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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바람은 다시 불 수 있을까

그라운드의 함성은 거짓말처럼 멀어졌다.

녹색 필드를 가로지르던 남수현은, 그날도 빠르게 돌파해나가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 3년차, 주전 자리를 굳건히 지켜내며 세계적 주가를 올리던 그 순간. 그리고——깊숙히 들어온 태클.

"Su-hyun, ¿estás bien?" 동료의 외침이 물속에 잠긴듯 먹먹하게 들려왔다

뚝.

소름끼지게 명료한 소리가 무릎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바닥에 쓰러졌고, 웅성이는 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마치 수면 아래로 가라앉듯, 소리가… 사라졌다.

ㅡ “허읏!”

수현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눈을 떴다. 고속버스 안. 꿈과는 다르게 창밖엔 고요한 풍경이지나갔다. 푸르게 펼쳐진 논밭과 흔들리는 비닐하우스들. 서울을 벗어나 한참 달린 모양이었다. 고속버스는 이제 막 톨게이트를 지났고, 입구 간판에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용화시]

도시는 멀어지고 있었다. 이제 이곳은, 축구와 아무 관련 없는 평범한 시골 도시였다. 하지만——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수현은 조용히 허리를 세웠다.

ㅡ 한참을 택시를 타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교문 앞에 내렸다.

해송여자고등학교.

학교 앞에는 '한국대학교 3명 합격!'이라는 현수막이 크고 화려하게 걸려 있었지만, 교문 한쪽에는 구겨지고 빛이 바랜 조악한 현수막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해송여고 축구부, 전국대회 8강 진출!]

현수막의 글씨는 거의 지워질 듯 말 듯, 겨우 남아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육상부들이 줄지어 트랙을 돌고 있었고, 한 학생만 운동장 구석에서 혼자 리프팅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 수현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ㅡ

“아시다시피, 저희 축구부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교장실.

나이 지긋한 교장은 수현을 의심 반, 기대 반의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남수현 씨가 왜 여길 오시겠다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급료도 거의 없고... 임시 체육보조교사로 등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수현은 계약서에 묵묵히 서명했다. 그리고 교장실 창문 너머 운동장을 바라봤다.

소녀 하나, 혼자 콘을 세우고 훈련 중이었다. 동작은 어설펐지만, 눈빛만은 진지했다.

“저 학생, 축구부인가요?”

“아, 박유진이요? 네. 2학년, 주장입니다. 유일하게 선수 출신이죠. 중학교 때까진 꽤 유명했는데... 부상 때문에 거의 선수 생활이 끝날 뻔했어요. 받아주는 데가 여기뿐이라서.”

수현은 축구부 명단을 넘겼다. 박유진. 영화중학교 출신. 중등부 토너먼트 5경기 2골 8어시스트. 십자인대 부상 이력. 그녀 역시 ‘무릎’이었다.

“저 친구, 이전 체육교사랑도 트러블이 좀 있었고... 흠. 뭐, 조율은 맡기겠습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ㅡ 운동장.

유진은 여전히 혼자 훈련 중이었다. 하지만 왼쪽 무릎을 문지르며 조금씩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였다. 그 순간, 발끝에서 튕겨 나간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구르더니——

누군가의 발 앞에 멈췄다.

박유진은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남수현이었다.

국가대표. 한국 선수 최초로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은 사나이. 대한민국이 열광한 국민 영웅. 그 얼굴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박유진, 맞지?”

“...네?”

“중학교부터 에이스급 유망주. 그리고 십자인대 부상. 그 이후엔 받아주는 축구부 없어서 여기 온건가?”

유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현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너, 축구 계속 하고 싶나?”

유진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억울함, 분노,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아무 대답조차 할수없었다.

“오늘 훈련은 이쯤 하고, 무릎 얼려둬. 자세한 건 내일 이야기하자.”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는 수현.

‘내일?’

유진은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ㅡ

클리셰덩어리의 1화.. 더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