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작년 여름 끝자락.
당시 나는 두달간의 개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지갑이 너무 두꺼워져서 바지주머니가 견디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밥을 사드리기로 했어.
아버지한테 말씀드리니까 넘모 좋아하시면서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고（며칠전에 우리 빼고 소고기먹음） 맛있는거 먹자면서 새로생긴 복어집이 있다고 거기 가보자더라. 그렇게 우리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지.
그 날 바로 둘이 복어집에 갔어. 나는 잘 몰라서 아부지가 주문을 하고 조금 기다리니까 횟집처럼 밑반찬이 줄지어서 나오는데 엄청 맛있더라. 가게 들어가기 전에 아빠랑 나랑 엄마 빼고오니까 좀 찔린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정작 음식 앞에서는 입속에서 붐붐파티 즐기느라 엄마생각 하나도 안남.
허겁지겁 먹다보니 복어가 등장했어. 복어는 생전 처음 먹어봤는데, 그 횟집 가면 투명한 국물로 나오는 탕같은거, 지리인가? 여튼 그거였는데 국물은 얼큰하고 복어는 통통한 장어같은 맛이었어. 솔직히 복어는 기대만큼 맛있지는 않고 밑반찬들이 더 맛있었어.
어쨌든 가격대비 만족이었고,
다 먹고 나서 내가 계산하려는데 아부지가 딱 멋있게 카드 꺼내가지고 '아들이 계산하게 할 수는 없지' 하면서 멋있게 긁어주셔서 더욱 더 만족했어. （엄마카드여서 엄마한테 문자 날아가가지고 결국 들킴）
이제 신발신고 나가려는데 마침 주방장같이 흰색 모자 쓴 사람이 나오길래 '아 음식이 아주 맛있네요' 라고 하니까 만화처럼 아무 말 없이 찡긋 웃어주고 들어가셨어. 아빠랑 나랑 '역시 잘하는 집은 달라' 하고 기분좋게 집에 왔지.
여기까진 행복한 부자의 식사일기였고, 이제 복어스릴러가 시작돼.
새벽 6시 쯤 됐을거야. 부른 배를 문지르며 꿀잠을 자고 있는데, 쿠당탕탕 소리가 들리면서 엄마가 내방으로 뛰어오더니 119! 119! 이러는거야. 뭔일인지도 모르고 헐레벌떡 일어나서 가보니까 아부지가 화장실에 쓰러져계시더라구. 의식은 있는데 온몸에 힘이 안들어가는 상태였어. 이때는 복어때문인지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뇌졸중같은 문제가 생긴 줄 알았지. 내가 수전증이 있는데 그 장면을 보니까 자판도 못 치게 손이 덜덜 떨리더라. 여차저차 구급차를 부르고,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아버지를 부축해서 큰길로 나갔어.
그리고 이 때 문제의 개가 등장했지. 평소에도 자주 보는 아줌마가 있는데 쬐끄만한 시추를 아침마다 산책시킨단 말이야. 목줄같은거 안하는데 이때는 워낙 죄그만한 개고 또 동네 주민이기도 하고 그래서 별달리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
암튼 이놈의 댕댕이놈인지 년인지 모를 녀석이 평소같으면 본척도 안하고 그냥 지 갈길 가는데, 하필이면 이날따라 갑자기 우리쪽으로 달려와서 길가에 앉아계신 울 아부지 주위를 뱅뱅 돌면서 아르르르 왈왈 이지랄을 계속 하는거야. 내가 개빡쳐서 발로까는 시늉하면서 쫓아낼랬는데 그것때문에 오히려 지가 더 빡쳤는지 더 허스키하게 짖어대더라.
이게 평소같으면 그냥 헤프닝인데, 하필이면 아픈 사람 앞에서 개가 이상한 행동을 하니까 되게 꺼림칙하더라구.
더 빡치는건 개 주인 아지매가 아무런 조치도 안하고 지켜만 보고 있었음. 그래서 내가 '개새끼 진짜 걷어차이는 꼴 보기 싫으면 빨리 치워요 시벌!' 하니까 그제서야 '개한테 왜그래요' 하면서 데려갔어.
바로 직후에 구급차가 와가지고, 응급실에 도착해서 아부지는 제일 먼저 뇌 씨티를 찍으러 가셨고, 아버지 검사하러 가신 사이에 의사가 와서 별 달리 잘못드신거 있냐고 물어봤는데, 그제서야 복어가 생각나더라. '어제 복어 먹었는데, 혹시...' 하니까 듣자 마자 의사 표정이 조나 심각해졌어.
진짜 X된줄알고 쳐다봤는데 '아, 저도 복어 독 증상은 잘 몰라서, 알아봐야겠네요.' 이러고 사라짐;;
그러는 사이 아버지 사진찍고 오셔서 피검사하는데 산소포화도인가 그거 본다고 일반 피검사랑 달리 발에서 피를 뽑는데 이게 엄청 아픈가봐. 183에 97키로 거구이신 아부지가 주사맞는데 식은땀흘리시더라.
조금 지나니까 의사가 와서 '다행히 뇌에는 문제가 없고, 복어 독 때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주무시다가 증상이 나타났으면 큰 일 날 수도 있었는데, 다행이군요. 어쨌든 복어 독은 24시간정도 지나면 신체에서 모두 사라지니까, 24시간만 입원하셨다가 돌아가시게요.' 이러면서 마치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듯 인텔리하게 말하고 갔어.
참고로 복어 독은 뭐 장기를 녹이거나 하는 게 아니라 숨구멍을 부풀려서 숨을 못쉬어서 죽는거래. 별다른 치료법 없이 숨만 잘 쉬면 24~48시간 안에 모두 배출되고.
엄마 아부지 나 셋 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엄마는 일하러 가시고 나랑 아부지랑 병원에서 하루를 보내는 걸로 했지.
아부지도 마음이 많이 놓이셨는지, 눈이 심심하니 신문을 사오너라. 발이 시리니 양말을 가져오너라. 하면서 왕노릇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하인처럼 바쁘게 움직였어.
편의점에서 양말을 사왔는데 어제 봤던 주방장 아저씨가 허리를 120도로 굽히면서 아빠한테 사과하고 있더라. 엄마가 전화를 했나봐. '복어는 양식은 독이 없고 자연산에만 독이 있습니다.' 라고 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어.
아빠가 '큰 일 안 났으니 됐습니다. 자다 그랬으면 죽을 뻔 했다는데, 일단 안 죽었으니 다행이지요. 자다 그랬으면 죽었는데.. 아, 맞다. 자다 그랬으면 죽었죠?' 이러니까 아재 울상돼서 명함 주면서 '치료비는 부담하겠습니다. 연락 주세요' 이러고 갔어.
그리하여 두 시간에 한 번씩 발에서 피 빼는 것 빼고는 아무 무리 없이 하루가 지나갔고, 우리 아버지는 건강하게 퇴원했고, 합의금도 꽤 받았으며, 우리 식구는 두 번 다시 복어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끝이났어.
쓰다 보니 재미도 없고 길어지기만 했네.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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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요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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