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고 해서 마냥 선한 것은 아니며, 요괴라고 해서 무턱대고 악한 것은 아니다.

요기란 것은 본이 쉽게 마음을 흩트려 놓는 법이다만,

요기 한 톨 없는 인간 역시 쉬이 마음이 흐트러지기 마련이지 않느냐.”

요괴를 부리는 재주가 있다 하여 요괴영감이라 불리는 노인은

앞에 서 있는 청년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니 사람이건 짐승이건 요괴건 언제나 마음을 수양하고 정진하는걸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내 요괴를 부리는 재주로 뭇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만,

단 한 번도 부끄럽거나 떳떳하지 못한 적이 없다.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요괴일지라도

언제나 독이 아닌 약으로,

무기가 아닌 방패로 다루었다.

나쁜 일을 막고 옳은 일을 행함에 썼다 자부할 수 있지.

허나, 너는 어떠하냐?

언제나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고, 선을 수행하는 데 네 배움을 사용하였느냐?”

청년은 대답 없이 그저 가만히 노인을 내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지 않겠지. 그럼, 넌 지금껏 내게 배운 재주로 무얼 하고 싶으냐?”

청년은 그제야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고 싶습니다.

요괴를 다루어 약으로도, 방패로도 쓰고,

또 필요하다면 독으로도, 무기로도 쓸 것입니다.

스승님의 생각은 너무도 단단합니다.

선악을 구별하는 그런 비효율적인 사상 따위는 버려야 하지요.

머지않아 선도 없고 악도 없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제가 그 변화의 중심에 서겠습니다.”

노인은 체념한 듯 크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나 저 마음 하나만은 처음 그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짜고짜 찾아와 제자가 되겠다던 청년.

노인은 다소 불길한 예감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청년에게서 무서울 정도의 재능을 느꼈기에 그만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제자로 받았다.

역시나 청년은 고작 몇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놀라울 정도의 성취를 이루었지만,

저 비뚤어진 정의관과 날이 선 듯한 야심만은 도무지 고칠 수가 없었다.

“진작 내쳤어야 할 것을.... 아니, 애초부터 들이질 말아야 할 것을...

내 재주의 명맥이 끊길까 두려워 내 손으로 괴수를 만들었구나.”

노인은 핏물 섞인 기침을 토해내어 옷을 붉게 적셨다.

청년이 부리는 요괴가 폐부를 뽑아내다시피 하였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청년은 가만히 말을 이었다.

“이제 스승님께 더 배울 것이 없으니 세상으로 나가보고자 합니다.

혹여나 이 재주가 다른 이에게 전해지면 제 입지가 좁아질 테니

이리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못난 제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스승님.”

스승의 눈이 빛을 잃자 청년은 가벼운 목례를 남기고는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세상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것도,

왕으로, 신으로 군림하는 것도 능히 가능하다 여겼다.

허나, 그런 것은 청년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청년은 조용히 움직이며 자신의 재주로 세상을 조금씩 물들여 가고 싶었다.

수묵화에 떨어진 물 한 방울처럼,

아무도 모르게, 시나브로 존재감을 점점히 번져나가게 하고 싶었다.

물론 돈은 그의 궁극적 목적이자 이유 그 자체가 될 터였다.

금전이 많이 쌓일수록 자신이 유능한 것이라 여겼으니까.

때문에 그는 스스로를 장사치라 생각했다.





“은밀히 진행 해야 하는 일이오.”

복면을 쓴 누군가가 조심스레 말하자 청년은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무슨 일이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드리지요.

물론 저 역시 장사치인바.

충분한 금전을 지급해 주셔야 함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복면의 사내는 주저 없이 품에서 돈 자루를 꺼내 주었다.

“착수금이요. 제대로만 한다면 이만큼 더 지급하지.”

청년은 주머니 무게를 가늠해 보고는 조금 아쉬워하는 얼굴이었으나,

물리지는 않았다.

“제 맘 같아선 이것의 곱절은 받아야 할 터이지만,

처음으로 맡는 거래니, 신용을 쌓는 의미로 수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요는 그 기세등등한 무인 집안의 기를 확 꺾어놓으면 된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렇네. 방법은 상관없네만 그 태산 같은 무인 놈이 기를 못 펴도록 해주게.

병을 퍼트려도 좋고, 근심을 심어주어도 좋네.

어떻게 해서든 식음을 전폐하게 하란 말이야.”

청년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걱정 마시지요. 아주 훌륭한 방도가 있습니다.

두고 보시지요. 내일 해가 뜨기도 전에,

그 기세 좋은 무인 집안의 허리가 끊길 것입니다.”






청년이 무인 집안 앞에 당도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잠든 새벽녘이었다.

“아쉽습니다. 적당히 기세나 꺾어놓으라니요.

제가 가진 재주만 있으면 마을을 통째로 지옥굴로 만들 수 있을 텐데,

온 사방을 불바다로 만들어 개미 새끼 하나 살아남지 못할 능력을 갖추고 이리 시시한 일이라니.

하지만 장사치는 신용이 생명.

원하는 바를 확실히 이루어 주는 것 역시 능력이겠지요.”

청년은 품에서 작은 대나무통을 꺼내었다.

가볍게 통을 흔들어 마개를 슬며시 열자,

그 안에서 작은 불씨 몇 개가 하늘하늘 날아올랐다.

그 불씨들은 청년이 부는 휘파람 소리에 따라 천천히 바닥에 내려앉더니,

활활 타오르며 점차 요괴로 변해갔다.

온몸이 불로 된 이리. 불이리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요.

친족 두어 명 정도 불태워 버리면 아무리 강인한 양반도 주저앉을 것입니다.”

불이리 들은 청년의 명에 따라 서둘러 대감댁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잠시간의 침묵 후,

“불이다!”

“요괴야!!!”

비명과 함께 대감댁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즐거운 구경거리라도 된 양 멀찌감치 떨어진 나무에 앉아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던 청년은,

한순간에 얼굴을 굳혔다.

불여우가 잡일꾼 몇을 태우고 물어뜯는 걸 보고 이제 시작이다 싶었는데,

갑자기 큰 칼을 들고 나타난 누군가가 자신의 불이리를 베어 넘기는 걸 본 것이었다.

“범 같은 기운을 가진 대감이라더니 과연 그러하군요.”

집에 불이 붙고, 식솔들이 죽거나 다친 상황이었기에 의뢰로서는 완수한 셈이었지만,

대감의 칼질에 자신의 요괴가 죽어 나자빠지자 청년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소정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이대로 끝내기에는 제 자존심이 허락지 않습니다.

그리 대단한 인물이시라면 이것도 막아 보시지요.”

혼잣말을 중얼거린 청년은 대통의 뚜껑을 열고 불이리를 더 불러내었다.

허나, 수많은 불이리를 보고도,

타오르는 집과 식솔들의 비명을 듣고도 대감의 기세는 변함이 없었다.

그야말로 태산 같은 굳건함으로 요괴들을 베어 넘기고 식솔들을 지킬 뿐이었다.

“제 인내심을 시험하시는군요. 좋습니다. 저 역시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청년이 대통안에 있던 모든 불이리를 꺼내자, 대감 역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불이리의 불길을 온몸으로 막으며 식솔들을 지켜왔지만,

이미 이글대는 불길이 집안 기둥까지 무너트리고 있었고,

멀쩡히 서 있는 식솔 역시 점차 줄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불이리를 두 동강 낸 대감이 고개를 들었을 때,

주변에 남은 것은 불에 탄 시체와 거대한 불길 아래 스러져가는 기와집 뿐이었다.

요괴가 반토막 날 때마다 얼굴이 차갑게 식어가던 청년은 그제야 웃음을 되찾았다.

“귀수 같은 대감이시군요. 하지만 이번엔 제가 이겼습니다.

그 꼴로는 얼마 버티지 못하시겠지요.

뭐, 일을 크게 벌인 통에 신용이야 좀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그냥 만족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장사란 것은 언제나 공을 치기 마련이지요.”

청년은 나무에서 내려와 천천히 마을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먼 곳에서부터 도령 하나가 대감댁으로 달려들어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 어머니!!!!”

아무래도 그 대감집 자녀인 듯 보였기에 마무리겸 손을 쓸까 하던 청년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했다.

모든 것을 잃고 마음이 부수어진 사람은 훌륭한 고객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비극일지라도 다소 여운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

그것이 청년의 방식.

귀신과 요괴를 파는 장사꾼.

귀장꾼 자리공의 방식이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