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속삭임"




지훈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귀신이나 미신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 것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삶은 늘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꾸려졌고, 불가사의한 일들에 대해선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그가 이사한 새로운 집에서 완전히 바뀌었다.




지훈은 회사 근처로 이사할 필요가 있었다. 새로 구한 집은 오래된 연립주택이었다. 월세가 저렴했고, 집주인도 친절해 보여 계약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다만 집주인은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밤에 무슨 소리가 나도 무시하세요. 오래된 집이라 그렇습니다.”

지훈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낡은 집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사를 마치고 첫날 밤, 지훈은 피곤함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그러나 새벽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톡... 톡...’ 하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집 안 어딘가에서 손가락으로 벽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지훈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침실 벽 쪽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잠을 청했다.




며칠 후, 소리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다. 첫날은 벽을 두드리는 소리였지만, 이번에는 집 안 곳곳에서 발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복도를 걷는 소리, 부엌에서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들리는 속삭임.

지훈은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누군가 집에 몰래 들어온 건 아닌지 의심하며 문과 창문을 확인했다. 그러나 모든 문은 잠겨 있었고, 침입의 흔적도 없었다.

“이 집이 원래 이런가 보네...” 그는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밤마다 반복되는 소리와 기묘한 현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의 침실에선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고, 그는 꿈에서도 어두운 형체를 마주했다.




어느 날 밤, 지훈은 갑작스러운 추위에 잠에서 깼다. 방 안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이불을 당기려 했지만, 뭔가가 이불 끝을 잡고 있었다.

그는 얼어붙은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발치에 앉아 있는 어두운 형체가 있었다. 그것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지훈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공포에 질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형체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 순간, 형체의 눈이 지훈과 마주쳤다. 새하얀 눈동자와 벌어진 입. 입 속에서 나오는 낮고 끔찍한 목소리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이 집에서 나가...”




그날 이후, 지훈은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는 밤마다 형체가 나타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형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대신 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집 안에서 물건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주방의 식칼이 공중으로 떨어지고, 서랍이 저절로 열렸다 닫혔다. 벽에는 손자국 같은 얼룩이 나타났다.

지훈은 한밤중에 들리는 속삭임에 고통받았다. 그 목소리는 점점 더 뚜렷해졌고, 마치 누군가 그의 귀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까웠다.

“도망칠 수 없어...”
“너도 이제 여기에 묶여 있어...”

그는 미쳐가는 기분이었다. 그는 그 모든 것이 스트레스와 피로에서 비롯된 환각일 것이라고 자신을 달래려 했지만, 그 모든 현상이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지훈은 결국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그는 이 집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설명하며 항의했지만, 집주인은 단호히 말했다.

“그런 일이 벌어진 적 없습니다. 다른 세입자들도 잘 살았어요. 아마 당신이 예민해서 그런 걸 겁니다.”

하지만 지훈은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공포를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결국 그는 인터넷에서 이 집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검색한 끝에 이 집과 관련된 오래된 사건을 알게 되었다. 이 집에서는 몇 년 전, 젊은 여성이 살해당한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사건은 미제로 남아 있었다.

여성은 침실에서 발견되었고, 그녀의 몸에는 손자국과 칼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진실을 알게 된 지훈은 패닉에 빠졌다. 그는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이사를 준비하던 날 밤, 그는 꿈속에서 그 여자를 다시 마주쳤다.

그녀는 이전보다 더 선명히 보였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지훈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너도 나처럼 여기서 끝낼 거야...”

지훈은 그 말을 무시하고 서둘러 이사를 강행했다. 그는 새로 구한 집으로 이사를 마치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새집으로 옮긴 첫날 밤, 그는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여기까지 도망칠 줄 알았니?”

그의 방 안에서, 어둠 속에서 다시 그 형체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은 지훈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는 이미 나와 하나가 됐어...”

지훈은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다시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이전 집의 침실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도망쳤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는 결코 그를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