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난 직 후,
수능이라는 인생의 첫 관문을 넘었으나 또 다른 관문이 내 인생엔 존재했다.

항문이었다.

내치핵
익명의 존재처럼 살던 그것은 어느 날 통증으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앉는다는 행위가 고문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수술대 위에서, 나는 치질과 처음으로 이별했다.
악연은 여기서 끝인 줄 알았다.

너무어렸다.

2024년 9월, 어른이 되었다고 믿은 나의 항문은
외치핵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나를 배신했다.
그건 말 그대로 튀어나온 존재였다.
나는 앉을 수 없었고, 설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금 수술대에 누웠고,
치질이 결코 나를 떠난 적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여름이었다.

그리고 2025년, 나는 세 번째 이별을 맞이했다.
이번엔 치루였다.
아무도 모르는 통로, 감춰져 있던 길,
몸 안에서 고름이 길을 내는 그 감정은
어딘가 내 마음 속 응어리와 닮아 있었다.

운명이었다.

나는 다시 깨어났고,
이번엔 진심으로 깨달았다.
내 인생의 항문은 단순한 배출구가 아니었다.
그건 나의 고통이 지나간 자국이자, 견딘 시간의 흔적이었다.

3회의 수술, 3회의 마취, 3번의 회복
나는 조금 더 유연해졌고, 조금 더 진지해졌으며
무엇보다도, 올바른 배변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항문이 괜찮다면, 인생은 아직 희망이 있다.
당신의 항문이 괜찮지 않다면,
괜찮다. 수술은 생각보다 금방 끝난다. 하지만 회복은 길다.



※ 최근 보험 들었는데 항문 부담보 3년 잡혀서 쓴 거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