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특정 가정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정말로 한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꽤 많은 가정들의 모습임. 주변인, 직업적으로 본 일, 인터넷 맘카페 등에서 보는 모습까지 통틀어서.

착실하고 자기 일 열심히 하는 평범하고 잘 맞는 남녀가 결혼함.

기다리던 아이를 가짐.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애기물건도 찾고 육아공부도 하며 행복해함.

아내가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씀. 이 시기는 원래 힘듬. 산후 우울이 아니더라도 복직의 불안정성과 자기 생활이 없는 것은 힘들고 힘들다는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며 내가 육아를 잘 하고 있나? 나는 좋은 엄마인가? 를 의심함. 의심이 되고 불안할 때마다 더 열심히 육아 공부를 하고 스스로 행동을 채점함.

남편이 이 시기에 아내의 불안에 공감하지 못하고 좀 과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함. 이 시기엔 생각만 하고 그래도 아내가 힘들면 내가 더 많이 해야지 하며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함. 주말에 한번씩 자유부인도 시켜줌.

아이가 돌이 넘어가면 아내는 본격적으로 소진이 옴. 유아식이며 발달교구며 신경쓸 것은 끝이 없고 （그 불안들을 자극하는 매체광고들은 덤이고） 돈도 걱정됨. 애착을 위해 ㅠㅠ 육아휴직 될 때까지 최대한 데리고 있을거야 ㅠㅠ 하던 엄마는 죄책감을 느끼며 복직을 신청하고 어린이집을 보냄. 정서적 부담이 더해지며 크게 편하지는 않음. 막상 오전 내내 집안일 유아식 만들기로 바쁘고 하원하면 정신없다가 아이 자면 남은 청소 설거지를 하면 잘 시간도 없음.

남편은 '응? 이제 복직할 때까지 개꿀 아닌가?' 라고 생각하지만 입밖에 내지 않으면 크게 싸움나진 않음.

결국 아내는 복직하고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거나 잔업을 줄이고 근무형태를 바꾸거나 해서 등하원을 담당함. 이제 남편은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냄. 무염식 유아식을 뱉어내고 도망다니던 아기는 아침마다 아빠가 말아주는 초코씨리얼을 싹 비우고 궁뎅이를 흔들며 어린이집을 감. 저녁에 입맛 없다고 툴툴대다 빵이나 짜파게티를 꺼내면 아빠최고를 외침. 청소 어차피 밤에 한번에 해도 똑같아~ 입었던 옷 또 입어도 괜찮아 어차피 이 옷이 좋대~ 아이가 눈에 띄게 꼬질해지지만 볼살이 통통하고 표정은 밝음. 맑은 날에는 공원에서 공차고 킥보드도 배우고 비가 오래 오고 힘든 날에는 같이 유튜브로 만화도 좀 보고 아빠 게임화면 감상도 함.

엄마는 너무 힘들어서 육아에 잠깐 손을 놨었음. 복직에 적응하고 숨돌린 엄마는 다시 집으로 눈을 돌리고 여태까지 유기농 무염식만 먹여 키운 아기가 빵순이가 되어있다는 사실에 기함함. 자책도 하고 또 남편을 원망함.

이 시기부터 서로의 육아에 참견하기 시작함. 아내는 저 사람을 믿을 수 없구나 생각하고 열심히 근무가 끝나면 집안일을 하고 아이의 스케줄이나 식단을 짜서 남편이 지키게 하도록 노력함. 일도 집안일도 육아도 결국 다 엄마 손이 가야하는 건가? 라는 억울함이 심하게 듬.

남편은 유난도 가지가지다 우리때 그런거 없이도 다 잘 컸다 라는 말을 드디어 입밖에 냄. 하지만 수동공격성으로 보란 듯이 더 대충대충 하다가 애가 소소하게 장염에 걸리거나 충치가 생기거나 소아과 의사에게 과체중이라는 말을 듣거나 해서 욕받이가 되곤 함. 애도 슬슬 표정이 전처럼 밝지 않고 산만함. 그 원인으로 스스로를 탓하면 여기서 봉합되지만 아내는 인스턴트 음식과 영상매체 노출을, 남편은 엄마의 짜증내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꼽으면 이제 파국임.
애한테 문제가 생겨도 못 변한다면 정신병 아닌가 생각이 듬. 아내는 남편의 성인 ADHD를 의심하고 남편은 아내의 강박증과 불안장애를 의심하기도 함. 진짜로 병원에 내원해서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음.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며 애만 싸고돔. 상대방이 애를 데리고 가면 애한테 문제가 생길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어서 이혼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둘 다 저 사람은 신뢰할 수 없는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함.

그냥 하고 싶은 말은.. 기다리지 않았던 대충 키우는 아이들이 더 잘 크는 경우를 오히려 많이 보게 되는 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