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형동생들 웃대 인생 10년만에 처음 글 써보는 눈팅러야

가슴이 미치도록 답답하고 터질 것 같은데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때가 없어서 이렇게 글 써봐...

내용은 제목 그대로야.


（장문주의）

몇개월 전에 정말 이런게 서로 한눈에 반한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푹 빠졌던 여자가 있었어.
썸 같은 기간은 생략할 정도로 서로 불꽃이 튀었고, 곧바로 연애를 시작했지

난 모쏠은 아니었지만, 마지막 연애와 꽤 간극이 있었고, 여자를 사귄 경험도 그리 많지 않았어.
그래서 그런지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연애가 너무 달콤하고 좋았어

나도 참 외롭게 자라왔고, 외모도 그닥 뛰어난 편이 아니어서 날 좋아해주는 여자가 거의 없었는데（그동안의 연애는 대부분 내가 좋다고 매달려서 한 연애였어） 이 친구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사랑 받는다는 감정을 느꼈어.

근데 연애 초기에 여자친구가 나한테 얼마 전부터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고 얘기했어
사연을 들어보니 몇 년전부터 불면증과 과수면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났고, 이제는 아예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해져서 정신과를 찾아갔다고 얘기했지
가서 기본 검사를 받아보니까 의사가 여자친구한테 우울증이 너무 심각해서 신체화가 진행될 정도인데 그동안 괴롭지 않았냐고 물을 정도로 우울증이 심각하다고 얘기했지.

이후로 당연히 꾸준히 내원하면서 약물치료를 받아야 했고, 나는 그런 여자친구가 너무 안쓰러워서 항상 병원에 같이 가주고 보살펴줬어
여자친구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불화로 인해 불행한 시절을 겪었고, 아버지는 이미 가정에 마음을 떠나 집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 여자친구의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를 하는 바람에（다행히 실패해서 병원에 입원하셨대） 여자친구는 중학생 때 강제로 혼자서 미국 유학을 가야 할 정도로 외로운 학창 시절을 보냈어.

이런 모든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렇게 고통 받는 거겠지....

어쨌든 병원에 다니는 초반에는 우울증이 너무 심각해서 감정 기복도 너무 심하고 아예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될 정도였어.
우울증을 극복하려면 일단 주기적인 패턴을 유지하고 작은 운동이라도 하는게 좋다고 해서 여자친구는 좋아하던 수영 강습도 신청할 정도로 치료에 대한 의지를 보였어. 근데 과수면과 불면증이 너무 심하니까 이런 것들이 아예 시도조차 안되더라.

잠을 설치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잠들었고, 그러다보니 눈을 뜨면 저녁이 되는 패턴이 반복됐지. 이게 너무 심한 날에는 예약했던 정신과 진료도 못 받을 정도였으니까 아예 정상 생활이 불가능했어...

그것 때문에 참 본인도 힘들어하고 그걸 지켜보는 나도 너무 고통스러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처방된 약을 복용하고 내원을 하니까 점점 수면패턴이 돌아오더라구.
잘 자기 시작하니까 여자친구도 에너지를 내기 시작했고, 이제는 정상 생활로 돌아와도 되겠다 싶어서 주2일 카페 알바도 구했어.
그동안 남자친구로써 옆에 있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어서 정말 괴로웠는데 점점 상태가 좋아지는 여자친구를 보면서 나도 참 뿌듯했어.
여자친구도 날 만날 때는 심리적으로 너무 편하다며 좋아했어.
물론 우울증이라는게 완치가 어렵기 때문에 거의 2주마다 한번씩 극심한 감정 기복으로 나랑 마찰이 있긴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주기도 점점 멀어졌어.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였지.

그렇게 또 3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회복된 여자친구는 이제는 집안 생활비（여자친구는 어머니랑 여동생이랑 셋이 삼）라도 보태야겠다며 알바를 평일 주5일로 늘렸어. 나는 아직은 살짝 이른 것 같은데 괜찮냐고 의아했지만 여자친구는 괜찮다며 돈을 더 벌고 싶다고 했지.

일이 바빠지기 시작하니까 자연스럽게 이전보다 만남 횟수는 줄어들었고, 퇴근하고 잠깐 만나거나 아니면 주말에만 만나는 식으로 변했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카톡으로 날 떠나겠다는 문자가 왔어...


그 날 저녁에도 같이 즐겁게 저녁 먹고 헤어졌는데 단 두 시간만에 너무 뜬금없는 카톡이 오니까 완전 뇌정지가 오더라구.
무슨 일이냐고 지금 장난하는거냐고 물어봤는데 묵묵부답이었고 전화도 받지 않더라.

하루 이틀 지나자 그제서야 이유를 얘기하기 시작했어.

사실 자기가 요즘 우울증 증세가 너무 심해져서 자살 충동도 많이 들 정도로 아프다는거야. 그래서 다 포기하고 싶었고 다 떠나고 싶었대.
혼자만의 시간에 집중하며 치료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렇게 얘기했다는거야...

난 너무 당황스러워서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어. 그리고 3일 뒤에 만나서 얘기하기로 했지.

어떠한 전조 증세도 없이 갑자기 떠나겠다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이별 유형에 충격 받은 나는 3일 동안 어머니를 비롯해서 친한 주변 사람들한테 하소연 하면서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조언을 들었었어. 근데 돌아오는 답변은 다 똑같았어. 다시 붙잡고 만난다 해도 또 다시 이렇게 행동할 것이고 너는 똑같이 고통받을거라고.... 그리고 우울증 심한 사람 곁에 있으면 너도 우울증 걸린다고.... 근데 그 말에 나도 머리로는 인정하고 있었는데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더라. 특히 엄마는 나한테 네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차라리 지금 끝내는 게 맞는 것 같다. 더 깊어지면 너만 병든다라고 냉정하게 말씀하시더라구. 근데 엄마 말이 맞긴 해...... 그래서 더 눈물이 나오더라....

어떤 친구는 나에게 이 관계를 더 지속해봤자 너가 더 힘들어지는 건 뻔한데, 오히려 지금 네 여자친구가 원할 때 좋게 헤어지는게 맞다고도 얘기했어. 이 말이 그래도 나에게는 참 위로가 됐었던 것 같아.

3일 뒤에 만나서 제대로 대화를 했지만 여자친구 생각은 변함이 없었어. 자기 옆에 있으면 계속 고통 받을 거래.... 근데 그 말을 듣고 부정을 못하겠더라... 몇개월간 여자친구의 우울 증세로 인해 나도 힘들었던 건 맞았으니까...

그리고 그동안은 내가 너무 편해서 좋았는데 이제는 너무 무겁대... 그래서 놓고 싶대...

나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얘기를 꺼냈어. 우리 딱 2주동안만 더 생각해보자고. 2주 뒤에도 생각이 변함이 없으면 그때는 정말 널 놓아주겠다고 했어. 그랬더니 여자친구도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했는지 알겠다고 했어...

그동안 여자친구의 우울 증세를 겪어본 바로, 가끔씩 여자친구 사고 회로가 고장 날 때가 있었어. 비상식적인 행동과 언행을 할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혹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이 있어서 이렇게 얘기했지...

어쨌든 서로 딱 2주 동안 아무 연락 없이 생각해본 뒤에 2주 뒤에 보기로 하고 헤어졌어.


--------------------------------------------------------------------


하지만 2주 뒤에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 너무 슬프다....
말은 2주 뒤에 결정하자고 얘기했지만 사실은 나 스스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렇게 얘기한 것 같아....

우울증이란게 도대체 뭘까.... 정말 너무 소름 끼치고 무서운 병인 것 같아.

연애하면서 이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까 고민도 많이 했고 난생 처음 우울증에 대한 것도 찾아봤고 경험담도 찾아 봤어.
물론 웃대글도 많이 찾아봤지. 보니까 나랑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들도 종종 있었는데, 모두 그 끝은 좋지 않았어. 그리고 그 때의 나는 그런 글들을 보면서 '우리는 다를 거야'라고 더욱 오기로 다짐했었지.

그런데 나도 똑같은 결말을 맞이한 지금. 정말 너무너무 괴롭고 회의감이 든다....

차라리 그 친구나 아님 내가 바람을 펴서 대판 싸운 거면 이것보단 덜 아프겠다 싶었어....


내가 살면서 이 친구를 잊을 수 있을까? 차라리 기억에서 삭제하고 싶은데 아마 평생 그러지 못할거야.....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그냥 어디든 하소연하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