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곳은, 작디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좋게 말하면 때 묻지 않았다고, 나쁘게 말하면 낙후되었다고 할 수 있을 그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전해내려오던 괴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마을 동북쪽에 있는 산의 정상에는 위험한 것을 가두어놓은 사당이 있으니 절대 가까이 다가가지 말 것.' 이라는 내용이었다.

듣기로는 아주 옛날에 그것과 관련한 아주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고 하는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 결국 그 사건이 무엇인지, 저 사당에 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따위의 내용은 소실되고 핵심적인 부분만 남았다는 듯 했다.

2.

어른들은 괴담의 내용대로 마을 동북쪽에 있는 산에는 절대 발걸음을 들여놓지 않았다.

애초에 대나무만 빽빽하게 들어서있는 산에 갈 일이 얼마나 있었겠냐만은...

하지만 그것도 어른 한정일 뿐, 어린 아이들은 사정이 달랐다.

한창 자신의 용감함을 뽐내고 싶어하는 나이대의 혈기왕성한 아이들에게 있어 괴담의 장소는 담력을 시험하기 딱 좋은 장소로 여겨졌고, 나와 내 친구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3.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마지막 날 새벽, 나와 친구 3명은 담력 시험을 하기 위해 집을 몰래 빠져나와 괴담 속에 나오는 그 산 입구 앞에 집결했다.

담력 시험의 내용 자체는 그저 '정상까지 올라가서 사당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오기.'로 지극히 평범했다.

다만 그게 이뤄지는 장소가 마을에 대대로 내려오는 괴담 속 배경이었을 뿐.

각자 안 무서운 척 있는 힘껏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나를 포함한 4명의 아이들은 이미 산의 섬뜩한 분위기에 잔뜩 쫄아버린 상태였고, 막상 모이긴 했지만 자신이 먼저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결국 시간만 질질 끌다가 순서 정하기 가위바위보를 해야만 했고, 그것에서 보기 좋게 가장 앞 순서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4.

산을 오르는 내내 담력 시험에 참여한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너무 어두워서 한 치 앞 정도만 간신히 보이는데다가 산길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긴지 오래라 매우 험해서 중간에 한 번 넘어지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괴담 속 내용은 나를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게 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꾸역꾸역 정상에 도착했다.

왜냐하면 당시의 나는 포기하고 도망쳐서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는 것이 정말 죽기보다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5.

정상에 오르자 괴담에 나온대로 정말 낡고 작은 사당이 있었다.

기괴할 정도로 덕지덕지 붙여놓은 의미불명의 부적, 어디에 쓰인 건지 추측조차 할 수 없는, 바닥에 널브러진 다량의 녹슨 쇠사슬, 그리고 사당의 바로 앞에 놓여있는 의문의 검은 액체가 담긴 하얀 그릇까지.

사당의 모습은 정말 섬뜩하고 소름돋기 그지 없었다.

이런 기괴한 사당이 괴담의 소재가 되지 않는 것이 더 이상 할 지경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리고... 사당에서는 괴담의 내용과는 상반된 위화감이 느껴졌다.

괴담에서는 분명 '가두고 있다.' 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것은 무언가를 가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뭐랄까... 설명하긴 어렵지만 마치 '제발 이곳에 머물러주세요.' 라고 애원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6.

그렇게 나는 사당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네임펜을 들고 사당의 벽면에 나의 이름을 썼다.

공포와 긴장에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인지 이름 석 자 쓰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처럼 느껴졌다.

"후우..."

어떻게든 이름을 다 쓰고 나자 긴장이 풀려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심 다음 순서인 애들이 똑같이 무서워 할 것을 생각하자 먼저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고개를 돌려 내려가려고 할 때였다.

"어... 억?!"

나는, '그것'과 마주했다.

7.

사람이 너무 놀라거나 공포에 질리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는 것을 그 때 처음 깨달았다.

곰의 형상을 어설프게 따라한 듯한 실루엣, 불길하게 넘실대는 검은색의 살덩어리, 그리고 이것들과 대비되며 기이함을 한층 더 증폭시키는 느릿느릿한 움직임.

그런 '그것'은 내 앞에 서서 조용히 고개를 들이밀었다.

눈도, 귀도, 코도 없었지만 아마 자기 딴에는 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나는 공포에 압도되어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

"구륵."

마침내 녀석이 입-으로 추정되는 구멍-으로 낸 소리는 그것이었다.

언어라기보다는 동물이 토를 할 때 나는 것과 유사한 그런 소리.

"히이이익..!"

안그래도 겁에 질려있던 나는 그 섬뜩한 소리에 몸 서리를 쳤고, 한동안 계속해서 같은 소리를 내던 녀석은 이내 잠잠해졌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

잠시 뒤, 이번엔 녀석이 손을 뻗어 내 무릎에 가져다대었다.

흠칫 놀라며 그 부위를 보니 어느 새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산을 오르다가 넘어졌을 때 생긴 상처인 것 같았다.

"뭐, 뭘하는 거야..."

녀석은 나의 몸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손을 대고 있었다.

그 상태로 1분 정도 지났을까, 녀석이 손을 떼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다쳤던 부위가 말끔하게 치료된 것이다.

벗겨졌던 피부와 살갗이 완전히 아물었으며, 주위에 묻어있던 흙먼지 또한 깨끗하게 사라져있었다.

"도와준 거야...?"

예상하지 못한 일에 당황스러움, 안도감, 고마움 등의 감정이 뒤섞여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8.

풀리지 않는 여러 의문점들과는 별개로,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순간부터 녀석에 대한 나의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졌다는 것이다.

나를 죽이거나 잡아먹을 생각이었다면 굳이 이런 호의적인 행동을 할 이유는 없을 테니.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녀석의 눈치를 보며 흙 묻은 바지를 탁탁 털었고, 녀석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고마워."

잠시 고민하다가 멋쩍은 표정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녀석은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있다가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이것이 무슨 뜻일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녀석이 내 손에 들린 이 네임펜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네임펜을 손에 들려주자 녀석은 사당에 붙어있는 부적 하나를 떼더니 그 뒷면에 무언가를 막 갈겨쓰고는 그 부적과 네임펜을 나에게 주었다.

부적에 적힌 것은 언뜻보면 한자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형해서 쓴 것 같기도, 아니면 아예 상형문자의 일종인 것 같기도 해보였는데, 아무튼 나로서는 전혀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나를 두고 녀석은 만족했는지 그대로 뒤를 돌아 질척거리는 발걸음을 옮기며 대나무숲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런 녀석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9.

산에서 내려온 내가 본 것은 펑펑 울고 있는 친구들과 사색이 된 채 서있는 마을 어른들의 모습이었다.

부모님은 나를 보자마자 헐레벌떡 뛰어와서 꼭 껴안고는 괜찮은 거니, 몹쓸 짓을 당한 건 아니니, 하면서 눈물을 보이셨고, 험악한 표정으로 서있던 마을 이장님은 나에게 다가와 저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빼놓지 말고 전부 이야기하라고 했다.

나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기에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전부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사당에 사는 녀석은 그다지 나쁜 녀석이 아니며, 오히려 좋은 쪽에 가까운 것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어른들에게 있어 나의 의견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다.

10.

마을 이장님과 몇몇 어른들은 내가 녀석에 대해 좋게 말한 것이 '그것에게 홀려버려서' 라며 나를 무당집에 데려가 며칠이고 굿을 받게 했다.

나는 그러한 나날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사당에서 내가 봤던 그것은 사악한 존재가 맞으며, 잠시 홀렸던 것 같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11.

그 사건이 있고 1개월 뒤,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을 이장의 손녀가 실종되었다가 처참한 시신로 발견된 것이다.

이 일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지만, 여기에 내가 사당을 갔었던 일과도 엮여서 사람들의 입에 쉴새없이 오르내렸다.

그 내용은 주로 내가 사당에 가서 그 '불길한 것'을 깨웠기 때문에 그것이 마을 이장의 손녀를 해코지한 것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손녀를 잃은 분노와 슬픔으로 눈이 뒤집힌 마을 이장에게 있어 그 이야기는 이미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장은 건장한 남자 어른 몇 명을 대동하고 마을 동북쪽의 그 산에 올라가 기름을 붓고 사당을 불태웠다.

그 사당에 사는 놈이 자기 손녀를 해코지한 것이라면, 사당 째로 불태워서 없애주겠다는 논리였다.

사실 이장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손녀 사건은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로 인해 발생한 범죄거나, 그게 아니라면 사고사에 가까울 것이라는 걸.

다만 무엇 하나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것을 그 '불길한 것'에게 돌려야 자신의 울분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던 것이었을 터였다.

12.

이걸로 무서운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라는 마을 사람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사당을 불태운 이후부터는 마을에 본격적인 재앙이 닥쳐오기 시작했다.

마을 전체 인구의 과반수가 정체불명의 병에 걸려 몇 개월을 고생했으며, 그 중에는 숨을 거두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어느 날은 키우던 애완동물이나 가축들이 극도로 흉폭해져서 사람들이 많이 다치기도 하였고, 마을 이장이 실종되었다가 일주일 뒤 자기 집 장롱에서 아사한 시체로 발견되거나 사당에 불을 지핀 아저씨가 수심 30cm도 안 되는 얕은 물가에서 익사한 채 발견되는 기이하기 짝이 없는 사건까지 연달아 벌어졌다.

그리고 상황이 그쯤되자 우리 가족은 더 이상 그 마을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든 것이 우리 탓이라며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쫓기듯이 마을 떠나 이사를 가게 되었고, 몰래 편지라도 써서 연락하겠다고 말해주던 극소수의 친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이 완전히 끊겨버렸다.

13.

그 뒤 시간은 빠르게도 흘러 어느 새 나도 성인이 되었다.

남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 따위 정신없이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점점 빛바래지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기이하기 짝이 없던 내 어린 시절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 나를 자주 괴롭혔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마음을 먹고 그 당시의 기억과 제대로 마주보고, 몇 가지 의문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용기를 내서 마을에 다시 가보았지만 이미 그곳은 사람들이 모두 없어지고 폐허가 된지 오래였고, 용하다는 무당 집들을 수소문해 돌아다니며 당시의 내가 녀석에게 받았던 부적에 적혀있는 글자를 보여줬지만 하나 같이 뭐라고 적혀있는 건지는 해석해주지 못하였다.

그리고 끝내 9번째 무당집에서, 나는 해답을 들을 수 있었다.

[몇 주 전부터 다람쥐 가족들이 우리 집에 와서 살기 시작했어. 다음에 놀러오면 너에게도 보여줄게.]

고작, 그것.

수백, 어쩌면 수천 년 동안 공포의 존재였던 것이 부적에 적어서 나에게 전하고자 했던 말은 고작 그것 뿐이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은 많았고 녀석의 정체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지만, 그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왠지 모르게 허탈감이 섞인 헛웃음이 자꾸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