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놀이공원에서 들리는 비명소리가 너무 싫어서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나까지 공포에 휩싸이는 기분이 싫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

난 놀이공원 가고싶어. 가서 롤러코스터도 타고 싶고 회전목마 앞에서 사진도 찍고싶고 롯데월드가서 교복도 입고 싶어. 동물원에서 곰도 보고싶지.

그런데 안가는 이유, 못가는 이유는

달력은 10여년 전 어느날로 돌아가.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아빠는 싸웠고 엄마는 출근, 아빠는 집에 있었다. 아빠는 일용직 노동자. 그 해 이상할정도로 일감이 없어 집에 있을 뿐이었다.

그게 싫어서 동생들과 함께 방에 틀어박혀 아빠가 부르더니 그런말을 하더라.

"일요일인데 아빠랑 놀이공원이나 갈까?"

난생처음 듣는 말. 난 가족들과 여행을 가본적이 없을뿐더러 놀이공원도 가본적이 없었으니까. 동생들도 마찬가지였으니 좋다고 옷을 갈아입었지.

그런데 아버지가 우릴 데려간 곳은 동네 고깃집이었고 거기서 소주를 드시더라.

두병..네병...집에 가고싶었는데 아버지는 우리를 놀이공원에 끌고갔다.

당시 입장료가 7천원인가 그랬고 자유이용권이 14000원?이었을거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암튼 그랬음.

아버지는 술취한 목소리로 매표소 직원에게 애들 놀게 자유이용권을 끊어달라며 14000원을 내밀었고 직원은 단호하게 "4분이니까 5만6천원 주셔야죠 아버님"이라고 했고 아버지는 당황한건지 뭔지 우리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비싼데 입장권만 끊어서 구경이라도 할래?"

"아뇨. 그냥 집에 가요. 나중에 오면 되죠."

동생들은 어땠을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 아버지에게 실망했다.

아버지가 술만 안마셨더라면, 아침부터 소주를 네병 마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유이용권을 끊고 놀 수 있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어린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랬다. 아버지가 미웠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수지였나 호수였나 암튼 있었다. 동생들과 집에 가서 게임이나 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아버지가 사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버지가 물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이전부터 아버지는 다 그만두고 죽는게 낫겠다는 말을 하는 술버릇이 있었고, 농약을 마시려다가 작은아버지의 방해로 무산된적도 있으며 불꺼진 방에서 목을 매려는 것을 내게 들킨적도 있었으니 나는 직감했다. 아버지가 또 그런 행동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우리가 울며 아버지를 부르자 그때서야 

"뭐 좀 보러간거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날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그날 인생 최악의 기분을 3연타로 느꼈다. 그래서 그런가? 놀이공원 입구에만 서면 그때의 모든 일들과 기분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버린다. 나는 그대로 발을 돌린다. 입에 담배를 연신 물어야만 그 기분이 다시 머릿속 깊은 바다로 잠겨들어간다.

내년이면 서른한살이 된다.

나는 아직도 놀이공원 입구에서 발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