께 있었던 성환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

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만 한다. 나는 그 방에서 나왔다. 복도에는 선명한

피자국이 이어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피덩이를 끌고 간듯한 피자국이 복도를 돌아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학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을수가 있다니. 나

의 다리는 점점 다급해졌다. 하지만, 시야가 점점 흐려져 빨리 달릴수가 없었다.

모퉁이를 돌았다.



성환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가 축늘어진 성환이를 짊어지고 끌어가고

있었다. 성환이는 아직 의식을 잃지않았는지 나를 보자 힘겹게 팔을 들려고 했다.



"성환아...."

힘겹게 든 성환이의 팔을 타고 피가 주르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제길.. 이게 뭐야...'



[찡....]

엘레베이터의 정지 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울려퍼졌다. 마지막 힘을 다해 내달렸다.

힘겹게 들어올리는 저 팔을 잡아야 한다. 도데체 성환이를 끌어가는 저 사람은 누

구인가? 서서히 나의 눈에서 성환이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었다. 축늘어진채 성환이

는 엘레베이터 안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안돼.. 잡아야해..."

나는 있는 힘껏 달려 엘레베이터 안으로들어가버리려는 성환이의 손을 움켜 잡았다.

'잡았다. 이제 잡았어..'



닫히는 엘레베이터 문안으로 성환이의 얼굴이 보였다. 성환이의 그 눈. 어디선가

본 그런 눈이었다. 몇해전 나의 곁을 떠난 누런 진도개 쫑이의 마지막 눈과 똑같았

다. 죽음을 직시한 그런 눈. 나는 쫑이가 나를 바라보던 마지막 눈을 잊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서 바로 그 눈을 다시 보고 있는 것이었다.



"안돼.. 성환아..."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엘레베이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저 미친놈을 죽이

고 성환이를 살려야한다는 생각까지 미치지 못했다. 두려워서이었을까? 아님.. 난

단지 성환이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



"으으으...."

성환이의 비명소리가 더 커졌다. 내가 당기면 당길수록 더 많은 피가 뿜어져 나오

고 있었다. 하지만, 놓을수는 없었다. 놓는다면 이대로 놓아버린다면 영원히 성환

이를 보지 못할 것 같았다.



"으으으.. 진혁아... 놓아...줘...."

성환이의 입에서 힘겨운 소리가 나왔다. 쥐어짜는 듯한 소리였다. 놓아달라는 그말

에 나는 쥐고 있던 손을 더욱 거세게 쥐었다.



"안돼~~~"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다. 엘레베이터문은 성환

이의 팔에 닿은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시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저 문만 열리

면 모든게 해결될것 같았다.

성환이를 끌고 있는 저놈의 얼굴만 보게 된다면..



"제길....."

얼음같이 차갑다라는 말은 바로 저 놈의 목소리를 위해 있는듯 했다. 짧은 한마디

였지만, 몸에 소름이 돋아날만큼 차가웠다. 문틈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그의 오른

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는 반짝이는 날카로운 물체가 들려져 있었다.



'무엇일까? 저걸 왜?'

혼란스러웠다. 어디서 본듯 했지만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다. 날카로운 물체는 서서

히 내가 붙잡고 있는 성환이의 팔쪽으로 다가갔다. 무서운 생각이 나의 머리를 휘

감았다.



"안돼~~~~~~~~~~~"

나의 엄청난 괴성이 복도를 울려펴졌다. 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예리한 물건

은 내가 부여 잡고 있는 성환이 어깨부분을 지나 허공으로 내뻗었다. 나의 팔에 힘

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나의 손에는 성환이의 팔이 들려져 있었다. 아직까지 꿈틀

거리고 있었다. 힘줄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으아아악...."

나는 당기는 힘에 못이겨 그 자리에서 뒤로 굴러 떨어졌다. 다시 머리에 엄청난 충

격이 왔다. 손에 쥔 것은 놓을 수는 없었다. 다시 엘레베이터문은 서서히 닫히고

있었다. 성환이의 눈이 보였다. 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할수가 없었다. 눈이 감

기며 의식이 멀어지고 있었다.



'무엇일까? 왜 이렇게 되어 버린거지..그때부터 잘 못 된거야....그 때 부터...그

때....'



"어...으...."

눈을 떴다. 하얀 천장이 보였다 .



"어 오빠 깨어 났어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순일이도 눈에 보였다. 그리고 혜연

이도 보였다.



"여기가 어디예요?"

"지혁아 여기 병원이란다..."

어머니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글썽거렸다 .



"으.. 내가 여기에 왜?"

"야.. 오지혁... 너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몰라. 성환이 어떻게 됐어? 성환이..."

"성환이가 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내가 왜 머리에 붕대를 감

고 있는지, 지금 순일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너 정말 기억이 안나는 거야?"

"성환이가 어떻게 되었는데...."

"너 이새끼..."

순일이는 나의 멱살을 움켜 잡았다. 머리가 울렸다. 도무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

았다. 어머니께서는 순일이의 팔을 움켜잡으시며 놓으라고 하셨다.



"뭐가 어떻게 된거야?"

나는 순일이에게 모든일을 들었다. 나는 오늘로부터 이틀전에 사대건물 뒤쪽에 있

는 숲속에서 피투성이가 된채 발견 되었고, 머리에 둔기로 맞은 상처와 엄청난 출

혈로 이틀간 혼수상태에 있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성환이가 실종된 것이었다.



"야.. 너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는거야?"

순일이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나도 알고 싶었다. 나에게 무슨일이

생겼는지를. 그리고 성환이에게도.



"제발 기억해봐.. 성환이는 어떻게 된거야. 너랑 같이 있었잖아.."

나는 순일이의 거친 물음에 순간 당황했다. 성환이 집에 갔었던 일까지는 기억이

났다. 분명히 성환이에게 재시험을 보게 하기 위해서 성환이네 집에서 잠을 잔 후,

학교에 간것 까지는 기억이 났다.



'아 맞다. 혜연이와 만났던거 같기도...'

나는 혜연이의 얼굴을 보았다. 혜연이는 근심어린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아니 근심

어린 얼굴이라기 보다는 무엇인가를 바쁘게 생각하는 듯 했다. 내가 혜연이를 빤히

쳐다보자 애써 태연한 척 하려는 것 같았다.



"혜연아..."

"어... 예.. 왜?"

순일이도 뭔가 부자연스러운 혜연이를 한번 쳐다 보았다.

"아니야.. 머리가 너무 아파.. 나 좀 누워야 할것 같아...."



순일이는 나가 버렸다. 도데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수 없었다. 내가 왜 여기에

누워 있고, 성환이는 어떻게 되어버린 것일까? 생각을 해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생

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10일간 입원해 있었다. 그동안 경찰이 두어번 다녀갔다. 혜연이는 거의 매일

같이 왔지만, 그렇게 반갑지 않았다. 깨어난지 3일째 되는 날, 순일이와 신중이가

왔었다. 순일이는 말도 안 돼는 경찰의 수사내용에 대해 말해 주었다. 전번보다는

많이 진정된 듯 했지만, 여전히 어두운 얼굴이었다. 경찰은 내가 아무것도 기억 못

하자, 일단 사고로 수사를 종결 시켰고, 성환이는 단순 실종처리가 되었다고 전해

주었다.



신중이는 내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다급해하는 순일이보다 조용히 나만 바

라보는 신중이가 더욱 걱정 되었다. 물론 우리 넷은 서로 친했지만, 신중이와 성환

이는 더욱 짝이 맞았었다. 취미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해서 둘이 다투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 신중이의 충격이 심했던 것 같았다.



"그래.. 몸조심 잘해라... 알았지.. 잘살구..."

신중이의 마지막 말이었다. 신중이는 가기전에 이 한마디를 남겼다.

"자식. 그래. 꼭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얘기하네... 퇴원하기 전에 또와.."

나는 애써 밝은 모습으로 이야기하려 했지만, 신중이의 얼굴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

다. 나는 그것이 내가 신중이를 볼 수 있는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때는 모르고 있었

다.



그 후로도 순일이는 내가 퇴원하기 전에 두어번 찾아왔었다. 여전히 성환이를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순일이가 올때마다 신중이에 대해 물어 보았다. 하지만, 순일이

도 요즘에 신중이를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성환이의 행방을 찾는 것 같

다고 했다. 순일이가 같이 알아 보자고 제안 했지만, 굳이 혼자 알아본다고 거절

했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열흘째 되는날 퇴원을 했다. 가만히 있을수 만은 없었다. 움직이면 머

리가 무척이나 아팠지만, 버틸만 했다. 순일이가 병원으로 자동차를 가지고 왔다.

혜연이도 왔다. 여전히 순일이는 혜연이가 탐탁치 않은 듯 했지만, 혜연이는 아랑

곳 하지 않았다. 그래도 매일같이 나를 찾아 와준 혜연이가 고맙고 전보다 더욱 좋

아졌다. 한달도 안 되었지만, 벌써 혜연이가 나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 했다.



"그래, 괜찮겠냐?"

"응.. 이제 살만해.."

살만하다는 소리를 해놓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성환이는 죽었는지 살았는

지 모르고 있는데 친구란 놈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환이가 무엇인가를 두려워

하고 있을 때, 보아주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계속 걸렸다. 하지만, 나쁜 생각은 하

고 싶지 않았다. 아니 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혜연이는 주차장까지 나를 따라왔다

"오빠.. 나는 할일이 있어서 갈께... 나중에 전화해..."

혜연이는 순일이가 듣지 못하게, 조그맣게 나에게 속삭였다. 나는 알았다고 말하려

다 그냥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야 빨리 타...."

차는 병원 주차장을 빠져 나와, 강변을 따라 달렸다. 간만에 느껴보는 시원한 바람

이었다. 시원한 바람도 잠깐 이었다. 성환이 걱정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로는

쇼크성 기억상실 이었다. 심한 충격으로 충격을 받은 순간의 기억을 잊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다시 기억해 낼수도 있다고 덧붙였지만,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그 날의

기억은 전혀 나지 않았다.



[띠리리리리.....]

순간 정신이 번뜻 들었다. 순일이의 핸드폰이었다. 무엇이 다급하지, 무척이나 요

란하게 울리는 것처럼 들렸다.

"누구지? 지혁아 대신 좀 받아줘.. 나 운전할때는 안받아..."



나는 순일이의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왜 잘 안들리냐?"

"잠깐만..."



나는 순일이에게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한후, 귀에 신경을 집중했다.

[여보세요... 순일아.. 순일아.. 누가.. 누가... 살려줘...]

희미하지만, 무척이나 긴박한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너 신중이지? 신중아? 왜 그래...."

하지만, 더이상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의 목소리에 순일이는 뭔가를 느꼈는

지 강하게 엑셀을 밟았다.

차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순일이는 무척이나 흥분한것 같았다. 순일이 자신의

차를 이렇게 빠르게 몬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어느새 우리 앞을 달리는 차가 하

나도 없었다. 차가 심하게 움직이자 나의 머리에도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상처를

꿰맨지 열흘이 넘었지만, 상처가 워낙 크고 깊어서 아직까지 잘 아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야! 신중이네 누구 있냐?"

"걔네, 아빠 출장 가셨어.. 아무도 없단 말야..."

신중이네 부모님은 우리가 중2때 이혼을 하셨다. 그때부터, 신중이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도 잦은 외출로 신중이는 거의 혼자 지냈었다.



[삑.삑.삑.삑.삑...]

나는 신중이네 전화 번호를 눌렀다. 통화중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어느 새 자동

차는 골목길로 접어 들고 있었다.



[삐보..삐보..삐보..]

맞은편에서 엠블런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엠

블런스를 유심히 보려 했지만, 어느 병원인지 보이지가 않았다.



번호판도 잘 알아 볼수가 없었다. 순일이는 좁은 골목길을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신경질적인 클락숀 소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길을 비켜 주었다. 신중이네 집

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동차가 채 멈추기도 전에 문을 열고 뛰었다. 순일이도

열쇠도 채 잠그지 않고 나의 뒤를 따라 왔다. 신중이네 집은 단독주택으로 크진 않

지만, 신중이가 혼자 지내기에는 무척이나 큰감이 있었다. 대문이 열려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신중아!"

순일이는 큰 소리 신중이를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신중이의 방문만 닫혀

있었다. 나는 급히 들어가는 순일이의 어깨를 잡았다.



"잠깐만...."

나는 문을 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의 머리속 깊은 곳에서 거부 하고 있었다.



"왜그래?"

순일이는 신경질적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니... 어디선가?"



머리속에서 어떤 생각이 비집고 나오려는 듯 했지만, 더이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

았다. 순일이는 나의 손을 뿌리치고 문을 벌컥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화기는 내팽겨쳐져 박살이 나 있었

고, 항상 깨끗했던 신중이 방은 엉망이었다. 컴퓨터 모니터는 바닥에 나가 떨어져

그 파란빛을 발하고 있었다.



순일이는 다시 밖으로 뛰쳐 나갔다. 나는 순일이를 잡으려 했지만, 머리의 통증때

문에 뛰쳐 나갈수가 없었다.



나는 수화기를 바로 놓은후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 보았다. 바닥에 내팽겨쳐져 있었

지만, 아직까지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모니터를 다시 책상위에 올려 놓았다.

나는 파란 빛을 바라하는 모니터를 바라 보았다.



도대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생각을 해보려고 했다. 나

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마우스쪽으로 다가갔다.



[티걱, 티걱]

오래 사용하여 무딘 마우스의 클릭 소리가 조용한 방에 울려 퍼졌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아무것도 찾을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휴지통을 열어 보았

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열어보았다.



[6/17일]



성환이가 약간 이상하다. 며칠전 부터 성환이가 약간 이상해진 느낌이다. 자꾸, 누

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어제까지만 해도 장난인줄 알았지만,

오늘 집에 오는 길에 누군가가 성환이의 어깨를 툭 치자 성환이는 그 여자를 죽일

듯이 달려 들었다. 말리긴 했지만, 그때의 성환이 의 눈빛은 잊을수 없다. 마치,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짐승의 눈빛 같았다.

.

.

.



[6/20일]



도무지 이유를 알수 없었다. 나로서는.. 성환이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져간다. 시험

기간이기 때문에 도저히 병원에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성환이 어머님 부탁으로

성환이와 같이 공부했지만, 성환이는 공부할 상태가 아닌듯했다. 이럴때, 지혁이가

도와줘야 하는데.. 지혁이도 바쁜거 같다... 시험기간만 넘기면 될듯하다. 시험기

간만.



[6/23일]



오늘이 기말고사 마지막날이었지만, 성환이를 학교에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혹시

그 이유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일수도...



그렇다면.... 성환이는 엄청난 일에 휘말린 것일수도...



[6/24일]



성환이가 실종되었다. 지혁이도 크게 다쳤다. 모든게 나 때문이다. 내가 말렸어야

됐다. 혹시.. 오늘은 하는수 없다. 나도 부딪쳐 보는 수 밖에...



죽을지도 모른다. 나의 예감이 맞는다면.... 죽을수도...



[6/27일]



할말이 없다... 어떻게 이런일이... 도무지 누구에게 알려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

히 성환이었다. 사진속의 인물은... 무슨 실험일까? 그들은 누구일까? 경찰에 알려

야 하는것일까? 두렵다... 나도... 그들의 목표가.... 그들은 악마다.. 악마...

알리고 싶다. 하지만... 다 죽게 될 것이다.. 모두다.....



[7/1일]



이제 이글을 쓰기도 힘들다. 사람은 안 만난지도 벌써 이틀이 되어간다. 그들이 나

를 노리고 있다. 그들이 누군인지 모른다. 나의 능력밖이다. 지혁이와 순일이한테

알리고 싶지만..... 그들도.....



[7/2일]



내일이면 지혁이가 퇴원을 한다. 미쳐버릴것 같다. 이 땀.... 누군가가 나를 계속

보고 있다. 누군가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알리고 싶

지만, 그렇다면 나도 성환이와 마찬가지고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것이 아닐까?

두렵다...



나는 살고 싶다.. 살고.....싶다.......



[7월 3일]



그들이 누구인지......





신중이의 일기는 거기에서 끝났다. 어느샌가 순일이는 나의 등 뒤에서 그글을 읽고

있었다. 나는 순일이가 언제 들어왔는지 알지도 못한채 글을 읽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순일이의 갑작스런 목소리에 하마터면 놀라 기절할뻔 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구?"

나는 순일이가 누구에게 묻는지 알수 없었다. 나에게 묻는 것인지.. 누구에게 묻는

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무슨 소리냐구?"

순일이는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머리가 깨질것 같았다.



그 뒤로 순일이를 며칠간 보지 못했다. 나는 경찰에 신중이의 실종 신고를 했다.

내가 아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었다. 경찰에서는 기다려 보라고만 했다. 요즘에 실

종사건이 한두건 이라는 말도 덧붙여 들었다. 성환이 아버님께는 연락이 닿지 않았

다.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예.. 안녕하세요...."

"어.. 지혁이구나.. 잘 지내지?"

"예.. 순일이는요?"

"모르겠다. 요즘 얼굴 보기 힘들다. 지혁아 무섭구나. 순일이에게 무슨일이 생길것

같구나.."



순일이 어머님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울먹이는 소리까지 들렸다.

"왜, 너희들한테 자꾸 이런일이 생기는 건지...."

"예.예.. 걱정마세요.. 별일 없을 거예요..."



나는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두렵고 무서웠다. 나는 힘겹

게 전화를 끊었다. 벌써 성환이가 실종된지 보름이 되어가고, 신중이마저 실종된지,

나흘이 지났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복사해온 신중이의 일기를

다시 꺼내 읽었다. 거의 외울 정도였다.



"사진....... 실험... 무슨 의미일까?"

머리의 상처는 다 나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날 하루의 기억은 떠올리지 못하고 있

었다.

"사진이라... 사진.. 무슨 의미일까?"



나는 문듯 전에 성환이가 보여준 시체사이트 사진이 생각났다. 나는 익스플로러를

띄웠다. 컴퓨터 하드는 힘겨운 소리를 내며 버벅거리자 화면에 익스플로가 모습을

들어냈다. 그러고 보니, 요즘들어 매일을 가지고 놀았던 인터넷을 오래간만에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전과 같이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억지로 하는 기분이었다.



"전에 분명히 보았는데... 죽음의 사이트..."

약 한달전에 한번 본 사이트 이름이지만, 아직도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죽음의 사이트.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는 그 사이트를 찾아 보기로 했다. 한번

얼핏 본 사이트라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시간여를 찾아 해맸다.



"제길.. 씨팔...."

저절로 입에서 욕이 나왔다. 하지만, 꾹 참고 계속해서 찾아 해맸다. 어렸을때 처

음 이 동네로 이사왔을때 생각이 났다. 집을 잃어버리고 온 동네를 해매었었다. 그

때보다 더 나의 모습이 비참했다. 나의 힘으로 할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죽음의 사이트]



나의 눈에 갑자기 빨간 글씨의 눈에 익은 사이트 모습이 들어왔다. 순간 온몸으로

긴장이 타고 오르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이 몰려 오고 있었다. 나는 하

나하나, 사진들을 보아 나갔다. 무서운 생각을 하고 보니 모든 사진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그만 보고 싶었다. 정말 속이 울렁거렸다. 사진의 비참한 모습

의 인간들이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누군가가 나

에게 말을 하고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오디오를 크게 틀었다. 하지만, 중얼거림은 그치지 않는것 같았다. 겨우겨우

모든 사진들을 다 보았다. 무슨의미인지 알기 힘든 한숨이 터져 나왔다.



[좀더 원하신다면, 등록을 하십시오...]

마지막에 조그맣게 써있는 문구. 전에도 보았었다. 성환이가 분명히 이곳에 등록을

하려고 했었다. 말리지 않고 난 보고 있었던 모습이 생각났다.



"씨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이런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야. 어떤 변

태 같은 새끼의 싸이트가 무슨 상관이란 말야....."



나는 아무도 없는 방안에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왜 소리를 질렀는지 나도 이해

가 되지 않았다.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나는 도망치려고 하고 있는것이었다. 만약

일지도 모르는 상상이 나의 용기를 꺽고 있었다. 도저히 등록을 할 용기가 나지 않

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나를 망설이게 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한심했다. 성환

이와 신중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수도 없는 상태에서 이런 것 하나에 망설이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제길... 씨팔.."

나는 힘겹게 등록에 클릭을 했다. 신경질 적으로 여러번 했다. 전에 보았던 자극적

인 검은 바탕에 검붉은 빨간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 오 지혁]

나는 망설인 끝에 나의 본명을 썼다. 논리적으로는 나의 이름을 쓴다고 해서 나를

알리가 없는것이었지만, 나의 이름을 쓰는것은 쉽지 않았다. 논리적이라. 지금 나

에게 벌어지는 일중에 논리적인 것이 있을까? 머리속이 복잡해지려고 했다. 나는

다시 클릭을 했다.



[성별: 남]

[자신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두려워 하는것이 무엇일까?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 없음]



[만약에 자신과 함께 죽어줄 사람이 있으면 들어라.]

섬뜻한 질문이었다. '나와 함께 죽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떤 놈인지 몰라도

미친놈이 분명해.. 미친놈이..'



나는 망설이다. 없다고 적으려 했다. 지금 나에게 같이 죽어줄 사람은 없을거 같았

다.

'혜연이라면, 나랑 같이 죽어줄수 있을까?'

갑자기 혜연이 생각이 났다. 사귄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병원에 있을때도 하루도

빠짐 없이 와서 간호를 해주었었다. 갑자기 혜연이가 보고 싶었다. 나의 손가락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혜연이의 이름을 적어 버렸다.



[당신은 등록을 하셨습니다. 등록의 결과는 협의에 따라 얼마후에 결정됩니다.

당신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마에서 솟은 땀이 키보드 위로 떨어졌다. 나는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메세지를 보고 바로 컴퓨터를 꺼버렸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아직 정오가

되지 않았지만, 밖은 시커먼 먹구름으로 어두웠다. 갑자기 혜연이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혜연이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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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은 제 마음대로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