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귀 [0]

맨밑
업테란T
아바타/쪽지/글검색

2025-04-10 20:55:32
6 0 0 70,437

ⓞ 추천  ⓤ 단축URL
↑ 복사 후 붙여넣으세요.
 기기를 감지하여 최적 URL 로 보내줍니다.
업테란T
https://humoruniv.com/fear83672 URL 복사

11월의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던 어느 날, 지호는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려고 혼자 낚시 여행을 떠났다. 사람 없는 조용한 곳을 찾다 보니 지도에도 희미하게 표시된 외딴 늪지대를 골랐다.

시골길을 따라 구불구불 달리던 중, 하늘이 잿빛으로 어두워지며 바람이 거세졌다.

“뭐야, 날씨 예보엔 맑다고 했는데…”

지호는 라디오를 켜며 투덜거렸다. 잡음만 흘러나오더니 내비게이션이 꺼졌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진짜…”

늪지에 도착하자 차가 진흙에 푹 빠졌다. 액셀을 밟아도 타이어가 헛돌았다. 짜증을 참으며 핸드폰을 꺼냈지만 신호가 없었다. "여기서 구조 요청도 못 하겠네…” 손전등을 챙겨 차에서 내리자, 갈대밭 너머로 깜빡이는 불빛이 보였다.

“저기 뭐라도 있나? 비 오기 전에 가보자.”

배낭을 메고 늪 가장자리를 조심스레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썩은 나무판자로 지어진 낡은 오두막이 나타났다. 지붕은 군데군데 뚫렸고, 옆엔 반쯤 무너진 헛간이 붙어 있었다. 문 앞에 선 지호는 손잡이를 돌렸다.

“계세요? 실례 좀 하겠습니다.”

대답은 없었고, 삐걱—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눅눅한 공기와 축축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은 질퍽했고, 벽엔 이끼가 두껍게 끼어 있었다. 가운데엔 녹슨 철제 난로가 놓여 있었고, 구석엔 낡은 낚싯대와 깨진 유리병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여기서 낚시고 뭐고… 그냥 나가고 싶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지호는 초코바를 꺼내 난로 옆에 웅크렸다.

그때였다. 난로 뒤에서 ‘쓱… 쓱…’ 무언가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쥐라도 있나?”

손전등을 비췄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섬뜩한 기분에 문으로 갔지만,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왜 안 열리는 거야…?”

문 손잡이를 흔들던 순간, 창밖에서 무언가 어슬렁거렸다.

키가 크고 팔이 땅까지 늘어진 형체였다. 헝클어진 회색 머리칼 아래로 새하얀 눈과 찢어진 입이 드러났다. 낡은 노랑과 빨강 무당옷을 입은 그 형체는 창문을 쾅쾅 치며 ‘쉭… 쉭…’ 기괴한 숨소리를 냈다.

“뭐야, 저건 사람 아니잖아!”

지호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세졌다. "가만있으면 안 돼!" 작은 창을 발견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늪을 헤매며 달리다 자갈길에 도착해 숨을 몰아쉬었다.

“대체 뭐였지…”

눈을 떴을 때, 지호는 낯선 한옥 방에 누워 있었다. 문이 열리며 한복 차림의 늙은 보살이 들어왔다.

“일어났구나. 네 혼이 늪에 끌려들었어. 거긴 사람이 있어선 안 되는 곳이야.”

지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형체를 설명했다. 보살은 낡은 수첩을 펼쳐 한 장을 보여줬다.

“늪에서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만들어낸 ‘늪귀’다. 원한과 분노가 엉겨 붙은 혼령이지. 거기 네 물건이라도 남기면 끝까지 쫓아올 거야.”

“물건이요?”

“그래, 혹시 뭐 두고 온 거 없나 잘 생각해봐.”

“음… 다 챙긴 것 같은데…” 지호는 멍하니 고개를 갸웃했다.

작은 방에서 의식이 시작됐다. 소금으로 원을 그리고, 부적, 향, 북, 약초가 놓였다. 지호는 원 안에 앉았다. 보살이 주문을 외우며 북을 두드렸다.

“사방귀신 물러가고, 늪의 혼령 되돌아가라…!”

공기가 진동하듯 떨렸다. ‘쉭… 쉭…’ 소리가 천장에서 들리더니 형체가 나타났다.

보살이 부적을 치켜들었다.

“이승에 미련 두지 마라! 네 자리는 그 너머다!”

부적이 타오르며 형체가 괴성을 지르며 사라졌다. 방 안이 고요해졌다.

보살이 말했다.

“이젠 너한테 못 올 거다. 근데 다시는 그 늪 근처 가지 마. 혹시 뭐 남겼으면 얼른 찾아놔.”

“네, 알겠습니다…” 지호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지호는 집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음악을 틀고, 소파에 늘어져 책을 넘겼다. 창밖은 맑았고, 나른한 오후가 흘렀다. 휴대폰이 울렸다. ‘동생’이었다.

“형, 뭐해?”

“집에서 쉬고 있어. 왜?”

“음… 그냥 좀 이상해서. 목소리 뒤로 뭐 스치는 소리 같은 게 들려.”

“뭐가 스친다고?”

전화가 끊겼다. “뭐야 이게…” 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끼 낀 벽과 식은 난로가 눈앞에 있었다. 구석에 낡은 낚싯대가 굴러다녔다.

“내 낚싯대잖아… 그때 두고 온…”

천장에서 ‘쉭… 쉭…’ 소리가 났다. 노랑과 빨강 무당옷을 입은 형체가 내려왔다. 하얀 눈이 지호를 노려봤다.

' 씨발,낚시대 때문인건가?!”

지호는 낚싯대를 향해 뛰었다. 손에 쥐는 순간, 형체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 게 시 물    추 천 하 기
  로그인 없이 추천가능합니다.
추천되었습니다.
ⓞ 추천   ⓡ 답글   ▤ 목록
← 뒤로   ↑ 맨위   ↓ 맨밑   ㉦ 신고   ♡ 스크랩
답글 작성하기 (로그인 필요)
로그인   메인   사이트맵   PC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