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으로서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하죠.
그리고 이런 속내를 보일 수록 약해 보인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어요. 약한 건 사실이니까요.
저희 아버지는 사업가세요.
아버지는 한때 정말 잘 나갔죠.
김포일대에 땅이 있었고, 공장을 가지고 있고 ,여러가지 사업을 했죠.
포기할 줄 모르고,늘 다른사람에게 기죽지 않았어요.
그런 아버지 존경했냐? 한때는 했어요.
사랑하냐? 아뇨.
오히려 혐오하죠.
아버지는 젊은 시절, 딱 저보다 한두 살 어릴때부터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때 아버지는 사업 자본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어요.
아버지를 마음에 들어하는 어떤 사모님께서 남편이 월남전때 받아오던 금덩이를 아버지에게 던져주셨거든요.
아버지는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지만
사모님께선 계속 금덩이를 던져줬다고 해요.
그러고 아버진 결국 사업을 일으켰죠.
그래서 저희 가족은 설날 추석때면 늘 그분께 찾아 뵈었어요.
철모르던 시절은 그저 좋기만 했죠. 비싼 장난감도 많고, 팩게임기 시절때 시디 게임기까지 갖고있었을 정도였으니까.
외가는 도통 가지를 않아서 지금은 서먹할 정도가 되어버려놨지만, 적어도 그분 가족들과는 많이 친해졌죠.
그 사모님의 며느리가 우리 아버지를 가리켜 "우리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대놓고 할정도면 많이 친한거였겠죠...
...어머니는 정말 가기 싫어하셨지만, 이런 관계는 제 친형이 결혼하고 형수님까지 데려갈 때 까지 유지됐었어요.
아버지는 늘 수습이 안됐던 분이세요.
사업도 하다가 싫증나면 그냥 벌려놓은 채 수습도 안해놓던지라 어머니께서 많이 고생하셨어요.
언제는 요식업, 언제는 땅장사, 언제는 건축, 언제는 가구만들다가
나중엔 도자기까지 투기 목적으로 샀어요.
김포에 땅도 비싼 값애 매매했지만
그 많은 돈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사업한다고 다 쓰셨죠.
이런 마당인지라 어머니와 아버지 관계는 최악이였어요. 스무살 초중반
그래도 아직 집에 돈이 있었고, 강화에 번듯한 삼층짜리 집이 있었을 때 일인데
한번은 이런 상황을 못견뎌하시던 어머니께서 농약마시고 죽어버리자고 병에 농약을 담아 식탁위에 올려 아버지에게 건냈어요.
성질이 강하신 아버지는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농약을 한손으로 확 쳐내버렸고
부엌은 농약으로 뒤덮였어요.
농약은 부식성이 참 강해요. 농약으로 숟가락 젓가락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건 처음봤어요.
어머니께선 다리가 안좋으셔서 가족들이 2, 3층에 살 때 1층 부엌 옆에 불투명한 유리문으로 막아둔 방에서 지내셨는데
하루는 아버지는 그 유리문 너머로 어머님께 얘기를 걸었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마침 어머니는 안계셨고, 그것도 모르는 아버지는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걸로 착각하고
벽돌을 가져와 유리문을 내리쳤어요.
그러니 손에 거의 2~30센티가량의 상처가 나 병원으로 모셔가야만 했죠.
이런 큰 일들은 가끔가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큰 싸움이 매월마다 있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반항적이였던지라 나가 살겠다 고집을 부리며 형하고 싸울 때였는데
그런 극단적인 모습을 보다 보니 나가는게 힘들다는 생각을 했고, 독립하는 걸 사실상 포기했어요.
당시때부터 아버지께선 포부가 있으셨어요.
미래 지향적 사업을 하신다고, 오래 전 부터 하고싶어 하셨다고 말씀하신 돔 건축물 연구를 시작하셨죠.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 한 돔 형태의 건축물인데
1,2층짜리 단독 주택에 씌울 수 있는 형태의 돔이예요.
아버지 주장대로라면 사시사철 어떤 날씨에도 끄떡없고, 언제든지 똑같은 날씨를 조성해 줄 수 있는 건축물이죠.
저는 암만봐도 그걸 만들기에 아버지가 걸어온 길이 그것과 상관이 없어보였어요. 전문 지식이 더 필요해 보였죠.
하지만 어쨌든 사업을 성공하셨던 분이셨기에 가족들은 믿었죠. 성공할거라고.
그 시기때부터 아버지가 전혀 수익성 있는 활동을 안하셨는데
이때부터 집이 눈에띄게 힘들어지기 시작했죠.
아버지는 이 사업이 누군가 귀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가족들의 힘이 필요하다 했죠.
그래서 가끔 도와드리기도 했지만, 그걸로 만족하실 분도 아니였거니와...
일단 당장 돈이 안되니까 어떻게 도와드릴 순 없었어요.
하지만 아버지께선 아들들이 이 일을 어떻게든 돕기를 원하시다 보니 집요해지셨고...
이 무렵부터 아버지와 사이도 본격적으로 소원해지기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자신이 벌어오신 돈을 대부분 돔 연구사업에 전부 쓰셨고
저희는 이미 일찌기 유산을 포기했던지라 아버지 일은 아버지 일이다 생각하며 신경을 껐어요.
되려 그럴 수 있는 자격은 있다고 생각했고, 돈이야 이제 아들들이 벌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스무살 중반 무렵, 형은 우리 집안 소유 공장에 들어갔고
아직 집안이 기울어지지도 않았던지라 저는 대학에서 공부했죠.
아버지는 늘 집에 돈이 많다고 말씀을 하셨던지라 그 말만 믿고 걱정없이 살았어요.
하지만 집안이 급격하게 기우니까, 견딜 수 있는 건 많이 없었어요.
우리는 갖고있는 재산을 처분하고, 집을 팔고. 아버지 앞으로는 천문학적인 빚이 늘어가서
이시기에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상속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로 이혼을 하셨어요.
아버지는 결국 파산했고, 어머니는 공장에 작은 컨테이너로 들어가시고
저도 16년 여름쯤에 혼자 살기 시작했죠.
어머니의 불안증세가 심해지던 시기였던지라 강화도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구요.
매주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찾아와 서로에 대한 푸념을 죽 늘어 두시곤 했죠.
그래도 그게 두분 사는 스타일인가 싶어 크게 관여하진 않았어요.
친구도 아는사람도 별로 없는 저 역시도
그나이 때까지 다른 부모님들도 그렇게 싸우고 사는구나 하며 가볍게 넘어갔어요.
그러다 작년 여름에 일이 터졌죠.
그 어머니께서 호신용 총으로 아버지를 쐈다는 얘기였어요.
전후 사정을 들어보니 참 기가 막혔어요.
당시 강화도에 있던 집을 팔고나서 4억정도 생겼었는데
일단 2억은 담보대출 값고
1억은 결혼하는 형에게 집하나 장만해 주고
나머지 1억중 5천은 아버지 사업금
그중 3천은 컨테이너 하우스
2천을 금고에 남겨두셨는데
아버지는 이 2천마저 써버리시고
어머니가 공장에서 가져가는 월급의 반마저 달라고 강짜를 부리고 있었어요.
저는 아버지가 저희 스무살 넘어서부터는 적어도 때리진 않는다고 들었는데
스무살 초반쯤에 격렬하게 반항했던 저만 빼고 어머니와 형을 계속 때렸다고 공장 식구들이 증언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16년도 말에 이미 크게 한번 싸우셔서 어머니는 자신이 3천이란 돈으로 마련해 둔 컨테이너 하우스를 아버지께 내주고
당신께선 공장 뒷편 창고로 쓰던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집으로 살고 계시던 마당이였어요
화장실도 없어서 밤마다 40M는 걸어가시고
공장 식구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셨죠.
전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생각해봤어요.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이유가 뭐지?
아버지가 과연 우리를 사랑하시던가?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지?
기억을 돌이켜보니 매번 당신 자존심 다칠때만 아들들을 후두려 패시던 당신이셨고
당신께서 있는돈 없는 돈 긁어모아 사업하시느라 집에 몇십만원밖에 안던져줘서
아들들에게 남이 입던 옷 주워다 입혀서 구멍이 숭숭뚫리고 사이즈가 안맞는 옷을 아이들이 입고다녀도 그걸 교육이라 생각하셨던 분이셨고
당신의 장모님, 외할머니가 1층 부엌방에 계신걸 뻔히 아시면서도 새벽 네시에 아들보러 1층에 내려가 참외를 깎아오라 시키시던 분이셨어요.
할머니 생각해서라도 물 마시고 참으시라 말씀을 드려도, 그 물 아들 얼굴에 끼얹을줄 밖에 모르시던 분이셨구요.
모든 울분이 다 떠오르고
효도할만한 이유나 근거가 눈씻고도 찾을 수 없었어요.
전 그렇게 공장으로 들어왔어요.
밤이면 대남방송이 들리고, 따듯한 날에도 산바람으로 춥기만 한 산 공장 컨테이너로 말이죠.
컨테이너는 전혀 방한이 안되서 영하까지 내려갔고
밖에서 자는지 안에서 자는지 전혀 구분이 안될만큼 추운 곳이였어요.
이런 곳에서 어머니는 사시고 계셨어요.
아버지와 정말 크게 싸웠어요.
이정도로 실망을 시킬줄을 몰랐고
아들들은 몰라도 최소한 당신 힘겹게 모셔온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집한채 마련해 주지 못한거에 미안해 하지 못할망정
아직도 그 돔 타령이냐고.
십년동안 한푼 못벌어오면서, 재산 다 까먹었으면 됐지
더 무슨 희생을 원하냐고.
그래도 여전히 당신께서는
자기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희들이 몰라서 그런다고 되풀이 하실 뿐이였죠.
저희 친형은 한때 중국에서 hsk도 11급을 땄을 만큼 재능 있었어요.
그리고 공장에 들어와서 공장을 경영하며 돈을버는 꿈을 꾸며 경리일을 소화해 왔어요
공장 직원들에게 월급줄 돈으로 자기 사업할 돈을 주라고 강짜를 부리며 때리던 아버지의 손길을 견뎌가면서
그 고된 일을 소화해 왔어요.
그런 형, 지금 딸내미 먹여살릴려고 빵공장에 들어갔어요.
공장도 기울대로 기울어서 빚만 8억이고
일거리도 반년정도 없다보니 여기저기 돈을 빌리는 상황을 도저히 못견디고
빵공장에 들어갔어요.
갑자기 형이 나가고, 빈자리가 생기니까 채울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일을,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일을 갑자기 배우려니까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단순한 산수조차 못하냐고. 단순한 주문하나 처리 못하냐고.
부사수로 몇개월 걸쳐서 배운것도 아니라, 딸랑 하루 배우고 일하려니까 진짜 못하겠어요.
지금도 겉돌아요. 직원들도 저한테 말도 안걸구요.
아버지가 파산하기 직전에, 어머니에게 명의 이전해 둔 공장이예요.
일단 법인으로 전환해서 어머니가 부담해야 할 빚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억대단위 빚이예요.
만약 이 공장이 이대로 무너지면 어머니. 잘못하면 교도소도 갈수 있다고 해요.
공장 직원도 대여섯명이 전부고, 그마저도 나이드신 공장장님마저 쓰러지면 모든걸 스톱시켜야 하는 공장이예요.
산 깊숙한 곳에 있는데다 돈도 없어 제대로 된 경리 직원도 고용 못해서 형이 경리일 하던 공장이예요.
어머니는 희망을 품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공장을 붙들고 계시면서
아들 독립해야 한다고 늦은나이에 캐드배우고 엑셀 배우고. 기를 쓰고 계세요.
불과 6개월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내 인생을 설계해 볼까. 그렇게 꿈꿨어요.
그런데...이 모든게 너무...준비도 없이 갑자기 들이 닥친 기분이예요.
솔직히 저 견디기 너무 힘들어요.
도망치고 싶어요
그런데 그럴수 없어요.
진실을 보지 못한 댓가가 너무 무겁고
어딜가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없다는게 너무 힘들었어요.
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하루를 버티려고 노력해요
그런데...너무 힘드네요.
용기내서 한번...이렇게 말해봤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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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창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