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정확히 10초 후면 도착합니다.”
니콜라이 테킬라 박사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박사의 연구소에는 과학, 정치, 경제계의 거물들은 물론 각 방송국의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의 눈길이 향하고 있는 것은 연구소 한가운데에 있는 넓은 단상이었다. 단상은 텅 비어 있었다. 모두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마음속으로 초읽기를 했다.
10…… 9…… 8…… 7…… 6…… 5…… 4…… 3…… 2…… 1
강렬한 섬광이 번쩍였다. 간신히 시력을 회복하자 텅 비어 있던 단상에는 커다란 야구공처럼 생긴 장치가 나타나 있었다. 야구공의 실밥이 있는 곳에 있는 문이 열리자 금발의 청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왔다. 여기저기서 놀라움의 탄식 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여러분, 테드 군을 소개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테드 군은 20년 전 타임머신에 자원하여 탑승한 용감한 청년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저를 미친 사람 취급을 했었죠. 하지만 어떻습니까? 제가 20년 전에 예언한 정확한 날짜와 시간에 테드 군이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테드 군, 몸 상태는 좀 어떤가?”
테킬라 박사의 말에 테드는 정신없이 말을 쏟아냈다.
“박사님! 정말 대단합니다! 정말로 시간여행이 가능할 줄이야! 그나저나 잠깐 사이에 박사님은 많이 늙으셨군요. 아니 20년 후로 왔으니까 잠깐은 아니지만요. 아무튼, 대단합니다. 박사님은 진정한 천재예요! 근데 누가 외투 좀 주시겠습니까? 여긴 좀 춥군요.”
테킬라 박사는 테드에게 담요를 씌워주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자, 여러분이 보시는 이 모든 광경은 사실입니다. 저는 타임머신을 개발하는 일에 제 일생을 바쳤습니다. 저는 그 전에도 순간이동장치와 급속냉동장치를 발명했습니다. 모두 인류 문명에 크게 이바지한 발명품들입니다. 하지만 타임머신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서 연구비를 지원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는 전 재산을 투자해서 타임머신을 개발해야 했죠. 이제 저도 투자의 대가를 받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은 모두 엄청난 부자들입니다. 세계여행은 물론 심해탐험, 심지어 우주탐험까지도 경험하신 분들이죠. 이제 마지막으로 ‘시간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단, ‘시간여행 패러독스’ 때문에 과거로의 여행은 불가능합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실수로 자신의 조상을 죽이기라도 하면 온 세상이 뒤죽박죽될 테니까요. 오로지 미래로의 시간여행만 가능합니다. 역사적인 첫 번째 고객으로 어느 분께서 자원하시겠습니까? 시간여행의 암스트롱이 되실 분은 어느 분이십니까?”
여기저기서 부자들이 손을 들었다. 10만 달러부터 시작한 경매가는 순식간에 치솟아 올랐다. 결국, 타임머신의 탑승권은 무려 1,000만 달러를 제시한 한 주식투자부자에게 낙찰되었다. 부자는 자신의 모든 주식을 팔아서 부피가 작은 다이아몬드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것을 케이스에 넣어서 품에 안고 타임머신에 들어갔다. 부자는 타이머를 500년 뒤로 맞추었다. 발사 스위치를 누르자 강렬한 섬광이 터지더니 타임머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20년 전 테킬라 박사의 연구실. 박사는 타임머신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타임머신 창문 너머로 급속 냉동된 채 잠들어 있는 테드의 모습이 보였다. 박사가 발명한 것은 엄밀히 말하면 타임머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급속냉동장치와 순간이동장치를 결합한 장치였다. 즉 발사 버튼을 누르는 순간 테드는 냉동인간 상태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로 순간이동 될 것이다. 그리고 타이머로 맞춰 놓은 20년 후가 되면 냉동장치가 풀리고 타임머신은 다시 짠! 하고 원래의 장소로 순간 이동할 것이다. 사기라고? 전혀 그렇지 않다. 탑승자는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면 자신이 원했던 미래와 와 있는 것이다. 타임머신과 똑같이.
***
부자는 정신을 차렸다. 온몸이 오슬오슬 떨려왔다. 계기판의 연도는 서기 2516년을 가리키고 있었다. 부자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타이츠처럼 기묘한 복장을 한 미래인들이 몰려들었다.
“모믄… 좀… 갠차느$%심니까…….”
발음이 좀 어색했지만, 간신히 알아들을 수는 있을 정도였다.
“저… 정말 이곳이 500년 후의 미래란 말이오?”
“그러씀니다… 미래에 오신@거를 화녕함니다… 버녁기를 &#켜게씀니다…….”
미래인은 목에 달린 장치의 스위치를 눌렀다.
“이제 제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십니까? 언어학자들이 고증한 500년 전의 언어입니다.”
“잘 알아듣겠소. 그나저나 미래는 좀 춥군. 우선 따뜻한 옷을 좀 주시오. 은행은 어디 있지? 우선 이 다이아몬드는 돈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은데.”
“은행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건 굳이 돈으로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당신에게 있는 다이아몬드 정도면 옷 한 벌은 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뭐라고? 이게 얼만지 알아? 자그마치 1억 달러가 넘는 내 전 재산이라고!”
“우리 시대에서는 인공 다이아몬드 제조법이 일반화되어서 다이아몬드가 동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대신 오염되지 않은 흙이 귀금속처럼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죠.”
부자는 할 말을 잃었다.
“당신은 우리들의 소중한 과거 유산입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정부의 자산으로 등록됩니다.”
“잠깐만! 그런 법이 어디 있어! 변호사를 불러줘!”
“지금 시대에 변호사 같은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정부가 관리합니다.”
미래인은 부자에게 광선 총을 겨누었다.
“자, 인제 그만 나오시죠. 그 타임머신 아니, ‘타임캡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