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30살이 되면 없던 지병이 생긴다고 한다.

30살이 되면서 지병을 3개 얻었다.

- 비염, 탈모, 통풍

비염은 마스크를 쓰면 어느정도 대처 가능하다.

탈모.. 이미 베지터화가 진행되고 있어 일찍이 포기하고,
가발을 착용했으며, 9년이 지난 지금은 초창기 지인들을 제외하면,
내가 가발착용자란 것을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 주제인 통풍.

30살의 나는 렌탈제품 출장기사를 하고 있었다.

사장님, 팀장, 과장 2, 나. 밑에 두명 이렇게 7명이서 일 했었는데,
나는 유독 팀장과 사이가 안 좋았다.

팀장과 나는 3살밖에 차이나지 않았지만,
제대 이후 바로 입사해서 9년을 버텨 팀장을 달았고,

학창시절 일진놀이를 자랑처럼 여기며, 항상 나에게
고등학교때 만났으면 눈도 못 마주쳤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

이 사람은 32살이 되던 해에 통풍을 얻었는데,
평소 날티나는 말투와 엄살로 아무도 그의 아픔을
인정하지 않아 '엄살쟁이협객'이라는 별호가 생겨버렸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30살이 되고 무더운 어느 여름날 통풍을 얻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왼쪽 발에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 있었다.

불에 타는 듯한, 무언가에 쓸린듯한, 아니 겉이 얇게 베였는데 바닷물에 들어간 느낌인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었는데,
정확하게 어느 부위가 아픈지를 모르겠다는게 나를 더 답답하게 했다.

그렇게 3일을 버텼는데, 당시 마티즈 수동을 몰던 중 통증으로 클러치를 밟을 수가 없게 되어, 과장 한명에게 말하고
정형외과에 방문했는데,

진찰을 위해 신발을 벗자 발목이 떨어져나가는 듯 했고,
양말을 벗자 온 몸의 신경과 세포가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의사에게 '시발'이라고 외쳤다.

의사는 이거 통풍 같은데, 요산검사 한번 해보자더니
수치가 11인가 12인가 나왔다.

주사 한대 맞고, 약을 타고, 회사에 제출할 소견서 한장 써달랬고, 회사에 복귀했고, 그가 나에게 다가왔다.

- 뭐래냐?
- 통풍이랍니다.

잠깐의 정적..

- 너 퇴근해라 사장님께는 말해놓을게.
- 네?

당시 시간은 오후 4시. 퇴근까지는 최소 4시간이나 남았는데,
이 미친놈이 퇴근을 하라니, 뭔가 잘못되었다.
내 일은 자기가 할테니 걱정말고 퇴근하란다.

집에가서 약 먹고 푹 쉬니 다음날부터 불편하지만 걸을 수 있게 되었고, 고마움에 마일드세븐 팩 한 갑을 선물했고,
말보로 레드로 바꿔오라는 답을 받았다.

그 날 이후부터 팀장이 나를 대함에 바뀜을 느꼈다.
맨날 한시간씩 갈구던 것이 30분 이내로 줄었고,
점심은 항상 팀장이 좋아하는 순대국이었는데,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나 먹고 싶은거 물어본 다음 순대국을 먹었고,
일하다 빵꾸나면 전화로 욕만 하고 해결해주지 않던 사람이,
현장까지 나와주면서 전화로 욕하고, 현장에서도 면전에다 욕하고, 결국 일을 처리해주는 지경까지 되고야 말았다.

나중에 팀장한테 물었다. 왜 나한테 잘 해줬냐고,
그는 답했다.

- 우리 둘 다 젊은 나이에 통풍이라는 질병을 얻었잖아.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동지애랄까..?

미친놈, 이 놈은 단단히 미친 천하의 개쌍놈이 분명하다.
인간관계 개선은 개뿔. 옛기억을 되짚어 쓰다보니 추억보정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토악질이 나온다.

그렇게 몇 년 더 다니다가 매년 1월1일마다 등산하는것땜에 퇴사함.
https://m.humoruniv.com/board/read.html?table=pds&number=133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