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천사."

악마와 천사의 갑옷을 두른 나탈이 말한다.

"설마 나를 이 모습으로 만들다니."

양손의 붉은 검을 자신의 적들에게 향한다.

"철저히 짓뭉개주마."

폰의 바람의 창이 나탈을 향해 똑바로 날아간다. 그러나 나탈은 피할 생각이 없다. 바람의 창은 갑옷에 닿자마자 사라졌다.

"역시 갑옷의 능력은 그대로 유지되는 모양이군."

타락천사가 오른손의 검을 휘두르자 붉은 칼날이 폰을 향해 날아간다. 폰은 옆으로 피했지만 바닥에 부딪힌 붉은 칼날은

파편을 튀기며 크게 폭발했다. 빌이 틈을 주지않고 나탈에게 레벨 3의 주먹을 뻗는다. 그러나 그 주먹도 갑옷에 닿자

아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주먹이 된다.

"아까와는 다르다구. 지금은 네 능력으로 강화된 주먹을 무능력으로 만들어버렸으니까."

다른 왼쪽손의 검을 휘두르자 강력한 풍압이 빌을 날려버린다. 로아와 무트는 쓰러진 동료의 목숨에 지장이 없단 걸

확인하고 적에게 집중한다.

"이렇게 된 이상 힘으로 어떻게든 할 수 밖에."

"가능해? 저 녀석은 모든 능력을 없애버려. 네 능력은 예외지만 놈의 결계를 뚫을 수 없었잖아?"

"아. 평범한 공격이라면 안 통하겠지. 조금 힘을 더 써볼까?"

"…그런 게 있으면 진작 써 바보야."

로아는 무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무트는 한 손으로 머리를 문지르면서

"윽, 그래도 녀석이 공격을 피해버리면 다신 안 통할 수도 있거든. 신중하게 해야되. 실패는 용납되지 않지.

도와줄 수 있겠어?"

로아는 무트의 말에 모든 것을 걸 수 밖에 없었다. 무트의 말대로 공격이 실패하면 더 큰 피해가 생길 것이다.

이번에 확실하게 끝내야 한다. 기회는 한 번뿐.



무트와 나탈의 거리는 10미터. 능력자의 싸움에서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거리에 상관없이 원거리 능력을 날리는 자도 있기

때문이다. 나탈은 원거리의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무트에게 허락된 이 공격은 근거리에서 적중시켜야 큰 위력을

가진다.

결국 무트는 나탈을 향해 10미터를 달려가야 한다.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싸움. 무트는 다리를 움직인다.

그에 맞춰 나탈이 검을 교차시킨다.

"붉은 십자가는 죄인을 꿰뚫는 심판의 창."

붉은 십자가의 빛이 무트를 향해 곧장 다가온다. 무트는 그 공격을 정면에서 막아낸다. 그의 몸에는 아이기스라는

일종의 결계가 있다. 부딪히는 능력이 약하다면 그대로 모조리 상쇄시키지만 능력이 강하다면 그만큼 상쇄의 처리속도가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정도의 남은 데미지는 검이나 체력으로 막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공격을 막고 있는 무트가 로아에게 소리친다.

"지금이야, 로아!!!!!"

로아는 신호를 듣고 모든 염동력을 발동시킨다. 주위에 있는 바닥을 들어올리거나 200미터 밖에 있는 건물의 잔해등을

무트와 나탈사이에 있는 그 빛의 경로 사이에 가로막듯이 놓는다. 무게만 해도 수십톤. 로아의 체력도 이번 공격으로

한계에 다달았다.

"흥. 겨우 그런걸로 내 심판을 완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물론, 그렇게 생각 안하지."

소리가 들린 곳은 나탈의 머리 위. 무트가 허공에서 성검에 빛을 내며 내려온다.

'그렇군. 내 공격사이에 벽을 놓아서 빈틈을 만들었군.'

빈틈이라고 해봤자 0.00001초단위의 빈틈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보이더냐?!!"

나탈은 심판의 창을 거두고 천사의 날개의 가호를 펼친다. 무트는 허공에서 소리친다.

"나탈!! 네 놈은 정말로 바라고 있냐?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살해되고 슬퍼하고 절망하는 이 상황을.

진짜로 넌 바라고 있는 거냐고?!! 다른 녀석에게 휘둘리지 말고 진짜 너의 의지를 가지고 생각해라.

아까 네가 사람을 구한 행동은 거짓된 것이었던거냐, 나탈!!!!!!!!!"

"헤, 무슨 헛, 소리, 를?!!"

'그만해'

"무, 슨?"

'이제 그만해.'

"이 멍청아! 넌 그냥 가만히 있어!! 이 내가 뭐든지 해결해 준다고 약속했잖아?!!"

'이런 건 진짜 내가 원한 게 아니야. 널 속여서 미안해. 널 괴롭혀서 미안해. 힘든 일, 슬픈 일, 잔인한 일.

그 모든 걸 너에게 떠넘긴 날 용서해줘.'

"바, 바보 같은, 녀석."

'이제 그만 쉬자, 나탈.'

"어허!!"

무트의 성검이 천사의 가호와 격돌한다.

"독검천하!!!!!"

천하를 가를 성검이 천사의 가호를 깨뜨리고 타락천사를 베어낸다. 검이 벤 곳은 주위의 땅을 50미터 정도 갈라버렸다.

나탈의 타락천사는 깨지고 진짜 나탈의 모습이 나타난다. 힘없이 무릎을 땅에 꿇으며 쓰러지는 나탈. 그는 마지막으로

조용히 중얼거린다.

"헤. 네가 원한다면 그걸로 됐겠지. 이제 그만 쉬고 싶어."

"고마워."

나탈은 침묵했다. '신'이 죽었다. 이걸로 락토의 괴멸은 막았다. 무트는 한참을 나탈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탈의 시체를 부축하려는 순간 나탈이 한 줌의 재가 되어 바람에 날린다.

"끝까지 흔적은 남기지 않겠다는 건가?"

빌이 폰을 부축하며 말했다.

"'신'. 놈들을 용서 할 수 없어. 앞으로도 여러 도시나 사람들을 위협할테지. 우리가 막아야해."

"이거이거. 좀 더 바빠지겠는 걸요? 학교도 자주 빠지면 졸업이나 하려나?"

폰이 귀찮은 듯이 한숨을 쉰다.

"우선 부상자를 구출하자. 최우선."

로아의 말에 모두 연기가 치솟는 곳을 향해 걸어간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하얀 방'. 그 앞에 하얀소년이 서있다. 그 발치에는 두명의 경비원이 쓰러져있고 소년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오랜만이군. 아벨."

'조직'의 책인자는 말했다. 마치 옛 '전우'를 맞이하듯이.

"오랜만이야. '카인'. 10년만인가?"

아벨은 방안에 완전히 들어선다. 그러나 카인에게 더 이상 가까이 가지는 않고 그대로 선다.

"이곳에 발을 들이다니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고 있나?"

"지금의 네놈이 날 잡을 수 있을까?"

"……."

"……."

잠깐의 침묵. 칠흑의 남자가 그 침묵을 깨고 말한다.

"여기까지 찾아오신 걸 보니 뭔가 중요한 할말이라도 있나보지?"

"아아. 한가지 알려주려고."

아벨은 검은 청바지 주머니에서 서류종이 하나를 꺼내 팔랑팔랑 흔든다.

"'신'에서 내린 지상명령이다. 이제부터 신은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야. 앞으로 세계는 좀 더 혼란스러워지겠지."

"이거이거. 우리들도 바빠지겠는 걸."

"너도 알겠지만 우리 '신'들은 각자 개인의 목표가 너무 강해서 조직의 이념이나 사상, 목적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

하지만 말이야. 결국 원하는 건 다 같거든."

"……."

"절대적인 강함이야. 아무리 원하는 사상이나 목표가 달라도 결국은 절대적인 힘앞에 무릎을 꿇기 마련이지.

그래서 놈들도 각자의 목표를 이루려면 힘을 갖는게 가장 쉬운 방법이야. 이런 방법으로 '그 녀석'은 조직원들을

꼬셔서 일을 시키기 시작했지."

"'그'가 직접 표면으로 머리를 내미는 건가?"

"지금까지는 조용히 있었지만 뭔가 이유가 있겠지. 이 조직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놈이 원하는 건…."

아벨은 지긋이, 또는 잔인하게 미소짓는다.

"정말로 '신'이 되는거겠지."

"그는 아직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건가? 한심하군."

"그거에 대해선 네가 더 잘 알텐데. 이미 세상은 능력자들이 일상이 된 세계야. 신이 되기 위한 첫발걸음을 뗀 상태지.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해. 신이란건 절대적인, 여럿이 되면 그 지위가 약해지지. 신은 하나면 족해.

그러기 위해선 능력자에서 한걸음더 도약해야지. 그라면 가능할 지도 모르지. 이미 거기에 쓸 패는 찾아낸 모양이니까."

"'정체불명'과 '최종병기'인가?"

"글쎄. 그것만으로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더 필요할 지도 모르지. 내가 아는 건 이정도 뿐이야. 남은 건 놈에게 직접 물어봐.

예전에 '신'이었던 너라면 팔다리를 다 자르고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불쾌하군."

"난 할말을 다 전했어. 그럼 다음에 만날 땐 확실하게 목을 베어주지."

"무사히 살아서 나가길 바라네."

"농담도 잘하셔. 그럼 이만 간다."

겉모습 13살 정도의 하얀 소년은 조용히 문밖을 나서 사라진다. '조직'의 우두머리는 홀로 남은 방에서 양손을 깍지를 낀다.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