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4살의 나이, 교통사고로 요절한 젊은이에게 별도의 약력 따위, 애초부터 필요 없을지 모른다.


중요한 건, 왜, 그가, 지금까지도, 영원한 젊음의 우상으로 회자되고 있느냐니까. '제임스 딘'이 영화배우로 활동한 기간은 불과 2년 남짓, 그가 출연한 영화는 단 3편에 불과했다. 하여 ‘험프리 보가트’는 이런 말을 남긴다. "제임스 딘은 제때에 죽었다. 그가 살았더라면 평생 가도 절대 이런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그는 최고의 인기를 누릴 때, 그렇게 최고인 상태로 우리 곁을 떠나갔기에, 청춘의 아이콘으로 불멸을 얻게 된 거라.



일본 AV업계에도 ‘야동계의 제임스 딘’이라 회자되는 여배우가 한 명 있다. 불과 2년 남짓, 최고의 인기를 누릴 때, 단 3편의 작품을 끝으로 은퇴해 버린, 야동계의 제임스 딘, 야동계의 심은하.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보석 같은 배우. ‘아야카 오이시（Ayaka Oishi）’



웬만한 연예인들 중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청순한 마스크

밀가루 반죽과도 같은 하얀 피부와 왠지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수줍고 해맑은 미소, 청순 단아한 외모와는 너무도 이질적인 AV배우라는 직업, 그 묘한 이질감이 만들어 낸 긴장도와 성적 판타지, 그것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내가 ‘아야카’를 알게 된 건 2006년 봄이었다. 어쩌다 그렇게 다운 받은 작품이 ‘아야카 오이시’의 , 그녀와의 첫 만남은 그리 시작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본.... 그 작품에서 그녀는 웃는 얼굴로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 눈물을 흘리는데, 우는 게 아니라 웃어? 저게 연기인가? 아니다. 뭔가....진정성이 느껴지는 장면. 헉, 당황했다. 왜? 다른 여러 배우들의 작품도 함께 받아 보았지만, 모두가, 마치, 돈 받은 만큼은 열심히 임하겠단 자세로 가식적 오르가즘의 환희와 탄성을 내뱉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헌데, 그녀는 아니다. 저 눈물은, 그리고 눈물 속의 저 어색한 웃음은, 저건 연기가 결코 아니다. 순간 물밀듯이 밀려오는 죄책감, 아, 뭐야. 씨... 졸라 짜증나. 왜, 내가, 한낱 AV 배우 따위에게 죄책감을 느껴야 해... 그럴 거면 애초에 이 직업 택하지 말 것이지...씨...모야 이거...













첫 작품에서 그녀는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그 후로 무수히 많은 야동들을 두루 섭렵했어도, 단 한 번도 나에게 죄책감을 안겨 준 배우는 없었다. AV를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는듯 프로페셔널하게 임하는 모습들이었으니까.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이는, 오직 ‘아야카 오이시’ 뿐이었다. 어느 날 궁금해졌다. 내 죄책감의 실체가. 난 그녀의 눈물에서 뭘 느끼고 죄책감에 시달린 걸까, SOD사의 수많은 기획물에서도, 최악의 막장기획으로 여배우들에게 고소당한 Bakky사의 작품들에서도, 이런 죄책감 따위 추호도 느껴본 적 없거늘... 해서, 그녀에 관해 이리저리 알아보기 시작했었다.















역시나 ‘아야카’라는 이름은 가명이었다. 뒤에 ‘오이시’는 맛있다는 뜻이고. 아야카 오이시...그녀는 원래 ‘히로코’라는 이름의 그라비아 모델이었다. 그것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하지만 2002년 어느 날 AV계로 진출. 아이돌（The Idol）, 메모리（Memory）, 섹슈얼 모놀로그（Sexual Monologue）까지. 단, 세 작품만을 남기며 2004년 홀연히 은퇴한다. 남자 친구가 빚이 많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 뿐 아니라 집안에도 빚이 꽤 많았다고.. AV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는 인터뷰에 그녀가 이렇게 답한다. "빚을 갚을 돈을 벌게 해주었지만 동시에 내 눈에 눈물이 맺히게 만든 것" 사실일 거 같다. 그녀의 모든 작품엔 쑥스러운 미소와, 부끄러움, 그리고 후회의 눈물이 가득했으니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일본 AV업계에서 그녀 정도의 외모면 출연료가 회당 최소 수백만엔 급이다. 근래에 가장 인기 있는 ‘아키호 요시자와’가 매 달 2편 정도의 작품을 찍는데, 년 평균 수익이 1억 8천만엔 가량으로 알려졌으니까. 한화로 12억 이상인 거지. 그래서 잘 나가는 AV 배우들은 20대 때, 벌 만큼 바짝 벌어서 은퇴한다. 그리고는 성형수술을 하고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사람으로 산다. AV배우들 중에는 부동산 부자도 꽤 되는 걸로 알려지는데, 외모가 되는 소수 A급 배우들의 경우, 그만큼 중상류층으로의 진입이 가능한 분야이기도 하다. 헌데 그녀는 딱 빚을 갚을 만큼의 작품 세 편만 찍고 바로 은퇴를 해버린 거다.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야동을 찍은 생계형 야동류의 甲, 빚을 갚을 때 까지만 AV를 찍은 관계로, 현존하는 작품이 3편밖에 존재하지 않는, 데뷔 촬영 후 펑펑 눈물을 흘렸다는 뒷이야기로 일본에서도 상당히 유명했던 배우. 호시료, 모모 타카이와 더불어 내 기억 속 영원한 AV 3대 본좌. 야동을 보며 죄책감을 느끼게 했던, 보는 맘을 아프게 했던....유일한 처자. 그런 마음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첫 편을 찍을 때, 섹스 중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울어서 스텝과 남자배우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다는 이야기.


저 정도의 청순하고 맑은 얼굴이면 연예계 데뷔도 가능했을 텐데...보면 볼수록 안타까운 마음이다. 최근에 데뷔한 AV배우들 중에서도 귀엽고 예쁜 배우들은 많지만, 뭔가 인공적인 측면이 강하다. 반면 그녀는 뭔가 다른, 천연의 매력이 있는 배우였다. 부끄럽고 허탈한 웃음, 눈물, 연기가 아닌 자연스런 후회가 묻어나는 어색한 표정,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청순한 마스크, 실핏줄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피부, 한눈에도 알 수 있는, 왠지 이쪽 업계분이 아닌듯한 외모, 딱 세편만 찍고 떠난 희소성, 알몸을 보면서도 ‘떡’ 따위 불경스런 단어를 사라지게 만드는 순결함, AV배우에게 순결함을 느끼다니...（웃음） 헌데 그렇게 된다.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상대 남자배우의 성기를 눈앞에 두고 얼굴이 빨게 지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과 수줍은 민망함은 연기가 아니니까. 걸핏하면 '야매떼~' 거리며 오바질 하는 닳고 닳은 배우들만 보다가 그녀를 경험하게 된다면 당신의 취향은 '아야카' 이전과 '아야카' 이후로 나뉘게 될 게다. 정말 청순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과장 없이 수줍어하고 촬영 중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진정한 AV의 진수를 깨닫게 될 테니까.

결국 내 죄책감의 실체는, 그녀의 눈물에서 사연을 보았기 때문이다. 시인 김현승은 승화된 눈물의 어떠함을 이야기했다. 자기의 아픔을 자신에게로 거두어 땅에 뿌리는 눈물 말이다. ‘아야카 오이시’의 눈물은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타인을 향해 우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 그러니 그 눈물에선 소리가 안 났고, 웃는 얼굴로 울 수 있었던 거라. 나는 이런 곳에 있을 여자가 아니야, 그 저항을 캐치한 내 감성은 그렇게도 죄책감으로 되살아 난 거였다. 한 인간에게 온전히 감정이입 하여, 그녀를 더 이상 야동배우가 아닌, 성적 도구로서의 여자가 아닌, 한 명의 고귀한 인간으로서 이해와 연민을 갖게 된 거다. 답을 모를 땐 논리 이전에 정서가 우선하는 법이니까. 그렇게도 난 사람을 이해하는데 미리 성역을 두지 않는다.

데뷔작이 상당한 반향을 일으켜 기대치를 한껏 높이던 가운데 홀연히 사라진 야동계의 영원한 아이돌 '아야카 오이시'... 지금은 은퇴 후 사진모델로 활동 중이란 얘기가 근근이 들려온다. 물론 그녀의 컴백을 바라는 이들도 많다만, 다른 배우들처럼 언제 나올까 하는 기대감과 아쉬움을 동반하는 게 아니라, 은퇴를 해서 새 삶을 찾아 다행이라 여겨지는 게 ‘아야카 오이시’다. 우리가 제임스딘을 영원히 기억하듯, 그녀 역시 야동계에 영원히 기억되리라. 자기의 아픔을 자신에게로 거두어 땅에 뿌리는 눈물이, 더 이상 그녀에게 없기를 바라며, 내 '딸감'에서 이제는... 그녀를 놓아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