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4 16: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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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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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썻는데 같이 보자.
계절을 잊은 꽃에게 배우다
우기몬 엄마
꽃을 피우지 못했다.
지지난 봄, 집들이 선물로 받은 연산홍은
분홍과 빨강을 한껏 터뜨리며
거실을 단숨에 환하게 밝혀 주었다.
그러나 찬란했던 꽃이 모두 진 뒤에도
잎은 유난히 또렷했다.
계절이 바뀌어야 할 때가 와도
잎 하나 떨어지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성인이 되었어도 자립하지 못하고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는
요즘의 ‘캥거루 자녀’를 닮아 있었다.
따뜻한 실내의 풍족함 속에서
연산홍은 계절의 신호를 잊어버리고,
변해야 할 때 변하지 못한 채
온실의 안정감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햇살이 부족한가 싶어
창가 가까이 옮겨두고,
물을 조금 더 챙겨주기도 했지만
새 봄이 와도 연산홍은
어떤 변화도 보여주지 않았다.
결핍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풍족해서
성장이 멈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 시대 또한 떠올랐다.
굶주리던 시절엔 찾아오지 않던 질병들이
풍족해진 사회에서 널리 퍼진다.
당뇨, 고혈압, 비만뿐 아니라
우울증과 조울증 같은 마음의 병까지.
‘선진국병’이라 불리는 이 병들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에서 비롯된 상처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다.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흙먼지 스칠 일이 없는 온실 속의 삶은
겉보기에는 안전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생명력은 점점 잠들어 간다.
우리 영혼도 때로는
바람과 추위를 통과하지 않으면
꽃 피울 순간을 잃어버린다.
결국 나는 연산홍을 화단으로 옮겼다.
밤이면 서늘한 기운이 내려앉고,
낮이면 바람이 잎을 흔들고,
비가 오면 비를 맞아야 하는 자리.
스스로 뿌리를 깊이 박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자리였다.
그러고 나서야
연산홍은 마침내 계절을 기억했다.
거센 바람과 겨울의 찬 기운을 버틴 뒤
봄바람이 스치는 어느 날,
펑, 펑—
숨겨 두었던 생을 터뜨리듯
연실연실 꽃을 피워 올렸다.
그 꽃을 바라보며 나는 깨달았다.
온실의 따뜻함은 꽃이 되는 조건이 아니라
꽃을 잊게 만드는 함정일 수 있다.
연산홍은 바람과 추위를 견디며
비로소 자신이 피어나야 할 때를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 작은 꽃 앞에서
삶의 오래된 진실 하나를 다시 배웠다.
꽃은 보호 속에서 피지 않는다.
버텨낸 자리에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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