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잠갔다. 방 안은 늘 그렇듯 어두웠다. 모니터의 푸른빛만이 내 세상을 비췄다. 히키코모리라는 단어는 나를 가두는 족쇄이자, 나를 지키는 방패였다. 이 방 안에서 나는 안전했다. 밖의 세상, 가족, 기대, 그 모든 혼란에서 벗어나 있었다. 문 하나를 경계로 나는 자유였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매일 아침, 어머니의 노크가 들렸다. "민수야, 밥 먹어." 그 소리는 짜증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위안이 됐다. 내가 이 집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나는 문을 살짝 열고 쟁반을 끌어당겼다. 밥, 반찬, 때론 간이 안 맞는 국. 그걸 먹고 빈 그릇을 내놓는 게 우리의 유일한 접점이었다. 거실에서는 아버지가 티비를 보고 있었다. 스포츠 중계음이 집 안을 채웠고, 아버지의 "이 멍청한 놈들!" 같은 욕지거리가 섞여들었다. 어머니는 그 소리에 툴툴거리며 뭐라 했고, 그 소음은 내 방까지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그게 일상이었다. 따분하고, 예측 가능하고, 그래서 안전했다. 나는 그 소음 속에서 고립을 택했다. 그게 나를 지켜줬다.

그런데 어제, 무언가가 달랐다. 어머니의 노크가 없었다. 쟁반이 놓이는 소리, 어머니의 한숨, 아무것도 없었다. 집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아버지의 욕지거리도, 어머니의 잔소리도 없었다. 오직 티비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렸다. 스포츠 중계음. 늘 깔리던 그 배경음. 뭔가 섬��하단 느낌이 스쳤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어머니가 어디 나갔나 보지. 아버지는 티비 앞에 있겠지. 배고픔이 슬슬 올라왔지만, 문을 열 생각은 없었다. 문 너머는 내 세상이 아니었다. 밖은 위험했다. 내가 알던 규칙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뱃속에서 꿈틀거렸다.

마음 한구석은 불안했다. 3년간 이 방에 틀어박혀 살면서, 어머니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밥을 챙겨줬다.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문을 열지 않아도, 어머니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건 내 안전망이었다. 그런데 그 안전망이 사라졌다.

'나를 포기한 건가?'

그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내가 문을 잠근 것처럼, 가족도 나를 잠가버린 걸까? '아니야. 그냥 바빠서 그런 거야.'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가슴 한쪽이 쿡쿡 쑤셨다. 내가 정말 이 집에서 잊혀진 걸까? 모니터를 응시하며 나는 그 생각을 밀어냈다. 이 방이 내 전부였다. 밖은 필요 없었다.

다음 날, 주말이었다. 배고픔은 이제 날카로운 칼날처럼 내장을 찔렀다. 티비 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골이 들어갔는지 함성이 터졌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소리. "이런 빌어먹을!" 평소처럼 거친 욕지거리가 울렸다. 나는 안도했다. 적어도 아버지는 거기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없었다. 부엌에서 나는 프라이팬 소리, 어머니의 전화 통화, 아무것도. 한 사람이 빠진 집은 텅 빈 것 같았다. '어머니는 어디 간 거지?' 궁금증이 불안으로 바뀌었다. 문을 열고 확인해볼까? 하지만 그 생각만으로도 손이 떨렸다. 문 너머는 낯선 세상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곳. 내가 이 방을 떠나면, 내가 나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배고픔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나는 고립을 택했다.

3일째. 배고픔은 고통을 넘어 공포가 되었다. 물이라도 마셔야 하나, 수도꼭지를 틀어볼까 고민했지만, 다리에 힘이 없었다. 티비 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같은 스포츠 중계음. 같은 함성, 같은 해설자의 목소리. 이상했다. 똑같은 소리가 반복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같은 장면을 무한히 재생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욕지거리도 없었다. 평소라면 "뭐야, 이 멍청한 놈들!"이라도 외쳤을 텐데, 아무 소리도 없었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티비 소리만이 집 안을 메웠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건 단순한 배고픔이나 고립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미친 걸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방에 너무 오래 갇혀서 현실을 잃은 걸까? 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었다. 티비 소리만 무한히 반복되었다. 아버지의 기척, 어머니의 기척, 아무것도 없었다. 집은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티비 소리만이 유일한 생명체처럼 울렸다. 나는 숨을 멈췄다. 이 반복되는 소리는 뭐지? 왜 똑같은 함성이, 똑같은 해설이 계속되는 걸까? 아버지는 정말 저기 있는 걸까? 아니면... 티비만 켜져 있는 걸까? 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어디 있는 걸까? 집이 이렇게 조용한 적이 있었나?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배고픔은 이제 느껴지지 않았다. 공포가 모든 감각을 집어삼켰다. 티비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같은 스포츠 중계음. 같은 함성. 같은 해설자의 목소리. 나는 방구석으로 기어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귀를 막아도 소리는 스며들었다. 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왜 어머니가 사라졌는지, 왜 티비 소리만 반복되는지 알 수 없었다. 문을 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문 너머는 내 세상이 아니었다. 내가 알던 집이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티비 소리는 계속됐다. 같은 소리, 끝없이 반복되는 소리. 그 소리 속에서, 나는 점점 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문 너머에 뭐가 있는 걸까? 아버지는 정말 티비를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 집엔 나 혼자인가? 티비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티비 소리만이, 여전히, 끝없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