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과거에는 소위 명문고등학교 라고
불리던 고등학교였다. 낡은 교정은 한때는 전통이 있는 고등학교! 라는 명목하에 멋지게 보였을지 몰라도

내가 입학하던 시기에는 성적으로 입학하는 그런것이 폐지가 되어서 그냥 평범한 인문계가 되어있었다.

성적을 매겨 입학하던 제도가10년전에 폐지가 되었는데.
원래는 그 고등학교는 들어가기도 힘든데다가 기숙사까지 딸려있는 형식으로 학교에서 먹고자고 하며 그야말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고했다.


근데 그 때에도 그랬지만, 성적제가 폐지되고 나서도 원체 학교자체는 멋이라는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음산하다면 음산하달까?

내가 그곳을 다니면서도 느낀건 무겁고 축축한, 그러나 서늘한 무언가였다.

학교의 절반이 그늘지곤 했는데. 보통 그늘이라 함은 시원하기 마련인데. 그늘이 져도 항상 느끼는건 시원함이라기보단.
축축한 느낌의 서늘함..?

이게무슨 개 소리냐만은 정말 내 짧은 어휘력으로는 그런설명밖에는되지 않았다.


학교가 그래서였을까? 명문고였던 시절에도, 내가 입학을 앞둔시기에도 학생들이 자살하거나, 사건사고로 죽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

교장선생님은 꽤 나이도 지긋한분이셨는데.
한때 명문고라고 불렸던것에 대한 자부심인건지, 그냥 앞으로의 학교의 앞날에 대해 걱정을 했던것인지

학교에 무당을 들여 굿을 했었다고 했었다.

그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내 친구들과 그 학부모님들은
교장선생님이 늙어서 그렇다. 쓸데없는데에 돈을 쓴다.
자살하는아이들이 기가 약해서 그렇느니 .
자살이랑 무당이 무슨 관련이냐 등등 교장선생님의 그런결정을 타박하는 말을 하곤 했었다 .



어쨌든 나이를 먹고 자연스레 그곳에 배정되어
나와 친구들은 그 고등학교를 다녔다


처음에는 아무렇지않았다. 우리들끼리는 낄낄거리면서
별것없다며 이야기를 하곤했는데

한창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야간 자율학습을하던와중 1학년 신입생들사이에서 괴담이 생겨났다.

1학년과 2학년이 있는 1관에서 귀신이 보인다는거였다.

이 빌어먹게 오래된 학교는 특이하게도 1관 2관으로 나뉘어있었고 1,2학년은 구옥같은 1관에서 , 새로지은 2관은 3학년이 사용하는 구조였다.


중간중간 세월을 더해가면서 신식건물과 구 건물이 어우러진 형태는 참 안어울리기가 짝이없는데다가, 안그래도 지어진지
얼마 안된 새건물은 3학년만 쓰는데 이 구린 1관을 써야하는 마당에 귀신까지 나온다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신입생은 불만으로 툴툴거렸었다.


와중에 귀신이 보인다는 괴담은 계속계속 몸집을 불려나갔고 먼 과거에 1관의 어디에서 누군가가 목을 매서 죽었다더라. 등등의 이야기까지 들려왔었다.

나중에는 수업시간에 자투리 시간이 남으면 선생님들에게 학교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쉰소리하지말고 공부나 하라며 선생님들에게 일침을 맞기가 일쑤였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나는 코웃음을 쳤었다.

내 성격은 소심하기가 짝이없었지만, 일명 기가 세다, 강하다 라는 소리를 꽤 들었었다. 귀신에게 홀리지 않는 체질? 단한번도 가위를 눌린적도. 헛깨비를본적도 없었으니까.

귀신이란것 자체를 믿지도 않았었고. 심령이나 오컬트따위는 요만큼도 관심도없었다.


귀신이라니, 당연히 그나잇대에 당연히 재미삼아 퍼질만한 이야기이려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제목에 적은 물 소리를 들었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평소같은 금요일이었고 , 다른날과 다를바없이 맛없는 석식을 먹고 야자시간을 맞이해 문제집을 풀었다.

한참을 풀다가 문득, 나는 소변이 마려워졌었다.


난 슬쩍 , 교실의 당직 선생님에게 다가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했었고.

당직선생님은 그런건 제발좀 미리미리 다녀라 하며 핀잔을 주었다.

교실밖을 나와 긴 복도를 지나며, 다른 반에서 들려오는 문제집넘어가는 소리, 발자국 소리, 그리고 초여름에 들려오는 작은 풀벌레들 , 그리고 복도를 걷는 내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화장실에 도착한 나는 변기에 앉았다.


한참뒤 슬그머니 일어나려는때에 키득키득 거리며 속살거리는 여자애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바깥에있는 손을 씻는 세면대쯤이었을까? 더불어 물소리가 함께들렸다 .

찰박찰박 손을 씻는 소리와 여자아이들의 목소리


걔가 그랬다니까, 그래서 국사문제말인데,

그래 그거 답이 3번인가 그랬었지?


속살거리며 떠드는 목소리에 나는 천천히 일어나 옷을 가다듬었다.


아- 모르는 애들이 있으면 나가기 뻘쭘한데- 언제나가는거야?


나는 조금 푸념하면서 그 아이들이 얼른 나가길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 여자애들은 나갈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한참 자기들끼리 시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그 이야기에 온갖 푸념을 섞어가며 말하는통에 전혀 끊길 기색이아니었다.

슬슬 짜증이 난 나는 변기의 물을 내리며 문고리를 돌렸다


달그락-


왜인지 몰라도 문의 잠금장치를 여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들리는것만 같았다.





문고리를 돌리는순간 그 여자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입을 다물었다.

물소리만이 들려왔다.



쟤들도 누가 있었다는걸 알고나니 창피했나보지?

나는 투덜거리며 문을 열었다.

하지만 눈앞에 들어온건 아무도 서있지 않은 세면대들과
틀어진채 물만 줄줄 쏟아지는 수도꼭지였다.


언제 나갔지? 이렇게 빨리나갈수 있다고? 조금의 발자국소리도 없이?

나는 의아한 느낌과 동시에 무겁고 눅눅한 공기를 느꼈다.


여름이라 후텁지근한거야.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되뇌였다.

빨리나간거야. 나도 누가 내 이야기를 엿들었을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창피하니까.


나는 문득 세면대에 달린 거울을 보기가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게슴츠레 바보처럼 뜬 나는 손을 황급히 씻었다.

그리고 틀어져있던 꼭지를 다시 잠갔다.



그리고 최대한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천천히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래 충분히 있을수 있는 일이지.



막 세걸음쯤을 걸어갔을때 화장실에선 다시 누군가가 꼭지를 젖혀 트는 소리가 들렸다


물소리가 들렸다.




나는 발이 얼어붙기전에 다급하게, 그렇지만 최대한 태연하게 다음 발자국을 옮겼다.



“야. 쟤 갔지?”

아까 그 여자애들중 한명의 목소리가 물소리와 섞여 키득거리며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교실로 냉큼 달려갔다.


더이상 그곳에 있기 싫었다.



나는 그 뒤로 그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우리교실의 2층 화장실이었는데, 아무리 번거로워도 3층이나 1층에 가곤했었다.


2학년이 되었을때. 교장선생님은 왜인지 2층 화장실을 메꾸고 다른 화장실을 만들어버리셨다.

전기 배선과 수도관 문제때문이라고 했다.

시도때도없이 꺼졌다 켜지는 불, 자꾸만 물이 새는 수도관.


그날 내가 경험한것은 나만 겪었던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배선문제라고했지만 과연 그게 배선의 문제였을까?

그럼 그 여자아이들은 누구였을까?

수도꼭지는 누가 비틀어서 물을 틀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