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바다는 다른 바다와는 느낌이 다르다.

아마도 검은 현무암이 뿜어내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칙칙한 색과 불규칙하게 뚫려있는 구멍들.

그것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감각이 온몸을 덮치곤 한다.

특히나 흐린 날은 더더욱 그 감각이 심해져 불쾌감까지 느껴진다.

남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바위굴 사건을 겪은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바위굴… 나는 그날 그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 ***



오래전 일이다.

당시 군인이던 나는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왔었다.

첫 휴가인 만큼 고향인 제주도에서 쉬기로 했다.

부모님의 환대를 받으며 그리운 고향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동네 친구들도 대부분 군인이거나 타지로 떠나있어 만날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무료하게 보낸 지 며칠째.

그날도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동네 슈퍼를 향해 걷고 있었다.

- 빵

갑작스러운 경적에 옆을 쳐다보았다.

작은 트럭이 멈춰 서더니, 보조석 창문이 열렸다.

[뭐야? 너 휴가 나왔어?]

옆 동네에 사는 사촌 형이었다.

[지난주에 내려왔어.]

[휴가 나왔는데 여기서 뭐 하고 있어?]

[휴가 나왔는데 할 게 없어서 돌아다니고 있어.]

그 말에 형은 잘 되었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럼 나랑 밤낚시 갈래?]

[밤낚시? 나 낚시할 줄 모르는데?]

[그건 하면서 배우면 되지. 일단 타라!]

심심했던 차에 잘 되었다.

어차피 집에 있어봤자 TV나 보면서 남은 시간을 보낼 게 분명했다.

나는 차에 오른 뒤, 엄마에게 사촌 형과 놀고 오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차 안에는 최근에도 낚시를 다녀왔었는지 비릿한 냄새가 남았다.

뒤 칸에는 낚시용품 몇 개와 라면 그리고 간단한 취사 용품이 있었다.

창문 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고, 라디오에서는 유행이 지난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사촌 형과 밀린 근황 얘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다.



*** ***


사촌 형이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출발할 때와 달리 하늘은 흐려져 있었다.

먹구름이 가득했고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형, 이런 날씨에 낚시해도 돼?]

내 걱정 어린 질문에 형은 짐을 넘기며 말을 했다.

[걱정하지 마. 이런 날이 물고기가 더 잘 잡혀.]

건네준 짐을 받고 형을 따라갔다.

조용한 어촌 마을 근처였다.

그 앞에는 검은 현무암으로 뒤덮인 바닷가였다.

형은 바위 밭 사이를 걸어가더니,

[여기야!]

하고 큰 바위 앞에 짐을 내려놓았다.

특이한 구조에 현무암 바위였다.

바위에 굴이 뚫려있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구조였다.

동굴 바닥은 제법 평평했고 허리를 살짝 구부린다면 성인 한 명 정도는 충분히 누울 수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사촌 형은 곧바로 낚시 준비를 했다.

나는 바위굴 안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현무암 특유의 칙칙한 색, 잔잔한 구멍들이 기괴함을 느끼게 했다.

돌 틈 사이에 끼어있는 녹슨 동전들, 찢긴 부적 조각과 오방색 천 조각들

그리고 제사도 지냈었는지 촛농의 흔적도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인이 접근하면 안 될 장소였다.

[형, 여기 뭐 하던 곳이야?]

사촌 형은 낚시채비에 집중하며 설명해주었다.

[여기? 사연 있는 장소지.]



*** ***


몇 달 전,

낚시에 한창 재미가 들린 사촌 형은 자신만의 낚시 포인트를 찾기 위해 바닷가 곳곳을 돌아다녔단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이 바위굴인데, 원래는 늙은 무당이 굿을 하는 장소였었단다.

그러나 그 무당이 작년에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더 이상 찾는 이가 없는 곳이 되었단다.

[그런 걸 누구한테 들었어?]

[이 동네에 있는 슈퍼 사장님한테 물어봤지.]

[뭐 때문에 굿을 했는데?]

[나도 모르지. 아무튼 슈퍼 사장님은 여기 근처도 가지 말랬는데….]

[그랬는데 우리가 여기 사용해도 돼?]

[괜찮아. 여기만 한 곳도 없고, 뭔 일 났으면 이미 났었겠지.]

그리곤 형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때 슈퍼에서도 여기 있는 동전으로 계산했어.]

사촌 형은 어릴 적부터 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겁이 많은 나로서는 굉장히 찜찜했다.

날씨 또한 갑자기 안 좋아져서 바위굴이 더욱 음산하게 보였다.



*** ***


낚시 경험이 없던 나는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캐스팅을 할 수 있었다.

앞서 형이 말한 말과는 다르게 입질은 없었고

무의미하게 미끼만 바닷물에 담글 뿐이었다.

라면을 먹으며 계속해서 시도했지만,

몇 시간이 넘도록 피라미 하나 낚지도 못했다.

그 사이 날은 저물고 바다색 또한 더욱 탁해졌다.

먼지처럼 비가 쏟아지면서 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루함과 동시에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졸음이 쏟아졌다.

[형,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자.]

[1시간만 더 하고, 이왕 온 거 제대로 된 한 마리는 낚아야지.]

사촌 형은 승부욕이 발동했는지 바다만 쳐다보며 말했다.

[피곤하면 굴 안에서 쉬고 있어.]

형은 굴 안에서 들어가라 했지만

바위굴의 사연을 알고 나서는 들어가고픈 마음이 안 생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5분도 지나지 않아 눕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어차피 곧 돌아갈 거니까.‘

나는 바위굴 안으로 들어가 가져온 짐들을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몸을 최대한 구긴 채 새우 자세로 누웠다.

많이 피곤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파도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서일까?

나도 모르게 금세 잠들어 버렸다.



*** ***



잠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추위와 불편함 때문에 온몸이 뻐근해지면서 눈이 저절로 떠졌다.

어느새 빗소리는 굵어졌고 밖은 겨우 바다만 구별될 정도로 어두워졌다.

준비한 랜턴을 들고 형을 향해 다가갔다.

[형, 아직도 하고 있어? 이제 집에 가자.]

낚시에 집중했기 때문일까? 비바람 소리에 내 소리가 묻힌 걸까?

형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형으로 보이는 실루엣에 좀 더 다가갔다.

[형…?!]

그러나 형의 실루엣이 이상했다.

형이라 생각했던 눈앞에 존재는 상체가 비정상적으로 컸다.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랜턴을 형을 향해 비췄다.

상대방은 사촌 형이 맞았다.

좀 전에 모습처럼 그대로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어떤 여자가 형의 상체에 매달린 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 사람은 뭐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매달릴 수 있지?'

당황스러움에 그저 멍하니 쳐다보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여자는 내 쪽을 보는 듯했으나 정확하지 않았다.

눈에 초점이 없었다.

정확히는 눈이 있어야 할 부분이 파여있었다.

피부는 회색에 가까울 정도로 창백했고 피부에는 잔 상처들이 많았다.

억지로 발을 옮겨 형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무표정이던 여자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마치 미소를 짓는 듯했다.

아니, 그것은 미소가 아니다.

입이 찢어지는 것에 가까웠다.

형을 건드리려고 손을 뻗은 순간,

갑자기 형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 여자와 함께.



*** ***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깨어났다.

꿈이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도 생생했다.

급히 밖으로 나갔다.

밖은 꿈에서처럼 굵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상당히 어두웠다.

랜턴을 들고 사촌 형이 있던 자리로 갔다.

형이 보이지 않는다.

낚싯대는 그 자리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다.

랜턴을 물 쪽으로 비추었다.

바다 위에 형이 떠 있었다.

급히 형에게 다가가 건져 올렸다.

다행히 숨을 쉬고 있었고, 얼른 119에 신고했다.

앰뷸런스가 오고, 응급실로 가고, 고모와 엄마가 급히 오고…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형은 다음날 정신을 차렸다.

검사 결과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그 순간에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

형은 낚시를 하던 중 너울 파도에 휩쓸린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휴가가 끝난 나는 부대 복귀를 했다.

군부대에 돌아가고 나서 형이 무사히 퇴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 혼자만 그때의 진실을 기억한 채.

형은 기억을 못 하지만,

나는 보았다.

사촌 형을 건지려고 다가갔을 때,

그 검은 바다 위에서 뚜렷이 보이던 머리카락 덩어리를.

그 물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창백한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