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갈래 머리 소녀는 오늘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오늘도' 그곳에 있었다고 해서 항상 그렇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소년이 양 갈래 머리 소녀를 보기 위해선 적어도 일주일이

라는 시간이 필요했으니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금요일입니다. 저번 주도 그랬고, 아마 다음 주도 그럴 겁니다. 소년은

항상 금요일에만 소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 양 갈래 머리 '소녀'라는 표현은 임의적인 표현이라는 걸 알아두길 바라요. 소년은 소녀의 나이를 몰랐습니다. 나이만

모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죠. 남녀관계가 시작될 때에 흔히들 서로가 교환하는 정

보. 그러니까, 나이가 어떻게 된다든지 이름이 어떻게 된다든지 하는 것도 전혀 몰랐습니다. 전혀요. 오히려 그녀가 무슨

색 팬티를 즐겨 입는다든지, 어떤 냄새의 샴푸를 즐겨 쓴다든지 하는 건 알았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심지어는 더 나아가 소년은 양 갈래 머리 소녀의 가슴이 한국 평균 여자들보다 작은 편이라는 것과 반대로 골반의 둘레는

넓다는 것까지도 알았습니다. 이건 터치가 없이는 알게 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죠. 대체, 정말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답은 쉽습니다. 소년과 소녀가 만나는 공간이 일반적인 만남의 단계를 생략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금전적인

대가가 지불되는 곳은 아니었어요. 소년은 동정입니다. 이런 발언을 한다고 그가 화를 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죠. 소년은 동정이었습니다.

갑자기 왜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가 나오는가 묻는다면, 그건 소년이 생각보다 순수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하나 둘 첫 섹스라는 것을 경험하고 서로에게 자문을 구하는 나이가 되자 소년은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들

이 다해본 것, 무언가 남성적인 경험일 것 만 같은 행위를 본인만 하지 않다니! 무언가 부끄러웠죠. 친구가 권했습니다. 그

렇다면 안마방이나 역 주변에 사창가를 가보는 것이 어때?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소년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소년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첫잠자리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건 우주잖아요. 삽입과

마찰이 만나 이윽고 인류 증진에 기여하는 어떠한 폭발이 일어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 생각만 해도 부끄럽고 흐뭇한 행위

를 돈을 주고 사다니. 끔찍합니다.

소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그럼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니? 친구가 물었습니다. 소년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생각을 거

듭했습니다. 이윽고 결론을 내렸죠. 나는 클럽에 갈 거야!

사실 클럽이란 곳은 그렇게 대단한 곳이 아닐지도 몰라요. 소년이 동정이라는 것을 밝힌 것에 이어 소년의 생각이 매우 우습

다는 견해까지 밝히면 소년이 정말로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것은 이미지 때문이었어요.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오

고 갔던 길거리에 붉은 간판의 클럽. 팔뚝에 문신이 새겨진 덩치 큰 스킨헤드들이 문 앞을 지키던 비밀스런 공간이라는 인

식 때문이죠. 사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겠어요? 클럽은 그냥 클럽일 뿐이죠. 그게 애견 애호가 클럽이라거나 야생초 수

집 관리를 위한 클럽이 아니었을 뿐이죠. 그게 중요한건 아니지만요.

아무튼 까까머리 고등학생은 침을 꼴깍 꼴깍 삼키며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온갖 상상을 다하며 자랐고, 오매불망 기

다리던 주민등록증이 발급 된 첫 날, 그곳에 발을 딛었다가 혼이 빠진 상태로 첫차를 타고 집에 갔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

진 건지 소년도 몰랐습니다.

온갖 욕설과 바닥을 울리는 음악소리, 진동, 술 묻은 신발들이 밟는 스텝과, 전라로 보아도 무방한 여자들의 옷차림, 향수냄

새와 화장품 냄새.

그곳은 하룻밤 가본 것으로는 두뇌가 처리할 수 없는 너무도 많은 정보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다시 한 번 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가보기로 했죠.


수를 셀 수 없는 '한 번 더'가 반복되면서, 소년에게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아, 무슨 대단한 정신적 깨달음 같은 건 아

니었어요. 가령 예를 들자면 그건 옷차림 같은 것이었습니다. 트렌드는 쉬웠어요. 카모플라주가 유행이었죠. 다들 군대도

안 갔다 온 주제에 왜 그런 패턴을 걸쳐 입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게 트렌드였습니다. 기름을 발라넘긴 머리와 네이

비 색 맨투맨, 그리고 카모플라주 반바지와 검정색 스니커즈.

소년은 그러한 것들을 걸치고 신음으로써 드디어 '클럽 안의 사람들'과 동화될 수 있었습니다.


장족의 발전입니다. 더벅머리에 목 늘어난 티셔츠, 색이 밝은 통 큰 청바지에 메이커 없는 하얀색 농구화를 신던 촌스러운

소년이 어느덧 얼반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밤거리의 신사가 된 것입니다. 대단하달 수밖에요. 옷차림이 바뀌자 이윽고

다른 변화도 찾아왔습니다. 무리에 섞이게 된 소년은 이제 사람들의 움직임에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루브와 체인지, 파

워와 스타일.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기 시작하고, 그것이 수없이 누적되자 그럴듯해지더니, 이윽고 자신감 있게 그러한 동작

들을 시연해내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죠.

음악에 따라 튕기는 몸짓이 다르고, 더 나아가서는 DJ마다 늘려내는 레이백이 다르다는 것도 이해했어요. 유행하는 모자가

어떤 건지, 어떤 복장은 촌스럽고 어떤 복장은 센스 있는지, 어떤 여자가 쿨하고 어떤 여자는 보수적인지. 이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섰다고 자신하고 있었죠. 그리고 그렇게 되자, 우리의 소년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다가왔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피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죠. 암컷은 쟁취하는 거에요.

이것이 개인적인 견해라고 돌을 던져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죠. 못난이 곁에는 어떤 여자도 오질 않아요. 마음씨가 예뻐야 한

다, 성격이 고와야 한다, 라는 헛소리를 만든 게 누군지는 몰라도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역전 사창가나 안마방을 갔어야죠.

죄다 동정들이 한 소리일 걸요?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죠.

우리의 소년 역시 암컷을 얻기 위해 이리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았겠어요? 그는 순수한 소년입니다. 감히 돈을 주고 여자를

살 순 없었죠. 아니, 정정하자면 감히 돈을 주고 자신의 '첫 경험'을 살 수는 없었죠. 그는 그런 남자입니다. 목표를 세우

면 돌파하고야마는 남자죠.

그루브한 느낌의 힙합 노래가 나오자 소년은 벌벌 떠는 손을 엉덩이로 가져다 댔습니다. 결과를 기다렸고, 소년 앞의 분홍

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휙 돌아섰습니다.

따귀소리는 아주 찰졌어요. 클럽에 갔다고 해서 성추행이 합법화되는 것은 아니죠. 절대로 아니란 말입니다. 소년은 그것을

간과했습니다. 소년은 더 배워야 할 것을 실감했습니다. 여자가 도도하게 걸어 가버리고, 주변 남자들이 박장대소하며 소년

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동안 그는 얼얼한 뺨을 감싸 쥐고 배움에의 갈망을 더 간곡히 다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건 과감함만으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소년은 더 배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배후에서 다가가면 여자

들의 경계를 산다는 점, 스테이지 앞쪽에서 자리를 잡다가 음료를 살 수 있는 바 쪽으로 빠지며 상대를 물색하는 것이 더 가

능성이 높다는 점. 시간대가 늦어질수록 경쟁자가 많아져 여자와 말을 나누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점. 같이 춤을 추기 전에

눈을 마주치며 의사를 떠보는 방법. 섣부른 신체접촉은 파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 설령 상대방이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어도 모른 척 해야 한다는 것. 핸드폰으로 하트 이모티콘이 달린 남자에게 메시지를 보내도

'남자친구 있어요?' 라는 질문을 절대 삼가는 것이 유익하다는 점.

과연 옛 조상님들의 말씀대로, 배움에는 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실력증진이 따른다는 말 또한 같았지

요. 소년은 무럭무럭 경험을 키워나갔고, 이제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에게 뺨을 맞았던 것은 코웃음으로 넘길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소년은 배가 고팠습니다. 우리의 거스 히딩크가 한 말과 같았죠.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I Am Still Hungry, 그는 전 세계적인 수컷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여전히 배가 고팠습니다. 소년의 왼손과 오른손이, 클럽에

서 만난 소녀들의 피부에 중력이 작용하는 탄력도를 측정해볼 수 있는 수준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배고팠습니다. 그가 만

질 수 있는 여자들은 진정으로 가치 있는 여자가 아니었거든요. 오늘 여러 번 솔직해지지만, 소년이 찾는 게 감정적인 사랑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플라토닉 러브를 찾는다고 생각진 않아요.

클럽에 예수님이 재림하기엔 아직 종말은 좀 많이 남은 것 같거든요. 설령 교황이 지금 당장 이곳이 소돔과 고모라라고 말해

도 말이죠. 신나잖아요? 그 엄숙한 공간에 주님이 오신다고 상상을 해봐요. DJ도 댄서들도 모두 화날 겁니다. 그래선 안 되잖아요.

매주 금요일 여자들의 상부와 하부를 주무르면서 소년은 무감각해져갔습니다. 클럽은 매일 새로운 여자들이 넘쳤으니까요.

똑같은 얼굴을 한 여자들이 매주 금요일이면 타이타닉이 무너질 때 구명보트로 사람들이 몰리던 것처럼 그렇게 몰렸다니까요.

모두 오늘 춤을 추지 않으면, 오늘 야한 옷을 입지 않으면, 오늘 서로 몸을 부비지 않으면, 오늘… 아무튼 오늘 그렇지 않으

면 내일 죽어갈 것처럼 그렇게 몰렸습니다. 발정기가 따로 있나요. 이 공간에 있으면 모두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수컷 한

명, 암컷 한명의 호르몬이 그 공간 전체를 홀려나갔다는 말입니다.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니었고, 동시에 모두가 명료하게 깨

어 있었어요. 바지춤, 브래지어의 끝,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놓치는 것 없이 명확했습니다. 사방에서 소금물 냄새가 났어요.

소년은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것 참 그게 뭐라고 이렇게도 돌아왔을까요. 노고에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아직 소년

의 여정은 끝이 아닙니다. 이제 양 갈래 머리 소녀의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소년이 양 갈래 머리 소녀를 처음 본 것은 5월 1일이었습니다. 공휴일입니다. 클럽이란 곳이 금요일과 토요일을 제하면 사람

이 별로 모이지 않는 곳입니다. 예외가 있다면 국가 지정 휴무일이지요. 공휴일과 공휴일 전날은 마치 불타는 금요일, 혹은

불타는 토요일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불타는 월요일이나 불타는 수요일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공휴일에는 매주 금요일 토요

일이 그렇듯 주변 모텔은 항시 만원이며 숙박업 비슷한 공간이라도 찾아보려면 택시를 타고 교외로 십오 분 이상 빠져야만

했으니 짐작이 가실 겁니다.

겨우 분위기 잡고 방향을 제시해놨는데 여자가 택시 안에서 마음을 바꾸면 어쩌지, 안절부절 하는 사내의 마음이 이해가십니까?

아무튼 소년은 5월 1일, 양 갈래머리 소녀를 스테이지 계단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호흡이 가빠졌어요. 진부한 표현이

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사실인 것을요.

양 갈래머리 소녀는 아름다웠습니다. 소년은 의아했습니다. 무엇에 끌린 걸까? 소녀는 키도 크지 않았습니다. 몸매도 좋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당당하게 입고 있는 교복 때문일까? 진한 아이라인도 없고 붉은색 립스틱 없이도 양 갈래머리 소녀는 튀

었습니다. 그건 소년만의 착각이 아니었어요. 클럽 안에 대부분의남자들의 시선이 양 갈래머리 소녀를 거쳐 갔습니다.

예쁜 여자는 오만하다는 것도 상당히 오래된 클리셰이지만, 대부분 적중한다는데 반론의 여지가 없군요. 하지만 양 갈래머

리 소녀는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어요. 소년은 경험으로 깨달은 게 있었

는데, 클럽안의 여자들이란 속살의 노출 비례가 높을수록 많은 시선에 노출되기 마련이고, 그러한 시선을 아닌 척 즐거워한

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도도하게 내리깐 눈이 사실은 그걸 감추기 위해서란 것도 알았죠. 하지만 우리의 양 갈래 머리 소녀

는 아니란 거였죠. 그녀는 정말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과감한 교복은 짧고, 와이셔츠는 작은 가슴의 윤곽도 다 드러내 보일 정도로 타이트했습니다. 실제 학생이었다면 주임선생

의 눈에 띄자마자 따귀를 두어 차례 맞고는 그 짧은 치마로 운동장을 서너 바퀴 오리걸음을 걷는 동안 음흉한 학생주임의 흘

끗거림을 모른척해야 했을, 그런 차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조심성이라고는 없었죠.

당당하게 담배를 피워 무는 깡, 허리를 숙일 때 뒤쪽 치마를 부여잡지 않는 패기, 흰색 와이셔츠 안으로 미러볼에 반사되는

형광색 언더웨어.

누구나 그녀에게 반할 거라곤 말할 수 없겠지만, 누구나 그녀를 한번쯤 쳐다보지는 못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군

요. 양 갈래머리 소녀는 그런 여자였습니다. 얼굴이 궁금하다고요? 얼굴을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겠군요. 그러니까, 그녀

는… 모르겠습니다.

도무지 모르겠어요.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소년의 생각입니다.

매일 금요일, 혹은 토요일은 클럽에서 불태우고 첫 차를 타고 돌아가는 아침이면, 도무지 어울렸던 여자들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는 겁니다.

‘얘는 생머리였지, 얘는 다리가 길었어, 얘는 염색을 했었지, 얘는 단발머리였어…’ 그런데 얼굴만은 깜깜 무소식이더라

는 겁니다. 분명히 예쁜 얼굴이었는데 싶다가도, 꿈속에서 정사를 나눈 여자의 얼굴을 추리하는 것처럼 종내는 포기하게 되

는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가슴을 주무르고 엉덩이를 움켜잡고 입술을 맞대고 서로가 서로의 혀로 구강 내부를 스케치하기라

도 할 것처럼 꼼꼼히 탐구했던 여자인데도 말이에요.

소년은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 어두운 공간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인상이란 클럽의 문을 나섬과 동시에 씻기게 되는 거라

구요. 너덜거리는 손목의 입장용 팔찌를 끊어내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명확히 판단이 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물론 예뻤어요. 그렇지 않다면야 남자들의 시선이 머무르겠습니까. 하지만 그 예쁜 얼굴은 소년이 클럽을 나섬과 동

시에 흐릿해졌습니다. 혹시나 길에서 마주친다면 몰라보겠다, 라는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긴가 민가 다섯 걸음쯤 지나쳐갔다가 뒤를 한 번 돌아보게끔 만들 정도의 인상만 남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소녀에게 성욕 그 이상의 것을 느꼈습니다. 여기서 사랑이란 표현을 끌어다 쓰기는 민망하고 좋

아한다는 표현을 가져다 쓰기에는 소년이 너무 글러먹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한 감정이 어찌되었든, 소년은 소녀와 자고 싶

었습니다. 사실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언어적 표현보다 먼저 반응한건 소년의 바지 아래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순수함을

가장하지 않도록 합시다. 사실 소년이 클럽을 찾게 된 목적도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잖아요?

하지만 일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소년은 성장했습니다. 여자에게 경계 없이 접근하는 법을 배우고,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다

가 거리를 좁혀가며, 이윽고 몸과 몸이 맞닿는 시점이 되면 인간이 직립보행을 시작한 이후로 자유로워진 양 손으로 원하는

부위를 주무르는 법을 배웠죠.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는 여자를 그 공간에서 데리고 나오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수없이 많은 피스톤 질을 연상하고 있어도 정작 실행하지 못했죠.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성의 상품화 같은

건 지독하게도 싫어했는데 말이죠. 할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어요. 소년은 양 갈래머리 소

녀에게 접근했습니다.

교복을 입고 힙합 음악에 맞추어 그루브를 타는 소녀의 뒤에 멈추어 서서, 소년은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배운 것을 총동원

하기로 마음먹고 그녀에게 접근했지만, 양 갈래 머리 소녀가 뒤를 도는 순간 모든 지식은 부서져 날아갔습니다.

달 착륙에 실패한 아폴로 11호 같았죠. 파편은 가속화되어 날아갔고 소년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양 갈래 머리 소녀

는 얼어있는 소년을 쳐다보고 눈동자를 고정하고서 서있었습니다. 우스운 광경이었죠. 얼어붙은 소년과 빤히 쳐다보는 소녀

라니. 소년이 아무것도 못하고 서있으면서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다했습니다. 그것은 주로 욕으로 이루어져 있어 종이 위

로 옮기기 난감한 것들이었습니다.

아무튼, 간단히 나타내자면,

'좆 됐다'

정도이지 않을까요? 그렇게 무수한 성기를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지우고를 반복하는 찰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양 갈

래머리 소녀가 소년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손을 소년의 허리에 감아 안고 자연스레 허리와 골반을 흔들며 붙여 왔습니다. 이

제 그런 촌스러운 시절은 지났다고 자부하는 소년의 성기가 순식간에 딱딱해졌습니다.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죠. 소년은 양

갈래머리 소녀가 그것을 눈치 챌까 불안해했습니다. 뭔가 부끄럽다고 생각했죠. 여태껏 본인이 해왔던 짓은 생각지 않고 순

수한 소년처럼 구는 그가 우스웠지만, 이것이 사랑의 힘이 아닐까 판단하기로 합시다.

양 갈래머리 소녀에 대해 설명한 게 있다면, 남의 시선에 대해서 엿 먹어라!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들 줄 아는 소녀들의 명

단에 이름을 당당히 기재할 수 있는 아이란 것입니다. 눈치 채지 못할 꼿꼿함을 피부로 느낀 양 갈래머리는 흔듦의 리듬을

더 노골적이고 격렬하게 바꾸었고, 소년은 부끄러움을 넘어서 제 정신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쏟아 부어야만 했습니다.

그 새벽부터, 클럽의 인파 대부분이 빠져나가 서로의 얼굴을 명확히 바라볼 수 있게 될 때까지 버티는 자의 뻣뻣함과 흔드

는 자의 리드미컬함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되었습니다. 소년은 진이 다 빠진 얼굴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죠. 그러다가, 어느 순

간 양 갈래머리 소녀는 덥석 소년을 놓아버리고, 총총 걸음으로 클럽을 빠져나갔습니다.

상사병에 시달렸다고 말하면 우스울까요? 아무튼 그러한 정도의 고통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년은 괴로워했습니다. 경도를 더해

가던 자신의 성기에 와 닿던 감각이라든지, 아니면 그렇게 밀착되어 있는데도 소녀를 털 끝 만큼도 소유한 것이 아니라든지

하는 생각들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우스운 애기죠, 소유를 논하다뇨? 하지만 소년은 양 갈래 머리를 소유하고 싶었습니다. 소유가 사랑인지에 논하는 것은 차

마 이 글에서는 하지 않기로 합니다. 대책 없이 길어질 것이 뻔하니까요. 아무튼 소년은 다른 남자들이 소녀의 가슴과 다리

를 쳐다보는 것이 싫었고, 그러한 음흉한 늑대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양 갈래 소녀가 유유히 춤을 추며 돌아다니는 것도 정

말 죽기보다 싫어져버렸습니다.

“악마같은 새끼들”

손에는 문신을 하고, 헬스장에서 죽을 치며 만들어낸 근육들에, 바리캉으로 박박 민머리 혹은 반짝이는 크롬 목걸이와 귀걸

이를 두른 얼간이들 같으니라고. 그 손으로 양 갈래 머리 소녀를 주무를 작정이라는 걸 나는 알지, 개새끼들 같으니라고…

라는 것이 소년의 생각이었습니다.

소년은 작정을 했습니다. 매주 금요일 마다 그녀를 차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녀의 금요일만이라도 가져야 나중에 그녀

를 송두리째 가질 수 있게 되지 않겠어요? 피스톤 질과 피스톤 질, 끊임없이 마찰과 지속운동에 관한 생각 밖에 없는 늑대

들 사이에서 양 갈래 머리 소녀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소년은 매주 금요일 똑같은 스테이지의 계단에서 당연한 것처럼 양 갈래 머리 소녀에게 접근을 했

고, 양 갈래 머리 소녀는 매주 금요일 똑같은 스테이지의 계단에서 소년과 몸을 붙이고 부비적거리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소

녀가 오지 않는 날은 드물었습니다. 아니면 왔는데 서로 마주치지 못한 걸 수도 있겠죠. 분명한건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게

되면 둘은 서로를 붙잡은 순간부터 클럽이 파할 때까지 끈적하게 춤을 추었다는 겁니다. 질리지도 않고요.

발기는 여전했고, 그걸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정말로 모르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운 양 갈래 소녀의 태도도 여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양 갈래 머리 소녀가 오지 않던 불타는 금요일 날, 소년의 어금니 하나가 부러졌죠.

분홍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여자가 추파를 던져왔습니다. 의학에 도움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이목구비였지만 소년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타고난 것이 있겠어요? 본인도 변한 것을요. 더구나 소년은 양 갈래 머리 소녀를 찾지 못해 우울했습니다.

여자는 들숨과 날숨이 느껴질 만 한 거리에서 술 한 잔 사주지 않겠냐며 교태를 부렸고, 소년은 응했습니다. 그렇게 분홍 머

리 여자의 가슴을 주무르며 클럽 입구를 나서다가 웬 남자에게 불시의 일격을 맞은 것이죠. 이는 한 번에 부러졌습니다.

소년을 후려친 남자는 당장 클럽 앞에 세워두어도 기도로써 손색이 없을 정도의 위용을 가진 남자였습니다. 근육이 불끈거렸
죠.

“남창 같은 새끼가, 누구 여자를 건드리는 거야?”

그 말을 끝으로 근육질 남자는 분홍색 머리를 가진 여자의 머리칼을 움켜잡고 질질 어디론가 끌고 사라졌죠. 자기야 미안

해, 자기야 그런 거 아니야! 하는 소리가 백 그라운드 뮤직처럼 깔리는 걸 들으면서 소년은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자 누군가 끌어다놓았는지 뻗은 자리 옆 가로등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더군요. 몸이 으슬으슬 추웠고 입에

선 쇠 맛이 났습니다. 혀를 굴려 부서진 자리를 더듬어보니 몸이 움찔했습니다. 부서진 이를 찾느라 거리를 휘휘 둘러보았지

만 온갖 잡다한 것들이 버려져 있는 거리에서 찾을 수 있겠어요?

통증이 큽니다. 신경이 다쳤을지도 모르겠어요. 다시는 분홍색 옷을 입은, 혹은 분홍색 염색을 한 여자는 건드리지도 않겠다

고 다짐하며 몸을 추슬렀습니다. 신고를 해야 할까요? 이빨 빠진 자리에 혀가 닿을 때마다 짜르르 소름이 오릅니다. 예외적

으로 집에 일찍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피가 묻어 번진 입가를 드러낸 채로 클럽 안으로 도로 입장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속이 쓰렸습니다. 어쩌면 오늘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지하철이 있는 방향으로 걷는데, 입이 큼지막하게 부어오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정말로 큰일 난 것 아냐? 욱신거리는 통증

이 시간이 갈수록 더해집니다. 힘이 센 악마들도 있었어. 가끔 백인이나 흑인이과 어울려 춤을 출 때면 그들의 시큼한 겨드

랑이 냄새를 맡으며 상상하긴 했었습니다. 흡사, 이건 마치 호랑이 사자와 같은 맹수의 냄새를 맡는 기분이 아닌가?

그들의 주먹에 뼈와 살이 섞이는 느낌을 떠올려보며, 외국인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여자에겐 절대로 접근하지 않았었으니까

요. 그렇기에 씹할, 개새끼, 같은 말은 들어봤어도 Fuck, asshole과 같은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동양인의 탈을 쓴 남

자가 얼굴을 강타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거울을 봐야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찝찔하게 피가 턱 아래로 흐르는 느낌도 들

고요. 소매로 얼굴을 훔쳤으니 지금은 더 가관이겠죠. 처음입니다.

인적이 드문 길로 가기로 합니다. 이 얼굴에는 가로등 불도 밝으니까요. 점점 더 부어오르는 뺨이 광대가 느껴지지 않을 정

도의 쿠셔닝을 얼굴에 만들고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찔러보아도 광대뼈가 느껴지지 않아요. 병원에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만, 소년은 우선은 집으로 가기로 합니다. 취객이 드문드문 누워있는 인적 드문 곳으로 발을 디디기 시작하자, 더없이 우울

해지기 시작합니다. 토사물이 이곳저곳에 깔리고, 안마방 혹은 오피스 걸들의 찌라시가 그보다 더 잦은 빈도로 뿌려져 있는

거리를 걷습니다. 피 섞인 침을 뱉느라 앞을 보죠. 그리고 그 때, 양 갈래 머리 소녀를 발견합니다.

처음엔 교복 입은 여고생이 하교하는 줄 알았죠. 하지만 소년은 지금이 새벽시간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여고생이 가

방을 메고 있지 않다는 것도. 그리고 저런 교복을 입는 여고생이 있다면 당장 오늘 제적당했을 것이라는 것도요. 그건 분명히 양 갈래 머리 소녀였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오늘 클럽에서 보지 못했는데? 마주치지 못한 걸까?

알 수 없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빨리 했다가, 이내 다시 느려지고 마네요. 뭐라고 아는 척을 하겠어요? 매주 금요일

클럽에서 함께 춤을 추던 남자가 접니다, 라고 해야 하나? 끈적하게 춤을 추며 당신 허벅지며 엉덩이의 탄력을 시험해보는

와중에,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만, 제 마음은 순수 합니다… 라고? 도무지 알 수 없었죠.

마음을 가라앉히고 걸음을 천천히 하자, 자연스레 몇 가지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선 소녀가 비틀 거리고 있다는 사실

을 알게 되었죠. 그건, 술에 취한 사람들이 보이는 일반적 걸음걸이의 전형이었습니다. 전진을 베이스로 하면서도, 좌로 2

보, 우로 3보… 예측할 수 없음이 포인트였죠. 그러니까 그녀는 몸도 못가눌 정도로 취해 있었다, 이겁니다. 양 갈래 머리

소녀는 여전히 교복차림이었습니다. 땋은 머리와 교복이 주는 앳된 느낌은 술 취한 걸음걸이로 인해 대비가 분명했죠. 그때

누군가가 양 갈래 머리 소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남자 두 명입니다. 몸도 가누지 못해 보이는 소녀에게 무슨 용건일까요?

소년이 걸음을 빨리했습니다. 뛰다시피 걸어가 소녀의 옆에 서니 남자 둘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네요.

“제 일행인데요”

남자 둘이 서로 마주보다가 다시 소년을 쳐다봅니다.

“이 여자분 일행이시라고요?”

양 갈래 머리 소녀가 고개를 바닥으로 향하고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힘겹게 고개를 들어 소년의 얼굴을 쳐다봅니다. 아무

런… 표정도 없네요. 알아본 걸까요? 아니면 아닌 걸까요? 소년이 점점 더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남자 둘의 표정도 한명
은 험악해지고 한명은 우스워지기 시작하고요. 그 와중에 한 남자의 팔목을 휘감은 잉어 타투를 발견한 소년은 더욱 초조해집니다.

“어빠, 왜 이제 왔어…”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지만 소년은 믿을 수 없습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하지만 손을 내뻗어 어깨를 감싸 안

았죠. 소녀는 말을 내뱉고 인사불성입니다. 술이 사람을 먹었다고들 하죠. 남자 둘은 다시 서로를 마주 본 다음 고개를 숙

여 보이곤 소년과 양 갈래 머리 소녀를 지나쳐 갔습니다. 소년은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알아본 걸까요? 역시 소녀 역시 자신

의 해바라기 같은 마음을 인공위성마냥 캐치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럴 리가 없죠.

양 갈래 머리 소녀를 부축합니다. 택시를 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많이 취해있으니까요.

그때 그녀를 부축하던 소년이 일순간 멈칫합니다. 짧은 치마 아래로 소년의 손이 들어가네요. 꺼내본 손이 젖어 있습니다.

익숙한 냄새가 납니다.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기 싫어, 모니터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을 때 느껴지는 냄새에요. 양 갈

래 머리 소녀의 허벅지 사이로 흐르는 액을 손으로 닦습니다. 정액 냄새가 더 진하게 납니다. 손마디가 끈적하네요. 어떻게

된 걸까요? 그녀의 치마 아래서 밤꽃이 만개한 것도 아닐 텐데요.

소년은 멈춘 자세 그대로 양 갈래 머리 소녀의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머리에 엷게 밴 땀 때문에 머리카락이 붙어 있네요. 떼

어줄 생각도 못하고, 소년이 멈춘 것 같아요, 옛 설화에 나오는 것처럼 저대로 돌이 될 지도 모르겠어요. 오래도록 얼굴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눈이 고정되어 있네요, 전혀 흔들림 없이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