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유리스씨.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곳에선 잘 지내십니까.

“나, 아빠하고 엄마의 아이로 태어나서 좋았어. 사랑해.”
전해들은 당신의 모습은 계절의 굴레를 장식하는 낙엽과 같아서,
자꾸 차오릅니다.

편지는 이제 구시대적인 표현방식이 되었습니다.
아이리스씨는 말합니다.
“이제 전화뿐만이 아니라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어도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온다니까요.”
그 날이 오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전하고자 하는 것은,
소나기가 그친 뒤의 밤이었습니다.
유리스씨의 가족도 류카씨도 아이리스씨도 저도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유리스씨에게로 모였습니다.
그 날을 기억하십니까?

소나기가 내려앉은 자리마다 인연의 얼굴이 비춰졌을 때,
그 물방울에서, 저는 모든 스쳐지나간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류카씨가 말했습니다.
“저는 혼자가 아니에요.”

이젠 더이상 편지니 뭐니 하는 것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이 세상엔 전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아직도 모순으로 가득차 있으니까요.

사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질게 대하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에게 돌아가고
자신의 일생을 바친 우편국에서의 헌신을 결심해요.

우리가 편지를 쓸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전해야만 합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니까요.

두번 만나는 것이 필연이고 세번 만나는 것이 운명이라면
이 하늘 아래 운명 아닌 게 있을까요.
그것이 인연이든 악연이든,
쉽게 끝나지 않을거에요.
상처 입고, 죽을 것 같고, 원망하게 될 거에요.

그런데도,
괜찮아요.

저에게 “사랑해”를 가르쳐준 사람과 같이
유리스씨는 저에게 “짱이네” 그러니까, 괜찮다는 뜻이었죠?
엄지손가락을 펼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으니까.

괜찮을 거에요.
어두운 길을 혼자 걸어도, 계절들이 돌고돌아도, 괴로워하지 말고

괜찮으니까, 그곳에서도, 사랑해줘요.




- 자동수기인형 바이올렛 에버가든