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시집오시고 아들들을 낳으셨을 때, 얼마 안 돼서 625전쟁이 터졌대.

휴전까지 어떻게 잘 버텼는데, 휴전을 하고서도 남아있는 빨치산들이 활개를 치고 다녔다지.
6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전부 소탕됐을 정도라고 해.

빨치산들은 종종 근처 마을들을 습격해서 약탈을 일삼았고,
마을 청년들을 납치 혹은 회유하여 빨치산에 합류시키기도 했대.
그건 마을의 너무 어리지 않은 남자아이들도 마찬가지였어.

어느 날, 할머니가 옆 마을을 다녀오셨는데 글쎄 할머니네 마을에 난리가 났더래.
빨치산들이 이제는 할머니 마을에까지 나타났었던 거지.
몇몇 남자들은 빨치산한테 끌려가거나 자진 합류했고, 그 중 남자아이들이 일부를 제외하고 다 사라졌었다고 해.

그 사라진 남자아이들 중에는 당연히 할머니의 아들들도 포함되어 있었어. （내게는 큰아버지들）
할머니가 울면서 이걸 어떡하냐 소리소리를 지르시다가 결국 혼절하셨대.

그러다가 꿈을 꾸셨는데, 어떤 덩치 크고 털 많은 아저씨가 덩실덩실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고 있었대.
아저씨는 그 큰 얼굴에 달린 큰 눈으로 할머니를 노려봤고, 큰 보폭으로 다가와서 할머니의 뺨을 엄청 세게 때리고는 다시 덩실덩실 춤을 추더래.

할머니는 그제서야 이건 사람이 아니라 도깨비인 걸 알았다고 하셨어.
도깨비한테 사정을 말하니까 도깨비가 대답을 했대.
“그래서 때린 거다. 어디 애들을 두고 한눈 파느냐. 내일까지 아들 잃은 마을 아낙네들이랑 다 함께 돼지고기를 많이 가지고 산을 올라와라. 여자들만 와야 한다.”

할머니는 아들 잃은 마을 여자들한테 꿈 이야기를 했고, 머슴까지 두고 있었던 마을의 지주 할아버지가 도움을 줘서 메밀묵, 돼지고기, 막걸리 등을 다 준비해주셨다고 해.

할머니랑 여자들은 그 무거운 것들을 들고 겨우 산을 올랐다지.
그러다가 다들 목이 너무 말라서 근처 개울가에서 목을 축이고 가기로 했는데, 사라졌던 남자애들이 다 그곳에 쓰러져 있던 거야.

도깨비가 아이들을 지켜줬구나 싶어서 음식들을 다 개울가에 풀어두고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내려왔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어봤더니 이런 대답을 들은거야.

“빨치산들이 마을로 내려왔다.
남자아이들을 잡아 먹는다는 소문이 있어서 우리 모두 산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도망친 산 속에도 빨치산들이 있더라.
숨죽이며 숨어 있었고, 그 이후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소동이 끝나고 또 빨치산이 마을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고, 마을 부근에 자리 잡았던 빨치산들은 국군에 의해서 정리가 됐다고 해.
안타깝게도 마을에서 끌려가셨던 분들은 모두 사망하셨지만.

어린 내가 이 이야기를 듣고서 신기해하니까 큰아버지가 산 속의 어떤 개울로 나를 데려가신 적이 있어.
그리고 그 개울이 남자아이들 다 사라졌던 개울이라고 했지.
마을 출신 남자들은 다 빨치산개울 혹은 도깨비개울이라고 부른다고 하시더라.

지금은 마을에 있는 교회로 사람들이 몰리지만, 교회가 없던 시절만 해도 동네 할머니들은 다 무언가를 빌어도 “도깨비신”에게 빌었을 정도였다고 알려주셨어.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도깨비가 절대로 악한 존재는 아니구나 싶기도 해.
나중에 할머니한테 들었던 썰 같은 게 있으면 또 가져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