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기담（海東奇譚） - 새편

상대（商隊,상인들의 행열）가 산해관을 넘은지 어느덧 한달 남짓 지났다. 끝을 바라볼 수 없던 평야 대신 저 멀리 첩첩산중에서 해가 뜨기 시작했다. 이제 곧 군자（君子）들의 예의지국（禮儀之國）이니라. 대장격인 낙양공 돌쇠가 속으로 감탄했다. 진짜 귀족이여서 공작인건 아니고 하도 낙양에서 잘 나갔노라 허풍을 해대서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또 얼마나 지났을까, 앞에 큰 강이 나타나 말이며 낙타들이 멈추어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강은 분명히 압록수（鴨綠水）일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압록수 너머 있는 작은 마을이 돌쇠의 고향이라 했다. 하지만 이번 교역의 목적지는 강 너머가 아닌 상류였다. 돌쇠는 속으로 나중에 보물을 찾아 진짜 공작으로 봉해지면 금의귀향해야지 다짐하며 상대를 이끌고 강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강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방향을 조정할 필요도 없어 일행은 빠르게 강을 타고 올라갔고, 강 줄기가 점점 좁아지더니 평지가 완전히 사라지고 어둡고 무서운 원시 숲들이 주변을 꽉 메우기 시작했다.

호랑이를 조심해! 돌쇠는 사람들한테 주의를 주었지만 여기저기 콧웃음만 들려 왔다. 하긴, 돌쇠의 일행들은 왕년에 드넓은 초지에서 늑대들과 싸우고 축축한 우림에서 맹수들과 싸워가며 여행을 하던 베테랑들이었다. 거기다 일행에는 스무명이 넘는 장정들에 연장들도 충분해 호랑이가 아니라 불곰이 온다해도 무서울게 없었다. 비도 며칠 오지 않아 화승총들도 바짝 마른 화약으로 언제든 사나운 불을 내뿜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밤이 되자 불을 지피고 돌처럼 굳은 마른 녹말덩어리를 물에 풀어 끓인 죽으로 허기를 달랜 돌쇠는 가슴속에서 해동일지라고 쓴 책을 꺼내 다시 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소싯적에 압록수 일대에서 겪은 일들을 적은 책인데, 대부분 모험담에 일기를 적은 다소 평범한 내용들이지만 마지막 몇 페이지는 이해하기 힘든 해괴한 내용들이 적혀있어 돌쇠는 할아버지가 여행 도중 심심해서 지어낸 이야기라 생각했다. 물론 할아버지는 사실이라고 핏줄을 세워가며 우기셨지만 말이다.

특히 이상한건 새가 그려져 있는 페이지였다. 할아버지는 말씀을 아끼시며 이 새를 보면 무조건 도망가라고 하셨지. 웃는 사람 얼굴을 하고 있는 이 새는 다리도 세개나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소름끼쳤다. 옆에는 새에 대한 정보를 적어놓았다.

원본

인면조（人面鳥）. 날때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접근하여 사람을 채어가 잡아먹는다. 아이나 여자의 울음소리를 흉내내어 사냥감을유인하며 잡아먹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기도 한다. 가장 믿기 어려운건 사람을 잡아먹으면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점차 잡아먹은그 사람의 얼굴로 변한다! 할아버지는 일행이 전부 잡아먹히고 혼자 살아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끝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알려주시지 않았다. 돌쇠는 할아버지가 자신을놀래키려 지어낸 괴담이라 생각하고 책을 덮고 잠을 청했다. 인면조인지 뭔지 한번 와보라지, 화승총으로 한방에 통구이로 만들어버릴테다!

부르럭거리는 소리에 깬 돌쇠는 눈을 떠보니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달빛아래 사람들이 엎드려 숲 쪽을 바라보면서 수군대고 있었다. 불침번이 뭘 발견했나보다. 무슨일인가 하니 대장, 잘 들어봐! 하니 음 .. 저 멀리서 갓난애기 같은 울음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이럴때는 보통 선봉（先鋒）으로 장손（長孫）씨를 염탐 보내는게 정상인데 갑자기 돌쇠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있었다. 인면조! 

에이, 그건 이야기일 뿐이다. 돌쇠가 신호를보내자 장손씨는 쏜살같이 숲속으로 달려가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잠시뒤 대장! 하고 외치는 장손씨. 이 녀석이 미쳤나? 산적이나 강도들의 매복 가능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맹수들이 득실대는 숲속에서 소리를 지르는건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다. 더군다나뭐든 조심하는 장손씨가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분명히 그만큼 긴박한 상황인게 분명했다.

연장 챙겨! 돌쇠는 일행을 이끌고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숲속으로 들어섰다. 뒤를 맡은몇명은 화승총에 화약을 넣기 시작했다. 숲속에는 인기척은 커녕 쥐새끼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장손씨가 남긴 자국과 흔적을 추적해가며 조심 조심 앞으로 전진하고있었는데 갑자기 대장! 소리에 그쪽을 바라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뭐지 하는 찰나 옆의누군가가 낮은 소리로 나무위! 라고 해서 보니 장손씨가 나무위 가지에 서서 여길 바라보고 있는게 아닌가?

거기서 뭐해! 입밖으로 나가려는 외침을 도로 집어넣은 돌쇠는 경악했다. 저건 장손씨가 아니었다. 사람만큼 큰 무언가인데 온몸이 깃털에 덮여 있고 얼굴은 자세히 보면 움푹 파인 구멍과도 같은 두 눈, 기괴하게 웃는것 과도 같은 입! 인면조다! 그렇다면 장손씨는 이미 잡혀 먹힌것인가? 돌쇠의 신호에 화승총이 일제히 화구를 내뿜더니 커다란 새는나무에서 떨어져 털썩 하고 땅에 꼬꾸라졌다. 일행이 우르르 다가가서 보니 커다란 부엉이를 닮은 새 한마리의 시체만 있었다. 

경계조가 신호를 보내 주변을 둘러보니 거대한 새들이 주변의 나무들을 맴돌면서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게 아닌가! 때마침 재장전을 마친 포수들이 총구를 위로 겨누자 새들은 총의 위협을 감지라도 한듯 일제히 숲 안쪽 깊은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일행은 경계태세를 유지하면서 장손씨를 찾기 시작했다. 근처 숲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장존씨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이상한건 이것뿐이 아니었다. 새를 잡은 곳으로 다시 갔으나, 새의 시체는 온데간데 없었다. 홍건한 피자국은 금방까지만 해도 여기에 무언가가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고 알려준다. 하지만 현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날이 밝는 대로 돌쇠 일행은 주변에 표식을 해두고 장손씨를 데리고 오겠노라 맹세하고 길을 떠났다. 원래 대로라면 며칠이고 야영하면서 사람을 찾았겠지만 너무도 해괴한 일을 겪은 탓에 재보급도 하고 사람들을 더 데리고 와서 찾기로 했다. 아니면 어쩌면 공포에 지린 사람들이 빨리 이곳을 떠나려는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저녁 무렵에 한 고을에 도착해 일행은 숨을 돌리며 이제야 아까 있던 일을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대관절 무슨 일인가에 대해 갑을논박이 오가던 중 옆에서 조용히 엿듣던 영감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 새를 만나면 살 방법은 하나뿐이네."

술잔을 기울이던 돌쇠는 이 말에 궁금증이 도져 되물었다. "할배, 뭘 안다고 끼어드시오. 그 새에 대해 아는거라도 있소?"

"지 애비 벌 되는 노인한테 말버릇도 없고 그려. 그 새들로 인해 먼 중원에서 오는 사람들이 항상 떼죽음을 당해곤 했다네. 처음엔 아무 소리도 안내고 귀신처럼 접근해서는 다 큰 어른도 낚아채 나무위로 올라가는데 순식간에 사람의 머리를 뜯어먹곤 그 사람의 얼굴과 똑같이 둔갑하고는 소리마저 똑같이 흉내를 내지. 그 소리에 홀려 다른 사람들이 이끌려 오면 똑같은 수법으로 당하곤 했지. " 

돌쇠는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겉으론 티내지 않고 능청스레 물었다. "그건 우리가 아까 다 봤소, 총 몇발 맞고 꼬꾸러지던데 별로 대단한건 없었소. 근데 영감, 아까 방법이 하나 있다라고 한건 뭐요?"

"눈을 감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네."

돌쇠는 순간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기다리면 된다고? 누굴 바보로 아나?"

"눈을 절때로 뜨면 안되네. 가령 자네가 그 숲에 혼자 들어갔다 치면, 눈을 감고 꼼짝 하지 않고 있으면 그 새들이 자네 주변에 살포시 앉아서는 자네를 둘러 쌀걸세, 그러곤 머리를 자네 머리에 바짝 대고는 금방 잡아먹은 자네 지인들의 목소리로 유혹 할걸세. 그 소리는 지인 생전의 목소리와 똑 같아 귀신에 홀린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라네. 말 내용은 차마 입에 담을수 없을 정도로 해괴하고 무시무시한 내용이라 듣고 있자니 정신이 망가지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강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라네."

"그걸 영감이 어찌 다 아슈?"

"예전에 내가 소싯적에 한 사내가 그 숲에서 홀로 살아남았는데 내가 마침 멀리서 그 광경을 구경하게 되었다네. 그 사내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해가 밝을때까지 꼼짝 안하고 있다가 새들이 사라진 뒤 내가 가까이 가서 흔들어 깨워서야 혼비백산 하며 그 자리에 푹 쓰러졌지. 그 새들이 뭘 중얼거린건지 아무리 물어봐도 사내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지."

"그 분 성함을 혹시 아십니까?"

"성이 사슴 록 계곡 골 해서 록골（鹿谷）이라고 한다네, 장가 가더니 손자까지 보고 중원 낙양으로 떠났지."

"어르신! 제 절을 받으십시오, 아까는 버릇이 없었습니다. 그 녹골씨가 바로 저희 친 할아버지이십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얼마전 작고 하셨습니다."

"그런가, 것 참 안됐군. 그래도 손자놈이 씩씩하니 됐네 그려. 참 세상에 이런 연도 있구려 그래 허허허. "

돌쇠는 절을 올리고 영감에게 술 한잔을 따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