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등학교 근처에는 상당히 연식이 지난 아파트가 있다.

멀리서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페인트가 잔뜩 벗겨진 게 고풍스러운 분위기마저 자아내는 그런 아파트다. 예전부터 이미 재건축을 한다, 안 한다로 말이 많더니만, 2학년 여름 방학을 할 때부터는 주민들의 퇴거가 시작됐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공사답게 복잡한 절차가 많았나 보다. 내가 수능을 치르고 난 후에도 주민들을 게워 낸 아파트는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주인을 먼저 여읜 개가 같은 자리에서 오지 않을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처럼.

이런저런 유혹을 견뎌낸 끝에 수능을 치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신기하게도 수능이 끝나는 즉시 주위의 모든 게 재미없어진다. 게임, 웹툰, 예능 프로그램 등등 가릴 것 없이 모두.

그런 상태에서 하릴없이 시간만 죽여야 하는 장소인 학교에 나와야 하니, 학생들 사이에서 별 해괴한 아이디어가 오가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야, 재건축하는 아파트에서 하룻밤 자볼래?”

그것이 수능을 보고 나서 일주일 뒤에 친구가 건넨 제안이었다.

“내가 가끔 산책할 때마다 보는데, 문이 열려 있는 곳도 있더라고. 궁금하지 않냐?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아파트 단지에서 자 보는 거.”

“싫어, 초딩들이 하는 공포 게임도 무서워서 못 하겠는데 무슨.”

“흉가나 폐병원도 아니고 아파트인데, 무서울 게 뭐가 있어.”

“아무튼 아무도 없는 데잖아. 그리고 맘대로 들어가면 법에 걸리기도 하고.”

“야, 안 걸리면 그만이야. 그리고 상식적으로 거기에 맨날 순찰 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걸리는 게 더 어려울걸?”

그렇게 약 10분 간의 실랑이가 이어졌고, 끝내 친구가 승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져줬다. 친구의 말대로 꼭 해야 할 일도 없었고, 이듬해 3월까지는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어느 정도 궁금하기는 했다. 사람도 전기도 없는 아파트 단지에서 하룻밤 보내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

오후 11시에 친구와 나는 학교 정문 앞에서 만났다. 물론 단둘뿐이었다.

내가 제안을 수락한 이후로도 친구는 다른 친구들에게 같은 제안을 건넸으나, 다들 ‘아무리 할 게 없어도 그런 정신 나간 짓은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정신 나간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인원은, 혼자만 아니면 되는 것이다.

우리 둘은 수다나 떨며 학교 앞 편의점에서 과자 서너 개와 음료수를 산 뒤에 아파트로 향했다.

단지 외곽은 펜스로 둘러쳐져 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는 높이였고, 우리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단지 안에 들어갔다.

“이야, 분위기 지리긴 한다.”

친구가 텅 빈 단지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파트와 우리 빼고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세상과 단절이라도 된 것처럼.

“진짜 아무것도 없네.”

“그니까, 다른 건 몰라도 차 한 대도 안 보이는 게 제일 신기하네. 하다못해 좀비 영화에서도 차는 보이는데.”

“근데 너무 어두운 거 아냐?”

“밤인데 어두워야지. 아, 저기다.” 친구는 3동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4층에 문 열린 데가 몇 군데 있었어.”

나는 주위를 감싼 침묵을 지우기 위해 일부러 성큼성큼 걸으며 친구를 따라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열려있는 공동 현관을 지나는 순간 어째서인지 공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무서웠다.

“나 그냥 집에 갈래.” 무의식적으로 침을 꿀꺽 삼킨 내가 말했다.

1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탓일까. 복도에서는 매캐한 곰팡내가 코를 찔렀고, 발소리는 물속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웅웅거렸다. 불이 꺼진 엘리베이터도, 바닥을 기어가는 어둠도 모두 으스스했다.

“야, 무슨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

“이 정도면 볼 거 다 봤잖아.”

“아, 진짜…… 내일 아침에 나가면 롤 스킨 하나 사줄 게, 오키?”

희미한 달빛에 의지하며 발을 내딛던 나는 고뇌 끝에 대답했다.

“……두 개.”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4층에 도착했다. 중앙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401, 402호가, 왼쪽에는 403, 404, 405호가 있었다.

401호부터 405호까지 전부 문이 열려 있었는데, 하나같이 거대한 짐승이 입을 쩍 벌린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얼어붙었지만,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복도 끝에서 끝까지 달려가며 안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야, 너가 401호에서 자라.” 엘리베이터 앞으로 돌아온 친구가 킥킥거리며 말했다. “나는 402호에서 자게.”

“아, 개소리하지 마.”

“이야, 겁 진짜 많네. 새벽에 깨면 화장실은 갈 수 있냐?”

“하…… 됐고, 어디로 들어갈 건데.”

“방금 보니까 402호가 제일 깨끗한 거 같더라. 빨리 따라와.”

그 말을 끝으로 친구는 402호가 제 집이라도 되는 양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했고,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갔다.

이윽고 무거운 현관문이 닫히고 희미한 달빛마저 사라지자, 안에서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각자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402호 안은 일단 ‘휑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집에 들어서면 여러 가구들이 즐비해 있어야 하는 반면, 402호에는 이렇다 할 가구가 없었다.

그나마 작은 의자나 협탁 두어 개, 그리고 붙박이장 정도가 남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모두 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24평짜리 아파트 거실이 광활한 초원처럼 보였다.

그리고 눈에 띄는 점이 하나 더 있었으니, 베란다에 새하얀 러닝셔츠 하나가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는 것이다.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와 자꾸만 나풀거렸다.

“야, 근데 저기에 옷은 왜 있는 걸까?” 내가 물었다.

“몰라, 깜빡 잊었거나, 쓸모없어서 두고 갔나 보지.”

안을 전부 둘러본 후로는 별일 없었다. 우리는 미리 준비해 둔 물티슈로 바닥을 닦아 잠을 잘 공간을 만들었고, 과자나 까먹으면서 각자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봤다.

이럴 거면 뭐하러 온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게다가 문이 닫히고 나서는 밀폐된 공간이 주는 안정감 덕분인지, 어느새 긴장도 풀린 상태였다. 내 눈꺼풀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

나는 잠에서 깼다. 친구가 내 어깨를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은 여전히 어두컴컴했고, 바깥에는 강한 바람이 부는지, 러닝셔츠 너머로 보이는 검은 나뭇가지들이 사람의 팔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왜 그러는—” 내가 입을 열자 친구는 급히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긴 했지만, 친구가 검지를 입술 앞에 댄 것은 알 수 있었다.

“쉿.”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친구는 목소리를 죽여 말을 이었다.

“잘 들어봐. 복도 쪽 소리.”

친구의 말대로 복도 쪽으로 귀를 기울여 보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창문을 강타하는 바람 때문에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발소리 같았다.

아무런 흔들림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지는 희미한 걸음걸이. 소리의 크기로 보아 근원지는 1층이나 2층.

큰일이었다. 여기 있는 것을 걸리면 형사 처벌을 받을 테니까.

“경비, 아니, 경찰인가?”

내가 소리를 죽여 묻자 친구는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아니, 자세히 들어봐.”

“왜? 뭐를?”

“쉿.”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바람이 조금 멎어 방금보다 소리를 선명히 들을 수 있었다.

발소리였다. 확실했다. 또각또각 소리를 울리는 것으로 보아, 밑에서 지금 복도를 걸어 다니는 인물은 구두를 신은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이상한 소리가 발소리와 함께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르륵거리는 소리.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복도를 타고 우리가 있는 402호를 포함해 온 호실로 스며들고 있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캐리어인가?”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의 실루엣이 보였다.

점차 캐리어 바퀴 소리는 커지기 시작했다. 드르륵거리고, 돌돌돌 거리며, 어떤 때는 쾅쾅쾅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오르는 것 같았다. 그쯤 되니 머릿속이 새하얘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일단 핸드폰부터 무음으로 바꿔.”

그때 친구가 말했다. 나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켜 무음으로 바꿨다.

“뭐, 뭐하는 사람이지?”

“나도 몰라. 하지만,” 친구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누가 됐건, 일단 걸리면 좆되겠지.”

“문은 잠겨 있지?”

“아마도.”

우리는 침묵했다. 다시금 강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조금씩 창문도 흔들렸다. 하지만 이미 바람 소리보다 바퀴 소리가 더 커진 상태였다.

우리가 있는 402호는 계단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리가 전부 들린다.

그리고 캐리어를 끄는 인물은 지금 막 4층으로 올라왔다.

나는 아예 내 입을 틀어막았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비명을 지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캐리어를 끄는 인물은 바로 드르륵 소리를 내며 5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소리가 위에서 들려오기 시작했을 즈음 살며시 숨을 뱉은 내가 소리를 죽여 말했다.

“나갈까?”

“조금만 더.”

“왜?”

“지금 나갔다가 문 여는 소리 듣고 들키면 어떡할 건데.”

“조용히 열면 되잖아.”

“발소리가 저렇게 크게 들리는데, 귀에 들리지 않게 열 자신 있어?”

“아니, 만약 들킨다 해도 바로 뛰어 내려가면 되는 거 아냐?”

“저 사람이 꼭 혼자일 거라는 보장은 있고?”

그때였다.

위층에서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소리가 계단을 타고 빠르게 내려오기 시작했다. 소리는 거침이 없었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캐리어를 끄는 인물이 아예 작정을 한 것인지, 캐리어를 질질 끌며 계단에 이리저리 부닥치면서 내려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입을 굳게 다물었고, 소리는 금방 멎었다. 정확히 4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씨이발……” 친구가 중얼거렸다.

다시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캐리어를 끄는 인물은 일단 왼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

바퀴 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약간이나마 안심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내 몸은 거의 들썩이기까지 했다. 405호 문이 거칠게 닫힌 것이다.

캐리어를 끄는 인물이 405호로 들어간 건가 싶었지만 그 기대도 금방 산산조각 났다. 다시금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매우 짧았다. 404호 앞에서 멈춘 것이다.

“야, 일어나.” 그때 친구가 말했다.

“왜, 왜?”

“안방 장롱 안에 숨자. 혹시 모르니까.”

나는 잠시 눈알을 굴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을 내딛기 시작하자, 다시금 폭발음 같은 쾅 소리가 울려 퍼졌다. 404호 문이었다.

이어진 짧은 드르륵과 귀를 감싸는 침묵, 그리고 얄팍한 핸드폰 플래시.

우리는 조심스레 장롱 앞에 다가섰고, 쾅 소리가 터질 즈음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천천히 굴러가는 바퀴 소리가 들릴 때 얼른 장롱 안으로 숨었다. 안은 소복이 쌓인 먼지와 벌레 사체가 가득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이제 어떡하지?”

내가 이를 딱딱 부딪치며 말했다. 드르륵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캐리어를 끄는 인물이 우리가 있는 402호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경찰에 신고할게.”

“뭐? 밖에 들리지 않을까?”

“문자로 하면 돼.”

친구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현관문에서 퉁퉁 소리가 났다.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는 걸까. 아무튼 미친놈이 분명했다. 새벽 3시에, 아무도 없어야 할 재건축 예정인 아파트에서 도대체 왜 노크를 하는 걸까. 그것도 폭력적인 노크를.

나는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잔뜩 몸을 떨었다.

“보냈어, 문자.”

얼마 뒤 노크 소리를 뒤로한 채 친구가 나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 근처 공원을 산책 중인데, 재건축 예정인 ○○아파트 3동 4층에서 어떤 사람이 캐리어를 끌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관계자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빠른 출동 부탁드립니다. ]

내가 문자 내용을 모두 읽자, 갑자기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려는 것이다.

그리고 5초간 철커덕거리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곧 끼익하고 문이 열렸다.

드르륵 소리가 이제는 돌돌돌 소리로 바뀌었다. 캐리어가 현관을 건너 마룻바닥 위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순간이 닥치니 가장 크게 들리는 건 내 심장 소리였다. 나는 다리도 쭉 펼 수도 없는 장롱 안에서 입을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순간만큼은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캐리어를 끄는 인물이 또각거리는 발걸음으로 거실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여전히 구두를 신은 채였다. 우리가 먹은 과자 봉지가 발에 차이는 소리도 들렸다.

곧이어 베란다 문을 여는 소리가, 부엌 쪽에서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화장실 전등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캐리어를 끄는 인물은 안방으로 들어왔다. 그때부터는 침을 삼키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잊었다.

비유가 아닌, 정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돌돌돌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와 우리 사이에는 고작 얄팍한 장롱문뿐이다.

소리는 안방 중앙에서 멎었다. 상대방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와 친구는 있는 힘껏 숨을 참았다.

침묵.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정말 더 이상은 숨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돌돌돌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캐리어를 끄는 인물은 안방을 나가고, 그대로 미련 없이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선 쾅 하고 문을 닫았다.

그제야 친구와 나는 조심스레 숨을 몰아쉬었다. 이윽고 드르륵 소리가 들렸고, 캐리어를 끄는 인물은 401호 앞에서 멈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401호 문이 쾅 하고 닫혔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1분이 10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와 친구는 그대로 장롱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로.

그러자 밑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러 명의 발소리였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발소리의 주인이 경찰이라는 것을.

발소리는 금방 가까워져 4층에 도착했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오가는 대화 속에서 ‘4층’, ‘제보’라는 단어가 희미하게 들렸다.

“들었어?” 내가 소리를 죽여 말했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선 한참을 뜸들이다 대답했다.

“나가자.”

우리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장롱문을 열어젖혔다. 다행히도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얼른 ‘살려주세요’를 외치며 402호 밖으로 뛰쳐나갔다. 401호 쪽에는 시선을 주지도 않고 곧장 복도 중앙을 향해 달렸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우리는 거기서 잔뜩 당황한 얼굴의 경찰 세 명을 마주쳤고,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사실 그 후로 우리가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울며불며 횡설수설을 했을 것이다.

살려달라고, 미친 사람이 있다고, 자꾸만 캐리어 소리가 들린다고……

우리는 경찰과 함께 아파트를 벗어나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우리는 그저 호기심에 한번 와 본 건데, 구두 소리와 캐리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캐리어를 끄는 인물은 405호부터 차례차례 열려 있는 현관문을 닫더니, 401호를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고.

그러니까, 지금도 401호 안에 그 사람이 있을 것 같다고.

그러자 경찰은 추가적인 출동을 요청했고, 경찰차에 머물던 한 명이 우리 둘을 일단 근처 파출소로 데려다주었다.

파출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 3시 32분이었다. 어째서인지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파출소 안은 굉장히 바빠 보였다.

경찰은 우리를 구석 의자에 앉히더니 ‘기다려달라’라고 말했다. 그러고선 우리를 잊은 것처럼 바쁘게 파출소 이곳저곳을 오갔다. 보호자를 부르라 하지도 않고, 훈계를 하지도 않았다.

경찰끼리 연락하는 과정에서 자꾸만 ‘○○아파트’가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 정말로 뭔가가 있구나, 하고 짐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파출소 구석 의자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1시간을 기다렸다. 침묵 끝에 경찰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지금부터 집으로 데려다줄게.”

우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할 힘도 없었다.

그 사건을 겪은 뒤로, 우리는 며칠 동안 밝고 사람이 많은 피시방에 죽치고 앉아 뉴스만 바라봤다.

하지만 이렇다 할 뉴스는 없었다. 흉악범에 관한 기사가 보이기만 하면 곧바로 클릭했지만, 전혀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 캐리어 끌던 그거…… 사람이었겠지?” 내가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물었다.

“무조건.” 친구 역시 모니터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발소리 들었잖아. 그리고 새벽에 경찰이 아파트 이름을 외치면서 바쁘게 뛰어다닐 이유가 그것 말고 더 있을 리가 없어.”

“그건 그렇지……”

친구는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야, 캐리어 안에는 뭐가 들어있었을까.”

“몰라.”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알고 싶지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