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네요. 재밌게 봐주세요. （__）








----------------------------------------------------------------------------------------------------








"여기에 남아있는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일단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죠."
"하, 하지만……."
"그들은 무사할 거예요. 진유준… 아니, 누나의 오빠를 못 믿어요?"
"그래, 맞아.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봐. 미안!"

요새 무리를 해서 많이 피곤한지 약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 그녀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소처럼 쾌활한 목소리로 말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예린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강한 척 행동하지만, 마음이 여린 여자라는 것을.

"저기 보세요!"

창밖을 유심히 바라보던 이예린이 뭐라도 발견했는지 밝은 목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무슨 일이예요?"
"저기, 저 아파트에 불이 켜져 있어요."

그녀가 고운 손가락을 뻗어 가르키는 곳을 바라보니 정말로 아파트에서 미약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들일까요?"
"나도 모르겠어. 그러길 바랄 뿐이야."

하긴, 저기에 누가 있는지 진하연이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멍청한 질문을 시킨 머리를 혼내주고, 거리를 쟀다.

"다섯 블럭 정도 떨어져 있네요. 그리고……."
"12층이구요."

층수를 세어보기 위해 말끝을 흐리자, 이예린이 뒷말을 이어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이 그냥 흘러나온다.

"흐응, 솔로는 외로워서 못 살겠네. 그만들 웃고, 어서 출발하자."

진하연이 못 봐주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고는, 그녀를 뒤따랐다.

"같이 가요~."

우리를 버리고 혼자 갈 일은 없겠지만,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를 불러세웠다. 그때였다.

"캬아아아아!"

깨진 거실 창문으로 감염자 하나가 뛰어들어와 곧바로 진하연을 향해 돌진했다.

"이건 또 뭐야!"

그녀는 몸을 살짝 비튼 후, 다리를 걸어 감염자를 넘어뜨렸다. 공교롭게도 감염자는 깨진 유리 조각이 가득한 바닥에 쓰러졌다.

"캬아 ……."

온몸에 유리 조각이 박혔기 때문인지 쉽사리 몸을 일으키지 못했던 감염자는 한참을 발광하다 머리에 나이프를 맞고 운명했다.

"니네가 시끄럽게 웃으니까 감염자가 들어왔잖아!"

그녀는 나이프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성큼성큼 현관문을 나섰다. 나는 이예린에게 진하연을 가르키며, 머리에 뿔이 난 손짓을 보여주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다 보인다. 빨리 안 따라와?"
"아, 넵."

이예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의 등을 떠밀었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각자의 무기를 움켜쥔채 주변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에 언제 장난쳤냐는 듯 긴장감이 가득했다.

날은 어두울대로 어두워졌다. 아직까지 전기가 들어오고, 가로등이 켜지는걸 보면 우리나라 비상전력망은 꽤나 잘 구축되어 있는가 보다. 아니면 전기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걸지도…….

"크르르……."

쓸대없는 생각은 감염자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저멀리 사라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감염자가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발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나아갔다.

"쩝쩝쩝……."

코너 끝에 다달아 고개만 살짝 내밀어 살펴보니 가로등 아래서 감염자가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이 길로 세 블럭만 지나가면 바로 아파트가 나오는데 난감한 상황이다.

"어떻게 할까요? 기다릴까요?"
"아니, 처리하고 가자."

감염자의 식사 시간을 기다려준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말에 쓴웃음이 나왔다.

"주변에 다른 감염자는 없는 것 같아요. 언니 말대로 처리하고 가요."

감염자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우리는 최대한 조용히 감염자에게 다가가 한방에 처리하는 걸로 입을 맞추고, 몸을 움직였다.

한걸음, 한걸음 감염자와 거리가 좁혀질 때마다 긴장감이 증폭된다. 가만히 있는 감염자를 먼저 공격하기는 또 처음이기 때문이다.

"쩝쩝……."

감염자는 우리가 다가가는 것도 모른체 먹는 일에 열중했다.

'너도 먹고 살겠다는데 미안하구나.'

그렇게 반절쯤 다가갔을 때였다.

또르르르-

"크르?"

감염자만 바라보며 가다가 바닥에 돌멩이가 있는줄 몰랐다. 발에 치인 돌멩이가 굴러가며 작은 소리를 냈고, 감염자는 그 소리에 반응하여 고개를 돌렸다.

"크아아!"

나와 눈이 마주친 감염자는 먹던 것을 버리고, 그대로 나에게… 등을 보이고, 미친듯이 뛰었다.

"……?"
"……?"
"……?"

순간, 우리는 당황하여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어리둥절한 상황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감염자가 사람을 보고 도망가다니……? 혹시 특이한 감염자인 것일까. 우리가 세 명인 것을 보고, 불리하다는 걸 깨달은……?

"그 감염자, 가방을 메고 있었어요."
"이것 좀 봐. 들고양이 같은데?"
"……."

두 여자는 나보다 먼저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했다. 감염자가 먹다 남긴 것을 살펴보니 진하연의 말대로 고양이과 동물인 것 같았다.

"저기 보세요!"

이예린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우리는 고양이를 살펴보던 일을 그만두고, 그녀가 가르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음?"

우리가 가려는 아파트의 비상 계단에 불이 차례로 켜지고 있었다. 5층, 6층, 7층… 12층! 불은 딱 12층에서 멈췄다. 잠시 후, 12층에서 미약하게 새어나오던 불빛이 사라졌다.

"무슨 일이지? 불을 끈 것 같은데요?"
"어서 가보자!"

우리는 큰소리가 나는걸 신경 쓰지 않은 채 아파트를 향해 내달렸다.



빠르게 달려왔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에 금방 도착했다. 놀이터를 가로지르며, 아파트 입구에 거의 다달았을 때였다.

사박-

"잠깐 멈춰! 쉿!"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놓치지 않은 진하연이 자세를 낮추며, 우리를 멈춰세웠다. 나 또한 분명히 들었기에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몸을 낮췄다.

"지우랑 예린이는 저쪽으로 돌아가봐. 내가 신호 보내면 동시에 공격하는 거야. 알았지?"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움직였다. 놀이터의 모래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기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포위되었다. 빠져나갈 수 있는 두 개의 길을 우리가 차단했기 때문이다.

진하연이 손을 들어 카운터를 세었다. 하나, 둘, 그녀의 손가락이 하나 더 펴졌을 때, 우리는 망설임없이 움직였다.

"으악! 자, 잠깐만!"
"사, 살려주세요!"
"사, 사람?"

우리는 휘두르려던 팔을 조심스레 내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다. 감염자가 아닌 것에 안도했고, 간발의 차이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여, 여기서 뭣들 하세요?"
"그, 그게 말이야……."

놀라기는 피차일반인 듯 상대방도 말을 더듬었다. 잠시 대화가 끊겼고,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그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웠다. 중년 남성 둘과 젊은 여자 한명이라… 이들은 왜 여기에 숨어있었던 걸까. 나의 의문은 곧 풀렸다.

"우, 우리는 생존자들인데, 멀리서 불빛을 보고 여기까지 왔다네."
"아저씨도 불빛을 보고 오신거예요? 저희도 그런데."
"그, 그런가? 바, 반갑구먼. 근데 우린 이만 가봐야겠네."
"예?"

간다니, 어디로 간다는 소리일까. 내가 놀라서 반문하자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 여기로 방금 감염자 하나가 뛰어들어갔다네. 그래서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참에 너희가 온거야. 우리는 감염자들인줄 알고 숨어있었지. 어쨌든 저기는 위, 위험하니까 우리는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네."

남자는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의 소매를 끌어당겼다.

감염자 하나보다 이 밤중에 움직이는 편이 훨씬 더 위험하다. 내가 그들을 설득하려고 할 때, 진하연이 남자를 제지했다.

"이미 늦은 것 같네요. 빨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위험할 거예요."

아파트로 도망간 감염자를 쫓아오면서 너무 큰소리를 내었나보다. 사방에서 감염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서 안으로!"
"히익!"

그들은 기겁하며, 우리보다 먼저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저 사람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무기도 없이） 모르겠다. 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고, 금새 12층에 도착했다.

"캬오오오!"

감염자들은 비상 계단의 켜진 전등을 보고 빠르게 몰려오는 것 같았다.

쿵쿵쿵-

"안에 있는거 다 알아요! 문 좀 열어주세요!"

내가 문을 두드리며, 부탁하는 사이에 진하연은 핀으로 열쇠 구멍을 조작하고 있었다.

"크아아아!"

감염자들의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쿵쿵쿵쿵쿵쿵-

"빠, 빨리 문 좀 열어줘! 그들이 온단 말이야!"
"사, 살려주세요!"
"진정하세요!"

사정없이 문을 두드리며, 불안해하는 그들을 달래는 나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낮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예린도 나와 같은 심정인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때였다.

철컥-

문이 열리며, 앳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불을 켰는지 집안이 환하게 보였다.

"어, 어서 들어오세… 꺅!"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남자와 여자가 소녀를 밀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내색하지 않고（그들도 살겠다고 움직이는 거니까） 이예린과 진하연을 먼저 들여보냈다.

"에이, 거의 다 됬는데 민망하게…­…."

진하연이 핀을 주머니에 챙기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를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문을 닫았다.

"괜찮니?"

이예린이 검을 신발장 옆에 세워두고, 넘어진 소녀를 일으켰다. 그때였다. 제일 안쪽의 방문이 열리며, 우리를 보고 도망쳤던 감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헉!"
"가, 감염자다!"
"에라, 모르겠다!"

아까 전에 나와 대화를 나눴던 남자가 이예린의 검을 들고, 감염자에게 돌진했다.

"아, 안돼요!!!!!!!!!!"

그를 막아세우기엔 이미 늦었다. 소녀의 커다란 절규가 실내를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